소설리스트

칼의 귀신-59화 (59/432)

59화 - 제12장. 화산 (3)

천무경은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두 발로 바위산의 암벽을 눌렀다. 파천신공의 기운은 단숨에 많은 양의 진기를 발바닥의 용천혈(湧泉穴)로 끌어당겼다.

꽝!

원형의 파열이 암벽에 새겨졌다.

천무경의 신형이 마치 대포의 그것처럼 무서운 기세로 솟구쳤다.

언덕의 수풀에 숨어 아래를 향해 쏘아 내던 일월종 교도들이 그 굉음에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그 순간, 저 멀리 작게 보였던 천무경이 어느새 근처까지 짓쳐 들었으니 그것을 인식했을 때는 이미 그들과 천무경 사이의 거리가 불과 일여 장 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씨……!”

반백의 머리와 장포를 휘날리며 부릅뜬 눈은 살기가 그득하다. 건장한 체격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해 보였다. 무엇보다 날아오며 두 손에 모아온 거대한 공력의 소용돌이는 흡사 심판을 위해 내려온 천신(天神)을 마주한 공포감을 안겨 준다.

콰콰쾅!

대포처럼 날아왔듯 천무경의 손에서 분출된 공력이 몰아친 언덕은 그야말로 포격을 얻어맞은 듯 초토화가 되었다. 제멋대로 뭉개지고 찢긴 신체 조각들이 흩날리는 흙먼지와 나무, 수풀 파편들 속에서조차 선명하게 보일 정도다.

날아오던 천무경의 기세도 멈추지 않았다. 전신을 바람으로 두른 채 먼지구름 속으로 파고들며 그를 중심으로 다시 한번 휘돌아 퍼져 나갔다.

꽝!

또다시 굉음과 함께 먼지구름을 뚫고 천무경이 솟구쳐 올랐다. 이번에는 반대쪽 언덕이었으니 그곳에도 천무경의 등장에 허겁지겁 도망치려는 일월종 교도들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반응은 천무경이 다시 날아드는 속도에 비해 늦었다.

콰콰콰콰!

“끄아악!”

종전과 같은 거리까지 좁혀진 순간, 천무경의 손이 허공을 할퀴듯 휘저었다. 그러자 기의 파도가 휘몰아치며 도망가려는 교도들을 휩쓸었다. 각기 산개하며 흩어짐에도 그들의 반응보다 천무경이 들이닥친 속도가 빨랐기에 공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천무경의 신형이 다시 한번 먼지구름으로 들어갔다. 그의 몸을 바람이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먼지 한 톨 옷에 묻지 않았다. 거기에 손을 한 번 더 크게 휘젓자 큰바람이 일어나며 주위를 뿌옇게 만들던 먼지들이 밀려나 버렸다.

펄럭!

소매의 장포 자락을 휘날리며 가볍게 뒷짐을 진 천무경의 시선이 오르막 경사로를 따라 어느 한 지점을 노려보았다. 그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그 지점의 수풀이 부스럭거리더니 그림자 하나가 급히 언덕을 오르며 그 너머로 빠르게 사라졌다.

‘잔챙이가 사라졌군.’

그것은 그의 생각일 뿐이었다.

방금 사라진 그림자는 바로 화살에 강기를 담아낸 금궁수라 본인이었다. 만약 이 화산을 오르는 무리 가운데 천무경이 없어서 이렇게 화려한 기공으로 숨어 있던 석궁조를 단숨에 제압하는 시위를 하지 않았다면 금궁수라의 견제와 화살비로 인하여 등반 속도가 크게 늦춰졌을 것이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과연 파천무봉이란 별호가 그를 제대로 설명해 주는구나.’

천무경의 무위를 잠깐이나마 보게 된 범굉은 내심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그저 건조한 손짓엔 막강한 공력이 담겨 있어 일대를 초토화할 정도인 데다가 강기를 다루는 것이 자유롭고 경공도 쫓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만약 천무경이 작정하고 정파의 발호를 막으려 든다면 정말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문득 그래도 주백자라면 천무경을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일말의 의심을 품고 있는 자신이 한심할 따름이었다.

적들의 방해가 사라지자 천무경 등이 빠르게 올라가 어느새 청가평(靑柯坪)에 이르렀다. 지대가 평평해지면서 청송림이 울창하게 우거진 지역이었다. 이 지역을 기점으로 다시 수직에 가깝게 가파른 절벽 길을 올라야 하는데 위에서 화산에서는 흔한 바위라도 굴리면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가자.”

천무경은 망설임이 없었다.

청가평 앞은 천척협(千尺峽)과 백척협(百尺峽)이 연속으로 이어지면서 오로지 하늘만 보고 올라야 할 길이 있었다. 아주 오랜 세월부터 천천히 바위를 깎아 계단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길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긴 했으나 폭이 매우 좁아 전술적으로 함정을 파놓기 좋은 곳이었다.

천무경의 신형이 미끄러지듯 나아가며 천척협의 계단을 빠르게 주파했다. 일보에 백여 척의 거리를 단숨에 내딛는 것도 모자라 속도마저 빠르니 한 마리 매가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천무경은 천척협에 특별한 함정이 없음을 알고 바로 백척협까지 올라가 버렸다.

“아미타불. 화경의 경지란 저런 것인가.”

삼십여 척에 가까운 거리를 기꺼이 훌쩍 뛰어넘으면서도 이미 멀찍이 달아나 버린 천무경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던 범굉은 감탄하며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있던 말이 툭 튀어나왔다. 수준 높은 경공과 강기의 위력을 이미 한 차례 보았음에도 도저히 감탄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소림사의 역사가 깊어 오랫동안 천하오절의 자리에 여럿 배출하였는데 새삼 놀라실 일입니까? 대사님께서도 멀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남궁평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다시 그 정도의 경지를 이룬 자가 나온다면 우리 다음 세대나 가능한 일일 것이오. 남궁세가도 유서가 깊어 천하오절을 배출한 적이 있는데, 그 혈통을 가지신 천혼당주께서도 분명 방주의 뒤를 따를 것이오.”

범굉이 흘끔 그를 쳐다보고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고 오르면서 흘리듯 대답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은 남궁평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괜히 물어봤군.’

범굉은 남궁평 개인을 칭찬하는 한편, 사파에 의해 멸문의 길을 걸은 남궁세가였음에도 그 핏줄인 남궁평 일가가 변절하여 천무방에 들어간 것을 꼬집는 말이었다. 소림사 승려들의 만남에서도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었었는데 범굉이 이를 지적하니 잠깐 마음이 허전한 느낌도 들었다.

천척협을 오르고 백척협을 마주한 천서은의 호흡은 조금 가쁜 상태였다. 화산협부터 천척협까지 쉬지 않고 올라왔던 것도 있었지만, 점점 발을 딛고 있는 고지가 높아지면서 그녀가 보고 싶어 하는 사람과 가까워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잡념은 밀어 두려고 해도 귀를 간지럽히는 자신의 숨소리와 조금은 빨라진 심장 박동 소리는 자꾸 진도건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었다.

“후우, 후우…….”

백척협까지 거의 올랐을 때쯤,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부친의 목소리뿐만 한두 사람의 목소리가 더해진 것 같았는데 느껴지는 기척만으로도 십수 명 정도 되어 보였다.

‘이 화산에 온통 적만 있을 줄 알았는데 같이 얘기하는 것을 보면 아군인가?’

앞선 범굉과 사대금강, 남궁평, 이혁성의 뒤를 따르며 마침내 백척협까지 올라선 그녀는 능선길을 따라 산바람에 장포를 펄럭이는 천무경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어깨너머로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다소 경계심 가득한 모습으로 서 있는 도사들과 장년의 거지를 발견했다.

‘……아아!’

익숙한 도포와 허리에 찬 검, 그리고 잊을 수 없는 3년 전 화산에서의 기억 속 그녀를 위협했던 노도사 묵허자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천무경의 딸임을 알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기억이 아직도 잊지 않았는데 그런 자가 여기에 나타나 천무경과 아직 칼부림 없이 대치하고 있는 이 상황을 선뜻 이해되진 않았다.

어쨌든 한 가지 인지하고 있는 건 여기 ‘화산’의 주인이 그들이라는 점이었다.

‘지금이라면 저 도사와 내가 검을 겨뤄 볼 수 있을까? 그때의 도건도 저 사람에게 크게 밀리지 않았는데…….’

사패소룡비무제에서 우승을 거둔 명예가 그녀에게 자신감을 안겨 준 상태였기에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지만, 어찌 되었든 지금 이 자리에서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신경은 다시금 남서쪽에 어렴풋이 보이는 연화봉 끝자락에 닿았다.

“범굉대사. 대사께서 인증을 해 주셔야겠소이다.”

범굉대사가 천무경의 앞으로 나섰다.

“아미타불, 석 대협을 뵙습니다.”

“오랜만입니다, 대사님”

석대호가 앞으로 나서서 범굉의 인사에 화답했다.

“천무방주께서 화산파를 곁에 두어도 되는지 의심을 하고 계시니 대사님께서 사이의 오해를 풀어주시길 바랍니다.”

“방주님, 개방의 덕호가 떠나기 전 제게 전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적들이 화산을 침범했다면 화산파의 도움을 빌릴 수 있지 않겠느냐고. 개방은 그런 판단을 했기 때문에 석 대협께서 미리 묵허자가 이끄시는 화산파 은화당의 힘을 빌리러 움직였다고 얘기해 주었고 소승도 동의했습니다.”

“왜 내게 얘기해 주지 않았소.”

“화산파와 천무방의 은원이 깊은 것을 알기 때문에 미리 얘기하면 거절하실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지금 하신 말이 궤변인 걸 아시오?”

“아미타불.”

범굉이 합장을 하고 불호를 외우며 머리를 숙였다. 천무경의 지적이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사죄한다는 의미였다.

범굉이 배려심 없는 사람은 아니나 강호에서의 냉정한 관계를 대하는 방식에 있어 경험이 부족하고 달변도 아니었다. 그 때문에 이해 구도상 모양새가 이상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석대호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

“방주. 이런 결정은 본 개방이 판단한 사안이므로 대사님을 나무라시기 전에 소인을 지적해 주시지요. 그러나 적의 적은 동지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화산파는 화산의 성스러운 도관이 마도의 손에 더러워지길 원치 않고 방주께서는 구해야 할 사내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상대는 천마신교의 일월종, 일월신마입니다. 우리의 숫자가 방주께서 이끌고 오신 분들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수련한 매화검수들입니다. 필경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천무경이 묵허자를 비롯하여 그 뒤에 선 매화검수들을 쓰윽 훑어보았다.

“후후! 음지에서 몰래 칼을 갈았다 이건가?”

묵허자도 그렇고 뒤따라온 매화검수들은 결코 천혼당에 뒤지지 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오로지 삶의 초점이 도가경전의 공부와 검술 수련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무공수준은 분명 높았다. 그러나 묵허자 정도를 제외하면 판도를 흔들 수 있을 만한 절정 이상의 검수들은 없었다.

그런 그의 가소로워하는 눈빛을 느꼈던 것일까?

안 그래도 천무경과 얼굴을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심기가 불편했던 묵허자가 코웃음을 쳤다.

“흥! 천무경과 천무방의 명성은 헛것이었나 보군. 잘난 척 아래로 내려다보지만, 곁에 두기에 두려워하는 것 같으니 말이야.”

“하! 어이없군.”

천혼당 안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이라고 정파와 곁을 두고 싸우는 것을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소림사 승려들도 직접 충돌한 역사가 있긴 했었으나 일찍 봉문을 택하여 서로 간에 피를 볼 일이 없었고, 멸문 직전까지 싸운 화산파에 비해서는 은원이 적었다

즉, 지금 서로를 마주 대하는 마음가짐은 화산파나 천무방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천혼당에 젊은 사람이 많이 유입되기는 했지만, 5, 60대 나이의 노장층도 있었고 그들은 모두 정사 간의 분쟁을 경험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험악한 분위기에 확실히 더 동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천혼당이 적개심을 드러내니 화산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묵허자부터가 노골적으로 노려보고 있으니 사이에 낀 석대호나 범굉이 난감해할 지경이었다.

“크하하하!”

천무경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니 화산파 제자들이나 천혼당 모두 그에게 시선이 쏠렸다.

저벅저벅.

천무경이 묵허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 걸음이 가까워질수록 묵허자나 석대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한걸음 저벅 하고 내딛는 소리가 숨통을 겹겹이 옥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그 압박감은 오롯이 묵허자와 석대호에게만 향했는데 그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범굉대사는 혹시 천무경이 손을 쓰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면서 잠깐 갈등했다.

뒤를 쳐야 하는지 아닌지, 자신의 뒤에 있는 남궁평, 이혁성과 천무경의 딸, 천혼당 모두를 자신과 사대금강이 감당할 수 없다는 현실적 문제까지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섞일 때였다.

세 걸음을 앞에 두고 천무경은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묵허자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은연중 흘려보내던 투기를 거두었다.

“하아……!”

“허억……!”

어쩔 수 없이 터져 나온 두 사람의 날숨소리에 영문 모른 채 경계만 하던 화산파 제자들이 놀란 눈으로 보았고, 이를 지켜보던 범굉은 안도의 한숨을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천무경은 옆으로 한 걸음 걸었다. 묵허자 뒤로 보이는 화산파의 제자들을 쓱 훑어보았다. 그들이 가진 내공의 수준과 다듬어진 투기 등이 천무경의 눈에 고스란히 입력되고 있었다.

“화산의 그늘 속에 숨어 지낸 세월 치고 자부심을 느낄만한 수준인 것은 틀림없군.”

한 사람, 한 사람 살피던 천무경의 시선이 영은성에 닿았다. 그를 유심히 살피던 천무경이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여, 영은성이오.”

“좋은 자질이 보이는구나. 그런데 네놈은 나와 연배가 까마득히 먼데 말이 짧구나. 한 번만 더 그리 답한다면 네 이마에 딱밤을 놓을 것이다.”

탕!

오른손을 들어 중지를 엄지에 걸었다가 튕기자 날카로운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영은성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죄, 죄송하……, 합니다.”

“좀 낫군.”

천무경이 웃으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두 걸음 걷다 다시 몸을 돌려 묵허자를 보았다.

“적의 적은 동지. 인정하지. 사패련의 다음 해 련주로서 오늘 싸움이 잘 마무리된다면 화산파가 다시 연화봉에 깃발을 걸 수 있도록 보장하지.”

천무경의 말에 화산파 제자들이 반색하며 서로를 보았다. 무림맹이 아닌 사패련의 보장을 받는다는 사실은 분명 기분 나쁠 일이지만, 현실을 직시하자면 다시 화산 연화봉과 상궁에 들어설 수 있다는 기쁨이 훨씬 컸다.

하지만, 천무경의 다음 말은 그들을 더욱 긴장케 했다.

“그러나 이 앞에 큰 적이 있고 그대들과 우리는 한마음이라 할 수 없으니 서로의 등을 노리는 일도 가능할 터. 만약 그렇다면 우리도 피해를 볼 수 있겠지만, 이 점 하나만큼은 내 장담할 수 있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은 모두 화산에 뼈를 묻게 될 것이오. 나는 세평에 더해서 과대평가해도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명심하시오.”

“……오만하군.”

다른 화산 제자들만큼은 일순 공포에 떨었지만, 묵허자만큼은 치욕스러운 기분을 삼키고 있었다. 천무경이 그를 보니 두 눈에 분함이 가득한 게 느껴졌다.

담담하게 그 시선을 받아 내던 천무경이 피식 웃었다.

“오만한지 아닌지 그대는 오늘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오.”

“흠…….”

천무경은 노려보는 묵허자의 시선을 무시하며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화산파와 소림사, 개방의 고수까지 천무방에 합류하면서 어느덧 무리가 40명을 넘길 정도로 늘어났다. 그래 봐야 적들에 비해 적은 숫자일 테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천무경도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있었다.

“화산파는 묵허자께서 이끄는 이들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낙안봉과 조양봉 쪽에서도 봉우리를 점거하고 합류할 화산파의 제자들이 이십여 명은 될 것입니다. 조만간 움직임을 보실 것입니다.”

석대호는 천무경이 화산파의 존립을 인정해 주는 인식을 하고 있다고 판단되자 그에게 추가 정보를 알려 주었다.

“그것이 전부요?”

“전국으로 흩어진 자들도 있지만, 가까운 곳은 그들이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석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로 살짝 빠져 범굉에게 다가갔다.

“대사님, 덕호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오문의 사공흠이란 자와 같이 북쪽에 있을 천무방을 찾으러 갔습니다. 천무방의 두 장로가 이끄는 천혼당이 아마 340여 명 될 텐데. 모두 정예라 할 수 있으니 천마신교가 상궁에서 농성하려 해도 쉽지 않은 구도가 될 것입니다.”

“하오문이라면…… 덕호의 신원을 보장해 주기 위함이군요. 알겠습니다.”

“아미타불.”

백척협을 빠져나온 그들이 바위산의 능선을 따라 한동안 달려갔다. 얼마간 오르자 바위산 능선 위의 거대한 바위를 마주쳤다. 스치듯 지나가며 바위 한쪽에 세로로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새겨진 듯한 ‘일월암(日月岩)’이라는 글씨가 지나치는 사람들 눈에 한 번씩 밟혔다.

‘하필 이름이 일월암이라니…….’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있던 바위이긴 했으나 하필 연화봉을 점거한 것이 천마신교 일월종, 일월교였으니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나 싶었다. 정의가 자신들 손에 있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일월암을 보니 지세(地勢)가 적들에게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들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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