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 제8장. 마인(魔人) (4)
타타탓!
“이 개자식 죽여 버리겠어!”
절규에 가까운 외침을 내지르며 돌진하는 하소정을 장우태가 가까스로 붙들었다. 검을 두 손으로 간신히 쥐었는데 그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끝까지 달려들려 몸부림을 치면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지금 그들로서는 막아설 수밖에 없었다.
“참아라, 소정아.”
장학도 와서 그녀의 팔과 어깨를 붙잡고 제지했다. 그녀의 떨림이 두 손에 그대로 전달되니 그도 울분을 절로 삼킬 수밖에 없다.
“크크크!”
그들의 모습을 일월신마는 기쁜 듯 웃음을 흘렸다.
“팔의 그 흔적을 보아하니 저 시체 살려 보겠다고 손을 댄 모양이구나. 본좌의 일월혼극마공(日月混極魔功)의 힘이 어떠냐. 본좌가 직접 손을 썼으면 팔이 아니라 저 시체랑 같은 꼴이 됐을 것이니라.”
“닥쳐!”
“크흐흐흐!”
일월신마가 웃으며 몸을 돌렸다. 더는 볼일이 없는 사람처럼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건네었다.
“살고 싶으면 쫓아오지 마라. 복수를 정녕 하려거든 제대로 된 놈을 데려오고.”
일월신마는 걸음은 느긋했다. 능선을 따라 걷는 그 걸음걸이가 힘이 있어 쭉쭉 뻗긴 했지만, 달리는 속도만 못했다. 마치 그들이 다시 쫓아 와 주길 바라는 기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뒷모습이었다.
“참아라, 소정아. 이건 장로님께 맡겨야 한다.”
“흐흑! 흑!”
하소정은 그만 검을 떨어뜨리고 무릎을 꿇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나이 차이가 적어서 가장 가깝게 지냈던 나자룡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던 것이었다.
그것은 장학이나 관무영, 장우태 모두 마찬가지였다.
장학은 품에서 신호탄을 꺼내 아직도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은 일월신마를 바라보며 해당 방향을 향해 신호탄을 터뜨렸다.
펑!
검은 연기가 하늘에 기둥을 형성했다.
세 사람은 나자룡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검게 변한 얼굴과 아직도 감지 못한 충혈된 눈, 입 주변에서부터 시작되어 상의까지 물들이는 많은 출혈량을 보고 있으니 다시금 억장이 무너지는 듯하다.
그 짧은 마주침에 한 생명이 허무하게 빛을 잃었으니 안타깝기도 그지없다.
세 사람은 자신들의 칼을 이용해서 땅을 팠다. 사람 하나 넉넉히 들어갈 정도로 파서 그곳에 나자룡의 시신을 묻는다. 아직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하소정은 뒤로하고 사내 세 사람이 눈물을 삼키며 시신 위로 흙을 덮었다.
작은 봉분이 만들어졌다. 봉분 앞에는 나자룡의 도와 도집을 교차시켜 지면에 박아 넣었다.
“자룡아, 무덤이 볼품없어도 용서해라. 우리가 다시 돌아오면 널 데리고 양지바른 좋은 자리에 다시 묻어 줄 테니.”
하소정도 비로소 일어나 그들 옆에 섰다. 가만히 나자룡의 봉분을 지켜보며 그의 원통한 넋을 기렸다.
모두 조용히 침묵을 유지하는 가운데 관무영은 불현듯 떠오른 걱정에 입을 열었다.
“……그런데 장로님이 늦는데? 진도건도.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 아니야?”
앞서 만난 천마신교 교도들의 실력은 문제가 되는 수준이 아니었지만, 일월신마의 강함은 그들이 손쓸 수 없을 정도여서 적잖이 충격을 받은 상황이었다. 또 천마신교가 등장하는 방식이 마치 그들의 이동상황을 훤히 내다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찝찝한 느낌은 일월신마로 인해 확대되어 불안한 마음을 가중했다.
교도들과 일월신마의 실력 사이의 간극을 고려하면 이들이 끝일 리가 없었다.
“어?”
그때 하소정이 소리 내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들이 지나온 곳에서 익숙한 모습의 사람을 발견했다.
“진도건!”
진도건은 다소 서두르면서 달려왔는데 그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네 사람은 그들이 가졌던 불안감이 어쩌면 사실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장님, 신호탄은 대체…….”
달려오면서 상황을 물어보려던 진도건의 발걸음이 멈칫했다가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천천히 걷는다. 그의 시선은 앞에 있는 네 사람이 아닌 그들 사이로 보이는 무언가에 꽂혀 있었다.
갑자기 감정이 요동침을 느낀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면서도 보았지만, 멀쩡한 지면도, 수풀도, 나무도 없다. 천혼당 동료들이 서 있는 지점을 중심으로 일대가 마치 폭풍에 휩쓸린 것 같았다. 이 정도의 무공을 가진 적을 마주쳤으리라.
“자룡 형님은 어디…….”
가까스로 입을 열었지만, 다시 이를 악다문다.
물어보는 것조차 헛헛하다.
어느새 다가온 진도건을 위해 네 사람이 갈라져 길을 내주었다.
진도건이 잠시 나자룡의 무덤을 바라보는 동안 그들은 잠시 침묵으로 기다려 주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기다림 후, 장우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천마신교의 일월신마라 했다. 우리로서는 자룡을 지켜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장로님이 오셔야 되는데 네가 먼저 올 줄은 몰랐구나. 그리고 너…….”
장우태의 시선이 진도건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의 더럽혀진 행색과 다소 헝클어진 머리카락, 조금이었지만 자상으로 갈라진 옷자락들은 그가 여기까지 도달하는 동안 적습을 받았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노지신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었다.
진도건도 장우태의 시선을 느끼고 잠시 자신의 행색을 살펴보았다. 급히 달려오느라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크게 티가 나는 것이 그의 눈에도 보였다.
“장로님인지는 모르겠지만, 북쪽 비탈길 너머 계곡에서 폭음이 들렸습니다. 제가 먼저 도착했다면 장로님도 아마 적습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넌 괜찮았느냐?”
진도건은 조금 전 일을 떠올렸다.
단체로 장거리를 질주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집단적인 행동에 불리함을 새삼 다시 느꼈다. 경신술을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이 내력으로 체력을 뒷받침하여 달릴 따름이라 속도도 속도지만 효율도 너무 떨어졌다.
다행히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짧은 기간임에도 제법 내공이 상승하여 예전과 같은 부담은 없었지만, 이 달리는 거리가 길어진다면 얼마나 쫓아갈 수 있을지 혹은 뒤처지지 않을 수는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후우! 호흡에 집중하자.’
들숨과 날숨을 신경 쓰면서 내부 기의 흐름을 예민하게 관조한다.
초식의 흐름이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선 출검 만큼 납검도 중요하다. 이처럼 발과 허벅지가 지면을 밀어낼 때 기운을 힘있게 쏘아 냈다면 그 행위를 마치면 다시 회수하는 것도 중요했다. 이것이 순환하는 고리 흐름을 만들어 내면 아무래도 좀 더 효율적으로 달릴 수 있었다.
쿠쿵!
“……!”
가만히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면서 달리고 있던 터라 북쪽에서부터 들려온 폭음에 적잖이 놀랐다.
진도건은 황급히 달리길 멈추고 시선을 돌려 멀리 바라보았다.
심상치 않은 돌풍에 수풀 등 잡다한 것들이 흩어져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근처에 쉬고 있었는지 그 주변에서부터 새들이 요란스럽게 날갯짓하며 도망치는 모습도 보였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진도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저 방향은 분명 노지신이 가던 길일 것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앞서 만났던 천마신교 교도들이 기습한 것일까?
‘노 장로님은 강하다. 쉽게 당하시지 않겠지만, 장담할 수도 없지. 어떻게 할까…….’
진도건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노지신 장로를 믿고 장학 조를 따라잡느냐 혹은 그를 도운 뒤에 합류하느냐?
그의 고민이 생각보다 길어질 때였다.
‘아차!’
머릿속의 고민은 사라지고 경계심이 가득 올라왔다.
뒤를 돌아보자 흑포인 두 사람이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였지만, 이렇게 늦게 반응한 스스로가 한심할 지경이었다.
“앞서간 놈들보다 이 정도로 뒤처지면 이 판에 어울릴만한 실력은 없는 것 같은데.”
“으음…….”
진도건은 빠르게 두 사람을 훑어보았다.
두 사람 모두 중년의 나이인듯하고 앞서 만났던 자들과 다르게 그 느껴지는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은 조금 부담이었다. 장학 조와 노지신을 생각하면 이 상황을 빠르게 타개해 나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다.
흑포중년인들은 진도건을 얕잡아 보는지 자기들끼리 말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앞서간 놈들이야 교주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고 이놈은 어쩔까나.”
“교주님이라니? 말조심해라. 지금은 신마(神魔)로 부르거나 종주(宗主)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아차차! 그랬었지.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 모든 종주와 그 종자들에게 교주는 오직 하나라. 큭큭!”
“신마께서 복종을 맹세하였으니 우리도 따라야지.”
“안 따르면 죽을 테니 선택권이 없어. 킥킥!”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는 모습이었지만, 진도건은 오히려 본인부터 방심하지 않았다.
주로 웃음을 실없이 흘리는 자를 주시하고 그가 웃음으로 호흡이 미세하게 흐트러지는 것을 노렸다.
슉!
“어딜?”
“가소롭구나!”
진도건의 신형이 튀어 나가며 출검했으나 실실 웃던 자가 빠르게 반응하며 피해냈다. 더불어 옆에 있던 흑포중년인이 가까이 접근한 진도건을 향해 기다렸다는 듯이 쌍수를 뻗었다. 일수에 팔을 봉쇄하고 목줄을 움켜쥔 뒤 부러뜨리는 모습이 가까운 미래처럼 그려지자 수염 아랫입술이 미소를 그렸다.
슈리릭! 촥!
검 끝이 흑포인에게 닿지 않는 순간, 방향을 틀어 접근하던 흑포중년인을 노리고 베었다. 미리 노리고 있었던 것 인양 그 움직임이 자연스럽고 찌르던 속도보다 빨라 흑포중년인의 손가락과 손바닥 일부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끄아악!”
“목곡지(木曲地)!”
실실 웃던 흑포인, 후성(侯星)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목곡지가 토막 난 두 손을 보고 비명을 지르는 사이에 진도건은 이미 팽이처럼 빙글 돌아 그의 등 뒤를 점유했다. 함께 회전했던 검은 그 궤적이나 흐름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빨랐다.
툭!
푸슛!
목에서 미끄러지듯 떨어지는 목곡지의 머리가 뜬 눈으로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동시에 이미 제 주인을 잃은 몸통과 한쪽 다리가 깔끔하게 잘려 나가며 그 단면에서 피가 솟구쳤다.
“이노오옴!”
후성이 품에서 쌍도를 꺼내 들며 진도건을 덮쳤다. 그의 맹공을 침착하게 받아 내었다.
챙챙챙!
후성의 쌍도는 빠르고 날카로웠는데 그 궤적의 노림수가 중원에서 보던 것들과 궤가 달랐다. 그러나 진도건은 그마저도 침착하게 받아 내며 반격을 쏘아 내었다.
“크으! 이놈 죽여 버리겠어!”
후성은 말 그대로 분노에 차 있었다.
일월교의 교도로서 이어받은 일월혼극마공을 전력으로 끌어 올려 쌍도에 담았다.
그 성취가 전 교주이자 종주인 일월신마에 비할 것은 아니나 스스로 중원 무공의 고수들과 비교해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일월혼극마공을 바탕으로 펼쳐 내는 한상혼쌍도술(寒霜混雙刀術)은 최고라고 자부했다.
일양기(一陽氣)가 우도(友刀)에, 월음기(月陰氣)가 좌도(左刀)에 담겼다. 거기에 한상혼쌍도술의 도결에 따라 월음기는 한층 더 강화되어 한음기(寒陰氣)로 발전한다.
허공을 벨 때마다 서리가 뒤따랐다. 도검이 직접 부딪칠 때면 차가운 한풍과 서리가 흩어지며 진도건의 감각을 방해했다.
‘이런 현상이 가능하다니!’
본능적으로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허투루 반응했다가는 후성의 우도가 정직한 예기를 뿜어내며 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감히 이따위 무공으로 설쳐 대느냐!”
후성의 노기가 그 외침에 서려 있었다. 그의 목소리 크기만큼 아주 매섭게 진도건을 몰아붙였다.
‘목곡지의 무공이 나에 비하면 떨어지긴 하지만, 어찌 이리 쉽게 당했단 말인가?’
이렇게 도검을 부딪쳐 보면 적인 진도건의 내공이 약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둘 다 방심하긴 했고 적의 검이 꽤 빠르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이렇게 허무하게 갈 수 있나 싶었다. 그 믿을 수 없는 사실은 그의 분노를 더더욱 키우고 있었다.
진도건은 후성의 살기등등한 눈을 마주할 때마다 결의를 다잡았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후성은 분노에 휘둘려 또 다른 의미의 방심을 하고 있었다. 객관적인 판단력을 잃은 그는 진도건의 검속이 어떤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슈슈슉!
한 단계 더 빠른 쾌검을 접전의 단계에서 꺼내 들었다.
챙! 하며 일검을 간신히 막아내고 다른 두 검격을 가까스로 피해 내는 후성이었다. 그의 무공 수준은 객관적으로도 거의 당주급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큭! 죽기 직전의 발악이로다!”
잠시 거리를 벌렸다가 쌍도에 상반된 기를 다시 담아내며 달려들었다. 진도건에 접근하기도 전에 두 쌍도가 교차하며 부딪쳤다.
한상혼쌍도술 한상환세도(寒霜幻世刀).
챠앙!
단순한 금속성을 넘어선 공명음이 터져 나왔다. 상극의 기운이 충돌하면서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얼어붙은 서리의 안개 영역이 펼쳐지며 호흡을 방해하고 시야를 가린다. 내력을 이용해 폐를 보호하지 않으면 한 호흡만으로도 타는 듯한 호흡기의 고통을 느낄 것이다.
파천신공이 반사적으로 단전에서부터 분출되며 폐를 보호하고 속에 담긴 호흡을 토해 내었다. 기도를 닫은 채 진도건은 서리를 뚫고 날아드는 쌍도의 연격에 맞서서 좀 더 필사적인 태세로 막아 내었다.
카카카캉!
“우와아아악!”
긴 기합 소리와 함께 휘두르는 그의 쌍연격엔 힘으로 찍어 누르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실려 있었다.
일양도의 열기에 서리가 증발하며 진도건의 호흡을 압박하고 한음도는 주변의 서리를 쓸어 담아 파편의 도기로 치환하여 공격의 범위를 넓혔다. 옷가지가 군데군데 잘려 나가고 피부도 쓸려나간다. 진도건의 검속이 만들어 내는 바람이 아니었다면 더 부담스러운 지경에 몰릴 수도 있는 상황.
피유웅!
그때였다.
공중으로 피어나는 연기의 기둥이 급박한 격전 속에서 시야에 들어왔다. 그 의미를 본능적으로 깨닫고 온 신경을 눈앞의 적에게 집중시켰다.
빠르게 고민한다.
이 지역을 빠져나와야 하나? 아니, 다시 쫓아와 이 서리 영역을 펼쳐 낼 것이 분명했다.
길은 하나.
‘끝낸다.’
호흡을 더 길게 멈출 수는 없었다.
한 줌 실낱같은 호흡을 폐부에 담고 의식에서 지워 버린다.
적극적으로 파천신공의 내공을 끌어올려 전신의 세맥으로까지 방출시켰다.
의지가 닿는 곳에 파천신공의 진기가 닿을 것이며 그보다 앞서 검이 움직일 것이다.
카카카캉!
시간과 공간까지 잘게 쪼개어 검을 뻗으니 쌍도와 얕은 접촉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파천신공의 강력한 힘이 전달되며 쌍도연격의 궤적이 뒤틀려 벗어났다. 정면으로 그 도세를 산산이 흩어내어 마지막 일검을 선사했다.
슈칵!
수직으로 솟구친 검광과 함께 날아오르는 진도건의 신형이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걸며 후성의 등 뒤 저편으로 착지하였다. 그리고 그의 발이 땅에 닿음과 동시에 후성은 단전부터 정수리까지 혈선이 그어지며 마침내 핏줄기가 솟구쳤다.
“이, 이럴 수가…….”
아직 붙어 있는 입술과 혀가 마지막 한탄을 토해 내나 결국 후성은 그 명을 다하고 쓰러졌다. 그의 동료 목곡지와 마찬가지로 부릅뜬 눈 감지 못한 채.
“후웁, 하아!”
진도건도 마침내 숨을 깊이 호흡하였다. 잠시 힐끔 뒤를 보며 두 구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탓!
망설이지 않고 달렸다.
다급한 만큼 길게 느껴졌던 짧은 시간.
곧 폐허처럼 변한 수풀의 광경을 목도하고 그렇게 마침내 장학 등 네 사람과 나자룡의 무덤을 마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