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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39화 (39/432)

39화 - 제8장. 마인(魔人) (3)

그들이 서 있는 곳의 우측엔 바위산이 아주 높이 솟아올라 있었다. 사공흠은 바로 그곳에서 일대를 관찰한 후 움직이기 위해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노지신은 연막탄이 터진 방향을 바라보며 움직였다. 계곡에서 벗어나 산의 비탈을 가로질렀다. 밀집한 나무들과 길게 뻗은 가지들, 곳곳의 무성한 수풀들이 시야를 가리고 움직임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사공흠이 알려 준 방향이 맞았는지 과연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들이 있었는데 산을 오르는 방향으로 군데군데 가지들이 부러진 흔적이 있었다. 그 흔적들을 짚어가며 오르고 있던 와중이었다.

퓨웅!

탄약의 폭발로 파공음과 함께 솟아오르는 소리가 그의 청각에 잡혔다.

‘이것은……!’

노지신이 급히 나무를 타고 위로 올랐다. 무성한 가지와 수풀들을 뚫고 마침내 꼭대기에 올랐다. 북서쪽에서 길게 기둥을 형성한 신호탄의 연기, 그것은 장학 등의 것임이 분명했다.

장학 이하의 천혼당 천급 무사들의 실력은 우수하다. 모두 검기 구사가 자연스러운 절정고수들이었고 한 개 조가 상대할 수 없는 고수들은 제한적이었다. 그런 그들이 위험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았다는 의미는 상정 외의 초절정고수가 등장하였거나 위협적인 다수에게 포위당했을 때일 것이다.

후웅!

때마침 바람이 등 뒤에서 불어왔다. 나무들이 바람에 고개를 조금씩 숙이니 밟기 좋아 보였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새처럼 노지신의 신형이 수풀림 위를 미끄러지듯이 내달렸다. 그 경사가 제법 가파르고 지지대가 약해도 노지신의 경신술 아래에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얼마간 올라갔을 때였다.

‘응?“

파파파팟!

순간 숲속에서 부서진 잎과 가지들이 허공에 흩어지며 그 사이로 갈고리가 달린 여덟 개의 사슬들이 노지신의 팔방을 점하며 솟구쳐 올랐다. 갈고리와 사슬들은 노지신을 향해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흐압!”

휘리릭!

노지신은 앞축이 전진을 멈추고 회전을 틀어 냈다. 어느새 손에 들린 태도를 함께 휘두르자 원심력을 받은 기의 바람이 소용돌이처럼 일어났다. 도풍(刀風)에 휘말려 갈고리 사슬들이 튕겨 나갔다. 그 여파는 주변 나무들까지 바람 방향에 따라 휩쓸려 기울여지게 했다.

파파파팟!

그 가운데서 다시 한번 갈고리 사슬들이 치솟았다. 이번에는 노지신의 주변을 둘러싼 것이 아니라 그의 지근거리로 노리고 들어왔다. 도풍이 발산된 직후를 노린 것이었다.

챠륵!

“으음!”

왼손과 두 다리가 사슬에 감기며 묶이자 노지신이 내심 놀라며 신음을 흘렸다. 갈고리의 날카로움은 노지신의 옷깃만 찢을 뿐 살을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절묘한 순간을 노린 것은 이 암수를 노리는 자들의 실력이나 계획이 절대 범상치 않다는 것은 분명했다.

후욱!

어느 순간 두 다리와 왼손에 감긴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더니 그를 아래로 끌어당겼다.

“얕보였군.”

우웅!

오른손의 태도가 강하게 떨었다. 태도로 응축되는 진기가 순간 도신 바깥으로 확대되며 거대한 칼날의 형태로 발현되었다. 강기 경계의 수준에 이르는 기운이 순식간에 모였다.

태원구패도법(太元九覇刀法) 십자열파참(十字裂破慘).

왼손과 두 다리를 순간적으로 강하게 끌어당겼다. 끌어내려 가는 속도가 잠깐 멈칫하자 그 지지를 이용하여 열십자(十) 종횡으로 참격을 휘둘렀다. 그 순간 거대한 도기가 그 궤적을 따라 뿜어져 나갔다.

슈욱!

콰쾅!

“크악!”

노지신의 도기에 부딪힌 나무들은 박살 나며 쓸려 나가 초토화되었다. 그 사이사이로 서너 명의 시체들도 눈에 들어왔다. 초토화된 현장으로 가볍게 착지한 노지신이 팔다리에 감겼던 끊어진 사슬을 털어 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멀쩡한 사람도, 내상 등의 상처를 입은 사람도 보였는데 그 수가 얼추 십여 명 정도 헤아려졌다.

“너흰 누구냐?”

노지신의 물음에도 그들은 대답 없이 조용히 주변을 둘러섰다. 하나같이 일전에 보았던 흑포인들과 비슷한 복장들을 하고 있었다.

‘천마신교인가?’

노지신은 그들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야 할 방향은 정해졌다.

장학 등이 있을 그곳으로 방향을 잡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전면에 있는 자들을 한 번에 쓸어 내버릴 심산으로 참격을 휘둘렀다.

카앙!

직전의 초식과 같은 기운이 응축되어 횡으로 무엇이든 잘라 버릴 듯한 참격을 두 명의 흑포인이 함께 막아섰다.

그 충격의 여파가 사방에 몰아쳤다.

노지신은 자신의 일격이 막히자 잠깐 당황했다. 직전의 상황을 생각해 보았을 때, 절대 적지 않은 기운을 실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막아 보아라.’

챙!

힘으로 밀어내 떨쳐 내었다.

더 강한 기운을 태도에 밀어 넣었다.

그 기운이 재차 발현되려는 찰나.

챠륵!

다시 한번 갈고리 사슬들이 튀어나오더니 이번엔 그의 사지 모두를 붙잡았다. 그의 움직임이 멈칫할 때 사슬 하나가 더 날아와 허리까지 감는다.

팽팽하게 당겨지는 힘겨루기에 움직임에 제약이 걸리자 태도에 몰렸던 기운이 반사적으로 신체를 보호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놈들 호흡이……!’

초절정고수들을 잡아내기 위한 합격술을 오래도록 익혀 온 것이 분명했다. 절묘한 타이밍에 제동을 걸고 있으니 이를 예측하지 못한 노지신도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촤라락!

그들은 거기에 더 그치지 않았다. 순간 머리 위로 그물이 드리워지더니 노지신의 머리 위를 그대로 덮쳤다. 철사와 중간중간 날카로운 갈고리를 매달아서 조직한 그물이었다. 이 사슬과 더불어서 철저하기 움직임을 제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따위 것으로 감히……!”

“잠깐 시간 벌기엔 충분하지.”

노지신의 분노 일성에 대답하는 흑포인의 목소리.

네 사람이 빠르게 사방(四方)을 점하더니 그물과 사슬에 억제된 노지신을 향해 몸을 날린다.

그들 모두는 제각각 다른 수단을 갖고 있었다.

노지신의 일격을 막아 세웠던 두 사람은 도를 들고 있었고, 한 사람은 검을 들고 있었다. 남은 한 사람은 상완부터 손등까지 감싸는 철갑을 두른 두 손이 눈에 띄었다.

그들 모두 그들의 전력일지 모를 엄청난 기공을 펼쳐 내며 노지신을 덮쳤다.

그들의 도기가, 검기가, 장력이, 네 줄기 공력이 오로지 노지신 한 사람을 향해 쏟아졌다.

콰콰콰쾅!

* * * *

장학 등의 5인은 예정대로 능선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계곡으로 내려갔던 노지신에 비해 길이 잘 뚫려 있어서 그들의 전진 속도는 노지신의 생각보다 더 빨랐다. 산지에서 능선을 따라가는 길은 상대적으로 수월할 수밖에 없고 또 높은 지대를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눈에 뜨이기 쉬운 특징도 있었다.

노지신은 적이 있다면 숨어들기 좋은 계곡 길을 선택한 것이었지만, 일월신마는 무슨 목적인지 능선길을 택하여 그리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장학 등이 나아가면서 일월신마를 발견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장학 등이 처음 멀리서 그의 존재를 인식했을 때 접근에 조심스러웠다.

백발의 제법 건장한 체격의 노인이 이 일대를 한산하게 산책한다는 거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눈에 보아도 수상한 기운을 풀풀 풍기고 있으니 일단은 밤 그림자 속에 기척을 감춘 채로 거리를 두고 살펴보았다.

조심스럽게 거리를 멀리 유지하고 천천히 전진하며 살피다가 시야에서 사라지거나 거리가 너무 벌어질 때마다 신속하게 일부 거리를 좁히는 식이었다. 그렇게 세 차례 반복할 때쯤이었다.

장학의 수신호에 모두 멈춰 섰다.

천천히 쫓아가던 중에 일월신마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기 때문이다. 그가 긴 백발을 손으로 쓸어넘기며 고개를 갸웃거릴 때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얼마나 쫓아오려고?]

귓속을 파고드는 전음에 다섯 명 모두가 움찔 몸을 떨었다. 얼추 20장이 넘는 거리에 밤하늘 아래 수풀 속에 숨어 있는 그들을 향해 정확히 전음을 쏘아내는 것이 어디 가능한 일이던가? 찰나 서로 눈빛을 주고받을 때 불안감은 이미 확대되었다.

퉁!

북 치는 듯한 작은 소음에 그들이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그땐 이미 일월신마가 자리를 박차 뛰어올라서 10장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다시 한번 놀라 움찔했을 땐 이미 그 절반 거리를 다시 좁힌 뒤였다.

“흩어져!”

일월신마로부터 느껴지는 막대한 공력의 흐름을 눈치챈 장학이 소리치며 자리를 벗어났다.

콰릉!

뛰어 날아오르며 쌍장에 모은 공력을 방출시킨다. 거대한 폭발과 그 충격파가 일대를 휘감았다. 산산이 부서진 숲의 파편들과 흙먼지들이 눈 앞을 가렸다.

‘모두 무사한가……?’

찌릿찌릿 몸을 울리는 통증을 참아 내면서도 두 눈을 부릅뜨며 동료들의 안위를 살폈다. 곧 몇 사람의 인영이 눈에 들어오고 그들의 모습이 확인되었다.

‘무영, 우태, 소정 무사하고…….’

다행히 멀쩡히 두 발로 서 있거나 쓰러졌던 몸을 가누며 각혈하는 사람도 보였지만, 다행히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한 사람만큼은 미처 벗어나지 못한 채 땅에 파묻혀 있었다.

“자룡!”

장학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나자룡은 땅에 반쯤 파묻힌 채 입으로 피를 토하고 있었다. 하필 일월신마가 그를 향해 뛰어드는 바람에 서둘러 움직였음에도 기폭(氣暴)의 중심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쿨럭! 쿨럭! 으으윽……!”

일월신마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음에도 극심한 내상에 전신이 충격으로 마비되어 손가락 까딱할 힘조차 남지 않았다. 유희 섞인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오는 일월신마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자룡의 눈엔 체념의 빛만이 떠올라 있었다.

“넌 처, 천마신교냐…… 쿨럭!”

“본교의 부하들을 만났나 보군.”

“큭! ……죽여라.”

“크크크!”

일월신마는 두 손을 펼쳐 나자룡의 피로 물든 가슴에 대었다.

“물러섯!”

하소정이 눈에 불을 켜며 검을 뽑고 달려들었다.

일월신마는 미리 피하지 않았다. 그녀가 지척까지 다가와 검을 휘두르자 그때야 뒤로 훌쩍 물러나며 피했다.

장학, 관무영, 장우태도 합류하여 일월신마를 협공했다. 도검이 예리하게 뻗어 오지만, 일월신마는 두 손으로 막거나 여유롭게 피해 냈다.

“자룡!”

세 사람이 일월신마를 상대할 때, 하소정은 급히 검을 놓고 나자룡의 상태를 살폈다. 그가 부디 살아남길 바랐지만, 그녀는 그의 상태가 절망적임을 깨달았다.

두 눈이 붉게 충혈되고 낯빛이 새까맣게 변해 버렸다. 가슴이나 복부 어깨 등이 울룩불룩 요동치고 혈관도 검게 변하며 여기저기 불거져 있는데 한눈에 봐도 가망이 없었다. 고통을 참아내느라 악문 이빨 사이로 검은 피가 울컥울컥 새어 나왔다.

“끄어어억…….”

하소정이 두 손을 나자룡의 가슴에 두고 눌렀다. 그의 상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진기를 불어넣는 순간 나자룡의 체내를 잠식하고 있던 일월신마의 진기가 그녀의 두 손을 타고 침범해 들어왔다.

“아악!”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하소정이 뒤로 나동그라졌다. 부르르 떠는 두 팔의 혈관이 거뭇거뭇 불거져 올라왔다.

“떠, 떨어져…… 쿨럭! 끄으으!”

마지막 한 마디, 마지막 피 섞인 날숨을 토해 내고는 이어지는 신음을 끝으로 나자룡의 눈빛에 생기가 사라졌다. 엄청나게 많은 피를 토해 내어 입 주변과 옷들이 붉게 물들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피부는 검게 변색 되었으니 그 내상의 깊이가 가늠하기 힘들다.

기폭에 얻어맞았을 때는 그 충격으로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을 정도였다. 그의 상태가 급변한 것은 일월신마가 가슴에 손을 댄 뒤부터였다.

“으으으윽!”

두 손에 침투한 마기를 밀어내느라 고통으로 일그러진 하소정의 두 눈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자룡은 천혼당 장학 조에서 가장 가깝게 지낸 동료였기에 고통이 슬픔을 누를 수 없었다.

타탕!

세 사람도 일월신마를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그의 기공은 두 팔을 호신지기(護身之氣)의 형태로 두르고 있었으니 그들의 도검이 몸에 닿지 않을뿐더러 되려 뻗어 내는 권장의 위력이 위협적이었다. 강기를 구사하지 못하는 한 그의 몸에 상처 하나 내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파아앙!

일월신마의 양손이 합장하자 다시 한번 기폭발이 일어나 세 사람을 밀어내었다. 그 충격이 그들 모두 온몸으로 느꼈지만, 그가 나자룡을 쓰러뜨렸던 때의 충격에 비하진 않았다. 그만큼 기운을 모을 시간이 일월신마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크크! 살문 녀석의 칼보다는 그래도 매섭구나. 문파가 어디냐?”

“천무방이다. 네놈은 누구냐?”

“크흐흐! 본좌는 대 천마신교의 일월신마이니라. 너희 정도면 천무방의 천혼당 수준이렷다? 생각보다 수준이 높긴 하구나.”

“일월신마……!”

장학의 머릿속에 앞서 노지신과 얘기하면서 거론되었던 일월교가 떠올랐다.

“일월교라는 종교는 네놈이랑 연관이 없는가?”

“아아! 본좌가 이끄는 교단이긴 했지. 지금이야 대 천마신교의 기치 아래에서 마종(魔宗)이 되긴 했지만 말이야.”

짝짝짝!

일월신마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신나게 손뼉을 쳤다.

“크하하하! 이거 일월교를 알아주다니. 좋다! 본좌가 이 자리에서 너희를 죽이는 일은 보류해 주마.”

“뭐?”

“크크크! 네놈들이 끝이 아니겠지? 더 센 놈 말이다. 날 쫓아와도 공격하지 않을 터이니. 그놈을 대령하거라.”

관무영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자신감이 넘치는군.”

일월신마의 얼굴에 미소가 활짝 핀다.

“본좌는 그럴만하지! 그럼 저쪽으로 천천히 갈 테니까 저 시체는 묻어 주고 천천히 쫓아오라고.”

장학, 관무영, 장우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으며 몸에 힘이 들어갔다.

나자룡의 죽음은 돌아보지 않아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의 말로 인해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공격이 별거 아니라는 희화화하는 발언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자존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그들이 느끼기에 일월신마는 그 정도의 고수였다. 삼장로 노지신이 직접 오지 않는 한 저지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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