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 제6장. 작별 (4)
천서은은 단숨에 공력을 끌어올렸다. 기풍이 그녀의 주변으로 휘몰아치며 그녀의 검으로 파천신공의 진기가 충만하게 차올랐다.
바로 힘을 드러내는 그녀의 모습에 마청래도 내공을 최대로 끌어올리며 그의 발이 지면을 세차게 밀어 냈다.
텅!
후악!
카앙!
쌍첨양인도의 주변을 도기가 어둑한 안개처럼 피어올라 감쌌다. 그 예기를 머금은 채로 베어 내는 참격이 천서은의 검에 가로막혔다.
부러지거나 휘거나 하는 것도 없이 제 탄성을 유지하면서 잘 막아 내는 천서은의 검을 보며 마청래는 그녀가 그와 다른 수준에 있음을 직감했다.
훅! 휘익!
텅!
양인도를 회수했다가 다시 찔러 낸다. 양인도의 칼날이 천서은과 검 사이를 파고들었다. 비스듬히 바깥으로 파고들면서 양인도를 휘두르고 동시에 긴 손잡이를 이용하여 반격을 막아 내었다. 그리고 양인도가 뒤로 눕다시피 한 천서은의 위로 지나가 버렸다.
이번엔 천서은의 몸이 용수철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이어 펼쳐 낸 연환퇴(連環腿)가 마청래의 손잡이에 막혔으나 한방이 그의 가슴에 꽂히며 그의 신형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야천유운검 섭풍발엽.
갈지(之)자로 전진하는 보법의 극점(極點)에서 회전하며 뿌리는 검광이 마치 개화하는 꽃잎처럼 펼치며 검세를 이루었다.
카캉! 캉! 카카캉!
마청래는 물러서면서 넓은 도신과 긴 손잡이를 이용하여 검세를 방어해 냈다. 그리고 기회를 보았다가 반보 전진을 하면서 가로로 크게 휩쓸었다. 양인도는 천서은의 몸에 닿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한 바퀴 회전시키며 회수한 마청래는 물러서는 천서은을 노려보며 다음 초식을 준비했다.
기류가 소용돌이를 형성하며 양인도를 쥔 마청래의 두 손에 휘감기며 들어왔다.
흑풍양인도 흑풍쌍권(黑風雙淃).
쿵!
힘찬 진각의 반발력이 그의 신체를 밀어냈다. 폭발력 있게 전진하는 신형과 그것을 바닥 삼아 출수하는 두 줄기 돌풍이 격렬하게 방출되었다. 강력한 초식과 거기에 실린 공력의 힘은 무시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강한 회전력을 담고 있는 것은 둘째치고 쌍첨양인도의 병기가 가진 특수한 형태는 그녀에게 경계심을 갖게 만들고 있었다. 만약 쌍첨양인도의 중앙 틈 사이에 검이 낀다면 그 회전력에 휘말려 부러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먼저 휘몰아치며 덮치는 돌풍 같은 기류(氣流)를 장력을 분출시켜 때렸다. 장력을 날림과 동시에 몸을 띄우자 그 반동으로 저절로 뒤로 밀려났다.
쿵!
다시 진각음이 울리며 마청래의 몸이 앞으로 쭈욱 나아갔다. 동시에 두 개의 돌풍이 그녀를 뒤쫓아가 덮쳤다. 그러나 이번엔 천서은이 이미 검에 내공을 충분히 실은 후였다.
북천검법 북천강검(北天罡劍).
동작의 형식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내공 및 검기의 운용법을 제시하는 초식. 검기로 발현되는 것조차도 검신에 집중시켜 그 강도와 파괴력을 끌어올린다. 검기성강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안내서와 같은 이 초식은 단순한 만큼 그 힘은 압도적이었다.
콰쾅!
“큭!”
두 진기가 맞부딪치며 마치 포성이 터져 버린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칠게 휘몰아치던 두 줄기 돌풍이 천서은의 검기에 휩쓸려 나가며 흩어지는데 그 바람이 모두 마청래 쪽으로 향했다. 힘에서 완전히 밀려 버린 것이었다.
‘얼굴은 곱상하게 생겨서 무슨 힘이 이렇게……!’
같은 20대 나이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공력에 감탄할 새도 없이 두 줄기 검기가 흩어지는 기류들을 뚫고 좌우 하늘에서부터 두 줄기 검기가, 가운데선 천서은의 강검이 동시에 내려꽂혔다.
북천검법 개문단천(開門斷天).
쾅!
도기를 펼쳐 내어 쌓은 벽과 함께 내력을 담은 쌍첨양인도를 들어 올렸다. 그 위로 검기와 검격이 동시에 충돌했다. 강력한 참격에 밟고 있는 지면이 움푹 들어갔다. 검기의 기력 일부가 도기를 뚫고 침범하며 두 팔을 관통했다.
“크윽!”
마청래는 그 충격에 하마터면 양인도를 놓칠 뻔했다. 흐압! 하는 기합 소리와 함께 크게 휘둘러 천서은을 떨쳐 냈다. 몇 합 주고받지도 못했는데 크게 밀리는 형국이 되자 마청래는 독하게 마음먹었다.
‘뒤돌아볼 필요 없지!’
흑풍양인도법 흑풍멸인(黑風滅引).
거대한 기류가 마청래의 주변을 휘돌았다. 퉁! 하며 튀어 오른 마청래가 공중에서 참격을 휘둘렀다. 그 참격의 궤적을 따라 뿜어져 나온 도기가 천서은을 향해 날아갔다.
쾅!
천서은이 검을 휘둘러 도기를 빗겨 흘려버리자 그녀의 뒤의 땅이 터져 나갔다. 그 소리를 쫓아가듯 마청래가 공중제비를 돌면서 쌍첨양인도로 수직으로 내려찍었다.
카앙!
천서은이 횡보를 밟으며 옆으로 흘려냈다. 그 순간 마청래가 왼발을 내전(內轉)한 채로 딛으며 반 바퀴 회전한다. 그리고 그의 신체를 중심으로 빨아들이는 기력이 반경 1장(丈)가량의 범주로 형성됐다. 동시에 회전력을 실은 좌우 횡격이 연달아 몰아쳤다.
카카카캉!
후욱!
폭풍처럼 쏟아지던 연격이 끝남과 동시에 마지막 참격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그 힘을 모두 쏟아내기도 전에 천서은의 손이 불쑥 튀어 오르며 긴 양인도를 쥔 마청래의 두 손 사이를 쳐올렸다.
‘균형조차 잃지 않았단 말인가?’
짧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사이.
천서은의 좌권이 세 차례 가슴과 복부에 꽂혔다.
퍼퍼퍽!
“윽!”
천서은의 권각이 쉴새 없이 몰아쳤다. 그녀의 오른발이 퍽! 하면서 마청래의 무릎 안쪽을 가격하자 그의 다리가 쫙 벌어지며 그의 몸 중심이 휘청거렸다. 마치 마보(馬步)를 앉은 듯한 그의 자세를 이용, 오른발이 그의 오른쪽 무릎을 딛고 회전하여 왼발로 그의 턱을 돌려찼다.
뻑!
“컥!”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충격에 뒷걸음질 치는데도 몇 걸음 물러서지도 못했다. 기세를 늦추지 않고 접근한 천서은이 양인도 손잡이 중앙을 쥐고 들어 올리며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오른손은 어느새 검을 지나온 땅에 박아 놓고 적수공권이 되었는데 그대로 팔을 말아 팔꿈치로 마청래의 왼팔 이두근을 가격했다. 그리고 그 방향 그대로 공중에서 회전하며 다시 한번 마청래의 가슴팍을 연환퇴로 두들겼다.
그 충격에 마청래는 손에 양인도를 놓친 채 뒤로 데굴데굴 굴러야 했다.
“큿! ……쿨럭쿨럭!”
마청래가 충격으로 인한 폐부의 압박감에 기침을 토해 냈다. 그리고 급히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내 쌍첨양인도는 어디에……!’
간신히 되찾은 시야에 그의 쌍첨양인도는 천서은의 손에 들려 있었다. 마청래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쌍첨양인도를 쥔 천서은의 두 손으로 모여드는 소용돌이형 기류는 그의 눈에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었다.
텅!
진각과 함께 날아드는 천서은. 동시에 내지르는 쌍첨양인도의 궤적의 끝으로 돌풍처럼 몰아치는 기류가 마청래의 전면을 덮쳤다.
‘흑풍쌍권……. 아니 흑풍일권(黑風一淃)인가? 흐읍!’
위기를 느끼고 미리 동그랗게 말아쥔 두 손에 그의 십성 공력이 휘몰아쳤다. 천서은이 내지른 돌풍 기류를 향해 쌍장을 퍼부었다.
콰르릉!
“커헉!”
역시 공력으로도 그는 천서은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전력을 다한 장력이었기에 돌풍의 기류나 쌍첨양인도의 칼날이 그의 몸에 닿지는 않았지만, 그 반동이 그의 체내를 뒤흔들며 그의 몸이 뒤로 퉁겨지듯 떨어져 나갔다.
그대로 경기장 벽에 처박힐 수 있었던 것을 남궁평이 그사이에 나타나 마청래의 신형을 안전하게 받아주었다.
“쿨럭쿨럭!”
토해내는 기침에 검은 피가 조금씩 섞여 나왔다. 이미 마청래의 얼굴엔 패색이 짙어 축 늘어져 있었다.
휙휙휙휙!
푹!
공중에서 팽그르르 돌며 날아가던 쌍첨양인도가 주저앉은 마청래의 앞 지면에 박혔다. 그 모습까지 지켜본 남궁평이 한 손을 번쩍 들었고 이윽고 북소리가 들려왔다.
둥! 둥! 둥!
와와와와!
벌써 우승자가 탄생한 것만 같은 함성이 관중석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그 함성에 보답하듯 천서은에 사방(四方)으로 손 인사를 건네며 화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궁평이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호랑이의 딸이구나!’
8강 이전의 비무들은 내공의 우열을 제한하여 초식만으로 다투었기 때문에 그래도 꽤 치열하게 다투는 장면이 많았다. 하지만, 그 제한을 풀자 과연 거대 문파의 배경을 둔 젊은 고수들이 큰 격차로써 두각을 보였다.
“쿨럭!”
“괜찮은가?”
가만히 등에 장심을 맞대고 진기를 다스려 주던 남궁평은 기침하는 마청래에게 상태를 물어보았다. 다행히 어두웠던 혈색이 조금 회복되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역시 천무방의 무공은 대단하군요.”
“후후! 너무 실망하진 말게. 천하오절의 딸과 겨뤄서 그 정도면 했으면 잘 싸운 것일세.”
“그게 변명이 되겠습니까? 제가 더 정진해야지요.”
차분히 답하는 마청래의 모습에 남궁평은 속으로 기특한 녀석이라고 칭찬했다. 남궁평은 마청래를 부축하여 경기장 밖으로 데려나갔다. 그리고 무사들이 들어와 격전으로 군데군데 움푹 파인 땅을 고르기 시작했다.
천서은과 마청래의 비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경기장 내의 네 명의 판관들이나 관중석에 있는 수백 명 말고도 판관과 출전자들이 출입하는 두 군데 통로 중 한 곳에도 있었다. 허리엔 검을 차고 있었는데 오른팔에 부목을 대고 붕대로 묶어서 몸에 바짝 놓은 것으로 봐서는 당장 검을 쓰긴 어려워 보였다.
깔끔하면서도 정교한 무늬의 청학의 차림과 잘생긴 용모를 가진 그는 다름 아닌 양자성이었다.
통로의 그늘에 숨어서 벽에 기댄 채 누군가가 비무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정 반대편에 있는 판관들이나 대기석에 앉아 있는 여희선조차도 비무에 집중하느라 그의 존재를 눈치챈 사람은 아직 없었다.
곧 비무는 점점 격전으로 치달았지만, 그의 눈에 천서은이 압도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여긴 패배자가 있을 곳이 아닌데?”
양자성이 피식 웃었다. 뒤를 힐끔 돌아보니 황사열이 반대 방향에서 벽에 기댄 채 그를 향해 비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맞다. 돌아다니기 쪽팔려서 여기서 이렇게 구경하고 있지.”
“호오? 그 고고한 놈이 그런 대답을 할 줄 몰랐는데.”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지. 놈의 검술이 나보다 뛰어났던 것은.”
“하하하! 그 말은 네 스승의 명성을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닌가?”
“내 스승도 부분 인정하는 모양새이니 상관없네. 그래도 손에 들린 것이 목검 따위가 아니었다면 놈은 내 검에 죽었을 거야.”
황사열의 짙은 검미가 꿈틀거렸다.
백령신검 강정학은 당대 천하제일의 검객이었다. 그가 그 정도로 얘기했다면 진도건이란 자의 검술이 정말 대단한 경지에 있음을 보증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내심 그래도 자신의 아래라고 생각했던 황사열은 양자성의 그런 설명에 스스로 다시금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같은 상황이었다면 혹시 나도 양자성과 똑같은 꼴을 당하게 되진 않을까?’
그 물음에 ‘그렇다’라고 자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의 자존심도, 그에게 무공을 가르쳐 준 두 사부의 자존심에도 상처를 낼 만한 일이었다. 백호계파의 계수 배궁천(裵弓穿)에게 백호군왕도(白虎君王刀)를 사사하고 그 실력과 잠재성을 인정받아 금태하에게까지 암연소혼신공(暗燃燒魂神功)까지 사사하게 되어 또래에 적수가 없을 것이다 자부하였던 그이다.
그런 의미에서 확실히 양자성과 진도건의 비무는 여러 의미로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그의 말투에선 여전히 무한한 자신감을 품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내심 그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거하게 거들먹거리다가 당했으면서 그래도 아직 입을 놀리는가.”
“후후! 내 신경일랑 꺼라. 내가 보기엔 너도 곧 패배의 쓴잔을 들이키게 될 테니.”
“누가 감히 나를…….”
양자성이 손으로 경기장을 가리켰다. 때마침 천서은이 최후의 일격으로 마청래의 흑풍쌍권을 모방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내가 경험이 일천한 계집에게 질 것 같으냐?”
“호랑이의 핏줄을 그대로 이은 여인이라는 것을 간과하는군. 아, 그리고 자네가 오늘 맞붙을 소문적이란 자도 꽤 까다로울 듯한데 고생 좀 하겠어.”
“흥! 놈의 주먹이 내 몸에 닿기 전에 손목 채로 잘라 버릴 참이다.”
“그래, 열심히 해 봐라.”
“그런데 넌 존댓말을 할 줄 모르느냐? 내가 너보다 한 살이 많은데.”
양자성이 손가락을 두 개 펴서 보여 주었다.
“첫째, 비슷한 나이대라면 오직 아름다운 여성만이 나의 존대를 받을 수 있지. 둘째, 난 나보다 약한 놈에게까지 존대할 생각은 없다.”
“발칙한 새끼.”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대답하는 양자성의 말에 황사열이 차갑게 대꾸했다.
와와와와!
“쳇!”
밖에서부터 관중의 함성이 들려왔다. 경기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그 소리를 듣던 양자성은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떼고 바로 일어섰다. 그리고 가만히 서서 천서은과 여희선이 반대쪽 통로로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모습을 뒤에서 보던 황사열이 비웃음을 흘렸다
“킥! 그래도 네 아랫도리는 살아 있나 보지? 패배자 주제에 여자나 밝히고 있고 말이야.”
양자성은 고개를 젓고는 황사열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그를 지나쳐 걸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로부터 대답이 들려왔다.
“후후후! 잘생긴 남자의 인생을 자네가 어디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하! 저 새끼가…….”
황사열이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역시나 성격이 안 맞는다.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손을 봐주겠다는 열망이 다시 한번 강하게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