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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27화 (27/432)

27화 - 제6장. 작별 (1)

다른 세 곳의 비무대는 이미 모든 승패가 결정되었다. 재밌는 점은 황사열을 비롯한 승자도, 패자도, 판관도 비무대에서 내려오지 않고 한 곳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비무를 관전하고 있는 관중석과 성벽에 있는 각파의 무인들, 일반 백성들도 환호할 시간도 아껴가며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검기(劍氣)만 아직 보여 주지 않았지 이미 제한된 조건 아래에서 두 사람은 내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그들 만의 시간 속에서 검기(劍技)를 겨루고 있었다.

탕!

목검끼리의 충돌 소리가 더욱 세차게 터져 나왔다. 목검에 내력이 얼마나 실렸는지 근처에 있던 판관 장이풍이 충격파까지 느낄 정도였다. 심지어 그 단단하고 탄성력이 좋은 흑단목 재질의 목검들은 미세하게 결이 벌어지거나 깨지며 작은 파편들을 흩뿌리고 있었다.

‘미친! 어린놈들이 벌써 이런 실력이라니……!’

장이풍은 인지 부조화가 오기 시작했다. 양자성이 노골적으로 공표한 제한 이상의 내력을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내가기공을 익혔다면 무공의 초식에 따라 자연스럽게 내력의 흐름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것을 의식하여 조절하기 시작하면 더 강한 힘과 빠른 속도를 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진기의 운기량이 많아져 일정 이상을 넘어서면 점점 체내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무공과 초식의 특성에 따라 외기(外氣)로 발현되기 시작한다. 검기(劍氣)와 검기성강(劍氣成罡)이 그러한 경지다.

아직 검기를 사용하진 않았지만, 외기로 발현되는 검풍(劍風)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고 그 안에 들어서면 충분히 살가죽에 상처를 낼 것이다. 그리고 지금 진도건의 상태가 그러했다. 아주 작은 생채기들이 몸에 새겨지고 있었다. 입고 있던 의복은 곳곳이 터져 나갔다.

[장 계수(系首), 간섭하지마. 재밌게 돌아가잖아? 큭큭큭!]

금태하의 전음이 들려오자 장이풍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양자성이 검기를 꺼내 들어도 내버려 두라는 말이다. 목검이 얼마나 버틸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만약 검기에 대항할 수단이 진도건에게 없다면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처음에야 그저 방에 소속된 무사, 일반 호위무사 정도로 생각했던 자였지만, 지금 이렇게 보고 있으니 분명하게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진도건이라는 남자는 천무경의 비호를 받는 자라고.

무엇보다 거슬리게 하는 것은 규칙의 불공정이나 그것을 눈감아 주라는 말도 아니었다.

‘저 검세들을 내가 제대로 멈출 수 있을까?’

무림의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이 비무를 공정한 규칙 안으로 유도해야 할 판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눈앞의 현실이 그러했다.

백령검법 인화부곡.

빙글 호를 그리며 파고드는 검영과 그 고리의 잔상들이 시야 앞에 활짝 펼쳐진다. 예측할 수 없는 순간들에 파고드는 검영들을 진도건이 거침없이 뛰어들며 목검을 휘두른다.

이미 한 번 겪어 보아 익숙해진 것인지 아니면 파천신공으로의 전환으로 감각이 더욱 날카롭게 깨어난 것인지.

펼쳐지는 백령검법의 검초들을 순간순간 그 방향과 힘의 정점(頂點)을 파악하여 사전 차단한다. 그 대응 속도는 양자성의 기술보다 빨랐다.

타타타탕-!

양자성이 우위를 가져갈 방법은 백령검법이라는 당대 최고 검공(劍功)의 최대치를 끌어내는 것.

확장된 검세를 펼쳐 시야를 방해하고 손발을 묶는다. 상대적 우위의 경신술을 이용하여 시야 밖으로 위치를 반전시킨다.

빈틈을 노리는 일섬탈백.

텅!

막힐 것은 이미 예상한 바. 반작용을 대비해 마지막 힘을 줄이는 대신 부딪치자마자 손목을 빠르게 틀었다. 그와 함께 검영이 뱀처럼 휘어지며 먹이를 노린다.

슉!

두 눈을 부릅뜬 채 날아오는 목검을 고개를 틀어 피해 낸다. 다시금 양자성이 손목을 회전하니 검이 재차 꺾이며 쫓아온다. 그때 진도건이 오히려 양자성에게로 파고들면서 왼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아챈다.

휘릭!

힘을 역이용해 아래로 끌어당기자 양자성의 몸이 뒤집히며 공중에 붕 떴다.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지만, 곧바로 대응하여 허리를 틀고 그 탄성으로 돌려 찼다.

퍽!

진도건이 검을 든 팔을 들여 내려찍는 양자성의 발을 막아 냈다. 그 순간 양자성이 발목 힘으로 진도건의 팔을 걸어 끌어당긴다. 동시에 왼손을 펼쳐 내질렀다.

펑!

급히 왼손을 회수하여 막아 내려 했으나 양자성의 좌장이 진도건의 오른쪽 가슴을 때린다.

그의 신형이 비틀거리는 순간 지면 가까이 처져 있던 목검을 위로 올려 벤다.

그의 시도를 예측한 진도건이 오른손으로 들었던 목검을 왼손으로 옮겨 잡고 그대로 내려쳐 막아 냈다.

탕!

진도건이 좌수검으로 바뀌자 양자성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끝낸다.’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의기(意氣)를 검에 싣는다.

비스듬한 상태로 지면에 발이 닿자마자 강하게 밀어냈다. 앞으로 돌진하는 기세 그대로 다시 한번 검초를 펼쳐 낸다.

백령검법 백린화륜(白燐華輪).

화려하게 펼쳐진 검영이 팔방을 점유하며 반원의 참격을 퍼붓는다. 그 순간 함께 몰아치던 검풍이 더욱 강한 예기를 띠며 몰아쳤다.

‘선을 넘었다.’

방해되지 않게 피해 다니던 장이풍이 양자성의 검초를 보고 확신했다. 그러나 말려야 함에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금태하의 지시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결말을 보고 싶었다.

두 팔이 활짝 펼쳐져 불안정해진 자세를 인식한 진도건이 오른발을 뒤로 빼며 몸을 반대로 틀었다. 그리고 양자성의 돌진력을 줄이기 위해 연신 물러나면서도 그의 좌검이 한 줌 망설임 없이 양자성의 검세를 향해 날아갔다.

타타타타탕!

‘좌수검도!?’

이 악물었던 양자성의 검초가 다시 한번 파훼된다.

종횡으로 보법을 밟아내던 진도건의 신형이 검풍이 밀집되는 지점을 빙글 돌며 회피하더니 풀쩍 뛰어 내려쳤다.

탕! 트드드득!

다시 한번 거칠게 두 목검이 부딪쳤다. 그리고 잠깐 힘겨루기가 이어질 때, 두 사람은 자신들의 목검 상태가 나빠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도대체 몇 합을 주고받았을까?

백번 이상 거칠게 충돌했음에도 목검의 상태가 멀쩡하다면 그것이 더 이상했다.

‘크흐! 지긋지긋한 싸움은 이제 끝내자.’

양자성의 눈빛에 떠오르는 살기와 그것을 마주하는 진도건.

파앙!

동시에 검을 밀어내며 두 사람이 떨어졌다.

“흐읍!”

양자성이 스스로 제한하던 백양소혼신공(白陽燒魂神功)을 개방했다.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막대한 기운이 전신에 미쳐 피부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아지랑이처럼 시작되었던 유출된 기운이 가닥가닥 모이며 검기를 이룬다.

[나서지 마.]

검기를 보고 당장 뛰쳐나가려던 장이풍이 금태하의 전음에 멈칫했다. 시선을 돌려 진도건을 찾았다. 그리고 양자성을 향해 뛰어드는 진도건을 발견하고는 긴장감에 이를 악물었다.

양자성의 목검에 하얀 서리가 맺히듯 검기를 형성했다. 목검이 파르르 떨리고 틱틱거리며 결이 벌어지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고막을 살살 간질이는 소리를 즐긴다. 그리고 진도건이 거리에 들어오는 순간, 검초를 전개했다.

백령검법 백백단양(百魄斷陽).

벌써부터 형성된 이십여 개의 검기가 화살 비처럼 진도건에게로 쏟아졌다. 동시에 그사이를 양자성이 파고들며 검기를 머금은 목검으로 검격을 연사하였다.

당대 제일의 검법이라 불리는 백령검법의 위력을 여실히 드러내는 검초 앞에서 진도건이 검을 뒤로 기울여 내리며 파천신공을 운용했다. 그 기운이 검과 전신에 충만하게 힘이 미칠 때 그 검세 속으로 몸을 던졌다.

원류검결.

신검합일.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폭발적으로 뻗어 나가는 파천신공의 진기와 검과 하나가 되어 물 흐르듯 나아가는 움직임.

마치 나무가 생명의 기운을 피워 내려 수십 개의 가지와 이파리들이 자라나는 것처럼 자색 검영이 화려하게 펼쳐 냈다. 검기 하나하나에 검영이 닿자 마치 바람에 밀려 지나가듯 흩어지고 빗겨 나갔다. 잘게 쪼개진 검기들은 진도건의 몸에 상처들을 냈으나 치명적이진 못했다.

마침내 검기의 파고를 지나 양자성의 검과 맞부딪친다.

카카캉!

매섭게 부딪치는 검격 사이에서 자단목 목검들이 더 버티지 못하면서 부서져 나갔다. 검기를 두른 양자성의 목검이 사이사이 갈라지고 일부 부서지며 아슬아슬하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 진도건의 목검은 간신히 뼈대만을 유지한 채 이미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마침내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양자성의 머릿속엔 오로지 진도건의 이름을 이 자리에서 꺾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백양소혼신공을 더 끌어올려 목검에 주입한다. 목검이 목검으로 있을 수 있는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줄타기하며 마침내 최후의 일격을 준비한다.

백령광검(白靈光劍).

내공이 경지에 이르면 검강을 두를 수 있겠으나 현재 양자성의 실력 부족으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 그러나 보다 선명하고 새하얀 검기가 목검의 검신에 맺혔다. 그렇게 번쩍 들어 올린 검기로 참격을 휘둘렀다.

콰직!

진도건이 전력으로 검을 들어서 막아 냈지만, 검기에 의해 토막 났다. 대신 그 저항을 이용하여 보법을 밟아 옆으로 검기를 피해 냈다. 그리고 이미 그것을 예측한 양자성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끝이다!’

양자성은 예상했던 상황이 벌어지자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그는 벌써 회수하여 가까이 당긴 목검을 다시 망설임 없이 찔러 넣었다.

검기가 마침내 진도건의 가슴에 닿았다.

‘쿵!’

체내에서부터 들린 울림소리가 진도건의 머릿속을 때렸다.

파천신공의 진기가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일순 가슴으로 집중되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 충격으로 목검이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산산이 부서지며 검기가 흩어졌다.

그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뜻밖의 상황으로 양자성의 눈빛에 당혹감이 스치며 멈칫했다.

이번엔 진도건의 안광이 강렬하게 타올랐다.

텅!

일보 전진하는 신형.

왼손이 독수리의 발톱처럼 파고들며 목검의 잔해만 쥐고 있는 양자성의 오른손을 낚아챈다. 그리고 토막이 나서 형상이 거칠었지만, 상대적으로 제 모양을 갖추고 있던 진도건의 목검이 양자성의 팔꿈치에 꽂혔다.

“크악!”

양자성이 비명을 삼키며 팔을 당겼다. 그리고 거리를 벌리기 위해 전각(前脚)으로 걷어찼다.

복부를 가격당한 진도건이 멈칫했지만, 다시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양자성의 눈빛은 아직 살아 있다.

그가 접근하자마자 좌장을 내질렀고 진도건도 본능적으로 좌장을 따라 펼쳤다.

쾅!

이번엔 진도건의 실수였다.

명백하게 양자성의 내력이 더 높았기 때문에 장력을 주고받은 순간 내상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양자성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부딪치자마자 진도건의 왼손을 움켜쥐었다.

‘내부를 부숴 주마.’

그렇게 장심이 연결되었고 양자성은 승리를 확신했다.

백양소혼신공의 웅혼한 내력이 진도건의 팔을 타고 들어갔다. 파천신공의 기운이 거칠게 부딪쳤지만, 너무 역부족이었다.

어느새 진도건의 두 눈은 충혈되고 입에선 검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황이 전개되는 것을 살 떨리는 긴장감으로 지켜보던 천서은은 두 사람의 장력이 충돌하고 양자성이 진도건의 왼손이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는 순간 상황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차마 걸음을 떼지 못하고 멈칫거리기만 했다.

난입해서 격체전공으로 도와야 하는 것일까?

비무에 제삼자가 끼어들어선 안 되는 위반을 범하면 안 되지 않을까?

8강 본선 전임에도 검기를 사용하는 것부터 위반인데?

판관 장이풍은 도대체 말리지 않고 무엇을 하는가?

온갖 생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며 머릿속을 복잡하게 어지럽혔다. 그 감정을 대변하듯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엔 한없는 안타까움이 스며들어 있었다.

“안 돼……!”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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