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18화 (18/432)

18화 - 제4장. 사패소룡비무제 (2)

천서은과 진도건의 시선도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갔다.

긴 머리를 멋스럽게 뒤로 묶어 비녀로 고정했고 짙은 눈썹과 눈매, 날카로운 콧대와 턱선, 생기 있는 붉은 입술까지 한눈에 보아도 정말 잘생긴 외모였다. 키도 훤칠한 데다가 청색과 백색이 어우러진 고급스러운 학의 장포가 바람에 펄럭이는데 보기에 귀태가 흘렀다. 뒷짐을 진 손 방향으로 목검을 까딱까딱하는 데서 여유가 보였는데 당당한 걸음걸이와 넓게 편 가슴, 살짝 내려다보는 눈빛이 자신감이라는 것이 한가득 충만해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여기저기서 여성들의 목소리로 감탄사들과 수군거림이 들려오고 있었다. 취향의 차이를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미공자(美公子)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사내였다. 더군다나 그의 명성과 신분, 스승의 위상을 고려해 본다면 이 비무 대회장에서 단연 가장 돋보이는 남자였다.

“어쩜 저리 잘 생겼을까?”

여희선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하는데 거기에 희열 같은 것이 느껴지자 천서은도 놀라 그녀를 힐끔 보았다.

“이름만 번지르르한 사람도 많은데.”

“어머, 얘가 아직 뭘 모르네? 아직 강호 경험이 없으니 이해는 해 줄게. 그런데 동생, 남자가 이렇게 뻣뻣하면 여자는 참 재미없어요오.”

여희선이 말하면서 단봉으로 진도건을 툭툭 건드렸다. 그 접촉에 진도건도 그녀에게 눈을 돌렸다.

진도건은 그녀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짓는 모습일 때마다 어쩐지 스스로가 난처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힐끗 보곤 애써 비무대 쪽으로 다시 시선을 던졌다.

천서은도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몇 번 겪다 보니 여희선의 장난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됐다. 그녀의 장난에 대해 진도건의 반응을 엿보는 것도 은근히 즐거운 구석이 있었다.

“언니와 제가 다르듯 진 위사와 저자도 다른 매력이 있는 거죠.”

“그래서 어떤 것 같아?”

“뭐가요?”

“잘 생겼어?”

“뭐……, 그렇긴 하네요.”

천서은이 말을 늘어뜨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보기에 진도건도 잘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외모에 대한 느낌을 말할 때 그녀에게 진도건은 그저 평범한 남자였다. 절로 눈길이 가는 법 없었고, 눈살 찌푸릴 만한 특징도 없었다. 그러나 그저 호위무사로 곁을 지킬 때와 다르게 한 달 가까이 대련을 통해 더욱 가까운 거리에서 호흡을 나누다 보니 그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외모나 성격 등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바라보게 된 구석이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천무방에서 미남이라고 할 만한 사내는 남궁평 정도가 있었다. 품행과 예의가 바르고 언제나 미소 띤 얼굴을 하고 있으며 이목구비도 뚜렷해서 여러 하녀가 그의 외모에 대해 칭찬을 하는 것을 많이 들어봤다. 그녀도 그런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남궁평이 선 굵은 미남자 같은 느낌이라면 양자성은 얼굴선이 좀 더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운 느낌이 공존하는, 약간 중성적인 매력이 더 강했다.

양자성의 외모를 뜯어보다 보니 천서은도 어느새 그의 모습을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기색을 바로 뒤에서 보고 있던 진도건도 느낄 수 있었다.

‘으음!’

묘하게 복잡한 심경이 마음속에서 교차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또한 중앙 비무대에 주목하게 되었다.

양자성의 상대는 창술가 하후무(夏侯武)였다. 그가 다루던 창과 같은 길이의 목봉은 그 두께까지 손에 쉽게 감기는 느낌이 긍정적이었다. 게다가 무게도 가볍다 보니 초식의 전개도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빨랐다.

슈슈슛!

탄성이 좋은 고품질의 자단목으로 만들어진 목봉은 그가 들고 있던 창으로 만들었던 궤적보다 더욱 폭넓은 변화를 일으켰다.

직선적인 찌르기에도 불구하고 손목을 조금만 도중에 꺾어도 활처럼 휘며 예측하기 어렵게 휘어졌다. 피했다고 해도 곧바로 탄성을 이용한 횡격이 이어지고 그것을 피해 내면 다음 찌르기나 또 다른 횡격이 다가오니 하후무는 자신의 거리를 쉽게 장악하고 있었다.

딱!

톡!

순간 목검과 목봉이 부딪치는 소리가 터지더니 양자성의 목검이 하후무의 어깨를 찔렀다. 그러나 가벼운 접촉에 불과했기 때문에 봉술의 흐름은 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툭!

하단 쓸기를 공중에 몸을 뉘어 피해 내면서 양자성의 목검이 다시 한번 하후무의 손목을 쳤다.

역시나 가벼운 접촉.

하후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슛!

부웅! 붕!

찌르기와 함께 보법을 밟으며 목봉의 궤적을 쫓는다. 이어 몸을 회전하며 목봉을 몸에 감아내듯 휘두른다. 목봉 중심과 몸을 축으로 회전력을 더해 소용돌이처럼 몰아쳤다. 목봉의 잔상들이 그대로 공중에 새겨질 정도로 빠르게 회전했고 궤적들이 겹쳐지는 터라 그것을 뚫어 낼 수도 없을 것처럼 보였다.

툭! 툭!

‘기가 막히군!’

중앙 비무대의 심판은 구룡문 창월계파(蒼月系派)의 수장 장이풍(長利風)이었다. 구부러진 월도(月刀)를 다루는 솜씨가 매우 뛰어나며 구룡문 내에서도 서열상 세 번째 위치할 정도의 강자였다.

그의 눈에는 양자성의 검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하후무를 접촉하고서도 그의 봉에 걸리지도 않고 빠져나오는지 보였다. 그러나 전혀 충격을 주지 않는 접촉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타격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오히려 고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하후무도 마찬가지였다.

그 접촉이 아주 약했다 한들 느끼지 못할 수는 없었다. 충분히 가격할 수 있었음에도 이렇다는 것은 말 그대로 그를 농락하고 있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런 상황을 관중들 가운데선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판관도 이를 보았을 텐데 과연 어떤 판단을 하고 있을지, 혹은 자신을 우습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닐지.

“흐압!”

부웅!

원심력을 이용하여 기습적으로 기합과 함께 횡격을 펼쳐 냈다. 내력까지 끌어모아 두 손에 담아냈으니 그 파고드는 속도는 하후무 본인조차도 그동안 담아내지 못할 만큼 빨랐다. 그러나 그의 목봉은 그저 허공을 갈랐을 뿐이다. 오히려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황급히 고개를 쳐들 때.

텁!

공중으로 날아오른 양자성이 그의 얼굴을 밟았다. 그리고 하후무는 채 가려지지 않은 오른쪽 눈으로 양자성의 웃는 얼굴을 발견했다.

“이익!”

치욕스러움에 머리 위로 목봉을 거칠게 휘둘렀다. 그런데도 그 끝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양자성은 빠르게 하후무의 등 뒤로 넘어가 땅에 발을 딛음과 동시에 그의 어깨를 콕 찔렀다. 하후무가 다시 그를 쫓아 뒤돌며 목봉을 휘둘렀지만, 역시 허공만 가를 뿐 오히려 양자성의 여유로운 미소가 그의 눈에 걸렸을 뿐이었다.

네 번의 접촉.

단 한 번의 기회가 남았을 수도 있고, 또는 타격으로 인정하지 않아 여전히 원점일 수도 있었다. 얼굴을 밟힌 것까지 합하면 다섯 번의 타격으로도 계산할 수 있었다. 그러나 판관 장이풍은 그저 보고만 있었다.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는 모습, 반쯤 풀린 눈은 그가 얼마나 이 비무를 지루하게 보는지를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처참한 기분을 맛보았다. 그러나 양자성의 웃음과 여유로운 걸음걸이는 지금이 비무를 마치 유흥거리로 생각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날 농락하지 마라!”

하후무의 외침에 강한 분노가 담겼다. 사방의 비무대에서 대결하고 있던 무인들과 판관들도 잠깐 그 소리에 반응하여 힐끗 쳐다볼 정도였다.

하후무는 가진 내력의 십 할을 모두 끌어올렸다. 두 손으로 거머쥔 목봉이 웅웅! 거리며 떨렸다.

그 달라진 기세는 장이풍도 눈치챘지만, 일부러 제지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승부는 결정되었다고 생각했기에 양자성의 실력이나 구경해 보자는 심산이었다.

자단목의 내구력이 하후무의 공력을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담아내고 있었다. 다시 한번 몸을 중심으로 장병기를 이용하여 활용할 수 있는 원심력마저 한껏 끌어모은다.

퉁!

진각음과 함께 튀어 나가는 신형과 그를 중심으로 회전의 연격이 사위를 휩쓸었다. 그리고 아슬아슬한 간격을 두고 물러나 피하는 양자성을 쫓아 순식간에 5연격을 쏟아 낸다. 연속으로 사전에 탄력을 만들어 휘어진 목봉으로 찌르니 그 목표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예측할 수 없는 가속을 뿜어내고 있었다.

퓨퓨퓨퓨퓻!

목봉의 잔상이 양자성을 꿰뚫었다. 그렇게 보였으나 그 끝에 걸리는 감촉은 하후무로썬 아무것도 느껴지는 것이 없다. 꿰뚫은 동시에 흩어지는 양자성의 신형을 쫓아 탄격(彈擊)을 휘둘렀다.

이번엔 닿았으리라 생각했지만, 이미 그 궤적의 하단을 파고드는 양자성.

“수고.”

짧은 한마디에 하후무가 두 눈을 부릅뜬 순간, 그의 시야로 목검의 칼날이 날아들었다.

빠각!

“으악!”

양자성의 목검이 그대로 얼굴을 강타하자 하후무는 더는 두 손에 봉을 들지 못한 채 얼굴을 감싸 쥐고 비무대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그만!”

양자성은 더는 이어갈 생각이 없어 아예 몸을 돌렸음에도 장이풍은 형식적이나마 중재를 위해 소리치며 서둘러 하후무의 상태를 살폈다.

‘코뼈가 부러져 주저앉았군.’

하후무의 코는 부러져 뒤틀려 있었고 엄청난 선혈이 코를 통해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장이풍의 손짓에 의원들이 달려와 하후무의 상태를 살피고 그를 들것에 실어서 내려갔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본 장이풍은 양자성을 보고 입을 열었다.

“여유로운 것도 좋고 일격에 끝내고 싶은 생각도 이해는 되나 거만을 떨다가는 언젠가 꺾여 버리기에 십상이지. 그래도 기왕이면 규칙을 따라 주는 것이 비무 상대에 대한 예의다.”

“창월단음도(蒼月斷陰刀) 장 선배님의 고언. 경청하지요.”

가벼운 목례와 한 손은 가슴, 한 손은 옆으로 펼쳐 내며 묘한 자세로 인사하는 모습. 그의 허례허식(虛禮虛飾)에 장이풍의 이마에 핏대가 선다.

“어린놈이 벌써 백령신검의 후광을 이용하는구나.”

“하하! 그렇게 못할 것은 무엇입니까?”

“뭣이?”

“선배 사문의 제자부터 신경 쓰시지요. 황사열이라고 제 상대가 되겠습니까? 련주님의 체면이 구겨질까 걱정됩니다.”

양자성의 여유가 넘치는 발언은 장이풍을 어안이 벙벙케 했다.

황사열은 구룡문의 대표로 비무제에 출전한 자로 두 사람 사이에 경쟁의식이 있음을 그도 익히 알고 있었다. 당연히 구룡문 백호계파의 제자이면서도 흑사왕 금태하에게 사사까지 받아 사문의 기대가 무척이나 컸다. 아무리 양자성이 백령신검 강정학의 제자라 할지라도 쉽게 여길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것이 상식적인 시각이었다.

“전 이만 내려가 보겠습니다.”

“허…… 허허……”

어이가 없어 실없는 웃음을 흘리는 장이풍을 뒤로하고 양자성이 걸어 내려왔다. 그리고 그의 앞을 그 황사열이 막아서 섰다.

양자성보다도 머리 반쯤 더 큰 키에 건장한 체격. 두텁게 단련된 육체는 옷으로 덮고 있어도 그 기세가 드러난다. 대충 묶은 머리에 이마부터 시작해서 묶은 흰색 끈 아래로 호안(虎眼)을 연상시키는 두 눈과 우측 볼에서 턱으로 떨어지는 흉터까지 더해 강렬한 인상을 지닌 사내였다. 그의 손엔 한 뼘 정도에 이르는 넓은 폭의 도신이 눈에 띄는 목도를 들고 있었다.

장이풍과의 대화를 모두 들은 황사열은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며 양자성을 내리깔아 보고 있었다.

“말을 하기 전에 뇌를 좀 거쳤으면 좋겠는데? 자신감이 지나쳐.”

“충분히 생각해서 한 말인데.”

“진정 눈에 뵈는 게 없나 보군.”

“성급하게 굴지 맙시다. 우린 마지막에 만나는 게 재밌지 않겠어?”

툭툭!

황사열의 어깨를 손으로 두드리며 양자성은 그를 지나쳐 갔다. 그렇게 하려 했지만, 황사열이 양자성의 팔을 붙들고 세웠다.

“황사열!”

그때 동쪽 비무대에서 부르는 외침이 들려왔다. 양자성이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황사열을 쳐다보았다.

“내 사숙이 부르는군. 실력 좀 보여 주라고.”

동쪽 비무대는 검림 소속의 검객 이현탁(李玄鐸)이 판관을 맡고 있었다. 그가 두 사람의 충돌을 의식했는지 황사열에게 올라오라는 손짓을 던졌다.

“흥!”

황사열이 콧방귀를 뀌며 양자성의 팔을 던지듯 놓고 비무대로 향했다.

비무대엔 이미 젊은 검객 한 사람이 올라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양측 모두 이미 두 번째 비무였기 때문에 곧바로 개시를 알렸다.

황사열이 비무를 시작하는 동안 양자성은 여전히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붙잡혔던 팔을 장포에 툭툭 털고 뒷짐을 지었다. 그는 황사열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걸음을 옮겨 나아갔다. 그리고 그의 걸음은 천서은과 여희선의 앞에서 멈춰 섰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여기 두 분이나 계시는군요.”

그의 말과 어투엔 품위가 있었고 목소리는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두 눈으로 천서은과 여희선을 가볍게 훑어보면서도 그것이 자연스러움과 호색하는 것의 묘한 경계에 있는 느낌이어서 그의 태도를 단정을 짓기가 어려웠다. 여희선에겐 그것이 자연스러운 눈길이었을 것이고, 천서은에겐 다소 부담스러운 눈길이기도 했다.

‘그는 스승과 사뭇 다르구나.’

강정학이 그녀를 쳐다본 것이 여류 무인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면 양자성의 그것은 ‘무인’보다 ‘여자’를 보는 느낌이 좀 더 짙다는 생각이다.

“전 양자성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분들의 이름을 제가 알 수 있을까요?”

“난약파 여희선이에요. 검림 총수 백령신검께서 천재적인 총기를 가진 제자가 있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멋진 풍모까지 가졌을 줄은 몰랐네요.”

“후후! 여 낭자, 과찬이십니다.”

양자성의 시선이 이번엔 천서은에게 향했다. 그러나 천서은은 양자성의 어깨너머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분은 누구죠?”

그것은 누구에게 물어본 말이었을까?

양자성은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더욱 흥미로운 표정으로 천서은을 보았다. 그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돌아보았다.

거기선 황사열이 벌써 비무를 끝내고 있었다. 몇 번 상대의 초식을 가볍게 쳐 내다가 어느 순간 휘두른 목도에 상대가 손목을 얻어맞으며 목검을 놓쳐 버렸다. 그리고 황사열은 단숨에 거리를 좁혀 빈손으로 상대의 목을 움켜쥐었다.

“끄윽! 끅!”

상대가 숨통이 막혀 바둥거렸다. 이현탁 판관이 중재에 나서자 그제야 황사열은 상대를 풀어 주었다. 그리고 그의 도발적인 시선이 곧바로 양자성에게 날아들었다.

당장이라도 올라와서 붙어 보자는 강렬한 눈빛을 양자성은 여전히 미소로 받았다. 그와의 한 판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적어도 지금 그는 관심 밖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