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12화 (12/432)

12화 - 제2장. 사패련으로 (6)

하오문 산서지부장이라는 지위는 이 자리에서 하등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어떤 가치도 없었다. 하나 중요한 것은 그가 들고 온 정보의 가치가 얼마나 있느냐 하는 문제.

천무방의 거두인 천무경은 물론이거니와 태원도왕 노지신의 위명, 천무방 무력집단인 천혼당의 당주 남궁평.

그들의 표정이나 자세는 한껏 평온하기만 할 뿐이지만, 그들이 누군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이상 절대 그렇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대범하고 스스럼없이 그들을 맞아 주지만, 자신의 실수에 혹시 목이 달아나지 않을까 하는 긴장감이 절로 든다.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이라면 모를까 무인이라면 그들의 존재감이 주는 압박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갑자기 긴장하고 그러나. 이 술 한 잔 마시고 얘기해 보게.”

남궁평이 탁자 가운데에 놓인 빈 잔 중 하나를 고담의 앞에 놓고 죽엽청을 따라 주었다.

스스로 긴장감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그는 냉큼 잔을 받아 마셨다.

“최근 정보들을 취합하면서 후보군이 몇 군데 추려졌습니다.”

“어디인가?”

“감숙(甘肅) 기련산(祁連山), 호북(湖北) 무당산(武當山) 그리고 섬서(陝西) 종남산(終南山)과 소화산(小華山)입니다.”

“기련산을 빼면 모두 정파의 성지로군.”

“방향성은 드러난 상태로 보입니다.”

무당산에 본산을 두고 있는 도가(道家) 무당파는 그 위세가 예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소림사와 함께 정파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외적인 활동이 줄어들어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소문에는 천하오절을 다툴 만한 인물이 출현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소화산도 소화사(小華寺)라는 무승(武僧)들의 사찰이 있어 과거에 소림사, 아미파와 함께 3대 무승 사찰이 위치에 있었으나 현재는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 종남산에 자리했던 종남파(綜南派)는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면치 못했다. 정사의 힘겨루기에서 가장 극렬하게 저항한 대가로 그 보복이 가장 심하게 자행되었는데 그 주축이 바로 천무방이었다.

“종남산이라…….”

천무경의 중얼거림에 잠시 그에게 주목이 쏠린다. 옛 피의 역사를 모르는 이는 이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0년 전 정파 우위였던 무림이 사파 우위로 돌아서고 그 이후 무림 역사상 가장 치명적이었던 혈마지란 이후에 그 우열 흐름이 가속화되었다. 그리고 35년 전에 무림맹에 가입하였던 정파들은 누적된 큰 피해를 극복하지 못하고 항복을 선언한다. 그 가운데 몇몇이 항복을 거부하고 극렬하게 싸웠고 결국 그들 대부분 멸문당하였으니 그중 하나가 종남파다. 그리고 천무경은 20살부터 최전선에서 싸워 온 장본인이다.

천무경은 잠시간 잠겨 있던 상념을 뒤로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그것은 실재한다고 보는가?”

“예?”

“홍천환 말이야.”

홍천환(紅泉丸).

천무경이 하오문을 통해 알아내고자 하였던 단 하나의 목적.

정보의 최초 출처가 하오문이었고 그것의 존재 가능성을 천무경에게 알리면서 벌써 3년째 그것을 찾고 있었다.

혈마지란의 원인이기도 했던 그 전설의 영약 그 존재가 소문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 일이었다.

홍천환의 탄생에 관해 얘기하고자 한다면 이것은 50여 년 전에 있었던 혈마지란보다 더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알려진 이야기 역시 온전히 알려진 것은 없어 신뢰도에 의심이 간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그런데도 혈마는 분명히 존재했던 인물이고, 그를 탄생시킨 것이 바로 홍천환이라는 영약이라는 설. 그의 손에 의해 정파는 존립에 치명타를 입었고 상대적으로 몸을 사린 사파가 득세할 정도로 무림사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혈마라는 확실했던 존재를 만들어 낸 홍천환의 실존에 대한 가능성은 결코 무시될 수 없었다. 그리고 하오문은 마침내 홍천환의 실마리를 찾아낸 것이었다.

천무경의 물음에 고담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다시피 과거 혈마의 행적은 중원 전토에 걸쳐 돌아다녔기 때문에 그 행보의 방향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어렵습니다. 다만 지금은 폐허로 남아 있는 옛 개방 지부들의 일부 비원(秘苑)을 저희가 확보하여 조사하는 과정 중에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새로운 사실?”

“예. 얘기하자면 무척 기니까 끝까지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어디 얘기해 보게나.”

무림사에서는 일반적으로 혈마의 등장은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나타난 재앙(災殃)처럼 묘사되었다.

흔히 그는 마도(魔道)를 연구하는 정체불명의 새외세력들이 만들어 낸 홍천환이라는 영약의 기연을 얻어 엄청난 내공을 얻게 되고 그 힘을 바탕으로 무림을 단독으로 평정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홍천환은 혈마환(血魔丸)이라 불리기도 했고, 그 이름이 본래 이름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설명을 이어간 고담의 이야기들은 천무경을 비롯한 다른 두 사람에게 있어서도 정말 뜻밖의 내용이 많았다.

고담의 이야기에 따르면 작년부터 현재는 유명무실해진 개방의 숨겨진 은거지 비원들을 여럿 발견하여 거기에 보관된 기록들에서 중요한 정보들을 찾았다고 하였다.

우선 혈마의 이름으로 성은 원(原), 이름은 건(乾)으로 그는 무림사에 아주 짧게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그 원건이란 자의 등장은 그래도 꽤 파란을 일으켰었는데 과거 무림맹에 주관했던 천하제일무림대회(天下第一武林大會)에서 그 어떤 정파에도 소속되지 않았으면서 압도적인 실력을 보였다고 한 일이었다. 그러나 통상 알려진 것은 딱 여기까지.

중요한 것은 그 뒤에 이어진 비화들이었다.

원건은 그 대회에서 무림맹과 사이가 틀어지며 그들의 공격을 받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진 것이 되레 엄청난 공력을 얻게 되면서 그를 공격했던 자들을 모두 죽여 버린 것이었다. 결국 무림맹은 그를 혈마라 칭하고 무림공적으로 규정하였는데 혈마는 반년 동안 무림맹 주력 문파 고수들을 주살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주었다. 심지어 몇 개 문파는 멸문을 면치 못했다.

중요한 것은 원건이 혈마가 되기 이전에 그의 뿌리가 어디냐 하는 문제가 있었다.

혈마 이전 시대에 당시 무당파는 천하제일을 다툴 만한 고수 두 명을 배출하여 그 위세가 엄청났다. 한 사람은 당시 천하오절이었던 태극검신(太極劍神) 주양자(周陽子)였고, 다른 한 사람은 주백자(周佰子)였다. 주양자는 무당파와 정파를 대표하여 천하오절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주백자는 무당의 제자이면서 주양자의 사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와는 다르게 오로지 무공에만 몰두하던 자였다. 주백자는 정신 수양을 소홀히 한 채 지나치게 무공 수련에 몰두한 나머지 역시 주화입마에 빠진 적이 있는데 그때 무당파 제자 십수 명이 폭주하는 그의 손에 죽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폭주하는 주백자를 제압한 것은 바로 주양자였고, 결국 그에게 금제를 당하고 감금되어 버린다. 그러나 주백자도 그 못지않은 불세출의 기재였기에 스스로 금제를 풀게 되고 탈출을 시도한다. 그때 주양자는 그를 다시 제압하려 했으나 오히려 주백자는 이전보다 더 강한 공력을 손에 넣은 상태였기에 능히 주양자를 뿌리칠 수 있었다. 주양자는 그에게 파문으로써 협박하였지만, 주백자는 결국 하산해 버리고 무당파는 그를 파문제자로 공표해 버린다.

원건이 무림대회에서 승승장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림맹의 표적이 된 까닭은 바로 그가 보여 준 무공의 근원이 주백자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당파는 무림맹의 연합체의 주축이었기에 원건을 제어하고 주백자를 추적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원건은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기에 모든 제약과 심문을 거부했다. 결국 그렇게 마찰이 심화하면서 혈마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원건은 주화입마 끝에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주체할 수 없는 살의(殺意)를 제어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그는 반년 동안 중원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정사를 막론하고 엄청난 살행들을 저질렀다. 그의 엄청난 무공은 천하오절이라도 단신으로 결코 막을 수 없었고, 당시 무림맹에 협력하며 호기를 부렸던 사파의 일부 절대고수는 그의 손에 처참한 결말을 맞이했다.

피해가 극심해지면서 엄청난 혼란이 발생하자 무림맹과 무당파는 중원 전역에 혈마지란의 주백자에 대한 비난성명을 뿌린다.

그에게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비난성명을 뿌리고 얼마 뒤에 주백자는 정말 책임을 지기 위해 무림맹에 나타났다. 놀라운 것은 그와 동행한 사람이 두 명이나 더 있었는데 한 사람의 이름은 조강선(趙鋼線), 다른 한 사람의 이름은 유변(劉變)이었다. 무림맹은 두 사람의 정체를 알고 있었으니 조강선은 관의 대장군부(大將軍部)에서 복무하다가 전역한 이후에 낭인(浪人) 생활을 하며 검창(劍槍)의 달인으로 명성이 있었다. 유변은 사천(四川)의 운양사(雲養寺)의 파계승(破戒僧)이었는데 의술을 연구한다는 핑계로 시체를 활용하여 인체해부를 일삼은 사건들로 그 악명이 자자했던 인물이었다.

이 세 사람의 면면을 보면 결코 조화롭다고 볼 수 없었음에도 그들의 동지애나 책임을 공유하는 모습이 관계가 매우 깊어 보였다고 개방은 기록하고 있었다.

그들의 진술에 따르면 세 사람은 어쩌다 보니 의기투합하면서 어울리다가 아주 어리면서도 영민함과 타고난 무골을 모두 갖췄던 원건을 발견하고 그를 공동제자로 거두게 되었다고 한다.

주백자는 자신이 연구한 무공들과 무당파 무공의 정수를 전수해 주고 싶어 했다.

조강선은 주백자가 인정한 검창의 고수였기에 무기술을 담당해 사사하였다.

유변은 자신의 의술과 약제술을 집대성하여 만든 홍천환의 성능을 시험해 보고 싶어 했다.

그들의 생각이 삼위일체(三位一體)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원건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원건이 무인으로서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원건의 무림출도 이후 그들은 조용히 은거하며 지냈지만, 결론적으로 이 혈마지란의 원인 제공자로서 커다란 세간의 비난을 마주하며 그 참혹한 현실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일단 유변의 손에서 탄생한 홍천환은 소림의 대환단과 비견하기엔 그 역사가 짧고 인공적인 환약이었기에 불안정했다. 엄청난 공력을 손에 넣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유변의 능력에 대해 감탄할 만하지만, 그 능력이 성숙되기엔 시간적 한계가 명확했다.

조강선은 원건에게 살인기술을 전수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주백자는 직접 원건을 도와 홍천환의 기운을 모두 다스리게 했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오히려 그의 도움은 완벽하지 않았고 추정하건대 과거 그가 주화입마 입었던 영향이 전이되었을지 모른다는 걱정도 존재했다.

결국 무림맹은 다시 힘을 규합하여 혈마의 행적을 좇고 이 세 사람을 전면에 앞세운다.

혈마 원건은 스승들이 자신을 쫓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결착을 위해 직접 멸문의 피를 뿌린 화산파 폐허로 추격자들을 불러들였다.

혈마는 자신의 세 스승과 상처 입은 정사의 절대고수 천하오절을 단신으로 맞아 싸우다 결국 생을 마감하며 혈마지란의 종식을 알린다.

당시 주양자는 자신의 사제인 주백자와 조강선, 유변을 주살하라는 명령을 내리지만, 그들은 모두 도망쳐 강호에서 종적을 완전히 감추었다. 그들 모두 지금 시점에선 죽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데 기록을 기준으로 오늘날 그들의 나이들이 모두 백여 살을 훌쩍 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천하오절 중 네 사람은 정파의 인물이었는데 그중 두 사람이 죽고 나머지 두 사람도 씻을 수 없는 중상을 입게 되니 정파 무림맹의 위세가 크게 추락하게 만든 사태로 결론지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구만.”

“주백자는 무당파의 아픈 상처나 다름없었기에 당시 무림맹주였던 주양자가 혈마 원건의 탄생을 계획한 세 사람에 대한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정파 무림의 정보를 전담했던 개방은 그 특성 때문인지 몰래 기록을 남긴 것이고요.”

“혈마가 여덟 명의 절대고수들에게 둘러싸여 죽긴 했지만, 사망자가 나오고 대부분 중상을 입었을 정도라면 그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 정말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노지신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는 혈마지란의 역사에 있었지만, 당시 사파 문파들은 혈마를 주살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결국 듣게 되는 것은 뜬소문들뿐이었기에 혈마가 어떤 인물인지 소상히 알기 어려웠다. 그러나 고담이 얘기한 정보의 출처가 개방 비원이라는 점에 의해 신빙성이 더해지니 그 이야기의 끝에 이르는 혈마라는 존재에 대한 상상은 가히 소름 끼칠 정도였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은 천무경이나 남궁평도 마찬가지.

특히 천무경은 당대 천하제일을 다투는 무인.

과연 당시 혈마를 자신이라면 상대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호승심이 치솟는 것을 느끼지만, 또 한 편으로는 작은 두려움이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피어오르는 것도 사실이었다.

문득 돌아가신 선친 천원표(天元漂)가 해 주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사파도 혈마에 의해 많은 사람이 죽고 몇 문파들은 참상을 피할 수 없었지만, 정파는 사파가 입은 피해의 열 배는 더 입었다는 것을. 말 그대로 궤멸적인 피해를 보았다는 소리이니 당시 혈마에 대한 공포로 몸을 사린 일부 사파 문파들이 혈마지란의 반대급부를 노리고 비밀리에 사패련을 결성하여 혈마 주살 이후에 무림을 장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하였는데…… 고담의 이야기와 대조해 보면 그 당시 혈마에 대한 무림의 공포가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호승심? 자만일 지도 모르겠구나.’

스스로가 어이가 없었는지 허허로이 웃음을 짓는 천무경이었다.

남궁평이 다소 걱정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홍천환이 만약 실재한다고 해도 주화입마를 피할 길이 없다면 무림에 큰 재난이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럴 수도 있습니다.”

“방주님, 괜찮으시겠습니까?”

“흐음!”

사실 천무경은 하오문이 홍천환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알려 왔음에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 이미 화경의 경지에 이르렀던 이유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제자를 들이지 않았던 부분도 존재했다. 하지만, 장로들과 당주들은 만약을 대비해 확보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 건의했다. 특히 구룡문이나 검림이 손에 넣는다면 무림의 판세가 또 다르게 재편될 우려가 있으니 차라리 천무방에서 직접 확보하는 편이 좋다는 판단이 홍천환 존재 탐색을 결정하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와 별도로 올해 들어 천무경이 홍천환과 관련하여 내밀전 회의를 자주 소집하곤 했는데 그 이유는 진도건의 미래를 위한 포석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를 제자로 들일 수도, 혹은 더 가까운 관계가 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홍천환의 주화입마의 가능성과 주백자의 손에도 다스리지 못했던 이력을 듣고 나니 다시 고민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홍천환에 대한 다른 동태는 어떤가?”

천무경이 고담을 보며 물었다.

가장 최근 내밀전에서 논의되었던 안건은 홍천환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그를 둘러싼 움직임이 하오문과 천무방 외에도 있다는 것을 포착했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에 보고를 드린 대로 역시 살문(殺門)과 비혈단(飛血團)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비혈단은 아마 구룡문과 검림 양쪽에 걸쳐 정보를 팔고 있는 듯한데, 살문은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개방 거지들의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습니다. 저희나 비혈단이 개방 비원들을 건드린 것이 그들의 시야에 잡힌 듯합니다.”

“허허……, 이거 생각보다 큰 판이 벌어질지도 모르겠군.”

“그래도 저희가 가장 앞서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아마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살문이나 비혈단이나 만만치 않은 놈들이니 주의해야 할 걸세.”

“명심하겠습니다.”

천무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네.”

“…….”

고담이 전할 이야기는 여기까지라고 모두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입을 다문 채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할 말이 남아 있었던 것일까, 잠시 뜸을 들이던 고담이 조심스럽게 입을 뗀다.

“……사실 그들 외에 걱정거리가 더 있습니다.”

“걱정거리? 그게 뭔가?”

“홍천환의 흔적을 추적하던 중에 감숙의 새외지역에서 수상한 자들이 중원으로 넘어오고 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숫자는?”

“많지는 않지만 그들의 정체가 염려스럽습니다. 새외엔 도교나 불교 외의 이종 교단이 다수 존재하는데 지난날 혈마지란 이후에 그 혈마가 벌인 혈사를 추종하는 자들이 장성(長城) 밖에 산발적으로 무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심상치 않군.”

“홍천환을 향한 움직임들이 여럿 포착되고 있는 상황에서 혹시 그런 추종자들이 뭔가 교단을 형성하고 있다는 정황이 있어서 저희도 운신에 매우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노지신이 못마땅하다는 듯 중얼거린다.

“흥! 장성 밖의 오랑캐들은 옛날부터 중원인과 결탁하면서 자신들의 천하를 이루겠다는 소문들이 왕왕 있었지만, 언제나 별 볼 일 없었네.”

“우린 한동안 허창에 있을 테니 도움이 필요하거든 언제든지 전갈을 주게나.”

천무경이 씩 웃으며 고담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고담이 방을 떠난 이후로도 한동안 세 사람은 홍천환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하오문에 대한 지원 방향과 홍천환 처리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나서야 황하객잔의 숙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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