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11화 (11/432)

11화 - 제2장. 사패련으로 (5)

오늘 가을바람은 다른 때보다는 꽤 쌀쌀했다. 아직 겨울이 다가오려면 두 달은 더 있어야 한다. 당연히 식어 버린 밤공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겠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마음마저 조금은 허한 것이 이 찬 바람 안에서 더 쓸쓸함을 느끼게도 하는 듯하다.

아내 주약화의 아름다웠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녀가 명을 달리 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생생한 것은 그녀와 쏙 빼닮은 딸아이 덕일 터.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억과 추억은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 살아남아 때때로 그의 마음이 감정의 파고 위로 붕 뜨게 했다.

“방주님.”

외전에서 내전으로 시선을 아래로 떨군 채 대문을 통과하던 천무경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 노 장로님. 아직 안 주무셨습니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잠이 없어지나 봅니다.”

삼장로 노지신이 허허로이 웃으며 대답했다.

“외전엔 어쩐 일이십니까?”

“뭐 순찰…… 이랄까?”

말에 확신이 없는 모습에 노지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을 힐끔 눈치를 보던 천무경이 피식 웃었다.

“후후! 뭐 예상치 못한 광경을 보고…… 좀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바람에 그렇게 됐습니다.”

“외전에 나가신 것은 방주님의 마음과 관련 있는 것이고요?”

“예. 뭐 머지않은 미래가 예상되다 보니. 저도 고민하던 것을 좀 처리했을 뿐입니다.”

노지신은 속으로 그의 말을 가만히 곱씹어 보았다. 곧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서은이와 도건이가 관련이 있나 보군요.”

“허허! 눈치도 빠르시군요.”

“대외적으로 걱정할만한 일은 없다시피 하니 결국 남은 것은 두 사람뿐이죠. 일전에 내밀전 회의에서 나눈 안건들이 있지만, 모두 수면 위로 떠 오른 일들은 아니니.”

천무경은 더는 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작은 결심 혹은 마음의 준비. 그가 한 것은 그저 그 정도일 뿐이다. 만약 딸의 선택이 그러하다면 아비로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아쉬움과 기대감. 어느 것이 큰지는 모르겠지만,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본인은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장로님도 어서 침소에 드시지요.”

“방주님, 좋은 밤 되시길.”

“고맙습니다.”

그를 지나쳐 걸어가는 천무경의 거대한 뒷모습이 오늘따라 평범해 보이는 것은 왜 그럴까? 자식 문제 앞에서 모든 아버지의 처지는 똑같기 때문인가. 그 뒷모습을 공감한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노지신의 고개가 작게 끄덕였다.

* * * *

진도건과 곽유소의 대결 이후의 날들은 비교적 평범하게 흘러갔다.

곽유소는 이틀 만에 병상에서 나와 진도건에게 다시 한번 사과하는 것으로 훈련에 복귀했다. 진도인의 위상에 불만을 가졌던 성표일 등은 곽유소의 패배로 다시 기가 죽어 조용히 분위기에 묻어갔다.

진도건은 오전과 저녁엔 천서은의 처소에서 그녀의 훈련과 대화 상대를 해 주었고, 오후에는 천혼당 훈련에 함께 참석했다. 애초에 천무방의 무공을 특별히 수련하고 있진 않았고, 특별히 거느린 조원도 없었기에 대부분 개인 훈련을 하거나 가볍게 맞상대해 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렇게 반복적인 일상의 흐름이 이어지며 마침내 사패련으로 떠날 인원이 꾸려졌다.

천무경과 천서은, 천혼당 남궁평과 진도건 이하 20명의 천급무사, 이혁성과 20명의 인급무사 그리고 천서은의 하녀 영란과 5명의 하인이 함께 대동하여 말을 타고 천무방을 떠났다. 주태소도 그 일행에 포함되어 있었음은 물론이었다. 그는 천혼당 행렬 근처에서 말을 몰았다.

“이게 얼마 만에 외출이에요, 아씨!”

“호호! 그렇게 좋으니?”

“그럼요. 게다가 하남 허창이라 하면 옛 위나라 조왕이 도읍으로 삼았던 곳이잖아요? 엄청 번화한 곳이라는데 너무 기대돼요.”

천서은과 영란이 깔깔 웃으며 수다를 떠는 소리가 들렸다.

일행 가운데는 여자는 하소정을 포함한 세 사람뿐이었다. 특히 천서은의 미모가 뛰어나다 소문이 자자한데 외전 3당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보니 뒤를 따르는 무사들은 그녀들을 힐끔힐끔 쳐다보기도 한다.

딱!

그중에서도 유독 헤벌리며 보고 있던 나지룡의 이마에 불꽃이 튀었다. 아야! 하고 고개를 휙 돌리자 하소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혀를 차고 있었다.

“왜 때려?”

“입 좀 다물고 보던가.”

천무방의 대외적인 행보는 사실 무척 잠잠한 편이었다. 감히 천무방에 분쟁을 유도하는 문파들도 없을뿐더러 사파의 거두라고는 하나 악(惡)을 대변할 정도의 극단적 성향을 지닌 집단이 아닌 무인으로서의 강함에 초점을 맞춘 곳이기에 일반적인 인상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이동하는 모습은 지나치는 일반 마을 사람들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그들의 입에서 입으로 순식간에 그 소문이 퍼져 나갔다.

천하오절 파천무봉 천무경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무림인들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하남으로 향하는 그들 행렬의 경로를 먼저 앞질러 기다려 보고 가곤 했다. 일부는 이번 사패련 비무제를 구경하기 위해 움직이던 자들도 있어서 그들은 천무방 행렬에 조금 거리를 두고 쫓으면서 그들의 면면을 보고자 했다. 천무경의 명성은 견줄 자가 없고 천서은의 미모는 언제나 화젯거리였다. 태원도왕 노지신, 반정협객 남궁평이나 비뢰검(飛雷劍) 이혁성 이들의 명성은 워낙 강호에서도 유명했기 때문에 근처를 맴도는 무림인들이나 호사가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또 천무방 행렬에 녹림채의 유명한 고수인 주태소의 존재가 끼어 있었던 것도 재밌는 얘깃거리였다.

진도건도 이런 대규모 행렬에 함께 간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조금 설렌 기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보다 닷새 전 밤 침소에서 있었던 일을 신경 쓰고 있었다.

운기조식 중에 등을 건드린 누군가를 느꼈지만, 엄청난 고통에 못 이겨 혼절하였기에 도대체 왔다가 사라진 자의 정체를 알 길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전날 밤 기억이 떠오르는데 암살당할 뻔했다는 생각이 들어 등골이 오싹했던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 이상으로 몸에 찾아온 변화 때문에 사실 부정적인 감정 자체는 이젠 거의 희석되었다.

호흡과 운기조식이 원활하여 언제나 막히는 기분 없이 상쾌하였는데 그렇게 대주천과 축기를 반복할 때마다 조금씩이지만, 분명하게 몸에 기운이 늘어가고 감각도 날이 벼려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순간의 기억은 만약의 사태를 가정하면 너무나 두려웠지만, 하루하루 달라지는 변화의 징조들은 그 인식을 뒤바꾸기에 충분했다.

‘누굴까?’

장로들? 아니면 천무경? 아무래도 천무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태을신공 내공심법 발전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왜 이런 도움까지 주었는지 그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날 이후 호흡과 운기가 자연스러워져 말을 타면서도 작은 집중만으로 태을신공 토납법을 수행하고 있었다. 감각이 깨어 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그전에는 없었던 기의 흐름이 손에 잡힐 듯 보다 선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천무경은 진도건이 자신의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흔들리는 말 위에 앉아 있으면서도 자연과 연결되어 흘러가는 기의 흐름과 그의 체내 움직임까지, 화경에 이른 천무경의 눈에는 훤히 들여다보이고 있었다.

‘적응이 빠르군.’

그의 수준과 비교하면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수준이었지만, 자신이 손을 쓴 이전과 비교하면 축기량이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직접 꾸준히 성장을 돕는다면 아마 눈부신 속도로 성취를 이룰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일단은 스스로 어떻게 발전해 나가고 있는지 지켜보고자 했다. 수동적으로 살아왔던 삶의 기준을 스스로 깨부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무인으로서 사내로서 기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며, 그는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천무방 행렬은 말을 타고 꾸준히 남하하였다.

어느덧 그들을 따르는 낭인들의 무리도 그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현재는 구룡문이 사파제일문으로서 그 명성을 갖고 있었지만, 천무경이 이끄는 천무방도 절대 밀리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이 행렬은 계속 길어질 것만 같았다.

이틀에 걸쳐 남하하여 산서와 하남 경계의 황하(黃河)변의 마을에 이르렀을 때쯤 해는 이미 기울고 달이 떠오른 상태여서 그들은 숙박을 위해 미리 객잔 두 곳의 남아 있는 방들을 필요한 만큼 빌리고, 근처의 반점들로 식사를 위해 흩어졌다.

일행들은 마을엔 황하반점(黃河飯店)이라는 간판을 버젓이 세운 이곳에서 가장 큰 식당으로 들어갔다. 천무경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은 2층의 방들에 흩어져 들어가 앉았고, 천급무사들과 인급무사들은 1층 탁자들에 둘러앉았다.

미리 사람을 보내 예약했었기 때문에 이미 대부분의 요리가 완성되어 빠르게 2층부터 1층까지 배분되기 시작했다.

진도건은 장학 일행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식사를 마쳤을 무렵이었다. 반점 문이 열리며 한 중년인이 들어왔는데 허리춤엔 두 자루의 짧은 엽도(葉刀)를 차고 있었고 행색에 다소 격식이 없어 흔히 보는 파락호들에게서나 볼 법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가진 분위기가 범상치 않아 눈치가 있는 몇몇은 그를 의식하고 있었다.

“천무방주님을 뵈러 왔는데 어디 계시오?”

진도건이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신분을 밝혀 주십시오.”

“하오문(下午門)의 고담(孤擔)이라 하오. 전갈이 있어서 왔소이다.”

“쌍인귀영(雙刃鬼影).”

뒤에서 장학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쌍인귀영 고담은 대륙 전토에 점조직으로 흩어져 있는 하오문에서도 꽤 유명한 인사였다. 두 자루 짧은 엽도를 이용한 쌍도술과 은신, 경공으로 유명한 자였다.

“제게 주면 전달해드리겠습니다.”

“방주께서 하오문에 직접 요청한 사안이라 직접 전달해야 하오.”

“그럼 잠시 기다리시지요.”

진도건은 고담을 기다리게 하고 직접 2층으로 올라가 천무경이 있는 방을 찾았다.

“방주님, 진도건입니다.”

“들어오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천무경과 천서은, 노지신, 남궁평이 식사를 마친 후 담소를 나누고 있었던 것 같았다.

“방주님, 하오문의 고담이라는 자가 방주님께 전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 올라오라고 해 주게. 서은이는 자리를 비켜 주겠니?”

“그럼 먼저 객잔 숙실로 가 있을게요.”

“그러려무나.”

천서은은 천무경을 비롯한 어른들에게 목례로 인사를 한 후, 방을 나섰다. 진도건도 고담을 불러올리기 위해서 나가다 보니 그 옆에 서서 함께 움직이는데 그 뒷모습을 쳐다보던 천무경의 얼굴에 아주 잠깐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천서은과 진도건은 1층으로 내려왔다.

서서 기다리고 있던 고담은 계단을 통해 내려오던 천서은의 아름다운 자태에 잠깐 놀랐다. 하오문은 수많은 기루를 운영하고 있어서 그도 내로라하는 미인들은 많이 보았다. 그러나 하오문의 기녀들은 말 그대로 훈련되고 만들어진 미인들에 가까웠기 때문에 천서은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어딘가 작은 가시를 품고 있는 꽃을 떠올리는 듯한 느낌의 미모에 아주 잠깐 넋이 나가 버렸다.

“올라가시지요.”

“아, 알겠소.”

진도건의 목소리에 고담은 서둘러 정신을 차렸다. 진도건이 앞서서 가려고 할 때 천서은이 그의 옷깃을 붙잡아 당겨서 잠시 멈춰 세웠다.

[진 위사, 모셔다드리고 다시 오세요. 밤길이 어두워 무서운데 절 지켜 줘야죠.]

아주 작은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오는 착각이 들었다. 전음술(傳音術)은 언제 들어도 신기하다.

“알겠습니다.”

진도건은 나직이 대답하곤 고담을 인도하여 2층을 올라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천서은이 희미한 미소와 함께 지켜보았다.

“방주님.”

“모시게나.”

2층에 올라가 천무경이 있는 방에 도착한 진도건은 천무경의 허락에 방문을 열어 주며 옆으로 비켜섰다.

“천무방주님을 뵙습니다.”

고담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서서 천무경을 향해 부복하고 포권을 취했다.

천무방은 하오문의 뒤를 봐주는 전략적인 제휴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천무방이 그들을 결코 홀대하는 법이 없어서 하오문과의 관계가 매우 좋았다. 특히 하오문에서도 무인으로서 성향이 짙은 자들 일부는 천무방을 거의 주종관계로서 바라보는 자들도 있었는데 고담이 바로 그러했다.

“오랜만이네, 고 지부장. 일어서 예 앉으시게.”

고담은 하오문의 산서지부장이었기에 일찍이 천무경이나 노지신, 남궁평과 모두 면식이 있었다. 천무경의 목소리에 고개를 올려다보는 그의 얼굴엔 존경심이 드러나 있었다.

재능이 없어 무인으로서의 온전한 길을 걷지 못한 그로서는 천무방의 유력자들은 가히 경이로운 존재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고담이 일어나 천서은이 앉았던 자리에 앉을 때, 천무경이 진도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옆방에 있는 이들도 모두 자리를 물리라 하게.”

“알겠습니다.”

천무경의 방은 2층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진도건은 바로 옆방을 찾았다. 허락을 구하고 들어가니 이혁성과 천혼당, 인혼당의 조장들이 있었다. 옆방에서 천무경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그들은 이미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고 있었다.

“2층은 모두 비우고 1층에서 대기하라.”

“예.”

이혁성은 천무경과 고담이 어떤 대화를 주고받을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는 원체 대외적인 일에 주도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성격이 아니라 수행자로서 역할이 컸기 때문에 공식적인 회의가 아니라면 자리를 피하는 편이었다. 천무경이나 다른 장로, 당주들도 그 점을 이해해 주고 있었다.

2층에 남아 있던 사람들도 모두 1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확인한 이혁성과 진도건이 마지막으로 그 뒤를 따랐다.

“내공을 다스리고 있나 보군.”

이혁성이 앞서서 내려가면서 조용히 중얼거리듯 말했다. 평소 말을 자주 거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말에 진도건은 조금 놀랐지만, 이내 침착하게 대답한다.

“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기대하고 있겠다.”

그 말 한마디를 끝으로 이혁성은 계단 가까운 곳의 인급무사들과 합석했다.

진도건은 조금 당황하면서도 그 말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긍정적인 기류를 느꼈다. 이혁성은 어떻게 보면 쾌검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그와 닮은 부분이 있었다. 다만 이혁성은 더 폐쇄적인 성격에 그만큼 열정적인 검사였기에 그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함께 비무를 하여 인정을 받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관심을 지금도 받는다는 것이 진도건에게 꽤 좋은 자극으로 다가왔다.

진도건이 그에게 목례로 답하고 고개를 돌리니 그를 기다리고 있는 천서은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곧장 그녀와 함께 황하반점을 빠져나왔다.

피식.

갑자기 진도건이 실소를 흘렸다. 천서은은 그가 왜 웃었는지 알고 있었지만, 짐짓 모른 척 노려보며 묻는다.

“왜 웃어요?”

“황하객잔(黃河客棧)이 바로 옆이군요. 그런데….”

“호오? 바로 옆이라 귀찮다 이거에요? 흥! 실망이에요.”

천서은이 토라진 척하며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진도건은 멋쩍게 웃곤 서둘러 그녀를 앞질러가 객잔 정문을 열어 주었다.

“들어가시지요.”

“까르르!”

과장되게 예를 갖추는 진도건의 모습에 천서은이 금방 본심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녀는 총총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팔꿈치로 진도건의 명치를 톡 찔렀다. 눈이 마주치자 둘 다 피식 웃었다. 객잔 안에선 영란이 천서은의 행랑을 챙기고 기다리고 있었다. 진도건은 행랑을 대신 들어주고 두 사람이 함께 잘 3층의 방까지 짐을 옮겨 주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진 위사도 저 신경 쓰지 말고 방 잡아서 푹 자둬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진도건은 천서은과 인사를 나눈 후, 방문을 닫고 1층 휴게소로 향했다. 그리고 한쪽 구석의 의자에 앉아 검을 내려놓고 눈을 감아 태을신공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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