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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8화 (8/432)

8화 - 제2장. 사패련으로 (2)

* * * *

천무방에 손님이 머물 때면 서일헌 총관은 그가 주로 머물면서 업무를 보는 집정당의 별원(別院)에 그 자리를 마련해 주고 있었다. 오랫동안 천무방엔 빈객(賓客)이 머무는 빈도가 거의 없으면서 별원의 모든 방에 먼지만 쌓여가던 차였다.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이 일하는 하인들뿐이었다. 그러나 한 달쯤 전부터 이곳에 한 사람이 머물기 시작하면서 그자가 있던 방은 사람 손때가 조금씩 타고 있었다.

일주일 전부터 주태소는 동트기 전 새벽쯤에 별원 정원으로 나와 그 한 가운데서 바람을 맞으며 해가 뜰 때까지 명상하기 시작했다. 깊이 호흡을 이끌 때면 오른쪽 가슴이 쿡쿡 쑤셨지만, 다행히 호흡을 이어가는 데 큰 문제를 느끼지는 못했다.

흐읍! 하아-!

반 시진 가까이 이어지던 명상을 마치고 나면 옆에 두었던 도를 들고 천천히 품새를 잡으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동작 하나하나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펼친다. 절대 조급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펼쳐 내는 동작엔 고도의 집중력이 따라와야 하는 법이다. 심장의 박동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를 모세혈관까지 밀어내며 근육의 기억을 끌어올리고 신경의 감각을 고조시킨다. 그렇게 또 한 시진이 흘러 어느새 동쪽 하늘에 이미 해가 떠올랐다는 것을 문득 인지하였을 때, 그는 운동을 멈추고 가빴던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그럭저럭.”

“의원은 불편함이 한 달은 더 지속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매일 같이 그렇게 걱정해 주는 소리에 귀에 딱지가 앉겠네.”

“허허허!”

천무방 총관이라는 작자는 이렇게 아침이 되면 그의 안부를 물으러 왔다. 식사를 정리하여 가져온 소반은 마루에 두고 그 옆에 앉아 그의 회복 수련이 끝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그의 개인적인 사무로 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지난 한 달이란 시간 동안 그런 적이 여섯 번밖에 되지 않으니 오히려 얼굴을 보지 않은 날이 어색할 정도였다.

주태소는 땀에 흠뻑 젖은 상의를 훌렁 벗었다. 그리곤 마루에 가 앉아 옷은 옆에 두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른 시간부터 그렇게 체력을 써서 그런지 식사가 훌훌 넘어간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일헌이 입을 열었다.

“혹시 언제 떠날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왜? 내가 너무 밥만 축내서 그러쇼?”

“허허허! 그럴 리가요.”

“뭐 물리적인 치료는 끝났으니 언제 떠나도 무리가 되는 일은 아니지. 곧 떠나겠소이다.”

“곧 사패련에서 비무제가 열립니다. 아마 녹림에서도 참가든 관전이든 할 테니 거기까지 저희와 동행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흐음. 벌써 비무제를 할 때가 된 건가?”

주태소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가만히 생각했다.

녹림칠악의 한 사람으로서 그 축을 지켜야 할 지위에 있었지만, 그는 감투 따위는 워낙 거추장스러워하는 자유분방한 사내였다. 또 녹림이라는 거대한 산적 집단에 소속되어 있지만, 그에게 있어서 약탈, 살인 같은 행위들은 그저 한 몸 자유로운 삶을 누리려는 방편에 불과해 사실 함부로 칼을 휘두르고 다니는 편은 아니었다.

주태소는 만약 사패련에서 녹림칠악 중 누구 하나 마주치게 되면 일단 본채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 갑갑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다만 산채를 떠나서 거의 2년간 떠돌기만 했으니 한 번쯤 녹림채주 오경방이나 다른 칠악 선후배들과 인사치레 정도는 해 둘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뭐 언제든 빠져나오면 되니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갑갑해졌던 기분이 조금 해결되었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주태소는 남은 식사를 마저 끝내기 시작했다. 남은 고기 한 점 집어서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으면서 동시에 밥그릇을 싹싹 긁어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먹었다.

주태소가 우걱우걱 입안에 든 내용물을 씹고 삼키길 반복하고 있을 때 서일헌은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곤 소반을 정리하여 일어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별원 밖에서 제법 소란스러운 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주태소가 식사를 시작했을 무렵부터 간헐적으로 들려왔는데 이제야 신경이 쓰였는지 주태소가 서일헌에게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웬 소란이지?”

주태소가 궁금증을 표하자 서일헌이 하인을 불러 경위를 알아보라 지시하였다. 밖에 나갔다가 들어온 하인의 말은 주태소의 얼굴에 흥미로운 표정을 떠오르게 하였다.

“진도건 호위무사님께서 천혼당에 새로 들어오신 곽유소님과 잠시 후에 대결한다고 하여 구경하러 가는 사람들이 몰려간 탓에 소란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호오? 곽유소는 누구지?”

“보름 전에 가입한 자인데 흑명도객이라는 별호로 불리는데 아십니까?”

“들어본 거는 같은데. 그런 명성 수준이라면 결과는 뻔한 것 같소이다.”

주태소는 벌떡 일어나 마루에 기대어 둔 자신의 칼을 거두고 벗어 둔 상의를 다시 걸쳤다. 그리고 서일헌을 보며 씩 웃었다.

“구경하러 갑시다. 내 가슴에 구멍 낸 놈 솜씨 여전한지 보러 가야겠소이다.”

“허허허! 그러시죠.”

두 사람은 곧장 별원을 나와 천혼당으로 향했다. 가는 중에도 그들과 같은 목적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자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마침내 천혼당의 연무장에 도착하였을 때, 그곳엔 이미 많은 사람이 가득 차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사람은 공녀 천서은과 3당의 당주들인 남궁평, 천준, 이혁성을 포함하여 각 당의 부당주들까지 모두 이곳에 와 저마다 보기 좋은 장소에서 연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런 잡것을 상대로 이 정도까지 모일 일인가?”

주태소가 중얼거리면서도 흥미로운 시선으로 연무대 위의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진도건과 곽유소는 서로 나무로 가공된 검과 도를 각각 손에 쥐고 이미 합을 겨루고 있었다. 목검, 목도가 탕탕거리며 부딪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고 두 사람의 신형도 때에 따라 위치를 바꾸며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탐색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곽유소는 생각보다 진도건이 자신의 도법을 잘 막아내자 내심 놀랐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깐 사이의 감정에 불과했다. 얕보았던 상대를 쉽게 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하기 시작했다.

“흥! 제법이다만!”

곽유소의 흑명도법(黑冥刀法)은 그 기세가 강렬했고 또한 많은 변화를 담고 있었다. 내딛는 보법의 한 걸음 한 걸음은 무거우면서도 전진하려는 힘이 있었다.

쿵!

강한 진각음(震脚音)이 곽유소의 발밑에서 터져 나오며 그의 신형이 순간 진도건을 향해 짓쳐 들었다.

슈아아악!

파도처럼 쓸어 내는 횡격.

찰나의 순간 합의 박자를 수 배로 끌어 올려 감히 대응할 수 없도록 노린 공격이었다.

어느새 공중으로 뛰어오른 진도건의 발밑으로 목도의 잔영이 흘러간다.

뛰어오른 높이는 딱 필요한 그만큼만. 대신 반격의 속도를 상승한 합의 박자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퓻!

직선으로 출검 되는 찌르기.

목검의 검 끝이 순식간에 곽유소의 이마를 뚫어 버릴 기세로 발산.

그 위험성을 본능적으로 느꼈을까.

내딛는 발걸음은 지면을 비틀어 전진성에 제동을 걸고 허리와 목을 급격히 비틀어내니 진도건의 목검이 아슬아슬하게 곽유소의 관자놀이를 스친다.

슈슈슉!

흑도삼세(黑道三細)의 일초가 엉성한 자세에서 출수 된다. 타탕! 하는 소리와 함께 반격이 막혔음을 깨닫는 것도 뒤로 하고 황급히 뒤로 물러서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제야 진도건이 바닥에 발을 딛으며 자세를 고쳐잡는 모습이 온전히 눈에 들어왔다. 직전의 반격은 그야말로 본능적인 행위로써 진도건의 위치나 상태가 고려된 바 없이 서둘러 위기를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목검에 스친 관자놀이 부근에선 어느새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 뜨거운 이물감을 느끼고 신경이 쓰일 만도 하지만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탕!

이번엔 진도건의 차례.

가볍게 땅을 박차며 전진한다. 크게 일보 옮기며 그의 신형이 지면에 낮게 깔린다.

슈슛!

진도건의 목검이 연속으로 찌르기를 시도한다.

쾌검.

예상치 못한 속도에 곽유소가 힘겹게 반응하며 공격을 쳐 냈다. 마지막 검격에서 받은 반동을 이용, 횡보를 더 하여 측면을 재차 파고든다.

슈슈슛!

타탕!

검은 찌르고 베는 것이 모두 용이했지만, 역시 찌르기만큼 검 본연의 위력을 나타내는 수법은 없다. 건장한 곽유소의 체격은 좋은 표적이었다. 그 정확도를 떨어뜨리기 위해선 몸을 측면으로 틀거나 그 궤적을 차단하거나. 육참골단(肉斬骨斷) 또한 방법이지만 검 끝이 가리키는 바가 급소라면 전자의 두 가지 방법이 필수다.

황급한 방어는 동작을 크게 만들고 그만큼 빈틈을 드러나게 만든다.

서둘러 목도를 가슴팍으로 끌어당기면서 좌수도 함께 휘둘러 목검을 쳐 낸다.

퍽! 하는 소리가 목검과 목도가 부딪치는 맑은소리를 덮었다.

진도건의 두 차례 출수는 목도에 막혔지만, 이어진 세 번째 찌르기에서 그는 곽유소의 왼손이 갖는 의도를 간파했다. 그리고 가볍게 손목을 튕기면서 곽유소의 왼손 손목을 때렸다.

즉, 곽유소가 좌수로 목검을 쳐 낸 것이 아니라 진도건이 그의 손목을 되레 때린 것이었다.

쾌검의 기세를 거두고 동시에 변칙적인 움직임으로 출수의 성격을 변환하여 상대의 허를 찌른다.

“우와!”

너무나 찰나의 순간에 이뤄진 것이기에 그 수법을 목도한 자들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그 소리는 당연히 두 사람의 귀에도 들렸다.

진도건은 한 걸음 물러나 곽유소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손목을 부여잡은 곽유소는 그 얼얼한 고통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특히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이마의 문신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여서 그의 자존심에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지 누가 봐도 느낄 수 있었다.

진도건의 손에 들린 것이 목검이라 다행이었다. 만약 진검이었으면 손목이 그대로 잘렸을 터.

그 생각은 곽유소나 장내의 구경하는 무사들이나 같았다.

“이익! 내 진가를 보여 주마!”

진도건의 쾌검은 놀라웠지만, 곽유소는 아직 스스로가 가진 능력을 모두 보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지금 이 무대는 단순히 초식의 합을 겨루는 햇병아리들의 비무제 같은 것이 아니라 조직의 직위와 명예를 걸고 벌이는 대결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의 상처 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대결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콰직!

그가 딛고 있는 연무대의 바닥이 살짝 부서진다.

기운의 파동이 그의 전신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퉁!

곽유소의 신형이 쏜살같이 튀어 나간다. 종횡으로 내딛는 보법 위로 암군낙화(暗君落花)의 연격 초식이 펼쳐진다.

곽유소의 공력과 도세의 기운이 진도건의 사위를 무겁게 짓눌렀지만, 이미 그런 느낌은 익숙하여 방해되지 않았다.

타당! 텅! 텅!

목검, 목도의 부딪치는 소리가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오히려 그의 쾌검이 마치 자리를 선점하듯 시의적절하게 목도의 궤적들을 차단한다. 도검이 부딪칠 때마다 그 충격의 떨림이 두 사람의 손에 전달되었다.

진신 공력을 이만큼 끌어올려 상대함에도 진도건의 수비와 반격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그는 연격을 이어가며 공력을 목도에 집중시킨다.

명사단참(冥使斷慘).

다음 공격이 막혔을 때 오히려 상대의 병기를 파괴하거나 충격을 줄 수 있는 흑명도법의 비기(秘技).

‘부숴 주마!’

끝나지 않는 암군낙화의 연격 속에 감추어 둔 명사단참의 일초는 너무나 자연스러웠기에 진도건의 목검도 당연하게 그의 목도를 향해 날아든다.

펑!

공기가 섞여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를 따라 셀 수 없이 많은, 크고 작은 나뭇조각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마치 암기를 쏜 것만 같은 속도를 가졌기에 진도건도 황급히 이를 피했다. 다행히 몇 개가 몸에 부딪혔지만, 기운이 실리지 않아 상처 입힐 정도는 아니었다.

폭발한 것은 곽유소의 목도였다.

연격 가운데 한순간 과도한 공력을 쏟아부은 탓에 목도가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린 것이었다.

곽유소도 그 폭발에 잠시 웅크렸지만, 그것도 잠시 멍한 시선으로 부서져 손잡이만 남은 목도를 쳐다보았다.

잠시 흥분하여 훈련 목적으로 만들어진 나무 도검으로 대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였는지 습관적으로 강철도에 공력을 충진시켰던 것처럼 기를 운용한 것이었다.

대련을 이어 가려고 하니 당장 손에 쥘 만한 목도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멈추기엔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흐름이 끊어지는 것은 둘째 치고, 이대로 종료하든 잠깐 쉬어 가든 패배한 것이 아니냐는 자신을 향한 의문이 지금도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이런 전후의 고민이 수도 없이 그의 머릿속에서 교차할 때.

강철의 눈부신 반사광이 한순간 그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캉!

갑작스러운 자극에 놀라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자신의 발 앞에 박힌 강철로 제련된 진도(眞刀)를 발견했다.

그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다루는 것과 그 길이나 도폭, 형상이 유사하였다.

두근!

이 대결의 흐름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욕심에 심장이 강하게 맥동한다.

“그렇게 한심하게 끝낼 거면 나가 뒈져라.”

누군가의 외침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아마 이 칼도 그의 것이 아닐까?

도대체 누가 목검 목도 대결에 진짜 칼날을 들이민단 말인가?

진도건을 포함해 장내의 모두가 그 칼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진도건은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눈이 마주치자 씩 웃는 주태소.

한 달 만에 발견한 반가울 수 있는 얼굴. 그러나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전에 그 웃음을 보자마자 경각심이 등골을 타고 올라온다.

그 사이에 그의 낭아도를 손에 쥔 곽유소.

퉁!

작은 소음에 진도건이 반사적으로 다시 고개를 틀었다.

동시에 장내의 관중들이 한층 더 긴장하여 숨죽인 채 연무대 위로 시선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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