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화 〉순례.
쏴아아아, 불어오는 바람에 파도치는 수면이 말의 허리를 철썩 때리고 물방울을 튀기며 신발을 적셨다. 이곳의 물이 소금물인 탓일까? 이전에는 시원하게 느껴지던 발가락 사이를 적시는 물의 감촉은 신발 속에 고여 붕대까지 적시니 답답하고 찝찝하게만 느껴진다. 이미 하늘이 푸른빛을 되찾고 해가 온전히 떠오를 무렵에도 그들은 파도 소리만을 들으며 나아가고 있었기에 어셔는 초조함을 누르고자 크리칼료프에게 물었다.
"여기는 왜 이렇게 물이 많은 거예요?"
보통 구름 지대의 근처가 아니라면 대부분 불모지나 다름없는 황야로만 이루어져 있기에 사람이 살 수 없다고 들어왔던 어셔에게 파르즈는 이상한 곳이었다. 숲에서 벨카와 함께 몸을 씻었던 호수나 메디아들과 놀았던 란투아의 작은 웅덩이들도 본 적이 있었지만 물이 깊어지고 파도치기 시작하면서 드러난 지평선 너머까지 물이 가득할 정도로 넘쳐나는 곳은 없었으니까.
"다른 곳에 비하면 지대가 낮아서 그렇지. 곳곳에 수원도 있으니 물이 마르지 않고 넓게 고일 수 있는 거다."
덕분에 구름 지대를 곁에 두지 않고도 사람이 살아갈 수 있다지만 모든 의문이 해결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짜잖아요."
이런 물을 그냥 마실 수는 없었다. 특히 힐디스비니를 길들이려다 물에 빠졌을 때는 입에 들어가기만 해도 입안이 쪼그라드는 듯한 고통마저 느꼈으니까.
"수원에서 나는 물은 안 짜다."
"그럼 여기 물은 왜 짠데요?"
"네가 살던 곳에서는 소금을 어떻게 구했냐?"
"그건."
보통은 사막의 모래에 물을 섞은 다음 모래만 빼내고 물을 끓여서 드러난 소금을 이용하거나 어떤 바위를 깨서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땅 위에 물이 닿으면 어떻겠냐."
"아."
이곳의 물이 짠 이유를 알았을 때였다. 크리칼료프가 손을 들어 말을 멈춰 세운 건.
"잡담은 여기까지 해야겠구만. 여기서부터는 긴장하는 게 좋을 거다."
"네? 갑자기 왜."
"너는 몬스터들이 가장 많이 서식하는 곳이 어디라고 생각하냐?"
"설마 여기는 아니죠?"
"척하면 척이구먼."
어셔는 아니라는 대답을 듣고 싶었지만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정 반대의 것이었다.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그들의 주변에는 파도치는 물의 표면밖에 보이지 않는다. 맹그로브 나무들의 군집조차 보이지 않는 드넓은 물 위는 그저 파도치며 불어오는 바람에 짠내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가장 많이 서식하는 곳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지. 첫째는 사람이 사는 곳과 가까우면서도 적당히 떨어진 곳이고."
놈들이 인간을 숙주로 삼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습성이었다. 어쨌든 인간을 숙주로 삼아야 하기에 황야나 외딴곳보다는 민가를 기준으로 모여들고 또한 인간이 그들을 사냥할 수단이 없는 것도 아니기에 약간의 거리를 둔다.
"그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건 인간이 움직이기 힘든 곳이라는 거다."
어셔는 흠칫 놀라며 다시 크리칼료프의 상태를 확인했다. 현재 물의 깊이는 어느 때보다 깊어져서 그의 가슴팍 근처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말에 타고 있는 어셔도 발이 물에 닿고 있었기에 발을 들어 올렸다. 어째선지 파시틸라들은 그를 적극적으로 노리고 있었으니까. 이미 그가 주었던 위장크림을 꼼꼼하게 발라둔 상태였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러니까 힐디스비니나 스바딜페리 같은 탈것은 필수다."
"그래서 이 녀석을."
어셔는 자신을 태우고 있는 말을 내려다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말 목에 있는 가방 좀 열어봐라."
"이거요?"
그러고 보면 말의 목에는 따로 메어져 있는 작은 가방이 있었다. 다른 것들은 말의 옆구리나 말이 끌고 올 수 있게끔 작은 뗏목을 띄워 그 위에 실어 두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가 크리칼료프의 말대로 작은 가방에 둔 물건을 꺼냈을 때 어셔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건.
"...이거 제가 입던 유니폼 아니에요?"
비록 무거운 돌멩이 같은 것들을 담아 묶어놓은 모양새였지만 언뜻 보이는 단추들과 장식이 그가 입던 유니폼과 똑같았으니까.
"그렇지. 어차피 못쓸 거 같으니 나우시카에겐 새로 주문하라 하고 들고 왔다."
"윽, 제가 더럽기라도 하다는 거예요?""
"그런 뜻이겠냐? 잘 봐라."
크리칼료프는 그대로 어셔에게서 유니폼을 받아 들고 상태를 확인하고는 그대로 손에 쥐고 물에 닿지 않도록 휘두르기 시작했다. 어셔는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그 모습에서 슬링을 휘두르던 도나르의 모습이 보여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아니나 다를까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대각선으로 날아가는 옷.
"지금이다. 빨리 가자."
"네? 지금이요?"
"언능 따라와. 기회를 놓치면 일이 귀찮아진다."
그가 물길을 휘저으며 나아가기 시작하자 말은 어셔가 재촉할 새도 없이 따라가기 시작했기에 그가 굳이 힘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다만 크리칼료프가 던져버린 유니폼이 신경 쓰여 그것이 날아간 곳을 보고 있으면 무거운 돌을 담은 유니폼은 하늘 높이 치솟아 그들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말에 탄 상태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희미하게 시야를 벗어날 즘에야 수면으로 떨어졌다. 저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뭐, 뭐예요. 저게."
처음에는 유니폼이 떨어진 곳에서 수면이 갑자기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더니 곧 물을 떨쳐낸 것들이 그 실체를 드러냈다. 새하얀 덩어리 같은 것이 뭉쳐져 꾸물거리는 모습이 보인 것이다.
"뭐긴 뭐야. 파시틸라지."
수면이 잠시 부풀어 오른 것처럼 보였던 건 파시틸라들이 한곳으로 빠르게 모여들면서 물이 솟아오른 것이었다.
"혹시나 싶었지만 역시나구만. 꼬마야. 너는 너도 모르는 사이에 놈들의 미약에 오래 닿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격렬하게 달려들 리가 없었다.
"그러면 제가 말이라도 타고 오지 않았다면..."
"뻔하지 지금 저기 있는 게 우리였을 거다."
어셔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괜히 더 끌어올려 말 허리에 붙이고 안장을 꽉 부여잡았다. 크리칼료프가 주었던 위장크림을 꼼꼼히 바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몸 전체에 바를 수는 없었다.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물에 씻겨나가기에 오래 쓸 수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문제였다. 이미 수면 위로 튀어나올 만큼 뭉쳐진 파시틸라들이었지만 아직도 주변의 수면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그들이 힐디스비니를 길들이려 했을 때 보았던 놈들의 숫자와 비교할 수가 없는데도.
"이 근처에 기가노토게투스는 없어요?"
그 커다란 생물이 이 녀석들을 먹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물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여긴 그 녀석들이 올만큼 그리 비옥한 곳은 아니다. 먹이가 정말 부족하면 오긴 해도 무리를 지어서 와야 하는 수준이지."
그 탓에 이렇다 할 방법도 없어서 파시틸라들을 전부 죽이는 것은 힘들다고 한다. 다른 몬스터들의 경우도 비슷할 것이라고. 그들은 파시틸라들이 유니폼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걸음을 서둘렀다. 그러다 크리칼료프의 가슴팍까지 올라오던 물이 다시 허리 아래까지 내려갈 무렵. 주변에는 파르즈의 주변에서 보았던 것들과 비슷한 맹그로브 군집들과 하얀색의 땅으로 이루어진 작은 섬들이 틈틈이 보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후우, 위험한 구간은 넘겼구만 오늘은 일단 저 섬에서 쉬어가야 할 것 같다."
-푸르르륵.
어셔는 그에게 무어라 말하려다 자신의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말의 지친 숨소리에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지친 기색을 참으려 하는 듯 그 소리가 더 작았기에 더욱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은 분명 성기사들의 뒤를 쫓고 있었지만 그들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성기사들은 힐디스비니와 마차를 이용해 물길을 헤쳐나갔겠지만 그들은 말과 함께 직접 걸어가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무언가 한 일이 없는 것 같은데도 날은 기울어 가고 있었다.
그들이 머무르게 된 섬은 하얀 모래로만 이루어진 황량한 곳이다. 섬 주변에 자라있는 갈대숲만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땅이었다.
"너무 조급해 하지는 마라. 저 구간을 안전하게 넘어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니까."
크리칼료프는 말에게 메어두었던 뗏목을 살피더니 작은 화로를 꺼내었다. 주로 부엌에서 쓰는 화로를 작게 줄여놓은 물건이었다. 안에는 오일과 그것을 머금은 밧줄이 보인다. 크리칼료프가 화로와 함께 꺼내든 부싯돌을 딱딱 부딪혀 불씨를 튀기자 화로의 심지에 달라붙어 매캐한 냄새를 풍기며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한쪽으로 뚜껑이 기울어지고 형태가 일그러진 냄비에 주변의 물을 담아 화로에 올렸다.
"그 물은 왜요?"
짠물이라 마시지도 못할 텐데 말이다.
"보면 안다."
그는 일그러진 냄비 위에 똑같이 일그러진, 하지만 일부러 튀어나오게 만든듯한 뚜껑을 덮고 또 다른 냄비를 옆에 두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으니 말이 지친 숨소리를 내며 그의 근처로 다가왔다.
-푸르륵.
말의 목을 쓰다듬으면 떨리는 것이 느껴져 한숨이 나왔다. 자신이 힐디스비니를, 하다못해 스바딜페리리도 길들일 수 있었다면 이 녀석을 이렇게 혹사시킬 일은 없었을 텐데. 그런 그에게 분주하게 준비하던 크리칼료프가 말했다.
"가만히 있을 시간이 있으면 심부름이라도 좀 혀."
"네?"
이제 보니 그는 여러 가지 도구들을 늘어놓고 통발을 메고 있었다. 크리칼료프는 주변에 있던 갈대 하나를 꺾어 어셔에게 던졌는데 모양이 조금 다르다. 다른 갈대와는 달리 푹신하고 부드럽게 생긴 무언가가 위쪽에 붙어있었다.
"갈대 숲 사이를 살피다 보면 그렇게 생긴 야생 버들이 종종 보일 거다. 그거랑 똑같이 생긴 것만 좀 꺾어서 가져와."
"네? 그런 건 왜."
"식사 준비해야지."
"하지만 먹을 건 챙겨온 게 있지 않아요?"
이런 식물을 먹을 수 있는지도 의심스러웠지만 이미 그들이 챙겨왔던 식량들이 있는데 그걸 두고 다른 걸 먹는다는 게 의아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비상식량이다. 황야는 여기보다 먹을 게 없는데 그때 먹을 걸 찾지 못하면 굶어 죽을 거냐?"
어셔는 그의 말을 듣고 그가 던져준 식물과 비슷하게 생긴 것들을 최대한 많이 꺾기 위해 작은 섬을 돌아다녀야 했다. 그나마 체력이 조금이나마 돌아와서 크게 지치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렇게 보이는 대로 그것을 꺾어 화로 가로 다가가자 통발 안에 푸드덕거리는 것을 가득 채워 두고 냄비를 살피는 크리칼료프가 보였다.
"다 꺾어 왔어요."
"어디 보자."
그는 어셔가 꺾어 온 식물들을 살피더니 몇 개를 빼내들어 보여주었다.
"이건 못 먹는 거다."
"네? 왜요?"
딱히 다른 것들과 달라 보이지도 않아 물으니 그는 푹신해 보이는 것 하나를 토막 내어 보였다.
-끼르르르륵!
"윽, 이게 뭐예요?"
비슷해 보이는 식물이라 생각했는데 그가 반 토막 내어 땅에 버리자 기괴한 소리를 내며 애벌레처럼 몸을 꿈틀거리다 녹아버렸다.
"약 3년 전부터 보이기 시작한 신종 몬스터다. 파르즈 근처에는 보이지 않지만 라가도 부근에서 발견되는 걸 보면 그쪽에서 넘어온 거 같다."
주로 이렇게 버들과 같은 모습으로 위장해 있다고 하는데. 힘 자체는 파시틸라보다도 약하기 때문에 사람이 잠들어 있는 때를 노린다고 한다.
"라가도는 어딘데요?"
이전에도 한 번 들었던 것 같지만 어떤 곳인지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웬만해선 근처에 가지도 말라고 하고 싶다만 성지로 가는 길에 약간 걸쳐 있으니 어쩔 수 없구만."
-끼그그극!
크리칼료프는 곧바로 남은 것들을 밟아 죽이며 돌멩이를 들어 어셔가 꺾어온 식물들의 줄기를 다른 돌에 대고 내려찍기 시작했다. 그러자 빈 줄기가 갈라지고 부서지며 가루를 흘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가 말을 잇는다.
"라가도는 옅은 구름 지대가 1년 내내 뒤덮고 있는 곳이다."
"구름 지대라면 아래에서는 못 살지 않아요?"
구름 지대는 근처에 있으면 비옥한 환경을 제공하지만 바로 아래는 사람이 살 수도 없는 곳이지 않았던가?
"틀린 말은 아니다만 거긴 사정이 좀 다르다. 다른 곳과는 다르게 구름층이 얇고 넓게 퍼져 있으니까. 살 수 없는 정도는 아니지. 살만한가는 별개로 치고서라도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무법지대나 다름없는 곳이거든."
어떤 곳인지 알고 싶지 않아도 곧 알게 될 거라는 그의 말이 찝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