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화 〉결단.
그가 녹슨 경첩처럼 돌아가지 않는 목을 어찌어찌 돌려 뒤를 보면 아니나 다를까 지금까지 겨우 잊고 있었던 악몽이 그곳에 있었다.
"너는..."
칙칙한 어둠이 스며든 머리카락, 피처럼 붉은 눈에는 불쾌함이 가득했다. 아니, 그 모습을 잊었을 리가 없었다. 그저 소녀의 달콤함에 정신이 팔려 잠시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벨카를 데리고 있는 한 언젠가 그와 만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 보는 사이 건방져졌군. 이전 같았으면 감히 고개를 들지도 못했을 텐데. 왕족이 되었다고 노예였다는 사실을 잊었나 보지?"
그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고양이는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덜덜 몸이 떨려온다. 옛날과 똑같았다. 옛날에도 그는 제이슨의 앞에 갑자기 나타났다. 소리도 소문도 없이 나타나 그를 지옥으로 밀어 넣었던 악몽.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주드가 고양이의 머리를 붙잡고 가늠하듯 짐짓 즐겁게 중얼거렸다. 덜덜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소녀와 이어진 감각이 주는 황홀경조차 도피처가 되지 못한다. 대체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 찾고 있었을 때였다. 문득 익숙한 냄새를 맡은 건. 그 냄새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그와 같은 동족의 여인이 주드의 뒤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에게서도 주드의 냄새가 났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못마땅한 표정에 가능성을 찾았다.
"너, 너! 당장 이 자를 죽여!"
적어도 그는 지금 캐트시의 왕족이다. 그녀가 파르즈의 주민이기 이전에 캐트시라면 그의 명령을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자 여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냥?"
그를 싸늘하게 노려보며 코웃음쳤다. 지금까지 그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라도 따르던 캐트시들의 모습을 보아왔던 고양이에게 그건 뜻밖의 일이었다.
"푸하하하하하! 우습기도 하지. 설마 동족이라고 헤서 무조건 너를 구해줄 것 같았나?"
심지어 폭소하며 그를 비웃는 주드의 모습에 그는 다시 한번 말했다.
"뭐해! 빨리 날 구하라고!"
"냐아앙. 이런 걸 왕족이라고 떠받들고 있었다니 동족들도 참 불쌍하다냐."
그럼에도 그녀는 제이슨의 말을 무시하고 주드의 뒤에 기대어 교태를 부린다.
"그래서 시타. 날 죽일 건가?"
"난 주드의 암컷이다냐.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거냥?"
고양이가 얼이 빠져 멍하니 있으니 주드는 곧 웃음을 지웠다.
"당장 살려달라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잔머리를 굴리다니 남의 암컷을 멋대로 가져갔으면 사과부터 했어야지."
"꺼윽!?"
주드가 그를 주먹으로 쳐날렸다. 마법사라 해도 그는 인간일 텐데 대체 어디서 나오는 힘인지 그의 주먹에 맞은 가슴과 날아가면서 벽에 부딪힌 등이 너무 아팠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 컥컥거리고 있을 때.
"하, 참 험하게 써댔군. 얼굴도 엉망이고 다리도 한 쪽을 부러트린 데다 쓸모없는 씨앗만 가득 뿌려뒀어."
그의 목소리에 고양이는 뒤늦게 자신에게서 벨카가 떨어져 나간 것을 깨달았다. 계속 그의 좆을 보관하고 있었던 보지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를 포근하게 감싸는 부드러운 살갗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게 달콤한 모유를 먹여주던 말캉한 가슴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때문에 고개를 들자 벨카를 끌어안은 주드가 보였다. 고양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놔."
"뭐라고 하는 거지?"
"내놓으라고! 그건 내 암컷이야! 내 암컷이라고! 내 거라고!"
뒤늦게 아차 했지만 그에게서 새어 나오는 건 씩씩거리는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누가 들으면 원래 네 것이었다고 생각하겠군. 네깟 게 손만 잡았더라도 과분한 줄도 모르고."
주드가 어이없다는 듯 말하며 손짓하는 모습에 고양이는 굳어버렸다. 그야 그건 그가 마법을 사용하려는 행동이었니까.
"캬아아악!!"
그는 그가 마법을 사용하기 전에 먼저 달려들어 죽일 생각이었다. 아무리 빈약한 제이슨의 몸이라도 수인은 수인이다. 무방비한 인간 정도는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 그보다 먼저 등을 찍는 충격이 없었다면.
"끄윽!"
고양이는 주드에게 달려드는 자신의 등을 발로 찍어 제압한 것이 자신의 동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타였다.
"놔! 놔라고! 넌 왜 명령을 듣지 않는데 왜!"
그녀에게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이미 주드의 손은 완성된 문자를 보였다. 때문에 그가 끝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였다. 낫모양의 문자가 빛을 발하는 것과 동시에 나타난 크고 작은 물방울들이 소녀의 몸을 부드럽게 타고 다니며 얼굴에 묻은 죽까지 닦아내고.
"읏."
이내 균열로 스며들어간 물방울에 소녀가 신음을 흘리는 것도 잠시. 그녀의 균열 사이로 진득한 백탁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고양이의 씨앗이었다. 그가 벨카를 임신시키기 위해 며칠간 공을 들여 그녀의 자궁에 계속 심어 두었던 정액들이 빠져나와 바닥을 더럽힌다. 그가 그 광경을 허망하게 보고 있자 주드가 벨카를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드러난 것에 고양이는 그가 무슨 짓을 할지 깨달았다.
"애초에 벨카의 자리는 여기였다고."
뻣뻣하게 솟아올라 끄트머리로 벨카의 보지를 겨냥한 커다란 자지를 보면 모를 수가 없었다. 고양이에게 잘 보이도록 그녀의 두 다리를 벌려 그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게 만들고서. 주드의 좆끝이 소녀의 꽃잎을 비집고 벌리기 시작했다.
"캬아악!!!"
"짐승처럼 짓지 말라냐. 수치스럽지도 않냥."
그가 다시 한번 발버둥 쳐보지만 꿈쩍도 할 수 없었다. 그를 발로 찍어 누른 시타의 차가운 목소리만이 돌아왔다.
"짐승이면 짐승답게 기어 다녔어야지."
주드는 그런 고양이를 비웃으며 벨카에게 좆을 꽂아 넣었다.
"우읏."
고양이는 소녀의 몸이 그의 물건을 거절하기를 바랐으나 그건 헛된 바람이었다. 벨카는 그로 인해 정신을 잃은 상태였고 고작 부드러운 살로 이루어진 꽃잎은 그곳의 힘만으로 강제로 비집고 들어오는 물건을 거부할 수가 없었으니까. 하물며 이미 그 안쪽으로 침입했던 것이라면 더더욱.
"흐읏, 하아."
또한 쾌락에 민감해지도록 한참을 미약에 노출되었던 소녀의 몸은 본인의 의지가 어떻건 자신의 안쪽으로 파고들어온 익숙한 존재감에 적응하고 쫍쫍 받아들였다.
"하응."
소녀의 하얀 가슴이 그의 허리 짓에 몽실 거리며 흔들렸다. 벨카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지독하리만치 음란하고 야했다. 그들의 욕망 때문에 소녀의 몸은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고양이는 그 음란함을 자신의 아래에서 보이길 바랐다. 주드에게 매달린 상태가 아니라. 결국 그의 물건을 받아들이며 신음을 흘리는 벨카의 모습에 고양이는 끝내 입을 열었다.
"너는 대체 뭐야."
"큭큭, 글쎄 이제 와서 그런 걸 묻는 의미가 있나?"
"뭐냐고오!! 대체 뭐길래 갑자기 나타나서 나를 괴롭혀! 왜!!?"
주드란 마법사는 고양이에게 있어서 악몽이었고 하나의 재앙이었다. 그야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제이슨을 지옥으로 밀어 넣은 자였으며. 지금도 고양이가 원하는 소녀를 앗아가는 자였으니까. 이제는 오래된 과거 속에서 제이슨은 웃고 있었다. 이미 산산조각 나 채 떠오르지도 않는 기억이지만 그 시절만은 제이슨이 행복했으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조각나버린 기억 속에서도 선명히 기억나는 조각이 하나 있었다. 그건 가장 강렬하고 선명했던 마지막 조각이었다.
그날 제이슨은 어머니와 함께 자기 위해 그녀의 방을 찾아갔었다. 그렇기에 자세한 건 몰라도 일단은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방에서 제이슨은 보아선 안 될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흐윽, 제발, 이러지 마세요."
그건 그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이 칠흑에게 짓눌리는 광경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누르는 칠흑에게 저항해 보지만 그 저항은 의미 없이 흩어지고 칠흑은 그런 그녀의 위에서 몸을 흔들었다. 제이슨은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어머니가 무슨 짓을 당하는지 몰랐지만 고양이는 알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암컷으로서 범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양이는 몇 번이고 말하지 말라 소리쳤지만 결국 제이슨의 입을 막지 못했다.
"엄마?"
칠흑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독한 어둠이 그를 응시하고 손을 뻗었다. 칠흑이 손짓하자 빛무리가 그를 따른다. 그 기이한 모습에 제이슨은 시선을 빼앗겨 고양이가 외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안 돼...!"
누군가의 비명을 끝으로 제이슨은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간밤의 일을 그저 질 나쁜 악몽이었노라 여겼지만 느껴지는 건 차가운 쇠의 느낌과 땅이 흔들리는 감각이었다. 이윽고 제이슨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차가운 쇠창살과.
"드디어 깨어났군."
칠흑이 그를 들여다보며 말하는 목소리였다. 제이슨은 그제야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풀어달라고 빌었다. 어머니는 어디에 있냐고 자신을 대체 어디로 끌고 가는 것이냐며 소리쳤다.
"시끄럽군."
"케으윽!"
칠흑은 곧장 소리치는 제이슨을 잡아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래도 제이슨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곧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신을 찾으러 올 것이라며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니 자신을 풀어달라 말했다.
"그래? 너희 캐트시들은 구름 지대도 쉽게 건널 만큼 대단한 종족인가 보지?"
그에 제이슨의 머리는 새하얘졌다. 처음에는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깨닫고 있었다. 주변에 보이는 건물들은 모두 낯설었고 코에 닿는 냄새와 향까지 그 어느 것 하나 파르즈와는 다른 곳이라는 걸 말하고 있었으니까. 결정적으로 저 멀리 보였던 구름 지대의 존재가 그것을 증명했다. 저런 건 파르즈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이곳에서 알아서 살아보라고."
그리고 칠흑은 그대로 떠나갔다. 아무도 없는 골목에 그만을 내버려 두고 철창이 부딪히는 소리만을 남기며. 제이슨은 멍하니 골목에 서있었다.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인간들이 찾아왔다.
"이 녀석 맞지?"
"맞네! 그 양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땐 혹시나 했는데 캐트시라니!"
제이슨은 자신의 종족을 아는 그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저희를 아세요?"
"그래, 알다마다!"
"그럼 엄마랑 아빠한테 데려다주실 수 있어요?"
"물론! 약간 불편하겠지만 조금만 참으면 된다."
제이슨은 그 말에 순순히 그들이 씌우는 자루에 들어갔다. 고양이는 그것을 보며 어리석다 비웃었지만 제이슨은 알지 못했다. 그것이 지옥의 시작이었음을.
"그 양반한테 감사해야겠는데! 이런 돈벌이를 주다니!"
"빨리 팔아버리자고 캐트시인데다가 꽤 곱상하니 취향이 그런 귀족에게 팔면 비싸게 사줄 거야."
그 말이 자신을 뜻하는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 제이슨은 끌려갔다. 잘해주는 자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와 같거나 비슷한 자들에게 질렸다 싶으면 버림받아 다시 팔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끔찍한 주인을 만났다. 그는 고문을 즐겼고 제이슨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웠다. 몸 안쪽으로 다른 무언가가 침입하는 감각이 불쾌하고 괴로운 것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제이슨은 저주했다. 모든 게 끔찍하고 괴로워서 결국 자신을 이렇게 만든 모든 이들에게 죽어버리라 저주하며 자신을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의 주인이 죽었다. 온몸이 새까매지는 원인불명의 병에 죽어버렸다. 다음 주인도 또 다음 주인도 그랬기에 고양이는 자신의 힘임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자신에게 못되게 굴거나 괴롭히는 녀석들은 모두 죽어 사라졌고 그렇게 고양이는 팔리며 살아왔다. 이제서야 원래 자리로 돌아왔는데. 이제서야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는데. 또다시 그가 찾아와 모든 걸 앗아가려 한다.
"왜냐고?"
칠흑이 미소 지었다.
"재미있으니까."
"후그윽."
커다란 좆을 받아 문 벨카의 균열에서 고양이의 것이 아닌 주드의 씨앗이 넘쳐흘렀다. 소녀의 몸이 파르르 떨리며 쾌락을 받아들이고 달뜬 숨을 흘린다. 벨카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했다.
"후우, 오랜만에 좋았어. 벨카. 이제부턴 바람피우지 말고 이걸 잘 기억해 둬."
"헤욱."
그는 벨카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고는 고양이에게 다가왔다.
"자, 이제 남의 암컷에게 손을 대고 건방지게 씨앗을 뿌린 도둑고양이에겐 벌을 줘야겠지?"
칠흑이 그를 향해 손을 뻗어온다. 그것이 고양이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정말 아무도 없구먼."
크리칼료프는 텅 빈 태자의 방을 보며. 혹시 왕과 함께 성지의 사절을 맞이하기라도 했는지 의문이었지만 그랬으면 벨카라도 남아있었어야 했다. 또한 그가 받은 정보에는 태자가 혼자서 그녀를 가지고 논다는 정보가 있었기에 더욱 의심스러웠지만 사실 그는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 것을 발견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야 태자의 방 한가운데 이곳과는 인연이 없어야 할. 주방에나 있을 법한 커다란 스튜용 냄비가 떡하니 놓여 있었으니까. 그는 잠시 고민하다 의심 가는 것이 그것밖에 없었기에 뚜껑을 열었다.
"쓰벌."
크리칼료프는 나지막이 중얼거리고 뚜껑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