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화 〉결단.
-쿠르륵.
짐승의 끓는 듯한 울음소리, 빛을 반사하는 비늘과 드문드문 돋아난 날카로운 검은 깃털들, 커다란 덩치가 조금만 움직이는 것만으로 요동치며 꿈틀대는 각진 근육이 강렬하게 압박해온다. 이미 몇 번이고 마주한 광경이었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 광경에 침을 삼키며 빈틈을 찾아보았으나 사람도 아닌 다른 생물에게서 그런 걸 찾는다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려운 것이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녀석을 길들일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생각하며 손에 쥔 검을 꾹 쥐고 어떻게든 힐디스비니의 움직임을 읽어보려고 했지만.
"악!"
녀석이 움직였다 싶으면 가슴 쪽에서 퍽 하는 둔탁한 느낌과 함께 나가떨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물속에 빠져버린 어셔는 급하게 일어났지만 이미 입과 코에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짠맛과 함께 비린내가 파고들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먹었던 것들이 그대로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욱, 토할 것 같아요."
"짠물을 너무 마셨나 보구만. 좀 쉬어라."
"하지만."
"쉬라면 쉬어."
결국 어셔는 크리칼료프의 말에 겨우 땅 위로 올라와 몸을 눕혔다. 마음은 아직도 부족하다고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도 머리는 어지럽고 속은 매스꺼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저 땅에 드러누워 멍하니 있으면 그의 마음도 모르고 화창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쏟아지는 햇볕조차 그를 재촉하듯 따갑게 채찍질하는 듯하다.
"아저씨."
"와?"
"아저씨도 성기사라고 했었죠?"
"그랬었지."
벌써 이틀째인데 발전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였다.
"아저씨는 마법을 어떻게 써요?"
"왜 요령이라도 알고 싶냐?"
"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았으니까. 적어도 녀석의 행동을 읽어보려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마주하는 맑은 하늘은 조급함만 늘린다.
"으음, 그건 좀 힘들겠구만."
"왜요?"
"마법사들의 주문은 단순히 코드를 읊거나 새기는 것이 전부지만 성기사의 경우 좀 더 복잡하고 추상적이라서 말이다."
그러면서 어셔를 치기라도 하는지 다리 쪽에서 툭툭 건드리는 느낌이 났다.
"예를 들어서요?"
"사람마다 개인 차도 있지만 네가 원하는 이미지를 강렬하게 떠올리면서 간절하게 바라는 수밖에 없을 거다."
그의 말을 듣고 마법을 떠올려 보지만 무언가 떠오를 것 같으면서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원하는 이미지가 너무 많이 떠올라서 집중이 되질 않았다. 마법이라는 건 만능이라는 생각이 강했으니까.
"그러면 혹시 성배의 물을 마시고도 마법을 못쓰는 경우도 있어요?"
"없지는 않지. 그녀의 취향인지 아니면 권한을 우회해서 받은 영향인지 몰라도 어지간히 강렬하고 정확한 이미지가 없으면 사용하지 못하니까."
강렬하고 정확한 이미지, 라 그의 말을 들어봐도 어셔는 좀처럼 마법에 대한 실마리를 붙잡을 수 없었다. 노력은 해왔지만 그토록 강렬한 생각을 해본 적을 없던 것 같으니까. 초조함을 어떻게든 가라앉히려 한 것인데 죽음을 각오했었는데도 마법을 쓰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에 오히려 더욱 커져버렸다.
"아저씨의 마법은 어떤데요?"
"보고 싶냐?"
"네."
그의 최후의 수단이란 게 궁금하기도 했고 그가 사용하는 모습을 본다면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거 유감이구먼."
"왜요?"
"못 쓰거덩."
어셔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성기사라면서요."
"그랬었지."
"그럼 쓸 수 있지 않아요?"
"지금은 못 써."
그러면서도 그를 툭툭 치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데요?"
"말했잖냐. 어지간히 강렬한 이미지가 없으면 못 쓴다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의문이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괜히 어색한 마음을 날리고자 아까부터 거슬리던 것을 말했다.
"그런데 대체 언제까지 제 다리를 치실 거예요?"
대체 뭘 하는지 계속 그의 다리를 건드리는 것이었다. 그냥 상태라도 보는 건가 싶었는데 자꾸 치는 것이 뭔가 싶었다.
"뭔 소리여? 내가 왜 니 다리를 쳐?"
그의 말에 시치미 떼지 말라고 말하려 했지만 문득 깨달았다. 지치고 피곤한 몸을 쉬고자 아무 생각 없이 누워 있었지만 크리칼료프의 목소리는 그의 머리 위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다리를 계속 치는 느낌은 아래에 있었다.
"그럼 누가 제 다리를..."
어셔가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든 순간 마주친 건 자신의 다리를 물어뜯으려는 것처럼 입을 쩍 벌린 날카로운 파충류의 눈동자였다. 그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굳어있자 크리칼료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 샌드 크로커다일이구먼 이렇게 대놓고 나와 있는 건 드문데."
크리칼료프의 목소리를 찾아 돌아보니 그는 낚시를 하며 어셔를 보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어셔는 상황 파악을 하자마자 녀석의 입에서 발을 빼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저, 저것도 몬스터 아니에요?! 죽여야 되는 거 아니에요!?"
하마터면 저도 모르게 잡아먹힐 뻔했다는 생각에 덜덜 떨면서 물으니 그가 답했다.
"몬스터는 무슨. 단순한 악어다."
그의 말을 들은 어셔는 자신을 잡아먹을 뻔했던 것을 바라보았다. 거친 돌기가 뾰족뾰족하게 나있는 비늘 가죽과 위로 툭 튀어나온 두 개의 눈과 코, 위협적인 이빨을 드러낸 녀석의 크기는 기껏해야 어셔의 키보다 작아 보였다. 악어는 어셔를 잡아먹지 못한 것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다 네 발로 느릿느릿하게 물이 비추는 하늘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모습이 어떤 의미에서는 더 무섭다.
"보통은 트리와비드 같은 것들이나 다른 동물의 시체나 잡아먹는 녀석인데. 네가 가만히 있으니 시체로 보였나 벼"
"히, 힐디스비니는요? 저런 게 오면 경고하지 않아요?"
"이 녀석들 눈에 저런 녀석이 포식자로 보이긴 하겠냐?"
그의 말을 듣고 힐디스비니들이 있는 곳을 보니 바로 근처에 있음에도 평온하게 풀을 뜯는 모습들이 보였다. 아무리 작다고 해도 가만히 있는 사람도 잡아먹으려는 녀석을 포식자 취급도 안 한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여기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사는 거예요?"
"너 나중에 라가도 같은 데 가면 아주 기절하겄다. 여기도 살만한 편이여."
"여기가 살만하다고요?"
이제 저 하늘 아래에 무엇이 숨어있는지 알 수가 없어 발을 담그는 것도 무서워질 지경이었다. 대체 어디가 살기 좋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됐고 이제 슬슬 제레미아 집으로 가자."
"훈련은요?"
"어차피 지금 더 해봤자 힐디스비니한테 더 얻어터지는 것밖에 안 될 거다. 그리고 슬슬 정보가 도착했을 테니까."
어셔는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또 파시틸라 같은 게 쫓아오면 어떻게 해요?"
저 맑은 하늘을 비추는 수면 아래에 어떤 것들이 득실거리는 지도 모르는데 다시 저곳에 발을 담그고 걸어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마침 잘 말했다."
"왜요?"
"이미 주변에 쫙 깔렸으니까. 튀자고."
"...여기 진짜 싫어요."
어셔는 다시 그에게 들쳐진 채 가야 했다. 하지만 곧 크리칼료프가 걷는 방향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저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어제 왔던 길이랑 다른 거 같은데."
"웬만하면 너를 데려다주고 갈 생각이었다만 아무래도 서둘러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보면 알 게 될 거다."
그러면서 그는 천천히 맹그로브 숲의 어딘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어제도 이상하다 싶었는데. 파시틸라들의 개체 수가 너무 많이 늘어나서 그려."
어두운 나무 그늘 아래로 조각조각 새어들어오는 빛이 내리비추는 물길을 걸어나가며 크리칼료프가 말했다. 그러나 어셔는 그의 말이 의아했다.
"몬스터는 원래 그런 게 아니에요?"
몬스터란 원래 번식력이 뛰어나서 감당하기 힘든 녀석들이었으니까.
"그렇기야 하다만 몬스터가 어떻게 번식하는 녀석이냐?"
"그야."
어셔는 그제야 깨달았다. 몬스터가 아무리 번식력이 좋다고 해도 숙주가 있어야만 번식이 가능하다는 건 당연한 상식이다. 몬스터들은 완전히 박멸했다 싶다가도 어느새 몰래 숙주를 만들어 순식간에 숫자를 불리기 때문에 인간의 천적이자 주적이나 다름없었다.
"파시틸라는 번식력이 뛰어난 몬스터들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녀석이다. 생장도 남달라서 생후 3일이면 성적으로 성숙해지고 5일이면 완전히 성숙하지."
몬스터라지만 파시틸라라는 게 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할 줄은 몰랐다. 그러나 다음으로 이어지는 그의 말이 더 문제였다.
"그래서 보통 사람이 볼 수 있는 건 완전히 성숙된 파시틸라뿐이다. 그런데 오늘 낚시에 어린 파시틸라가 걸렸다."
어린 파시틸라는 겉에 몸을 감싸는 하얀 표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는 건 즉.
"이 근처에 놈들의 둥지가 있다는 거다."
그것도 숙주가 있는 둥지가. 어셔는 그 말에 몸을 떨었다.
"그런데 그런 곳에 저희끼리만 가도 되는 거예요?"
그런 곳이라면 분명 많은 녀석들이 자신들의 둥지를 지키고 있을 것이라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그런 둥지를 없애기 위해서 많은 기사들이 동원된다는 것도 란투아에서 알게 된 상식이었다. 그런데 둘이서 그런 곳에 쳐들어가도 된단 말인가? 심지어 어셔는 자신이 도움은커녕 짐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가끔 사냥꾼들이 이런 일을 하니까. 애초에 파시틸라도 결함이 많은 녀석이라 소수 인원으로 둥지를 처리하는 건 꽤 흔한 일이다."
그렇게 그들은 맹그로브 숲을 가로질렀다. 이전보다 어둡고 습한 공간은 이곳이 어제 보았던 기가노토게투스의 아래가 아니라 진짜로 맹그로브 나무들이 켜켜이 자라난 깊은 숲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그러니 기사 수행으로 치고 봐두는 게 좋을 거다."
그 사이를 걷다 보면 맹그로브 나무의 뿌리들은 점점 더 촘촘하게 자라나 뒤얽혀 걸어갈 수 있는 물길을 좁혀오고 조각난 햇볕이 새어들어오는 빈도까지 서서히 줄어든다. 나무들의 키마저 높아져 그림자 속에 들어왔을 무렵 크리칼료프는 이미 나무의 뿌리와 잔해로 이루어진 땅을 밟고 있었다.
"이쯤에서 미리 준비하는 게 좋겠다."
크리칼료프는 어셔를 잠시 내려놓으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자, 이걸 네 붕대 표면에 적당히 스며들 정도로 펴 발라라."
"이게 뭔데요?"
그의 손바닥만큼이나 큰 통에 크림 형태의 무언가가 들어차 있었다.
"산호를 빻아 만든 위장크림이다. 다른 몬스터에겐 의미가 없지만 적어도 파시틸라에겐 유용해."
"이런 게 있었으면 진작에 사용하면 되지 않았어요?"
그러면 그들이 괜히 파시틸라에게 쫓길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그거 비싸 인마. 그리고 원래는 그렇게 안 달려든다고."
그는 그러면서 자신의 다리 부분에 펴 바르기 시작했다.
"일단 효과는 확실하다만 너는 혹시 모르는 일이니 이런 곳이 있으면 그대로 서서 물에 닿지 마라. 잘못하면 순식간에 잡아먹힌다."
"윽, 네."
어셔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마음에 몸을 떨며 그를 따라서 받은 위장크림을 붕대 위에 펴 발랐다. 아직까지 젖어있는 붕대에도 그가 건네준 위장크림은 잘 스며들어 표면을 코팅했다.
"그런데 왜 다리에만 바르는 거예요?"
"파시틸라는 물속에서 활동하는 녀석들이니 당연히 물속에 퍼지는 냄새에 민감하니까. 그리고 너는 그냥 전신에 펴 발라. 깊은 곳에 빠지면 얄짤없어."
어찌어찌 위장크림을 바르고 그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무의 뿌리와 잔해로 이루어진 땅은 축축하고 울퉁불퉁하며 잘 빠지기도 해서 걷기 불편했지만 앞서가는 크리칼료프 덕분에 불편하지는 않았다. 크리칼료프가 더 무겁기 때문인지 그가 걸어가는 곳의 나무뿌리와 땅은 부러지는 동시에 단단하게 다져져서 그곳을 따라 걸으면 편하게 걸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앞서가던 그가 손으로 어셔를 막아선 건.
"역시 둥지가 있었나."
"도착한 거예요?"
"볼 거면 꽤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어셔는 그의 말에 꿀꺽 침을 삼키면서도 슬쩍 그가 발견한 둥지를 보기 위해 나아갔다.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기사가 되어야만 한다면 언젠가 볼 광경이라 생각했기에.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마주한 광경은 생각보다 더 끔찍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맹그로브 나무들의 표면을 뒤덮은, 생물의 기관처럼 꿈틀거리는 선홍색의 점막 같은 육벽이었으며.
"흣, 아아...!"
"후읏, 앙!"
그 육벽에 사로잡힌 여인들이 야릇한 신음을 흘리며 아찔한 모습으로 중요한 곳들을 보이고 다리를 벌린 채 이형의 생물들에게 몸을 내어주는 지독히도 상스럽고 모욕적인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