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9화 〉한걸음. (199/220)



〈 199화 〉한걸음.

골렘이란 종종 유적에서 발견되곤 하는 사람과 닮은 마법생명체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마치 사람과도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사람이 아니었다. 부드러운 가죽 대신 검이나 갑옷을 만드는데 쓸법한 철과 같은 것으로 이루어진 피부와 피와 살이 아닌 정체를 알  없는 단단한 물질로 이루어진 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몬스터만큼이나 이질적인 존재들.

"역시 그렇게 보이나."

어셔는 멍하니 그의 모습을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웬만한 몬스터 이상으로 위험한 존재들이었으니까. 몬스터들이 압도적인 물량과 번식력으로 사람들을 위협한다면 골렘은 지금의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는 마법을 이용한 압도적인 화력으로 위협했다.

"말해두지만 골렘은 아니다. 이렇게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니는 골렘 들어봤냐?"
"그건, 아니지만요."

그러나 골렘은 몬스터들과는 달리 유적에 발을 들이지 않으면 움직이거나 공격하는 일 없이 조용히  자리를 지킨다. 그렇기에 골렘이 지키는 유적에는 그 누구도 발을 들이지 않는다. 건드리지만 않으면 어느 누구와 대화하지도 않고 먹지도 않은  수백 년이 지나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니까. 때문에 사람들은 골렘이 고대인들이 자신들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마법으로 만든 것이리라고 막연히 추측했다. 적어도 크리칼료프처럼 말을 한다거나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면 가슴의 그건 어떻게 설명하실 건데요?"

하지만 어셔는 그럼에도 그가 골렘이 아니라는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키야, 예리하구먼. 보통은 봐도 장식품이라 생각하는데 말이지."

크리칼료프가 제 가슴팍의 붉은 보옥을 매만진다. 왜냐하면 그의 가슴 정 중앙에 갑옷의 장식품처럼 자리한 붉은 보옥은 분명 골렘의 심장이었으니까.

"마법에 대한 걸 찾다 보면 골렘에 대한 것도 가끔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요."

골렘이 마법으로 인해 탄생했다 전해지는 인공생명체인 만큼 어셔는 그 특징에 대해 달달 외워두었던 것이다. 그림으로 그려지는 골렘의 형태는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적인 특징이 한 가지 있었는데 바로 그것이 가슴의 정중앙에 항상 그려져 있던 붉은 보옥이었다.

"그래서 이런 나를 스승으로 삼게 되더라도 꼬마 아가씨를 도와달라고 할 셈이냐?"

크리칼료프가 대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기에 제자가 되어라 말하는 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네."

어셔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가 골렘이건 아니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벨카를 구하고 싶을 뿐이었다.

"허참. 너도 상당한 별종이구만. 따라와라 준비해야 될게 많아."
"네!"

어셔가 그를 따라가기 위해 일어섰을 때였다. 문득 크리칼료프가 벗어버린 낡은 천이 바닥을 나뒹구는 것이 보인 건.

"아저씨, 이건."
"굳이 안 가져가도 된다. 이제 그건 필요 없을 것 같거든."

어셔는 그것을 주워들려고 했지만 그는 필요 없다며 그들의 근처에 있던 움집으로 걸어갔다.

"제레미아, 일어나 있냐?"
"크리칼료프냐? 이번엔 무슨 일로..."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나온 제레미아는 크리칼료프의 모습을 보고 말을 멈추었다. 그리곤 뒤에 있던 어셔를 보더니.

"결국 끼어들기로 한 건가?"
"그래, 준비해두었던 물건은 아직 있지?"
"...들어와라."

그들의 대화에 어셔가 끼어들지 못하고 따라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으니 크리칼료프가 그를 부른다.

"빨리 들어와 인마. 기껏 도와준다는데 네가  오면 어쩌자는 거냐?
"앗, 네!"

어셔가 그를 따라 움집 안으로 들어가니 이것저것 꺼내들고 있는 제레미아와 크리칼료프가 보였다. 대체 뭔가 싶어서 살펴보면 곡선으로 휘어진 철판들과 그 사이를 잇는 클립과 가죽, 작은 사슬들이 섞여있다. 하나하나는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지만 모아두니 그에게도 익숙한 조합이다.

"갑옷?"

그건 갑옷의 조각들 같았다. 그것도 갑옷의 일부를 떼어낸 것처럼 제각각 떨어진 불완전한 파편 같아서 모두 모아 놓아도 제대로 된 갑옷이 될 것 같지는 않았는데.

"지금부터 나를  도와주어야겠다. 꼬마야."

크리칼료프가 그중에서 십자 모양이 새겨진 철판 하나를 자신의 가슴팍에 가져다 대자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보옥을 가리는 것이 보였다. 어셔가 그 모습에 이것들이 그에게 맞춰 제작된 것들이라는 걸 깨닫고 하나를 주워들어 그의 몸에 맞는 부분을 찾아 끼워 맞추면 크리칼료프가 마무리로 한 번 더 점검하기를 얼마간.

"이제  된  같구만."

그는 마지막으로 얼굴을 가리는 철제 마스크를 끼웠다. 조금 덕지덕지 붙여놓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두터운 철의 아래로 보이던 검은 몸체와 붉은 보옥, 노란빛을 발하던 눈을 각각 가죽과 사슬, 철갑으로 가리고 나니 영락없는 기사다.  모습에 어셔는 뒤늦게 자신이 한 일이 무슨 의미였는지 깨달았다.

"꼬마야. 너는 앞으로 좋든 싫든 기사로서 살아야겠구나."
"기사, 였어요?"
"정확히는 성기사였지."
"성기사? 잠시만요. 성기사라면 분명."

성기사, 그건 분명 신을 섬기며 신을 대변하는 성지의 기사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아저씨도 하피였어요?"

어셔는 그에게 날개가 있는지 다시 한번 보았지만 그가 갑옷을 입는 것을 도와주었을 때에도 그에게 날개가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하피라면 나우시카처럼 날개가 있어야 했을 텐데.

"내가 어딜 봐서 하피여?"
"하지만 성기사라는 건 결국 마왕을 따르는 기사들이잖아요."

그래, 성기사는 말이 좋아 신을 대변하는 자들이지 사실상 성지를 지배하는 마왕을 따르는 하피들의 정예들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신성한 땅을 지키고 신의 뜻을 전파한다는 이유로 성지를 침략하는 이들을 몰살하고 다른 나라에 성당을 지어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들의 명성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이름이 높았으니까.

"조금 다르지. 성기사라는 건 성지의 기사나 마왕을 따르는 기사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럼 대체 뭔데요?"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성배에 담긴 물을 마시고 시험을 통과한 이들을 성기사라고 부르는 거다."
"성배?"

성배라는 건 처음으로 듣는 말이었다.

"처음 듣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닐 거다. 이건 성지 내부에서도 아는 사람만 아는 극비였으니까."

그리고 그는 컵에 물을 따르고는 잠시 마스크를 떼어내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너도 성기사들이 신기한 힘을 사용해 싸운다는 것쯤은 들어봤겠지?"

그건 성기사에 대해 안다면 모르는  이상했다. 성지의 성기사들이 파시페니아보다 적은 숫자로 드래곤들에게 대항해 맞설  있는 것도 다른 나라의 침략을 막아내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성기사들이 신에게 부여받았다는 마법 같은 힘 때문이었으니까. 진짜 마법사들의 힘에 비하면 미미한 편이라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가진 힘은 진짜였다. 하물며 그들이 따르는 마왕 바르가제트의 힘도 신에게 부여받은 것이라고 하니 누가 그들에게 무어라  수 있었겠는가?

"사실 그거 마법이다."
"네?"

어셔는 잠시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자, 잠깐만요. 마법이라고요?"
"그래."
"말도 안 돼요!"

그야 마법이라는  마녀와 마법사들의 전유물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성기사들의 힘은 마법사에 비하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약하고 힘을 다루는 방식도 달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이 정말로 신에게 힘을 부여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너는 마법이 뭐라고 생각하냐?"
"그야 뭐든지 할 수 있는 힘이잖아요."

손짓  번으로 물과 불을 만들고 사람을 조종하며, 땅을 움직이는 꿈만 같은 힘. 때문에 어셔는 마법을 갈망했다. 마법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벨카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정작  마법은 그녀에게 고통만을 안겨다 주었다.

"그럼 조금 다르게 물어보마. 너는 마법사가 어떻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냐?"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마법사와 평범한 인간의 차이를 알아내고자 계속 연구해 왔던 마도학자들조차 수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알아내지 못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그가 대체 어떻게 알고 말하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도 마법 책은   읽어봤지?"
"그건 왜요?"

아무리 마법을 쓰고 싶어 읽고 또 읽어보아도 의미 따위 없는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에 대한 건 왜 묻는지 의아했다.

"그 책에 쓰여있는 문자가 뭘 의미하는 건지 알고 있냐?"
"룬이잖아요."

그리는 모양마다 저마다 다른 의미를 갖는 독특한 문자들. 마법사가 아닌 사람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무가치한 것들.

"그렇지. 그리고 그건 일종의 코드다."
"코드... 라고요?"
"그래, 일정한 패턴을 그리면  코드에 대응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거지."
"하지만 그건 마법사가 아니라면."
"그리고 마법사는 그 코드를 사용할 수 있는 정식적인 권한을 가진 녀석들을 말하는 거다."

어셔는 그의 말을 듣고 놀라고 말았다. 그건 그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던 말이었으니까.

"어이, 그건 금기가."
"걱정 마. 여기서 다 같이 죽을 생각은 없으니까. 아슬아슬하게 금기는 아니다."

제레미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끼어들었지만 어셔는 다른 것이 신경 쓰였다.

"그 권한은 어떻게 얻는데요?"
"아, 그건 금기다."

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수가 없었다. 그냥 불리하면 금기라 말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으니까.

"그럼 성기사는 대체 어떻게 마법을 쓰는 건데요?"

마법사처럼 권한을 가진 것도 아닐 텐데.

"이미 말했잖냐?"
"네?"
"성기사는 코드에 대한 권한을 일부 우회해서 편법으로 허락받은 자들이다. 그러니 그 방식도 다르고 마법사에 비하면 다룰 수 있는 힘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지."

그의 말에 어셔는 생각했다. 마법사는 코드에 대한 정식적인 권한을 가진 존재였고 성기사는 편법으로 코드에 대한 권한을 받았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는 성기사라고 했으니.

"성배?"
"정답이다. 명색에 내 제자인데 너도 성기사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

어셔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야 그건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마법을 미약하게나마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그것만 있다면 벨카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바로  수 있었으니까.

"성기사가 되려면 성배에 있는 물을 마셔야 한다고 했죠?"
"그래."
"그거 극비라면서요."
"그렇지?"

그렇다는 건 성배는 수많은 마도구들을 보존하고 있는 성지에서도 귀중히 여기는 물건이 아닌가?

"그럼 성기사는 꿈도 못 꾸는  아니에요."

그런 귀물이라면 마왕 바르가제트와 하피들이 손도 대지 못하게 보관하고 있을 텐데 그런 것을 대체 어떻게 구하고 또 어떻게 성기사가 된단 말인가?

"꿈도 못 꾸기는 여기 있잖냐?"
"그게 무슨 소리..."

그때 어셔는 뒤늦게 크리칼료프가 들고 있는 컵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가 물을 따라 마시는  보고 그냥 컵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냥 컵치고는 너무 화려했다. 언뜻 보면 철로 된 것 같지만 철이라 보기엔 빛을 반사하는 모습과 희미하지만 정교하게 음각된 화려한 무늬들은  봐도 예사로운 물건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혹시 그게 성배에요?"
"엉."
"...그게 왜 여기 있는데요?"
"옛날에  슬쩍했지."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이 사람.

"그런 걸 물컵으로 써도 되는 거예요?"
"뭐 어때. 일단 컵이잖냐."

어셔가 슬쩍 눈을 굴려 옆을 보니 그와 눈을 마주친 제레미아가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것이 보였다. 조금 황당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그 기회가 눈앞에 있었으니까.

"그럼 지금 당장."
"급하게 굴지 말고 잠시만 기다려 봐라."

당장이라도 성배의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크리칼료프가 멈춰세웠다.

"왜요? 어차피 마셔야 하는 거 아니었어요?"
"너 말이다. 그만한 힘을 얻는데 아무런 대가가 없을 거 같냐? 잘못하면 꼬마 아가씨를 구하러 가기도 전에 죽을 거다. 그런데도 마실 거냐?"

그러면서도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성배를 어셔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고 보면 흔한 이야기였다. 큰돈이나 힘을 얻기 위해 욕심을 부리다 죽는 옛날이야기 같은 건.

"있잖아요. 아저씨."
"뭔데."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한없이 약한 그가, 벨카를 구하러 갈 수 없는 내가 정말로 싫고 밉고 화가 나고 짜증 났다.

"저는 말이에요. 지금 제가 죽는 것보다도 싫어요."

하지만 이대로 죽는 것도 싫었다. 이대로 그가 죽는다면 소녀는 대체 누가 구해준단 말인가? 그러니까.

"제가 죽는다면 아저씨가 벨카를 구해준다고 약속해 줘요."
"살아돌아오기나 해라."

어셔는 성배의 물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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