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4화 〉나아가야 하는 이유. (194/220)



〈 194화 〉나아가야 하는 이유.

-쐐애액!

그와 동시였다.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리더니 카아앙! 하고 쇠가 부딪히는 울림이 들려온다. 어셔가 놀라 돌아보면 낯선 이들이 문 앞에 서있었다. 그중에서도 여인은 아밍 소드와 방패로 누군가의 앞을 막아서곤 고통스러운  눈살을 찌푸리며 팔을 붙잡고 있었다. 그녀가 들고 있는 방패는 나무판에 덧대어져 있던 가죽과 철판이 일그러져 있었다.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스치는 바람이 불어와 옆을 보면 원래 네모반듯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휘어진 칼을 붙잡는 크리칼료프가 보였다.

"냐아앙, 어떻게 되먹은 힘이냥."

여인은 일그러진 방패를 앞세우고 그 옆으로 아밍 소드를 겨누었다. 그녀의 노출된 갈색 피부 위로 드러나는 자잘한 근육들이 꿈틀거리고 쫑긋  고양이 귀와 털까지 바짝 선 꼬리, 새파란 눈동자가 날카롭게 긴장을 알린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어 보고만 있으니 여인의 뒤에서  사내가 그녀의 옆에 서며 모습을 드러냈다.

"다짜고짜 칼을 던지다니 너무하는 거 아닌가?"

 사내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시커먼 먹물 같았다. 그만큼이나 검은 머리카락, 피처럼 새빨갛고 불길한 눈동자, 창백하리만치 하얀 피부까지. 앞서있던 캐트시 여인과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사람이었다. 그를 본 크리칼료프는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혀를 차며.

"네 행동이나 돌아보고 지껄여라. 무슨 낯짝으로 여기까지 찾아온 거냐?"

어셔는 크리칼료프가 처음으로 보이는 명백한 적대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것인지 의아했지만 그것도 잠시. 그와 사내의 새빨간 눈동자가 마주쳤다. 어쩐지 소름이 돋는 감각에 흠칫 물러나자 눈을 가늘게 뜬 그가 입을 연다.

"우스운 꼴이군. 계집애가 따로 없어. 애초부터 여자로 태어나지 그랬나? 그랬다면  사용해 주었을 텐데."

그러고 보니 어셔는 아직도 유니폼 차림이다. 그가 화를 내려 했지만 크리칼료프가 구부러진 칼면으로 어셔를 막아 세우는 게 먼저였다.

"괜히 가까이 가지 마라. 아주 악독한 놈이다."
"하,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꽤 아끼시는 모양이군."

시커먼 사내가 비아냥대며 한 손으로는 캐트시 여인의 어깨를 감싼다.

"많이 다쳤나?"
"조금 저릿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냥"

연인이라도 되는 것일까?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에 어셔는 괜히 가슴이 찔렸다. 그래, 지금 그들에게 신경을  때가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벨카를 찾아야 했으니까.

"그나저나 벨카에게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건가? 안타깝군. 자신의 연인이 다른 남자에게 구멍을 대준 것도 모르다니."

사내의 그 말만 아니었어도. 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으슬으슬 몸이 떨려오는 것 같았다.

"...당신이었어?"

어셔가 이를 꽉 깨물고 노려보자 그의 눈이 놀란 것처럼 커진다.

"뭐야. 이야기를 듣기는 했었나 보군. 하긴 네놈은 그동안 일어나지도 못했으니 못 알아보는 것도 당연한가?"

주드는 그가 퍽이나 무섭다는 듯 비웃었다.

"큭큭, 바로 옆에서 벨카가  위에서 허리를 흔드는 것도 모르고 잘도 자더군."

소녀의 말들이 떠올랐다.

"보지로 좆을 조이는  명기가 따로 없었지. 두 다리로  허리를  안고 임신시켜 달라는데. 직접 보여주지 못한 게 아쉽군."

벨카가 그동안의 일들을 고백하던 말이 그의 귓가에 다시 한번 들려왔다. 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타인에게 아양을 떨었을 소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라서 괴로웠다. 그래서 깨닫지 못했다. 신경 쓰지 못했다.

"밥 대신  좆을 정성스레 빨아서 정액을 받아마실 정도였는데. 벨카가 그렇게 음란한 여자란 걸 알기는 했나?"

소녀가 떨리는 손을 숨기고 있었다는걸. 그런 일을 해야만 했던 그녀가 그 사실을 고백하던 벨카야 말로 가장 괴로웠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 소녀를 장난감처럼 취급하며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던 것을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놈을 코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저놈을 찔러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없다는 걸 아는 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그 더러운 입 다물고 이곳에 온 목적이나 말 혀. 목을 내놓겠다면 환영이다만."
"그럴 리가. 나도 조금 전에나 소식을 듣고 이곳으로 왔는데. 그 소식이 사실이었나 보군."
"무슨 소식?"
"듣자 하니 위험한 약품을 판매했다고 했던가?"

그러고 보면 옛날부터 벨카는 약초 같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위험한 약이라니. 그녀가 그런 걸 만들 리가 없는데.

"뭔 헛소리여? 여기서 만드는 건 단순한 연고랑 감기약 정도였는데."
"그래? 하지만 어쩐 일인지  약을 써본 캐트시 중에 심각한 부작용이 생겨서 약품을 만든 사람들을 잡아갔다더군."

주드는 다시 어셔와 눈을 마주치며 여인의 귀를 매만졌다.

"아직도 생각나지 않는 건가? 머리도 썩 좋은 편은 아니군."
"흐냐아."

어셔가 란투아에 있었을 때 도나르가 데려왔던 캐트시 소년의 것과 같은 고양이 귀를.

"...그러고 보니까  애는?"

분명 캐트시들의 고향은 파르즈. 바로 이곳이었는데. 신경 쓸 겨를도 없어서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저 자는 그 소년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어셔가 겨우 그에 대해 떠올리자 주드가 피식 웃는다.

"캐트시들 사이에서 진한 주홍색은 예로부터 왕족의 색으로 통했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나?"

그러면서 그가 꺼내든 것은 주홍색의 작은 휘장이었다. 가까이에서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그 장식은 낡고 닳아서 볼품없었지만 그럼에도 눈에 띄는  그만한 고풍스러움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색은 조금 빛이 바랬다고 해도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심심풀이 삼아 란투아에 버려두었었는데. 설마 다시 데리고 오게 될 줄은 몰랐지. 호시탐탐 벨카를 노리는 게  거슬렸는데."

그 색은 캐트시 소년의 색과 같은 것이었다. 그는 어셔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는 것을 즐거운 듯 지켜보며 계속 말을 잇는다.

"그래도 나 때문에 건드리지 못하고 있던 녀석이 벨카의 주변에 내가 없다는 걸 알면 어떻게 행동할 거라고 생각하나?"

어셔는 다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곳곳에 찍힌 발자국들은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와 여인의 소행이라기엔 너무 많은 숫자였다. 거리낌 없이 물건들을 헤집고  발로 짓밟으며 돌아다닌 그 모습들이 선명하게 찍힌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눈물이  돌았다. 그는 또 달리고 있었다.  도망치고 있었다.

"벨카가 저런 녀석 따위를  좋아하는지 모르겠군."

주드는 그에게 맞서기는커녕 도망치기 바쁜 어셔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너 같은 개자식을 좋아하는 것보다는 훨씬 이해가 가니까."

크리칼료프는 주드에게서 등을 돌리며 힐긋 시타를 보았다.

"그 여자에게도 그 같잖은 미약을 사용한 거냐?"
"그래, 하지만 이전과 같은 실수는 하지 않았으니 나보다 먼저 벨카를 찾는 게 좋을 거야. 다음엔 이렇게 다른 녀석들이 손댈 기회도 주지 않을 테니."
"우냐, 부끄럽다냥."

주드가 손을 뻗어 거리낌 없이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는 모습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한심한 놈."

크리칼료프는 그들에게 더 이상 관심을 주는 일 없이 달려가버린 어셔를 뒤따라 걸어가 버렸다. 주드는 끝까지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는 크리칼료프가 기분이 나빴다.

"한심한 건 진리를 알고도 현재에 안주하는 네놈 같은 놈들이다."
"너무 신경 쓰지 말라냥. 주드를 모르니까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거다냥."

그가 크리칼료프를 노려보고 있으니 시타가 그의 팔에 달라붙어왔다. 매끈한 살갗과 말랑거리는 가슴을 그에게 밀착하며 그를 달래는 듯했다. 확실히 여인의 살 내음과 가슴의 감촉은 어느 때라도 좋은 것이라 기분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팔은 어때? 꽤 강하게 부딪힌 것 같았는데."
"냐아앙. 아파 죽는 줄 알았다냥. 상을 달라냥."

방금 전까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으면서 주변에 사람들이 사라지자 엄살을 피우며 허벅지를 배배 꼬는 모습이 가증스럽지만 귀여워 보였다.

"그래? 어떤 상을 원하지?"
"후히이. 주드의 자지, 먹게 해달라냥."

이곳이 사방이 확 트여버린 망가진 집이라는  신경 쓰이지도 않는지 그녀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꼬리를 살랑거리며 그의 사타구니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는 꼴이 발정  암고양이가 따로 없었다. 그는 그녀가 바라는 대로 바지춤을 살짝 내려 자신의 물건을 보였다.

"마음껏 빨아라. 씨앗을 낭비하지만 마."
"후냥. 당연하다냥. 쪼오옵!"

뜨뜻한 입안의 감촉과 함께 거칠 거리는 혀가 그의 물건을 휘감는 느낌은 여인의 아래 구멍에 비해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예민한 부분을 혀로 슬슬 쓰는 느낌과 그녀가 그의 사타구니에 얼굴과 코를 박고 정을 갈구하는  모습이 보기 좋기도 했으니.

"쭈읍, 츱."

시타가 자신의 좆을 빨아대는 느낌은 확실히 좋았지만 주드는 역시 그녀만으로는 만족할  없었다. 지금 그의 것을 빨고 있는  벨카였어야 했는데. 왜 하필이면 저런 사내 같지도 않은 녀석을 좋아한단 말인가? 차라리 여자로 태어났다면 씨받이로서 가치라도 있었을 텐데.

"역시 서둘러야겠군."
"우큽! 쿠흑!"

주드가 그녀의 머리를 잡고 흔들자 시타는 괴로워하면서도 입으로는 그의 물건을 받아들인다. 그녀의 입안에 정을 쏟아내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그 도둑고양이가 벨카를 노리고 되지도 않는 시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나쁜데 선수를 빼앗길 수는 없었다. 그러다 그는 문득 자신더러 은인이라 말하던 문지기들을 떠올렸다.

"냐하아."

그리고 그 문지기 중에는 지금 그의 하얀 좆물을 입안 가득 머금어 보이며 황홀한 표정을 짓는 시타의 남편, 마틴이 있었다.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주드는 그동안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시타와 마틴에 대해 많은  알아냈다. 마틴은 제 아내가 바로 앞에서 그의 좆과 정액을 받고 있는 것도 모르고 승진했다고 태자를 데리고 왔던 은인 덕분이라며 신나게 자랑했던 것이다.  은인의 좆에  아내가 함락당했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주드는 그 사실을 이용하기로 했다.

"도망친다는 게 결국 여기냐?"

어셔가 무릎을 끌어안고 훌쩍이고 있으니 크리칼료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야 이곳은 벨카를 찾으러 가기 전 그들이 함께 낚시를 했던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여기가 아니면  데가 없어요."

도나르와 시프가 있는 란투아는 너무나 멀고 갈 수 있다고 해도 갈 용기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벨카를 누군가에게 빼앗겨 버렸는데.

"이대로 울고만 있을 거냐?"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저는 결국 아무것도 할  없는 꼬맹이라고요! 힘도 없고 가족도 없는 고아인데. 저보고 뭘 어떻게 하라고요!!"

소녀를 데려간 것은 파르즈의 왕족이었다. 남의 공간을 흙 발로 아무렇지 않게 쳐들어가서 원하는 여자들을 멋대로 끌고 갈 수 있는. 그가 곁에 있었다고 해도 막을  없는 이들이 또 벨카를 빼앗아갔다는  너무 두려웠다.

"해보기는 했고?"
"하지 않아도   있는 게 있잖아요!"

그는 또 아무것도  수 없었다.

"그러면 너는 그렇게 주저앉아 있는 게 옳다고 생각하냐?"
"...."
"그게 옳다고 생각하면 그건 왜 가지고 온 거냐?"

어셔는 그의 말을 듣고 자신의 품에 있던 것을 보았다. 그건 소녀의 발에 맞춰 만들어진 작은 구두 한 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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