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화 〉나아가야 하는 이유.
-키르르륵!
놈들의 소름 끼치는 소리는 목을 울리면서 내는 듯 목울대가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놈의 목 주변에 장식된 검고 날카로운 갈기 깃털이 함께 떨리며 그를 위협한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상태를 눈치챘는지 다른 녀석들도 하나둘 숲 아래에서 몸을 드러냈다. 놈들은 크기만 약간씩 차이가 날뿐 모두 새하얗고 푹신해 보이는 하얀 깃털에 감싸여 있었지만 날렵한 몸과 날카로운 이빨을 숨길 수는 없었다. 전부 일곱 마리나 되는 놈들이 즐거운 듯 목울대를 울려 낮은 울음소리를 내면서 일제히 갈기 깃털을 흔든다.
기다란 손톱을 딱딱 위협적으로 부딪히면서 그를 바라보는 눈에 어셔는 침을 삼켰다. 놈들의 목적은 명백했다. 놈들의 입가에 줄줄 흐르는 군침을 보면 모를 수가 없었다. 여유롭게 걸어 그를 포위하고는 그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모습에 어셔는 끝을 직감했다. 찢어진 바지의 틈으로 들어온 소금물이 상처를 지지는 것 같았다. 겨우 움직여보려 해도 일어서지도 못하고 주저앉은 채 몸을 뒤로 빼는 것이 한계였고 그마저도 어깨까지 차있는 물이 움직임을 막는다. 물에 몸을 담그고 있을 뿐인데 점성이 강한 진흙 속에 빠져버린 것 같다. 그러던 그때였다.
-키륵?
투두두두, 숲 쪽에서 들려오는 발굽 소리에 당황한 듯 놈들은 숲을 바라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숲에서 튀어나온 커다란 형체가 그대로 놈들 중 하나를 머리로 들이받아 날려버린다.
-키리익!
자신들 중에서 한 마리가 첨벙 소리와 밤하늘에 빠져버리자 녀석들은 산개하며 갑자기 끼어든 형체를 경계했다. 힐디스비니와 형체는 비슷하지만 크기가 작은 그 모습은 어셔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너, 네가 어떻게?"
-히이히히힝!
녀석은 바로 숲에서부터 데려왔던 말이었으니까. 말은 달빛에 하얀 몸을 빛내며 어셔에게 답하듯 한 번 울고 주변을 다시 둘러싼 놈들을 노려보았다. 말에게 부딪혀 멀리 날아가 내팽개쳐졌던 놈들 중 하나가 젖어버린 몸을 털며 주변에 섰다.
-키릭!
-키익!
그리곤 서로 대화라도 주고받는 듯 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끼어든 말을 노리려는 것처럼 달려들었다. 말은 놈들이 달려드는 것에 뒷발로 차거나 몸을 흔들어 떨쳐내던 머리로 들이받으며 놈들을 물리치려 했지만 그것만으로 놈들을 쫓아내기는 힘들어 보였다.
-히히히힝!!
아니나 다를까 말의 옆으로 놈들 중 하나가 올라타는 동시에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말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놈의 갈고리 같은 발톱이 피부를 파고드는 모습이 달빛 아래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그러다 어셔는 자신의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깨달았다. 지금 말을 노리고 달려드는 녀석들은 여섯 마리였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마리는? 어셔가 그것을 깨닫고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키리익!
이윽고 몰래 빠져나와 있었던 녀석 하나가 입을 크게 벌리며 그를 향해 뛰어드는 것이 보였다. 어셔는 느려진 세상에서 그 모습을 생생하게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놈이 밤하늘 아래에 숨겨두었던 날카로운 갈고리 같은 발톱이 빛나며 그를 찍어 숨통을 끊으려는 듯했다. 그 순간 떠오른 건 외면해버리고 말았던 소녀의 눈물이었다. 그와 동시였다. 순간적으로 하얗게 빛나는 네모난 무언가가 놈의 뒤에서 날아든 건.
-크륵?!
그 네모난 것은 그대로 날아들어 어셔에게 달려들던 녀석의 목을 휘감아 뒤로 잡아끌었다. 그러자 놈의 뒤에 서있는 인영이 드러난다. 낡은 천을 붕대처럼 칭칭 휘감은 사내가 밤하늘 위에 서 있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달빛을 받아 빛나는 네모나고 두꺼운 칼의 모습이 방금 어셔에게 달려들던 녀석을 붙잡은 것이 칼이라는 걸 알려준다.
-키륵! 키익?!
그가 칼을 쥐지 않은 다른 손으로 늘어진 천을 잡아당기자 그대로 끌려가는 놈의 모습에 칼의 뒤에 연결되어 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잡아당기자 허공을 날듯 그에게 끌려간 놈은 오히려 그 기세를 이용해 사내를 공격하려는 듯 손톱을 세우지만 그의 칼이 움직이는 것이 먼저였다. 놈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가 휘두른 두꺼운 칼에 목과 목이 떨어져 첨벙하고 밤하늘 아래로 사라져버렸다.
-킥? 키릭?!
다른 놈들도 그것을 보았는지 당황하고 그 사이에 말이 더 거세게 몸부림쳐 놈들을 떨쳐낸다. 사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이쪽을 향해 달려와 양손에 쥔 칼을 휘두른다.
-키륵!!
-키익!
순식간에 두 마리의 목이 떨어지고 다른 한 마리의 목을 발로 찍어 밤하늘 아래로 눌러버린다. 그리곤 도망치려는 놈들에게 칼들을 던져 찍어버렸다. 일곱 마리나 되는 녀석들이 순식간에 도륙 나 혼자 남게 된 녀석이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지만.
-키륵...!
어디선가 날아든 창에 꿰여 그대로 축 늘어졌다.
-뿌드득!
그것을 확인한 사내가 발로 찍어누른 녀석이 아직 발버둥 치며 그에게서 벗어나려 하자 발을 땅에 비비듯 움직이는 것만으로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밤하늘에 묻혀 버둥거리던 발의 움직임이 멎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어셔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언뜻 그의 얼굴을 가리는 어둠 속에서 노랗게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던 것 같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아저씨! 걔 찾았어?"
마지막 녀석에게 창을 던진 건 그녀였는지 나우시카가 숲에서 빠져나오며 물었고 그가 그녀에게 정신을 팔린 사이 크리칼료프는 천을 여미고 있었으니까.
"그래, 여기 있네. 사냥감도 잡았고."
그가 자신의 발아래에서 끄집어낸 녀석은 목이 완전히 으깨졌는지 목이 축 늘어졌다.
"으엑, 좀 살살 다루란 말이야. 요리하는 내 입장에선 얼마나 보기 힘든데."
"급한 걸 어쩌겠냐."
그녀가 불평하자 그는 죽은 녀석을 대충 한곳에 던져두고 어셔를 보았다.
"어쩌다 여기까지 온 겨? 안 죽은 게 용하네."
어셔는 그를 알고 있었다. 그야 그가 이곳에서 깨어났을 때 처음 보았던 이들 중에 한 명이기도 했고 그동안 그의 모습을 지나가듯 본 기억이 있었으니까. 그는 그대로 어셔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에게 그대로 일으켜세워지고 보니 드러난 어셔의 모습에 나우시카가 놀라고 크리칼료프가 혀를 찼다.
"피투성이잖아!"
"엉망진창이구만. 일단 돌아가서 이야기하자 꼬마야."
그들의 말을 듣고 보니 다시 쓰라린 감각이 다리를 쑤셔왔다. 바지는 놈들로부터 도망치는 중에 더 찢어져 버려서 입고 있기에도 민망한 너덜너덜한 넝마가 되어있었고 그 사이로 가득한 상처가 엿보였다. 쓰라린 상처가 잠기운을 깨울 것도 같은데 너무 피곤하고 아파서 눈이 자꾸 감겨왔다.
"아."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이전에 보았던 물결무늬가 그려진 거친 가죽 천장이 그를 반겼다. 문득 허전한 느낌에 옆을 바라보면 텅 비어있는 움집의 안이 보였다.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움집의 문을 지켜보며 한참을 멍하니 있다 몸을 일으켰다. 몸을 덮고 있던 담요를 치우고 보니 붕대에 칭칭 감겨있는 다리와 그의 몸이 보였다. 햇빛을 보지 못한 탓에 하얘진 피부와 얇아진 몸을 보고 있으면 역시 자신의 몸 같지가 않았다.
"...!"
그러다 밖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어셔는 몸을 일어섰다. 아직도 다리가 쓰라리고 아프지만 그렇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목덜미에 쓸리는 머리카락의 위화감을 애써 무시하고 붕대만 감긴 몸으로 나가긴 꺼려져 덮고 있던 담요로 몸을 가렸다.
"그걸 놓치면 어떡하냐!"
움집을 나오니 확실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어쩐지 타박하고 있는 듯했다.
"반응이 애매한 걸 어쩌라는 거냐!"
"그냥 툭 치는 게 보이잖아!"
"난 너처럼 눈을 새로 갈진 않았단 말이다!"
"꼬우면 너도 새로 달아!"
움집의 한편 맹그로브 숲의 경계에서 크리칼료프와 뼈갑을 입은 남자가 기다란 나뭇가지로 만든 대를 들고 투닥거리고 있었다. 어셔는 그 모습에 어떻게 끼어들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지켜보다 이곳을 벗어나기로 했다. 어차피 그들도 어셔에겐 낯선 사람이다. 이대로 이곳을 벗어나 지낼만한 곳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대로 도망칠 생각이냐?"
처음부터 그가 나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 크리칼료프가 말을 걸어오지만 않았다면.
"꽤 일찍 일어났군."
뒤를 돌아보니 크리칼료프는 여전히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 같았지만 그의 옆에 있던 뼈갑을 입은 남자는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 어셔는 몰래 이곳에서 도망치려는 것을 포기하고 그들의 곁에 다가가 털썩 주저앉았다. 어차피 이런 몸으로는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저는 왜 구해주신 거예요?"
"그러면 너는 사람이 죽을라 카는데 그대로 내버려 둘 거냐?"
기왕 이렇게 된 거 궁금한 것을 물었지만 돌아오는 말에 할 말이 없었다. 크리칼료프는 여전히 실을 매단 나무대를 들고 집중하고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의심을 지울 수가 없어서.
"...벨카가 부탁한 거예요?"
때문에 감사의 말보다 그런 말이 먼저 나오고 말았다.
"아니라고는 못하겠구만. 사냥하는 김에 겸사겸사 찾는 느낌이긴 했는디."
그리고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을 때. 어셔는 더 이상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왜요? 왜!? 벨카가 데리고 오라고 했어요?!"
"그런 말은 없었는데."
"그러면 왜요?! 대체 왜!!"
그를 붙잡을 것도 아니면서. 그를 원망하지도 않을 거면서. 소녀는 왜 미련하게도 그녀를 일방적으로 버린 그를 또 구해주었단 말인가? 대체 왜? 그때 그의 이마를 때리는 충격이 있었다. 때문에 고개를 들고 보니 그의 앞에 있는 크리칼료프의 손이 보인다. 그가 어셔에게 딱밤을 날린 것이었다. 가벼운 딱밤이었을 텐데 이마가 부어오를 것처럼 아프고 머리가 띵했다.
"고만 좀 찡찡대! 낚시 끝나고 나서 찡찡대던가! 물고기 다 달아나겠다!"
그는 혀를 차며 대를 휙휙 가볍게 들었다 놓았다.
"그리고 네가 걷어찼잖냐. 그러면서 왜 또 찾고 있어."
어셔는 그의 말에 결국 낚시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저 눈물을 감추고 울음소리를 감추는 것이 한계였다. 자신도 왜 이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오늘은 낚시는 글렀구만. 어차피 쉬는 날이니 상관없나."
어셔가 울 힘마저 없어져 지쳤을 무렵엔 크리칼료프는 다리가 달린 이상한 물고기들을 잡고서 혀를 차며 기껏 잡은 물고기들을 물에 풀어주었다.
"좀 진정했냐?"
"...네."
낯선 이들을 곁에 두고서 멋대로 신경질을 내다가 멋대로 울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어셔는 얌전히 대답했다.
"그럼 일단 여관으로 돌아가자."
"하지만."
"일단 따라오기나 혀."
그가 망설이든 말든 크리칼료프는 그를 끌고 여관을 향해 걸어갔다.
"제 옷은요."
"요즘엔 넝마도 옷이라고 부르디? 버렸다."
"이 담요는..."
"나중에 제레미아한테 직접 갖다 줘라."
어셔는 뼈갑을 입고 있던 그 이상한 남자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여관으로 가면서 담요가 떨어질까 꼭 쥐었다. 담요의 아래는 아무리 몸을 전부 감싸고 있다고 해도 붕대뿐이었으니까. 그렇게 크리칼료프와 함께 도착한 여관. 그 마당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그처럼 붕대를 감고 끙끙 앓고 있는 하얀 말의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크리칼료프가 오기 전에 먼저 그에게 달려와 구해주었던 것은 저 녀석이었다. 어셔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크리칼료프의 말이 들려왔다.
"저 녀석한테 고마워해라. 저 녀석이 네가 있는 곳을 알아채고 먼저 뛰쳐나가지 않았다면 넌 이미 한 끼 식사 거리였어."
어셔는 멍하니 말에게 다가가 녀석의 목을 쓰다듬었다. 대체 어째서일까? 그는 이 녀석에게 그리 신경을 쓴 일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저 밥을 주기 위해 여물을 먹이고 가끔 힐디스비니를 타는 도나르 아저씨를 조금이라도 따라 하고 싶어서 올라타고 달리거나 소녀들을 태우고 다녔던 일들이 전부인데. 그저 그뿐이었는데. 왜 굳이 그를 구하러 필사적으로 달려왔던 것일까? 그에겐 그저 별거 아닌 오히려 귀찮았던 일이었는데.
"아저씨? 걔는 어디에..."
"지금은 그냥 내버려 둬."
그가 녀석의 몸에 머리를 기대어 울고 있어도 말은 거부하지 않고 위로하듯 가만히 있었다. 그 행동이 오히려 아프고 쓰리게 느껴져서 더 괴로웠다. 왜 이렇게 못나고 한심하고 머저리 같은 그를 미워하지 않는단 말인가? 대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