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1화 〉멈춰버린 발걸음. (181/220)



〈 181화 〉멈춰버린 발걸음.

"마법사가 되려면.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겁니까...?"

헬레나는 어떻게든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 했지만 감출 수 없었다. 그만큼 크리칼료프가 보여준 광경은 이질적이고 괴이했으니까.

"꼭 그런 건 아니지. 아가씨도 들었잖아? 내가  번째라는 거 말이야."


끼이익 하고 사람의 몸에서 나는 것이라 믿기지 않는 소리와 함께 그는 일부나마 풀어냈던 낡은 천으로 다시 몸을 감쌌다. 확실히 그들의 대화에서 헬레나는 크리칼료프가 예외적으로 마법사가  것이라는 걸 알았다. 네 번째라는  그런 의미였으리라.

"하지만  꼴이 되었는데도 완벽한 마법사가 될 수는 없더라고."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지. 내가 마법사로서 발휘할 수 있는 힘은 같은 마법사의 마법을 없애는 것. 그거 하나뿐이다."


그의 말에 헬레나는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런 주제에 마법사가 짊어져야 하는 단점이란 단점은  가지고 있단 말이지. 그나마 아프지는 않다는 게 감지덕지구만."

크리칼료프가 골치 아프다는 듯 말했지만 아직도 머리를 때리는 충격에 그녀에겐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개자식처럼 행동할 이유도 생각도 없다고."

그는 겨우 힘든 일을 끝낸 것처럼 기지개를 켰다.

"어우, 이제 그 꼬마 아가씨 데리고 빨리 밥이나 먹으러 가자. 나우시카한테 고기나 해달라고 해야지."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서서 움집으로 걸어가는 크리칼료프의 뒷모습에 헬레나는 아무런 말도  수 없었다.


"이 근처엔 위험한 게 많으니까 냉큼 따라오슈."

그녀가 차마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니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부르는 그의 모습에 헬레나는 무어라 할 수 없었다. 그들이 움집 안으로 들어서면 벽에 기대어 사발에 막자로 무언가를 갈고 있던 제레미아와 어셔의 곁에 앉아 그의 몸을 닦아 주던 벨카가 그들을 돌아보았다.


"벌써 돌아온 거냐?"
"오늘은 장사가 워낙 잘 돼서 좀 짭짤하게 벌었지."

제레미아와 크리칼료프가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헬레나는 벨카의 곁에 앉았다.

"어셔 님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아직 일어나려면 기다려야 할 것 같대."
"그렇군요."

그녀는 소녀가 몸을 닦느라 드러난 어셔의 맨살에 흑목병으로인해 나타났던 검은 점들이 사라진 것을 볼  있었다. 그토록 그녀들을 절망스럽게 만들었던 병을 치료했다는 게 이제 겨우 실감이 났다. 그를 지켜보고만 있으니 잠시 밖으로 나가 통발들을 두고  크리칼료프가 그녀들을 부른다.


"이봐, 이제 정말 밥 좀 먹으러 가자고. 이러다가 움직이지도 못하겄다."


그의 말에 헬레나는 먼저 소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마주치는 선명한 금빛은 그녀의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인 것일까?

"괜찮을 거야."

헬레나는 그녀를 위로하듯 들려오는 벨카의 목소리에 쓰게 웃었다. 정작 가장 걱정스러운 건 그녀일 텐데. 벨카는 이제는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는 어셔의 이마에 조심스레 입술을 맞추고 난 후에야 가면을 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그들이 여관으로 돌아가면.

"여기 구사크 통구이 하나 더!"
"네! 10분만 더 기다려주세요!"
"여기 라자냐 2인분만!"
"네~ 네~"

1층의 식당 안을 가득 채운 손님들과 그 사이를 바쁘게 뛰어다니는 나우시카를 볼 수 있었다.  위에 든 음식들이나 음료가 위태롭게 흔들리지만 재주 좋게 중심을 잡고 날개깃이 휘날리도록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모습은 시선을 끌었다.

"손님이 많군요."
"내가 좋은 곳이라고 했잖수. 다른 건 몰라도 애가 요리는 기가 막히게 하거든."
"다 들리거든!!"

바쁘고 소란스러운 와중에 크리칼료프의 목소리는 어떻게 들었는지 소리치는 나우시카의 말에 손님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몰려들었다.


"오, 크리칼료프? 맞지?"
"맞겠지 뭐. 나우시카가 말했으니까."


 시선들에 움찔 떨며 그녀의 손을 붙잡는 벨카에 헬레나는 머무를 곳을 잘못 찾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주드를 생각하면 이곳만큼 안전한 곳이 없었다. 그녀가 소녀의 손을 마주 잡으며 애써 부담스러움을 참고 있으니 웅성이는 소리가 커졌다.


"야, 크리칼료프는 그만하면 됐고 뒤 좀 봐봐."
"응? 왜... 와우."


손님들의 경우 간간이 여자들도 많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무리가 남자들이라 헬레나는 그들의 시선이 더욱 거북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아도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 요프. 언제 이렇게 어여쁜 부인이랑 딸이 생겼냐?"

그때 한 무리에서 크리칼료프처럼 몸을 낡은 천으로 감싼 사내가 튀어나와선 다가와 물었다. 다만 크리칼료프와 달리 얼굴 정도는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

"의뢰인 분들이다.   다 아는 놈이  소리를 하고 있는 겨."
"부러워서 그렇지. 오래간만에 한탕 했다며 소문 쫙 났던데?"

크리칼료프는 썩 귀찮은 기색이었지만 아무래도 동업자라 그런지 대화하는 것이 제법 익숙해 보였다. 그들의 대화에 딱히 끼어들거나 방해할 생각은 없었기에 헬레나는 그들의 대화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는 그녀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아가씨들! 지금 식사하실 거면 같이 먹는 게 어때요?"


그가 크리칼료프 옆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을 걸어왔으니까.

"니들은 굳이 모임에 부외자를 끌어들이고 싶냐?"
"야! 우리도 여자랑 손 좀 잡아보자!"


크리칼료프가 질색하며 그의 머리를 그녀들에게 보이지 않게 잡고 다시 집어넣을 것처럼 굴자 그가 나왔던 낡은 천을 두른 무리에서 원성 아닌 원성이 터져 나왔다.

"이것들아 여자를 사귀고 싶으면 장의사는 되지 말았어야지. 돈을  벌면 뭐해. 우리는 안돼."
"이 자식! 아가씨들이 그나마 외지인으로 보이니까 하는 소리잖아!"
"우리 중에도 가끔씩 결혼하는 사람은 나오거든!"

정작 크리칼료프는 그들의 원성을 듣거나 말거나 귀를 후벼파는 시늉을 하며 우습다는 듯.

"그거 다 그만둔 새끼들 얘기지?"
"쓰벌."

그들이 단체로 우는 시늉을 하니 주변에서 지켜보던 손님들이 깔깔 웃는다.


"됐고! 소개만 시켜주라!"
"아가씨들이랑 얘기할 기회만이라도 줘!"
"아가씨들! 밥은 우리가 살 테니까!"

그들이 반쯤 애원하듯 그녀들에게 부탁하는 모습에 헬레나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쿵! 하고 큰 소리가 울리며 떠들썩했던 식당이 조용해졌다. 나우시카가 그들의 테이블에 구사크 통구이가 담긴 접시를 강하게 내려놓은 것이다.


"우리 삼촌들. 일이 많이 힘드신 모양인데. 그럼 구사크 통구이를 시키신 김에 힘내시라고 요프 아저씨의 요리도 같이 드실래요?"
"그려?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할 때인가?"

그녀가 삐뚜름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크리칼료프가 맞장구치며 주방으로 들어가려 하니 그들은 재빠르게 일어나 그를 붙잡았다.

"됐어! 우리는 나우시카가 해주는 요리만으로도 충분해!"
"여자가 대수냐! 일단 살고 봐야지!"
"에이, 사양하지 마세요. 특별 서비스로 무료로 드릴 테니까♪"
"빨리 먹어치워! 요리가 다 되기 전에 간다!"


그리곤 제자리로 돌아가 허겁지겁 음식들을 먹어치우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찌나 절박한지 방금 전까지 가득했던 여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을 조용히 만든 나우시카가 그녀들에게 총총 다가왔다.

"괜찮아요? 저 아저씨들이 나쁜 건 아닌데. 예쁜 여자만 보면 눈이 돌아가서."
"그 정도는 상관없습니다만."


그보다는 크리칼료프의 요리가 대체 어떻기에 저들이 저렇게 기겁하는지 궁금했지만 모르는 게 낫다는 느낌이 들어 그만두었다.


"우리 아기 토끼는? 겁을 많이 먹은 것 같던데."
"...괜찮아."
"아무튼 잠시만 기다려 봐요! 곧 손님들도 다 가시니까. 같이 먹자고요!"

나우시카의 권유로 벨카와 함께 식당의 빈자리에 앉은 헬레나는 크리칼료프에게 물었다.

"장의사는 무슨 말입니까?"

아무래도 다섯 명 남짓한 이들은 그처럼 흑목병에 걸린 이들을 데려다주는 일을 하는 이들을 말하는  같았지만 아무래도 그 의미가 의미인지라 물어보았다.


"그냥 딱히 부를 게 없는 일이다 보니까. 어째 별명이 직업 이름이 된 거지."


파르즈의 내부에서 보자면 그들은 음침한 모습으로 병에 걸린 이들을 데려가선 다시는 그들을 볼 일이 없게 만드니 죽은 사람을 데려가는 것처럼 보여서 장의사라는 말이 붙었다고 한다. 때문에 파르즈 내부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을 시체 처리반이나 목숨을 돈으로 산다는 생각 때문에 이미지가 썩 좋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썩 틀린 말도 아니지. 가끔 시기를 놓쳐서 죽는 사람도 있고 그 경우엔 우리가 돈을 받고 장례를 치러주거든."

그 대화를 끝으로 손님들의 시선을 참으며 얼마쯤 있었을까? 곧 한산해진 식당과 함께 나우시카가 피곤한 얼굴로 다가왔다. 손에는 커다란 구사크 통구이들과 벨카의 몫으로 보이는 샐러드 접시가 함께였다.


"끄으으. 역시 혼자선 힘들어. 아저씨도 시간이 나면 좀 도와 달란 말이야."
"여기 손님들 대부분이 너 보러 오는 건데 내가 서빙하면 잘도 받아주겠다. 차라리 내가 요리를..."
"그냥 쉬어. 이젠 말을 꺼내는 것도 무섭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크리칼료프의 앞에 구사크 통구이 두 개를 내려두고 나머지 하나를 헬레나와 사이에, 샐러드를 벨카의 앞에 두었다.


"저희는 이런 걸 시킨 적이 없습니다만."
"에이. 값은 싸게 받을 테니까. 이야기만 해달라고요. 아시면서!"

 모습에 헬레나는 원래 이곳 사람들은 안면을 익힌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친근하게 구는 건가 싶었지만 주드와 이름조차 모르는 어떤 하피를 떠올리고 나우시카와 크리칼료프가 특별한 것이라 여기기로 했다.

"그보다 우리 아기 토끼!"
"...?"
"아까 난쟁이에 대해서 더 얘기해 주기로 했었잖아."


그들의 식사는 소녀들의 조곤조곤한 소리와 재잘거리는 소리가 함께였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헬레나는 나우시카가 내어준 찻잔 속의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관의 분위기에 휘둘려 깜빡하고 말았지만 그녀가 크리칼료프에게 했던 말들이 떠오른 탓이었다.


"싸웠구나."

그런 헬레나에게 들려온 건 벨카의 목소리였다. 그런 게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어느덧 가면을 벗은 소녀의 금빛과 마주하고 있으면 스스로가 부끄러워져 입을 다물게 되었다. 지금 크리칼료프는 이 자리에 없었다. 그는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서 나무줄기들을 찢어서 드바야카를 잡을 통발을 만드는 중이었으니까.

"아가씨는 그가 마법사라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응, 그와 같은 사람은 드무니까."

어쩌면 헬레나가 그를 경계한 것은 무의미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곳에 오기 전 중간중간 크리칼료프와 같은 차림의 이들을 본 적이 있었지만 낯선 이들을 꺼리는 벨카가 그중에서도 그를  집어 선택한 것이었으니까.

"그에게 심한 말을 해버렸습니다.  자와 같은 마법사라는 생각에 그도 똑같다고 단정 지어버렸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그가 무슨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정작 그는 그런 심한 말을 해버린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럴  굳이 나에게 묻지 않아도 헬레나는 알고 있는걸."

벨카는 그녀에게 손을 뻗어 머리를 쓸어주었다.

"사람은 크면 클수록 사과하는 게 힘들어 진대. 약해 보이는 것도 무섭고 자신이 잘못 알고 있다는  인정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니까."

그래도 헬레나는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소녀의 나긋한 목소리가 그녀를 어루만지는  같았다.

"그럴 땐 그냥 사과하는 게 좋은 거야. 조금 무서워도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엇갈리는 것만큼 아프진 않을 테니까."

헬레나는 겨우 결심할 수 있었다. 벨카의 말을 듣고서야 사과할 용기가 생긴 자신이 한심했지만 그래도 크리칼료프에게 다가갔다. 그가 용서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건 오롯이 그의 몫이니. 그렇게 생각하며 그에게 다가가면.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마침 잘 됐구먼. 시간 되면 나우시카나  도와줘. 저러다 애 쓰러지것다."
"으앙! 헬레나 언니 도와줘요! 요프 아저씨는 힘 조절이 안 돼서 접시를 다 깨 먹는단 말이에요!"

정신을 차렸을 땐 나우시카와 함께 설거지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헬레나였다.

"고마워."
"글쎄. 난 돈을 받고 일한 기억밖에 없는  같은디."

크리칼료프와 소녀의 대화는 잘그락 거리는 소리에 묻혀 헬레나의 귀에 닿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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