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화 〉해야만 하는 것.
그의 목에 닿은 건 헬레나의 단검이었다.
"당장 아가씨를 놓아주시죠."
이어지는 그녀의 목소리처럼 서늘하고 날카로운 감촉은 헬레나가 자신을 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꽤나 위협적으로 다가올 정도였다.
"요즘 사용해 주지 않았더니 쌓였었나?"
돌아보면 나이프는 여전히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지만 더 이상 파고들려는 기색은 없었다. 그러려고 했다간 그가 걸어두고 다니는 마법이 나이프를 튕겨내며 신호가 왔을 테고.
"...모릅니다."
위협을 한다는 여자가 한 손을 치마 속에 넣고 아래를 쑤시며 물소리를 내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사흘을 벨카를 길들이는데 집중하느라 그동안 방치되어 있었으니 불만이 쌓일만했다. 안 그래도 강한 몬스터의 미약을 주입당해 하루라도 자지를 삼키지 않으면 괴로웠을 텐데. 주드와 벨카가 교미를 하는 동안 그 옆에서 제 보지만 손으로 쑤시고만 있었던 그녀이니까. 바로 사용해 주려고 했지만.
"후으으. 아직 모자라는걸."
벨카가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고 놓아주지 않았다. 자신의 자궁은 채우고 가라는 것처럼 그의 좆을 꼭 물고 있는 느낌은 확실히 좋았지만.
"흐구우우웅!"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붙잡고 힘껏 누르자 좆이 자궁을 꿰뚫는 것만 같은 감각에 소녀가 머리를 새하얗게 물들이는 쾌락을 참지 못하고 허리를 젖히며 암컷의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히그으으."
"어때? 끝내주지? 조금만 참으면 실컷 느끼게 해줄 테니까. 기다려줄 수 있어?"
"힛, 헤우."
벨카는 겨우 정신을 잃지 않고 몽롱한 얼굴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녀와 계속 교미를 하고 싶었지만 너무 버릇이 없어져도 안 될 일이었다. 게다가 벨카와는 별개로 헬레나도 엄연한 자신의 암컷이었으니까. 그녀가 딴 생각을 품지 못하게 길들여줄 필요도 있었다. 잘못했다가는 그가 벨카를 우려했던 것처럼 헬레나가 거리로 나가 아무 남자나 붙잡고 임신시켜달라 아양을 떨지도 모를 일이니까. 자신의 것을 다른 자가 탐하는 것을 결코 간과할 수 없었다.
"그래, 착하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보지에 새로운 마개를 끼웠다. 그리고 벽에 기대앉을 수 있게 놓아주고 헬레나를 보면.
"하아. 하읏!"
그새를 참지 못하고 그를 위협했던 단검의 손잡이를 사용해 제 보지를 쑤시려 하고 있었다. 손잡이의 크기 탓에 차마 삼키지는 못하고 균열이 벌어져 분홍빛 속살을 드러내며 뻐끔거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참고 있었는지 모를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새 자위를 하다니. 정말 급했나 보군."
조금만 늦었어도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을 뻔했다고 생각하며 주드가 그녀의 욕구를 풀어주기 위해 다가가는 순간. 빛이 번뜩이고 알싸한 통증과 함께 헬레나로부터 물러나야 했다.
"큭?!"
그는 잘려나간 자신의 옷 틈으로 새어 나오는 피를 손에 묻혀 확인하고 얼굴을 굳혔다. 헬레나가 쾌락을 이기지 못해 자위하고 있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매섭게 단검을 휘둘러 그를 베려 한 것이다. 급소를 노리지는 않은 듯했지만 순간적으로 느낀 위협과 그녀의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했다면 위험할 뻔했다.
"쯧."
주드가 피한 것을 확인한 헬레나는 그를 제치고 그의 뒤에 섰다. 그로부터 벨카를 지키려는 듯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벨카?"
주드의 의문은 자신을 공격한 헬레나보다도 벨카를 향했다. 그야 지금 이 자리에 휘둘러진 단검이 마법을 무시하고 그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건 그녀뿐이었으니까. 헬레나를 따라 다시 몸을 돌린 그의 눈에 자신이 완벽하게 굴복시켰던, 길들였다고 생각했던 암컷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뭐야?"
분명 그의 조교에 문제는 없었을 터였다. 애초에 농축된 몬스터의 미약을 그대로 사용한 시점부터 과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정말로 몰라서 묻는 말이라면 저는 진심으로 당신을 경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헬레나의 옅은 눈동자가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벨카는 그의 마법을 캔슬한 순간부터 부작용으로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금빛은 선명한 거부감을 담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품에서, 아래에서, 위에서 앙앙대던 것이 거짓말처럼 소녀의 금빛엔 그를 향한 원망이 가득했다.
"당신이 맹세를 지킬 생각이 없으니까."
"하, 그런 거였나."
허탈함에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벨카를 몬스터의 미약과 함께 조교한다면 진심으로 그의 것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마녀들은 그런 식으로 굴복당하고 다른 자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이들이었으니까. 부작용으로 남자 없이는 살 수 없게 될 수도 있는 그런 약이다. 마음이 따라주지 않더라도 몸이 따르게 만들어 확실하게 사로잡을 수 있는 그런 방법이었단 말이다.
"벨카, 나와 했던 맹세를 지킬 생각은 있었어?"
벨카가 이곳에 오기 전 그에서 했던 맹세가 떠올라 물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맹세를 강요한 순간부터 맹세의 효력 같은 건 있을 수 없었어. 거래를 요구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는 이를 꽉 깨물었다. 지금까지 속았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럼 지금까지 나와 하면서 했던 말들은? 네 행동들은? 너도 사실은 좋았던 거잖아? 응?"
밸카의 행동들은 그렇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좆을 쪽쪽 맛있게 빨던 저 앙증맞은 입술을 기억한다. 그의 자지를 다디단 사탕처럼 핥고 그의 정액이 목구멍으로 흘러들어가는 길을 만들고는 꼴깍 삼키던 혀를 떠올렸다. 소담한 가슴으로 모유를 먹이며 그를 자애롭게 쓰다듬던 손을 기억한다. 그의 위에서 허리를 흔들고 땀을 흘리면서 보지로 좆을 삼키며 앙앙대며 절정에 달하는 순간도, 자궁에 정액을 받아들이며 휘는 허리의 선과 민감한 곳들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수컷에 대한 굴복과 순종이 없었다면 아무리 연기를 한다고 해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헬레나가 대신 입을 열지 않았다면.
"제가 이미 몬스터의 미약을 투약 당한 경험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뭐?"
헬레나는 단검을 치켜든 채 떠올렸다. 주드가 처음으로 벨카를 범했던 날.
"헬레나. 남자가 좋아할 만한 행동을 가르쳐 줘."
소녀는 부탁했다. 어쩌면 불쾌할 수도 있는 그런 말이었으나.
"...그런 걸 어째서 저에게 물으시는 겁니까."
"곤란하게 했다면 미안해. 하지만 이런 걸 대체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는 벨카의 눈에 빛이라곤 남아있지 않았다. 언제나 무심한 듯 무정한 듯 인형처럼 보여도 언제나 따스하고 보송보송한 감정들과 어셔를 볼 때면 걱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숨길 수 없는 몽글몽글한 애정들을 비추던 금빛이 끝없는 무저갱을 보듯 추락하고 있었다. 그 부탁은 기대를 담지 못한 길을 잃은 절박한 몸부림이었다. 소녀는 그저 발이 닿지 않는 바닷속에서 부서진 배의 파편을 붙잡듯 물었을 뿐이었다. 그게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을지라도.
"제가 가르쳐드리겠습니다."
그렇기에 헬레나는 말할 수 있었다. 그저 함께 가라앉는 파편이 아닌 소녀를 건질 수 있는 조각배가 되어주고 싶었으니까. 헬레나는 한때나마 연금술사에게 연금술을 배우고 그의 것으로 살아가면서 미약을 투약 받은 적이 있었다. 그 감각이 어찌나 끔찍했는지 주드가 그녀에게 그 감각을 되살리기 전에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닌데도 강제로 원하는 것으로 만들며 사랑이란 감정을 착각하게 만들어선 스스로 다리를 벌리고 아양을 떨게 하던 그 끔찍한 감각을.
그 과정에서 길들여져 익혀버리고만 남자의 자지를 빠는 법과 허리를 흔드는 법. 어떠한 행동을 남자가 좋아하며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정액을 받아낼 수 있는지까지 전부. 아직까지 그녀를 따라오는 그림자였다. 그때의 경험들을 되새기는 것은 분명 괴로운 일이었으나 한 편으로는 후련하기도 했다. 그 끔찍한 경험들조차 사랑하는 소녀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면 기꺼이 이용할 수 있었으니까. 벨카는 헬레나의 사정을 듣고는 그녀를 말없이 껴안아 주었었다. 자신보다도 작은 소녀의 품이었지만 너무나 따스하고 포근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멀쩡히 있을 수 있다는 건가."
주드는 헬레나의 말에 그녀가 몬스터의 미약에 내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벨카에겐 내성이 없었을 텐데. 벨카는 자신의 균열을 막던 고무마개를 떼어내 바닥에 버렸다.
"당신과 함께 있는 매 순간이, 살을 섞고 정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감각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당신은 평생이 가도 알 수 없을 거야."
소녀의 목소리는 울음을 터뜨릴 듯 떨리고 있었다. 벨카는 헬레나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을 잠식해오는 쾌락마저 이용하며 그를 속여왔던 것이다.
오로지 어셔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