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8화 〉해야만 하는 것. (168/220)



〈 168화 〉해야만 하는 것.

"저기."

문득 벨카가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왜?"
"저 아이들은 어떻게 저렇게 헤엄쳐 다닐 수 있어?"

소녀는 커다란 수로를 헤엄쳐 다니는 거대한 생선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생선이 구름 지대가 아닌 물속에서 헤엄쳐 다니는 것을 묻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잡아가지 않냐는 거겠지?"
"응."

그를 올려다보는 벨카의 금빛이 호기심을 품고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모르면 이상할 법하기도 했다. 테브라니와 드바야카와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이 커다란 수로를 헤엄쳐 다니면 누군가 잡아보려는 시도를 할 법한데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는 일이 없었으니까.

"저 녀석은 못 먹는 녀석이니까."

정확히는 맛이 형편없었다. 껍질은 단단해서 손질도 어렵고 살은 질기며 가시도 너무 많다. 생긴 것만 보고 비슷한 맛이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었다. 테브라니나 드바야카가 수로를 헤엄치고 있었다면 진작에 누군가 잡아갔으리라. 덕분에 이 녀석들은 수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들은 벨카는 녀석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응시했다. 녀석들이 신기하면 얼마나 신기하다고 그러는지.

소녀의 금빛에 비치는 강을 보고 있으면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주드가 침묵 속에서 벨카를 지켜보고 있었을 때였다. 그들의 뒤로 다급하게 느껴질 정도로 우르르 달려가는 소리가 들려온 건. 뒤를 돌아보니  무리의 캐트시들이 단체로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사정을 모른다면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정작 달려가는 캐트시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다.


"슬슬 돌아가지."

그 모습을 본 주드는 벨카와 헬레나를 데리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여관에서 마련해  식사를 대충 먹고 방으로 돌아가니 문득 방의 구석에 어셔가 누워 있는 모습이 보였지만 딱히 신경이 쓰이진 않았다. 주드가 침대에 몸을 눕히자 천장에 새겨진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파르즈에 자생하는 동물들과 식물들을 음각하고 간단한 색을 입혀 마무리한 모습은 이 여관이 나름 고급 여관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그것을 유심히 보고 있으니 그의 곁으로 벨카와 헬레나가 다가왔다.

"오늘은 생각이 없으십니까?"

헬레나가 풍만한 가슴을 그의 몸에 붙이자 일그러지는 모습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벨카 또한 그의 팔을 끌어안고 있으니 그는 곧바로 그녀들을 끌어안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날 밤도 뜨거운 열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왠지 저희가 온 뒤로 더 어수선해진  같습니다."


며칠간 약을 찾는다는 목적으로 그들이 파르즈를 돌아다니고 있으면 유독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에 헬레나가 의아해했다. 파르즈가 많은 나라를 이어주는 교역로인 만큼 평소에도 분주하지 않은  아니었지만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유독 즐거운 기색이 가득해서 어딘가 들뜬 분위기다. 특히 무언가를 준비하는  며칠 전부터 자재들을 실어 나르고 만들고 있는 모습들이 그랬다.

"그렇겠지. 축제를 준비하고 있으니까."
"축제 말입니까?"

헬레나는 꽤 놀란 기색으로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대로 된 축제라는 건 상당히 드물게 벌어지는 것이었으니까. 몬스터들이 잘 쳐들어 오지 않는 시기를 확인하고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것을 평소보다 더욱 철저히 하는 것은 물론 대비까지 하는 수고로움을 거친 뒤에야 할 수 있으니 시기가 좋지 않으면 수십 년 이상 축제가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들이 파르즈에 온 뒤에 축제를 한다니 말이다.

"저희가 머무는 동안에만 해도 몬스터들이  번 습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었습니다만."
"덕분에 왕이 토벌령을 내렸었다지."

정말 몬스터의 씨를 말리려는 듯 싸울  있는 자들과 캐트시들을 전부 불러들였다던가. 평소 경비대로 몬스터들의 침입을 저지하거나 몬스터의 토벌에 용병들을 사용하는 수준이었던 파르즈의 소극적인 대처를 생각하자면 파격적인 일이었다. 덕분에 지금 파르즈는 몬스터들이 습격하지 않아 평화로운 상태였다. 운이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한 우연은 결코 아니었다. 계속 돌아다녔지만 오늘도 별 수확이 없었던 그들은 다시 여관으로 돌아와 옥상에서 식사를 기다렸다.


"이건 정말 익숙해지지 않는군요."

헬레나가 그들처럼 옥상에 나와있는 사람들이 가득한 모습을 둘러보며 말했다. 단순한 일과만이 아니라 축제를 알리기 때문인지 며칠 전보다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옥상에 올라와 왕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우우."


그들의 여관 근처에도 많은 이들이 올라온 탓에 그의 무릎 위에 앉아 있으면서도 제 속에 그의 물건을 넣지 못한 벨카는 불만스러운 듯 주드에게 더 달라붙어오고 있었지만 그는 그런 소녀의 모습도 좋아서 가만히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러던  드디어 왕이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의 시선이 올라가는 것이 보여 그들도 함께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저 아이는...!"


헬레나는 놀라고 말았다. 그야 아이손의 옆에는 그들의 눈에도 익숙한 캐트시 소년이 있었으니까. 멀리 떨어져 있기에 그들에게 말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지만 그나마 가까운 이곳저곳에서 속삭이듯 말소리들이 퍼져 나왔다. 특히 캐트시들의 목소리가 컸다.


"태자 전하다냥!"
"태자 전하께서 돌아오셨다!"


그들은 미리 소식을 전해 들었을 텐데도 기뻐하는 기색으로 크게 소리치며 그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얼핏 내려다 본 거리에도 곳곳에서 캐트시들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웅성이는 소리들로 가득했다. 영문도 모르고 축제를 준비하던 이들도 축제의 이유를 깨닫고 놀란 것이 보인다.

"태자 전하라니.  아이가 왕족이었단 말입니까?"

헬레나도 저 아이가 캐트시라는 이유로 귀한 출신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겠지만 왕족의 직계일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인 듯했다.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손을 높이 들고 자신이 돌아왔음을 알리는 녀석의 모습을 심드렁하니 보고 있으니 문득 눈이 마주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내려다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수 있을까."


아무쪼록 천천히 즐기고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점심이 끝나고 축제는 급하게 시작되었지만 규모는 무척이나 컸다. 거리의 곳곳에 오색등이 걸려 아직 불을 키지 않았음에도 색색깔로 축제를 알리고 드넓은 대로에는 캐트시들이 모여 퍼레이드를 준비하는 것이 보였다. 축제라는 소식에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가득하지만 그래도 어딘가 허전한 사람들의 숫자와 이곳저곳에 축제라기엔 아쉬운 모습이 급조된 축제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축제는 축제인지 거리에는 발을 디딜 틈이 없다.

"이래서야 약초를 찾는 건 힘들겠군."


마녀와의 약속을 어기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의욕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었다. 그가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의 모습을 심드렁하니 보고 있으니 헬레나가 묻는다.


"흑목병의 치료제라는 것이 그렇게 구하기 힘든 것입니까?"


그 말을 듣고 주드는 곧바로 주변을 살폈다. 그들의 근처에 축제를 준비하느라 바쁜 탓인지 그녀의 말을 들은 캐트시는 없는 모양이다. 다행히 마법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말을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그 정도로 주의해야 될 일입니까?"

하긴 억제제의 효과가 있다지만 슬슬 약초를 구하긴 해야 하니까.

"우선 자리를 옮기도록 할까."


주드는 그녀들을 데리고 더 아래쪽으로 향했다. 거의 밑바닥에 도달했을  보이는 커다란 식당 앞으로 다가가자 입구에 서있던 여성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거의 속옷이나 다름없는 무희복은 캐트시들의 전통 의복이다. 캐트시가 아님에도 그들의 전통 의복을 입은 그녀가 다가와 그에게 눈웃음을 흘리며 묻는다.

"안으로 안내해 드릴까요?"
"수로가 지나가는 곳이면 좋겠군."
"알겠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그녀는 엉덩이를 돋보이도록 노골적으로 걸으며 그들을 가게의 안으로 안내한다. 가게의 안쪽은 그들이 머무는 여관보다도 화려하다. 천장은 물론이고 벽면에도 음각 된 그림들에는 더욱 다양한 색으로 도금되어 있었다. 덩굴의 줄기는 은으로 잎은 금으로, 일부 그림들은 유약을 사용했는지 청록빛을 띈다. 지나가는 문들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들이 걸어가는 복도는 바닥조차 반짝이면서도 약간의 소리만이 새어 나올 뿐 침묵에 잠겨있었다.


늘어진 천 아래로 간혹 골을 드러내는 종업원의 엉덩이를 따라 도착한 곳은 꽤나 안쪽에 있는 왼쪽 문이었다. 문을 열자 보이는 약간의 턱이 있는 방은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구조다. 방에 들어서니 낮은 책상 앞에 그들을 앉히곤 묻는 그녀.

"외투를 받아 드릴까요?"
"필요 없다."

그녀는 다시 묻는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꽃은  명이 필요하십니까?"
"그건 됐다. 이미 충분하거든."
"그렇다면 의복을 따로 준비해 드립니까?"
"의복이라."

그가 중얼거리며 종업원을 훑어보았다. 새까만 머리카락에 건강미 넘치는 갈색 피부와 잘 빠진 몸매는 꽤나 매력적이다. 상의는 브래지어나 다름없는 것을 잘도 옷이라 주장하며 가슴골을 보이고 아래의 옷도 앞뒤를 가린 요대를 제외하면 팬티와 다르지 않다. 그녀는 주드가 자신의 몸을 훑어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거부감을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팔을 모아 제 가슴을  돋보이기까지 한다. 확실히 벨카와 헬레나에게도 입히면 어울리겠지.


"마음에 들지만 딱히 이곳에서 입히고 싶진 않군."
"옷을 따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이어서 그녀는 주드의 앞, 책상 위에 올라가 다리를 벌렸다. 그냥 유혹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허벅지 안쪽에는 작은 글씨들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으니까.


"어떤 메뉴를 원하십니까?"


그녀의 물음에 주드는 잠시 고민하다 그녀의 하의를 벗겼다. 그럼에도 당황하는 일이 없는 그녀의 아랫배에는 얇은 천 조각이 가리고 있던 곳에 그가 찾던 메뉴가 있었다.


"이걸로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그러면서 그녀는 그가 벗겨낸 옷을 다시 입는 일도 없이 그대로 문밖으로 나갔다. 이내 문이 닫히자 헬레나가 멍하니 문을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파르즈는 원래 이런 겁니까?"


그녀의 떨떠름한 표정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알려주었다. 하기야 저런 광경을 파르즈가 아니면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그럴 리가."

단지 파르즈는 저래도 될 만큼 부를 쌓은 자들이 가득했다. 그만큼 이곳에 넘쳐나는 것이 부였고 그 부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얻어먹고자 하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렇게 식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그들의 주변을 지나가는 물길을 벨카가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신기한가?"
"응."

이 방에는 작은 물길이 개울처럼 졸졸 흐르고 있었다. 파르즈에 흐르는 크고 작은 수로에서 물길을 파서 이렇게 만든 것이다. 그곳에는 작고 화려한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이 물고기들은 설마."

헬레나는 위화감을 눈치챘는지 당황스러운 눈으로 방을 가로지르는 작은 수로를 바라본다.

"그래, 성지에서 들여온 녀석들이겠지."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의 종류는 드물다 못해 없는 편이지만 성지에는 그런 물고기들을 거의 독점하다시피하고 있었다. 성지에서도  녀석들을 외부에 내보내는 건 그리 반길 일은 아니겠지만 파르즈와 모종의 계약을 한 것이리라. 방의 끝을 보면 수로와 이어두었으면서도 물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망을 만들어 놓았다.

"캐트시들이 성지에서  녀석들을 들여오기 위해 얼마나 용을 썼을지 뻔하군."

그가 있을 때에는 이런  없었는데 말이다. 그들이 조용히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을 때였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들어가겠습니다."

그 여인이 간단한 수저들과 차, 여러 가지 그릇과 함께 커다란 접시 위에 생생한 푸른 잎과 갖가지 과일이 첨가된 샐러드를 가져왔다. 하지만 보통 음식은 아니었다.

"전채는 맹그로브 마류스크 샐러드입니다."

얼핏 보기엔 벌레나 하얀 지렁이같이 생긴 것이 샐러드 위에 올려져 있었으니까. 헬레나는 그 모습을 보고 처음엔 장난이라도 치는 건가 싶었지만.


"어서 먹지. 이 시기가 아니면 먹기도 힘든 녀석이니까."


주드가 태연히 포크를 드는 모습에 뭐라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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