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9화 〉운명. (149/220)



〈 149화 〉운명.

"그 남자는 대체 언제부터..."


드발린과 대화를 나누고 밖으로 나온 헬레나는 생각하면 할수록 주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하다못해 제게 그런 힘이 있었다면."

헬레나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연금술사가 된 이유는 사샤가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마법사가 되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마법을 쓸  있는 마법사라는 건 출신을 불문하고 어느 귀족 못지않은 권력을 휘두르며 당대에 이름을 떨칠  있는 존재였으니까. 마법사가 될 수만 있다면 그 힘으로 영주에게 잡혀가버린 사샤를 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꿈꾸었었다.

하지만 마법사는 아무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마법을 사용할  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하는 불확실한 것이었기에 헬레나는  꿈에 매달리지 않았다. 연금술사는 마법사만큼은 아니더라도 대우받는 자들이었다. 부활시킨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마법사가 만들어낸 것이나 마찬가지인 학문을 이해하고  과정이 복잡하더라도 마법사를 아주 약간이나마 흉내 낼  있다는 건 대단한 것이었으니까.

실제로 드넓은 란투아에서도 인정받은 연금술사들은 헬레나를 포함해서 고작 20명도 안 되었다. 그럼에도 마법사보다는 못한 자들이었지만 적어도 마법처럼 불확실한 자격 같은 걸 요구하진 않았다. 적어도 이해할  있다면  수 있었으니까. 연금술사가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마법사가 될 수 없었다. 마법사보다 못했다. 그렇기에 사랑하게 된 소녀를 지킬  없다. 과거의 꿈이 지금의 그녀를 막아섰다.

"사샤.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무거운 발걸음으로 멍하니 걸어 도착한 곳은 죽은 나무와 끊어진 그네가 널브러진 공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그 아래에 놓여있는 분홍빛 꽃다발의 모습에 그녀는 인상을 구겼다.

"하, 정말 말이라곤 통하지 않는 자군요."

분명 오지 말라고 몇 번이고 경고했으며 몇 번이나 위협했던가? 그런데도 또 찾아와 이곳에 족적을 남긴 그가 짜증 나서 당장이라도 단검을 던져 맞추고 싶었다. 그녀는 마지막 날까지 추억을 더럽히는 꽃의 존재가 못마땅해 곧바로 다가가 주워들었다. 이곳은 헬레나와 사샤가 처음으로 만났던 장소였다. 결코 그 같은 자가 침범해서는 안 되는 곳이었단 말이다. 그녀가 그만큼 경고했으면 오지 말았어야  것이 아닌가?


평소였다면 그 꽃을 공터와 먼 곳에 던져버리든지 했겠지만 헬레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꽃을 공터에서 벗어나자마자 보란 듯이 땅에 던지고 그대로 발을 들어 있는 힘껏 짓밟고 뭉갰다. 꽃의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도록 밟고 나니 아주 약간이나마 속이 풀렸다.


"...그동안 어디에 있었냐?"


그때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그녀가 돌아보니 예의 그 자가 있었다. 애써 덤덤히 말하려고 하는 것 같지만 숨길 수 없는 참담한 얼굴에 그녀는 약간의 통쾌함을 느꼈다. 진작에 이랬어야 했는데. 그의 손에 꺾인 꽃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상으로 그에 대한 분노와 짜증이 컸다.


"당신이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녀의 말에 입을 다무는 그의 모습이 정말 꼴 보기 싫었다.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진작에 이곳에 찾아오지 않으면 될 일이 아니었는가? 어쩌면 다시는 이곳에 올 일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앞으로 당신의 얼굴을 볼 필요가 없다는 게 위안이군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헬레나가 그를 스쳐 지나가는 찰나 중얼거리듯 속삭인 말에 그가 그녀를 붙잡으려는 듯 손을 뻗었지만 그의 손이 헬레나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단검이 먼저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으니까.


"제 몸에 손 대지 마십시오. 당신이 닿는 것만으로도 오물에 닿는 것 같으니."


그는 목에 닿는 날카로운 느낌에 멈칫했지만 그럼에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자신과 말 하나 섞는 것조차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무슨 소리야. 제발. 나를 볼 일이 없다니!"

그가 목소리를 높이자 헬레나는 혀를 차며 마지막으로 친절을 베풀기로 했다. 어쨌거나 그 또한 추억의 일부였으니까. 설령 그 추억이 최악의 것이라 해도.


"곧 란투아를 떠날 예정이니까요."
"란투아를 떠난다니... 설마 연맹을? 어디야? 어디냐고? 루쿠코? 레비다프?"


루쿠코와 레비다프는 현재 구름 지대의 넘어가 아닌 란투아와 교류하는 국가들의 이름이었다. 란투아 연맹처럼 드넓은 땅과 수많은 인구를 보유하진 않았지만 뛰어난 군사력을 가진 나라들이다. 정말  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녀를 뒤쫓아올 생각인 것 같았다.


"그걸 제가 당신에게 말할 것 같습니까? 이제 정말 다시는 보지 않기를 바라죠."

헬레나는 괜히 더 다가오는 바람에 그녀의 단검에 배여 그의 목에서 스며나오는 피를 보고 뒤돌아섰다. 돌아가면 단검부터 꼼꼼히 닦을 생각이었다. 그가 갑작스레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면. 헬레나의 어깨를 붙잡은 억센 손길이 그대로 그녀를 벽에 처박았다.


"크윽!?"


지금까지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기에 방심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헬레나는 곧 자신이 그와 벽 사이에 갇힌 상태라는  깨달았다. 힘을 주어 그를 떨쳐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기본적인 힘이 그가 더 강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단검은 충격으로 놓쳐버린 상태였다.


"웃기지 마. 지금까지 그저 네 얼굴만 보겠다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장난해?!"


그가 헬레나의 온갖 모진 말을 견디면서 꿋꿋이 그녀를 만나러 왔던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헬레나를 좋아했다. 몬스터에게 부모님을 잃은 고아였지만 괴죄죄해도 예쁘장한 모습을 숨길 수는 없었기에 내심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그녀의 관심을 끌기란 힘들었다. 집에 같이 가자 거나 먹을 걸 준다고 해도  시큰둥했다. 꽤나 절박했을 텐데도.

그가 치마를 들춘다던가 작은 돌을 던진다던가 하는 심한 장난이 아니면 제대로 반응하는 일도 적었으니까. 하지만 유일한 예외가 있었다.

"그놈의 사샤, 사샤! 사샤!!"

사샤라는 여자아이는 언제나 로브와 함께 후드를 깊이 눌러쓰고 다니는 음침하고 기분 나쁜 여자아이였다. 사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여자나 여자아이들이 그렇게 다녔으니 이상하거나 기분 나빠할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사샤가 유독 거슬렸다. 왜냐하면 그에겐 늘 시큰둥했던 헬레나가 그녀만 곁에 있다면 어느 때보다 즐거운 모습이었으니까. 그가 먼저 헬레나를 만났는데 그가 먼저 헬레나와 친해지려 했는데 정작 헬레나가 마음을 준 것은 사샤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느 날 기회를 잡아 헬레나와 같이 다니던 사샤의 후드를 벗겨버렸다. 그 낯짝을 직접 보고 싶었으니까. 생각보다 너무나 예쁜 모습에 놀라긴 했지만  이후가 문제였다.  모습을 본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타서 사샤에 대한 것이 영주의 귀에 들어가 끌려가게 된 것이었다. 그는 그저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관심을 독차지한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 보고 싶었을 뿐인데.


"단순히 실수였어! 어릴 적의 실수였다고!"


그마저도 이미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것 때문에 나는 너에게 10년이 넘도록 죄인 취급받으면서 살아왔는데. 떠난다고!?"

심지어 사샤는 다음 대의 영주와 결혼하여 행복해지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는 왜 아직도 그 일로 괴로워하고 있어야만 하는가?

"이제 좀 받아줄 때도 됐잖아?"


그는 이제 한계였다.

"이래서 당신이 싫다는 겁니다."

그러나 헬레나에게서 돌아오는 건 그에게 일말의 관심조차 없는 무심한 눈과 싸늘한 말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뚝 끊어졌다.

"아아, 그래? 그럼 내가 네 처녀를 가져가도 그렇게 있을  있나 보자."

그는 곧바로 헬레나를 바닥에 쓰러트리듯 눕혔다. 이 골목의 위로 지붕이 덮여 있어 이곳의 땅이 젖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쉽게 그의 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평소 워낙 날카롭고 매서운 모습이라 힘으로 이길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는데. 그는 그녀를 눕힌 그대로 치마를 들추었다. 다시 영주성에서 일하기로 했는지 하녀복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생각보다 그녀의 저항은 적었다.

"사실 너도 나한테 이런 일을 당하는  기다리고 있었던 거 아니야?"

그가 순조롭게 헬레나의 속옷까지 치마 아래로 벗겨내자 어느새 그녀의 머리카락처럼 분홍빛의 수풀이 자라난 은밀한 균열이 있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긴 했다고 생각하며 그는 슬쩍 바지를 내려 자신의 물건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헬레나의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의 균열에 갖다 대었다. 저항이 없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그대로 허리를 눌렀고 그의 것은 그대로 헬레나의 안으로 먹히듯 파고들었다.

"으큿!"

헬레나의 짧은 비명과 함께 질척한 느낌이 그의 물건을 감쌌다. 무척 뻑뻑하고 힘들었지만 오래도록 기다려온 감각이었다. 그 감각을 만끽하기 위해 한동안 가만히 있으니 그의 물건을 통해 그녀의 맥박과 뜨뜻한 체온이 그대로 전해져오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처음을 확인하기 위해 그녀와 이어진 곳을 확인하는 순간 그는 굳을 수밖에 없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곳에는 한줄기 핏자국조차 찾을 수 없었으니까.


"이게 대체."
"당신이 제 그곳을 확인했던  오래전의 일인데. 당신은 아직도 저를 그때의 저라고 생각하는군요."

헬레나는 그를 비웃었다. 그녀는 이미 처녀가 아니었으니까. 란투아에서 인정받은 연금술사는 20명도 되지 않는다. 그만큼 어렵고 대단한 학문이었으니까. 연금술을 배우려면 근처의 연금술사에게서 배우는 수밖에 없는데 그저 배우는 것만으로도 매우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게 연금술이란 학문이었다.

"제가 어떻게 연금술을 배울 수 있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연금술을 배웠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헬레나는 고아였다. 몬스터에게 부모님을 잃고 거리를 떠돌다 간신히 친구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아 살아가고 있었던. 그런 그녀가 대체 어떻게 연금술 같은 학문을 배울  있었을까?


"설마."


그의 생각이 정답이라 말하듯 그녀의 웃음이 진해졌다.

"운이 좋았지요. 당시에 연금술사 한 명이 근처에 살고 있었으니까요."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헬레나는 사샤가 잡혀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찾아갔다. 가진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절박한 마음 하나만으로 그에게 매달렸다. 무엇이든 할 테니 연금술을 가르쳐 달라고 말이다. 그는 처음에 난색을 표하다가도 헬레나의 얼굴을 보더니 제안했었다. 정말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할  있냐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대로 그의 집에 이끌려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일을 겪었지요."

그녀는 그제야 처음으로 성에 대한 것을 그 연금술사로부터 배웠다. 성년이었던 그녀가 모르는 것이 이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주변엔 그녀가 그 사실을 모른다는  모르거나 알고도 모르는 척한 이들 밖에 없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희롱하는 건 재미있으셨습니까?"
"그, 그건!"

그는 헬레나를 종종 골목으로 이끌고 들어가 그녀가 입은 넝마에 가까운 원피스를 들게 시키고 그녀의 아래로 고개를 들이밀곤 속옷을 벗기고 그녀의 균열을 벌리며 때로는 그곳을 핥기도 했었다. 씻어주는 것이라 주장하며 때로는 혀나 손가락을 집어넣고 안을 희롱했다. 그리고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두 깨달았을 땐 이미 연금술사의 정을 한가득 받아낸 뒤였다.


"그 또한 어릴 적의 실수라 주장하실 생각입니까?"


헬레나는 이후로 달마다 피임 효과가 있는 약초 잎을 씹어삼키며 연금술사의 것으로 살았다. 밥을 먹을  그는 먼저 그녀에게 자신의 물건을 핥고 빨게 하며 그의 것을 먹인 뒤에 식사를 시켰다. 연금술을 가르침 받을 땐 꼿꼿이 선 그의 자지를 그녀의 보지 속에 넣은 채로 가르침을 받았다. 때때로 그녀의 안쪽을 채우는 정을 받아들이면서. 씻을 때는 그의 시중을 들며 그의 몸을 핥았다. 잠을  때도 그의 물건을 집어넣은 채였다.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그는 그녀에게 물건을 꽂아 넣은 그대로 허리를 흔들었다. 지독한 쾌감이 자신을 물고 놓아주질 않는  같아서 그는 멋대로 허리를 움직였다. 그녀의 커다란 가슴을 쥐고 마음껏 희롱했다. 그리고 끝내 허리를 꾹 눌러 그녀의 안쪽에 정을 털어놓았다.


"저는 대체 무엇을 해야 했던 걸까요."

모든 일이 끝나고 헬레나는 옷을 추스르며 골목 벽에 기대어 앉아 혼이 빠진 듯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그를 한 번 바라보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상처만이 가득한 최악의 추억은 다시 떠올려도 최악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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