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운명.
헬레나가 그의 물건을 얼마나 빨고 있었을까? 그녀는 혀에 닿는 물건의 육질과 그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비릿한 맛이 도저히 익숙해질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그의 물건을 머금고 있었다. 어찌나 열심히 빨았는지 주드가 헬레나의 입에서 물건을 빼냈을 땐 약간 말라 보일 지경이었다.
"큭, 아가씨의 보지에 들어갔던 것이라고 꽤 정성스럽지 않나? 음탕한 년 같으니."
헬레나는 주드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어서 그녀는 그의 시선이 자신의 몸에도 머무르는 것을 느꼈다. 이 자는 벨카만으로도 모자라 헬레나까지 탐하려는 것이었다. 그녀가 체념했을 때.
"헬레나!"
문밖에서 희미하게 그녀를 부르는 도나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방에 그녀가 있다는 건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헬레나를 찾는 목소리에 그녀를 오래 붙잡아둘 순 없다고 생각했는지 주드는 혀를 찼다.
"쯧, 어쩔 수 없나. 오늘은 이 정도로 끝내도록 해야겠군."
이어서 대충 벗어두었던 옷을 입고 헬레나가 걸어두었던 로브를 뒤집어썼다.
"사흘이다. 사흘 안에 파르즈로 출발할 준비를 마쳐라."
그리고 그런 말을 남기고는 사라져버렸다. 채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벨카와 헬레나를 내버려 두고서. 잠깐의 침묵을 끝으로 헬레나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소녀를 안아 올려 침대에 눕히는 것이었다.
"뒷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아가씨께서는 쉬고 계시길."
"응."
벨카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희미하게 답하는 모습을 보며 헬레나는 다짐했다. 그래, 이 일은 도나르에게 들켜선 안 되는 일이었다. 헬레나는 겉으로나마 연금술사로서 마법사인 주드와 아는 사이어야만 하니까. 그렇기에 호의를 살 수 있었던 것이어야 하니까. 아래로 내려가 버린 속옷과 하녀복을 바로 했다. 그래봤자 마법사를 데리고 오느라 흙탕물을 뒤집어쓴 상태 그대로였지만. 그녀가 방을 나오자 저 멀리 그녀를 찾는 듯 돌아다니는 도나르의 모습이 보여 다가갔다.
"헬레나!"
"부르셨습니까?"
"깜짝이야!"
뒤에서 그를 부르자 놀라며 뒤돌아보는 그.
"거참. 어디 있었냐?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던데."
"말투는 언제쯤 고치실 생각이신지부터 묻고 싶습니다만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그게 자연스럽게 되겠냐고. 아무튼 그 마법사라는 양반 믿을 만한 거지?"
순간 주드에 대한 진실이 그녀의 턱 끝까지 치밀었지만 그녀는 참아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소녀가 자신의 몸마저 바치며 어셔를 지키려 한 노력이 무의미한 것이 돼버릴 테니까.
"예, 마법과 연금술은 꽤나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으니. 우연찮게 인연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아직도 그의 씨물을 뒤집어썼던 가슴과 물건을 머금었던 입안에 역한 냄새가 남은 것 같아 도나르와 말하는 내내 신경 쓰였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그러냐. 그럼 믿고 맡겨도 되겠지."
도나르는 헬레나의 말에 납득한 것 같았다. 그 사실에 복잡한 감정을 삼키고 주드가 일방적으로 통보했던 일정을 알렸다.
"사흘 안에는 출발해야 합니다."
"뭐? 너무 빠른 거 아니냐?"
그가 당황했지만 헬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병을 억제하고 있긴 하지만 환자가 언제까지 버텨줄지 알 수 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출발하는 게 옳습니다."
사실 그녀가 보아도 너무 갑작스러웠으나 어쩔 수 없었다. 주드는 이미 사흘 뒤에 출발할 것이라 이야기했으니까. 그래도 헬레나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녀가 만든 약으로 간신히 병의 진행을 억제하고는 있었지만 앓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환자는 버틸 수 없게 될 테니. 하지만 그것을 변명거리로 삼았다는 것이 더 괴로웠다.
"구름 지대를 통과한다고 해도 언제쯤 파르즈에 도착할지 모르니 말입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도나르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다 입을 열었다.
"한 달이다."
"그게 무슨."
"파르즈에 들러 본 적이 있어서 알고 있어. 한 달이 좀 넘긴 하지만 힐디스비니를 타고 달리면 그쯤일 거다."
그의 말에 헬레나는 그가 란투아 출신이 아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저 타국의 기사겠거니 생각했었는데.
"구름 지대를 건너오셨던 겁니까?"
"그래, 나의 고향은 파시페니아니까."
"파시페니아라면. 기사국이라 불리는?"
헬레나도 알음알음 들어본 적은 있었다. 먼 옛날 란투아는 저 구름 지대 너머의 나라들과도 자주 교류했었다고 하니까. 구름 지대를 사이에 두고 대체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었나? 그 이유는 불과 120년 전까지만 해도 구름 지대는 란투아의 동쪽이 아닌 서쪽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름 지대에 대해 연구하던 같은 연금술사가 그런 연구를 발표한 적이 있어서 헬레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란투아의 오래된 영지들에 간혹 버려지거나 다른 건물로 활용되고 있는 성당들과 서쪽으로 가면 보이는 소금물로 이루어진 넓은 늪지대가 그것을 증명했다.
"그것도 다 옛말이지만."
도나르의 쓴웃음을 지켜보다 헬레나는 말을 이었다.
"그것을 말씀하시는 저의는 무엇입니까?"
"구름 지대를 건넌다 쳐도 파르즈까지 가는 동안 마실 물과 식량들은 어쩌려고? 사흘이면 너무 빠듯하다고."
그녀는 그의 말에 생각하는 척 눈을 감았다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환자를 마차에 태우고 옮겨야 할 텐데 또 무슨 변수가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럼, 정말 어쩔 수 없나."
헬레나는 타들어 가는 속을 그저 삼켰다.
"그럼 내일은 잠시 본영지에 다녀오겠습니다."
"무슨 볼 일이라도 있냐?"
"예, 제가 미처 챙겨오지 못한 물건이 몇 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도나르에게서 돌아서서 벨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문을 두드리며 방에 들어서자 소녀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헬레나가 그녀를 눕혀준 상태에서 달라진 것이 없어서 생기라곤 없는 인형 같았다. 흐릿한 금빛도 그런 소녀의 모습을 부추겼다. 헬레나는 이를 꽉 깨물다 말을 걸었다.
"목욕, 하시겠습니까?"
"응."
그녀들은 헬레나의 방으로 돌아갔다. 빈 방에는 몸을 씻을 도구와 용품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그녀들은 옷을 벗고 함께 욕실로 들어갔다. 소녀의 하얀 피부에 조금씩 남은 붉은 상흔에 헬레나는 분함을 애써 삼키면서도 목욕을 시작하려 했을 때 벨카가 욕실 바닥에 주저앉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 문제라도 생긴 것일까? 싶었을 때 소녀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이걸 빼낼 방법이 있을까...?"
헬레나는 곧 발견할 수 있었다. 벨카가 손으로 자신의 균열을 벌리자 그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허여멀건 백탁액을. 그 자가 소녀를 범했다는 증거가. 그녀는 왈칵 쏟아져 나올듯한 감각을 겨우내 참으며 그녀를 껴안았다.
"제가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안심하고 몸을 씻으시길."
그렇게 그녀들은 몸을 씻었다. 입안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듯한 역한 냄새를 지우고자 몇 번이고 입안을 헹궜다. 밤이 다가올 때까지.
"아이들과 사흘 뒤에 떠난다는 게 사실인가요?"
어셔를 돌보기 위해 그의 방으로 간 헬레나는 도나르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는지 불안한 얼굴로 묻는 시프와 마주쳤다. 헬레나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예."
"그럴 수가. 다른 방법 같은 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진작에 해결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렇게 시프와 교대하려 했을 때였다.
"그럼 그동안은 제가 어셔를 돌봐도 될까요?"
"하지만 그건."
헬레나는 그녀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말리려 했지만.
"어쩌면 오랫동안 못 볼 수도 있으니까. 적어도 같이 있는 동안은 더 돌봐주고 싶어요."
그 말을 듣고 물러났다.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원래라면 책상에 앉아 연구를 하거나 병의 치료법을 찾아보았겠지만 오늘은 그럴 이유도 그럴 마음도 들지 않아 잠깐 책상을 바라보다 천장만 바라보았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빗소리만 듣고 있었을 무렵이었다. 문득 벨카가 떠오른 것은. 이후 그녀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벨카의 방으로 향한 것은 한순간의 충동이었다.
"읏, 헬레나?"
그리고 방문을 두드리고 문을 열자 그녀가 볼 수 있었던 건 밤이 깊었음에도 잠들지 못한 붉은 소녀였다. 헬레나가 찾아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듯 그녀를 바라보는 금빛에는 당황과 물기가 가득했다.
"아직 주무시지 않으셨군요."
헬레나는 소녀의 볼을 타고 흐른 빗물의 흔적을 모른 척 그녀에게 곁에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그녀들의 사이를 채우는 건 여전히 비가 내리는 소리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먼저 입을 연 건 벨카였다.
"...있잖아. 헬레나는 어째서 나를 사랑하는 거야?"
"궁금하십니까?"
"응."
헬레나는 소녀의 금빛과 마주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사실을 말한다는 것이 두려웠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털어놓기로 했다.
"처음 눈에 띈 건 당신께서 사샤를 닮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샤라면. 메아의?"
"알고 계셨군요."
그녀는 쓰게 웃었다.
"그래서 자꾸만 시선이 갔습니다. 당신을 보고 싶었습니다. 보다 보니 자꾸만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이렇게..."
헬레나는 손을 뻗어 소녀의 손을 잡았다.
"마주하고 손을 잡고 싶었습니다."
그뿐이었다.
"그저 당신께서 그녀를 닮았기에 저는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한심하지 않습니까?"
기분 나쁘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벨카에게 거부 당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심하지 않아. 고마워. 나를 사랑해 줘서."
"...제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벨카가 고개를 젓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소녀는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어루만져 주었다.
"이상하지 않아. 미안해. 헬레나의 마음에 보답할 수 없어서."
"그건. 슬프군요."
"응, 나도 마찬가지일 거야."
아아, 저는 정말 당신을 사랑하는 거였군요. 이번에도 그녀의 사랑은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다. 그래도 헬레나는 그녀를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을 저버릴 수 없어서.
"한 번만, 한 번만 안아도 되겠습니까?"
"응."
헬레나는 벨카를 껴안았다. 정말이지 작고 여린 소녀였다. 그저 이대로도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를 품에 안으니 또 욕심이 생겼다.
"이대로 같이 자도 괜찮겠습니까?"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 헬레나는 눈을 감았다. 그렇게 그녀들은 불안한 밤을 잠시나마 잊고 서로를 안은 채 따스함 속에서 잠들었다.
"정말 사흘, 아니, 이틀 뒤에 출발하려는 거냐."
"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다음날. 벨카와 헬레나는 이른 아침부터 바빴다. 헬레나가 미처 챙기지 못했던 물건들을 가지러 가기 위해 본영지에 들려야 했으니까.
"그런데 설마 진짜로 배를 타고 가야 할 줄이야. 작년에는 나갈 일이 없어서 못 봤는데."
그녀들을 배웅하러 나온 도나르가 어느새 물바다가 되어버린 란투아의 들판을 보며 감탄했다. 헬레나에겐 익숙한 광경이었지만 그에겐 낯선 풍경이었나 보다. 배 위에 서있던 뱃사공이 넉살 좋게 웃었다.
"란투아에선 흔합니더."
"그러고 보니 초록 난쟁이입니까?"
온몸을 낡은 천으로 둘둘 싸맨 뱃사공은 겉으로 보면 평범한 난쟁이 같았지만 언뜻 튀어나온 콧잔등은 초록빛이었다.
"아이고, 말씀 낮추십셔. 이때 아니면 지들이 언제 철전 구경을 해보겠습니꺼?"
도나르는 그를 바라보다 주머니를 내밀었다.
"여기 받으십시오."
"이, 이게 뭡니꺼?"
주머니의 안을 본 그는 화들짝 놀라 도나르를 보았다.
"뱃삯입니다."
"하지만 뱃삯은 기껏해야 철전 2전임더."
"그냥 잘 부탁한다는 뜻이니 받으십시오."
그는 도나르의 눈치를 보다 주머니를 챙겨 넣었다.
"그런데 정말 호위가 없어도 괜찮겠냐?"
도나르는 그녀들만 본영지에 갔다 오는 것이 불안한 모양이었다. 헬레나는 그의 마음을 알고 손에는 단검을 들고 등에 맨 커다란 가방을 보여주었다.
"예, 여차하면 저 혼자서도 대부분은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그, 그러냐."
마법사 같은 괴물이 아닌 이상에야. 그녀는 그 말만은 속으로 삼키고 뱃사공을 재촉했다.
"이제 출발하시죠."
"흐익, 알겠심더!"
뱃사공은 번뜩이는 단검을 보고 지레 놀라 기겁하면서도 나룻배의 뒤에 매달린 노를 잡고 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