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비를 맞으며.
그가 방의 배치를 깨달았을 때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지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영주의 딸일 텐데 그녀의 방을 그들의 방 사이에 끼워 넣다니 말이다. 아니라면 영주와 그의 가족이 같은 방을 사용하는 건가 싶었다. 그래도 설마 영주와 그의 가족인데 무슨 일을 벌이겠느냐고 생각했다. 허튼짓을 벌였다가 들키면 보통 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형은 기본일 테니까. 그가 떠오르는 생각들을 구석으로 밀어내고 침대에 누워 있으니 날은 금세 어두워졌다.
"...!"
"뭐지?"
막 촛대에 불을 붙였을 때였다. 생각보다 벽이 얇은 것일까? 복도에서부터 희미하게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목소리는 남자의 것 두 개와 여자의 것 하나. 자세히 들어보니 영주와 그의 아내 그리고 퍄랴르의 것이었다. 그는 좀 더 집중해서 말소리를 귀에 담았다.
"날도 어두우니 오늘 밤만이라도 묵고 가시는 게 어떠십니까?"
"이렇게 어두우면 힐디스비니도 별 수가 없으니. 오늘 하루만 신세 지겠습니다."
퍄랴르의 말에 떨떠름한 듯 답하는 영주.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따님 방과는 일부러 한 칸 떨어트려 배정했으니 밤 일은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 그렇게까지야."
그리고 이어지는 퍄랴르와 시프의 목소리. 설마 저런 식으로 배려하는 척 자연스럽게 방을 떨어트려 놓은 이유를 만들 줄이야. 이후로도 무어라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의 방에서 멀어졌는지 그 이상의 말들은 희미하게 들렸다. 그리고 멀리서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잠깐의 침묵. 이내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소리에 그는 벽에서 귀를 떼고 문을 바라보았다.
"흠, 바보처럼 잠들지는 않았구나."
아니나 다를까 퍄랴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음침하게 웃으며.
"하긴 너도 남자라면 잠들 리가 없겠지. 자, 조금만 더 기다리고 있거라."
그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그는 다시 나가버렸다. 퍄랴르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그는 가만히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심심할 것 같은데도 묘한 긴장감 때문에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가 세세하게 들려와 심심하진 않았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익숙해졌을 즘이었다. 문득 그 소리 사이에 이상한 소리가 섞여든 건. 지금까지 들려온 빗소리와 달리 물이 흘러가는 듯한 소리가 바로 근처에서 들려온 것이다.
그리고 그 소리는 분명 소녀의 방과 맞닿은 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차라리 그 소리가 들리는 것이 전부였다면 그가 벽으로 다가갈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소리는 단순히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치고 너무 선명했다. 그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 벽을 보았을 때. 벽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보다 낮은 위치에 사람의 눈처럼 빛나는 것 두 개가 보였으니까.
그가 홀린 듯이 그 구멍에 눈을 가져다 대면 소녀의 나신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여린 곡선을 그리는 소녀의 몸을 타고 물이 흐르고 작은 손으로 자신의 몸을 문지르며 하나하나 닦아내는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만지면 그대로 흔적이 묻어날 듯한 눈송이처럼 여린 피부를 타고 움직이는 손이 가슴을 스치고 다리를 들어 종아리를 문지른다.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에 드러나는 모습은 미치도록 아름답고 뇌쇄적이었다.
그러나 작은 구멍을 통해서는 그 모습을 전부 눈에 담을 수 없어서 갈증과도 같은 열망이 계속 샘솟았다. 이 구멍의 용도는 역시. 그리고 그때 전조도 없이 문이 열렸다. 아니, 그가 단순히 소녀의 모습에 집중하느라 발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구멍을 통해 소녀를 훔쳐보던 그를 발견한 퍄랴르가 피식 웃었다.
"역시 보고 있었구만."
"이건..."
"좋은 풍경이지 않으냐? 자, 조금만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저 아름다운 아가씨를 네 것으로 할 수 있다고?"
그는 그의 말이 함정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아무 말 없이 더 깊은 밤이 찾아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벽의 구멍을 통해 본 소녀의 모습은 기꺼이 함정에도 몸을 던질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미끼였으니까. 이윽고 빛 하나 들지 않는 깊은 밤이 찾아왔다.
"자, 따라오너라."
그는 퍄랴르를 따라 소녀의 방앞에 섰다. 자신이 꿀꺽 침을 넘기는 소리가 방문 너머로도 들릴까 걱정스러울 지경이었다.
"걱정 말거라. 네가 구해온 약초로 향도 피워 놓은 상태이니 분명 잠든 상태일 테니."
그는 뒤늦게 그가 구해오라던 약초 중에서 수면을 유도하는 것들이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보통은 치료를 위해 사용하는 것들이지만 잘 조합하면 저도 모르게 잠에 들어 깨어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들. 그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문을 열었을 때.
"당신들은...?"
생각과는 다르게 깨어있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그가 당황으로 굳어있는 사이 퍄랴르는 자연스럽게 소녀에게 다가갔다.
"이런 미안하구나. 이 방에 깜박하고 놓아둔 물건이 있어서 네가 잠든 사이에 들고 나오려던 게 그만."
불순한 의도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다가간 그는 정말 두고 간 물건이 있었다는 듯 침대의 아래에서 무언가 꺼내더니.
"실례하겠구나!"
"우읍?!"
그대로 소녀의 입을 막고 침대 위에 찍어눌렀다.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을 만큼 난폭한 행동. 소녀가 뒤늦게나마 몸부림치며 그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힘껏 붙잡기만 해도 부러트릴 수 있을 것처럼 가녀린 팔다리로는 키가 작은 난쟁이라 해도 체격이 좋은 퍄랴르에게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그녀가 몇 번이고 팔과 다리를 휘둘러 그를 치며 떨쳐내려 했지만 그 발버둥조차 무의미하게 그의 다른 손에 붙잡혔다.
"무얼 보고만 있느냐? 얼른 돕거라!"
그는 퍄랴르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얼떨떨하게 그의 곁에 서니 퍄랴르가 밧줄을 내밀었다. 그가 들고 들어온 적이 없는 밧줄은 분명 침대 밑에서 꺼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충동에 휩쓸려서 퍄랴르가 원하는 대로 소녀의 손을 묶어 침대 기둥에 따로 묶고 두 발목에도 밧줄을 감아 역시 침대 기둥에 묶었다. 그러자 발버둥조차 칠 수 없게 된 소녀의 입을 막던 퍄랴르가 만족스러운 듯 그녀의 입을 누르던 손을 떼어냈다.
"흐흐, 비명을 질러도 소용없을 게다. 네 아비와 어미가 깊이 잠든 걸 확인하고 온 거니 말이다."
아마 이 소녀를 재우려 했던 방법과 같은 방법을 사용한 것 같았다.
"어째서? 어째서 이런 짓을?"
소녀의 금빛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있었다.
"어째서냐고? 그야 당연하지 않으냐?"
퍄랴르는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소녀의 원피스 앞섬을 잡더니.
"읏!"
"이렇게 매력적인 암컷이 있는데! 기회가 있을 때 범하지 않으면 그게 남자냐?!"
그대로 잡아뜯었다. 그러자 드러나는 건 벽의 구멍을 통해 보았던 것처럼 투명하고 맑은 소녀의 살갗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위아래로 있는 속옷들이 소녀의 소중한 곳들이 드러나지 않도록 발악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손발이 묶인 지금 그마저도 하찮아 보였다.
"오오, 역시 절경이로구나. 처음 보았던 날부터 벗겨먹는 맛이 있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말이다."
그 모습이 퍄랴르를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으니 오히려 그에게 범해 달라 재촉하는 꼴이었다. 퍄랴르는 곧 소녀의 명치 아래에서부터 가슴골까지 혀를 대고 천천히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읏, 으으, 아!"
소녀의 입에서 비명이며 절규와도 같은 신음이 흘러나오지만 그 소리를 들어줄 이들은 지금 잠들어 있거나 존재하지 않았다. 이 저택에 고용된 이들은 당연히 돈을 받고 일하는 이들이었으니까. 퍄랴르의 혀는 결국 그대로 타고 오르며 소녀의 봉긋한 언덕을 가리던 천을 들어냈다. 이내 드러난 그 먹음직스러운 과실과도 같은 모습에 그의 시선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당장이라도 베어 물고 싶은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으읏!"
그 감상은 그만의 것이 아니었는지 퍄랴르가 입을 한껏 벌리고 쩌업쩌업 소녀의 한쪽 가슴을 전부 삼켜버릴 듯 굴며 빨았다. 그리고 남은 한쪽의 가슴마저 굳은살이 가득한 손으로 꼭 쥐며 그 끝에 매달린 분홍빛 열매를 굴렸다.
"흐윽, 제발... 그만."
소녀의 목소리가 끊어질 듯 방안을 울리지만 그런 말 탐욕스러운 난쟁이가 들어줄 리가 없었다.
"아윽!"
오히려 더 자극받았는지 거친 손길로 소녀의 하반신을 가리던 속옷마저 손으로 잡아당겨 끊어버렸다. 그리고 드러난 균열의 모습에 그는 부풀어 올랐던 자신의 물건이 이끌리듯 바지 속에서 껄떡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소녀의 가장 은밀한 곳임에도 작은 도끼 자국처럼 도톰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살점의 꽃잎이 그 사랑스러움만큼은 도저히 감출 수 없는 작고 귀여운 곳이었다.
"흐그으."
퍄랴르는 그런 소녀의 균열을 손가락으로 헤집으며 들어가 안쪽을 긁다 참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물건을 꺼내들고 소녀의 배 위에 올라탔다.
"끄으윽."
소녀가 숨이 막히는 듯 앓았지만 퍄랴르는 그녀의 봉긋한 언덕을 두 손으로 쥐며 놀리듯 주물 거린다.
"흐흐흐, 사실은 너를 맛보기 전에 영주의 아내부터 맛보고 너는 느긋하게 즐길 예정이었는데 말이다. 이 모자란 놈이 너를 탐내더구나."
그는 그의 말에 눈을 부릅뜨고 퍄랴르를 보았다.
"예정대로 진행했다간 이놈이 너를 실컷 맛본 뒤에야 내가 쓰게 될 것 같아서 예정을 변경했다. 그 건방진 년이 오지 않은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퍄랴르는 보란 듯이 자신의 흉물로 소녀의 균열 위를 문질렀다. 그대로 넣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놀리듯이 그의 자지 끄트머리가 소녀의 꽃잎을 살짝씩 파고들었다 흘려나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소녀의 물기 어린 금빛과 마주쳤을 때 그는 더 이상 그녀의 슬픔을 외면할 수 없었다.
"자, 마음껏... 컥!?"
그의 흉물이 소녀의 꽃잎을 파고들려는 순간 그는 퍄랴르의 목을 팔로 휘감아 그대로 잡아당겼다. 퍄랴르는 목이 어떻게든 숨을 쉬어보고자 발버둥 쳤지만 그가 아무리 체격이 좋다 해도 난쟁이는 난쟁이. 인간인 그에게 이런 식으로 잡히면 힘이 강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의 움직임이 점점 더 격해질 때쯤 그는 목을 조르던 팔을 놓았다.
"크억! 컥! 끅!"
그는 무어라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모자란 숨을 보충하느라 말로 내뱉지 못하고 그의 발에 차여 구석으로 밀려났다. 이내 축 늘어졌지만 숨을 쉬는 듯 가슴께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니 기절한 것 같다.
"...."
퍄랴르의 상태를 확인한 그는 여전히 묶여있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목욕할 때 벽을 통해 그에게 보여주었던 새하얀 나신 그대로였다. 손발은 침대에 묶여 있으며 퍄랴르가 소녀의 몸을 가지고 논 흔적이 그대로 남아 번들거리며 촛불의 빛을 반사하는 살갗까지. 퍄랴르 대신 그가 이 소녀를 범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어느 누가 이런 무방비하다 못해 무력한 소녀를 범하지 않고 넘어갈쏘냐?
그가 이대로 그녀를 범하고 퍄랴르에게 뒤집어 씌워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가 소녀가 묶인 침대에 올라타자 그녀는 바들바들 몸을 떨며 겁을 먹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렇게 안쓰럽고도 가녀린 소녀일까. 그는 소녀의 여린 팔을 잡으면서 그녀의 손을 묶고 있는 밧줄을 풀어주었다. 이내 커다랗게 떠지는 금빛에 톡톡 터지는 듯한 놀람을 담은 감정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퍄랴르의 말대로 그가 이 사랑스러운 소녀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인데. 어찌하여 그 기회를 허망하게 날려버리는가? 그건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감정이며 변덕이었다. 그저 소녀가 슬퍼하고 아파하는 모습이 싫어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저질러 버렸다.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기회였는데도 말이다. 결국 소녀의 몸을 묶고 있던 모든 밧줄을 풀어냈을 때. 침묵이 그들의 사이를 채웠다.
퍄랴르는 기절한 상태에 소녀는 마구잡이로 찢겨버린 옷을 입지도 못하고 이불로 간신히 몸만 가렸을 뿐이다. 그는 분명히 그녀를 구했지만 소녀에게 품고 있었던 자신의 음심을 퍄랴르에게 폭로당한 상태였다. 그는 그녀를 볼 면목이 없었기에 지독한 침묵 속에서 기절한 퍄랴르의 뒷덜미를 붙잡아 이끌며 밖으로 나가려 했을 때였다.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저기, 고마워..."
그에 놀라 뒤돌아보면 차마 안쓰러우리만치 떨리는 몸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어둠 속에서 올곧게 빛나는 금빛으로 그를 향해 미소 짓는 소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