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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화 〉골목을 따라서. (115/220)



〈 115화 〉골목을 따라서.

매일 같이 산책을 다녔다. 시간이 있으면 시간이 나는 대로 시간이 없다면 억지로나마 시간을 쪼개어서. 다른 이유 같은  없었다. 단지  그 자리에 있을 그녀를 보고 싶었다. 만나고 싶었다. 그런 이유만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그가 기사들을 따라 훈련을 시작했다. 성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녀를 더욱 많이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아서.

"오늘은 안 우냐?"
"읏, 내가 매일 울기만 하는 건 아니거든!"

그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일이 많아지자 성의 뒤편만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그녀와 종종 마주칠 수 있었다.

"오늘은 뭐해?"
"청소하고 있잖아. 방해되니까 비켜."


그럴 땐 그녀가 하녀의 일에 집중하고 있는 일도 있었지만.

"야! 너 거기 안 서!? 빗자루 내놔!"
"약 오르면 뺐어 보던가!"

다른 이들은 이미 일을 다 끝냈음에도 골렘처럼 같은 일만 반복하는 그녀의 물건을 빼앗아 달아나기도 하고.

"그, 안녕."
"안녕."


때로는 할 말이 없어 어색하게 인사만 주고받고 헤어 지기도 했다. 할 일은 더욱 많아지고 힘들어졌지만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다.


"어제는 정말 바빴다니까."
"흥, 누가 뭐라고 했어?"

가끔은 정말 바빠서 만날 수 없는 날도 있었지만 그럴 땐 다음날 찾아가면 삐져있는 그녀가 곤란하기도 했다. 그래도  모든 것이 즐거웠다. 서로의 시간이 남으면 그들은 성의 뒤편에 모여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요즘엔 너무 더워. 가만히 있어서 땀이 나는데 움직이기 싫어."
"나도 땀이 나는 건 싫지만 너는 휴가 받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응."


그가 실수라도 한 것일까? 그래도 대화하는 동안 밝았던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모습에 그가 아차 하며 입을 다물자 싸늘한 바람이 그들 사이를 스쳤다. 결국 그날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두운 표정의 그녀를 보내주어야만 했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에도 그녀를 만났지만 좀처럼 기운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에 그는 그녀를 위해 계획을 짰다. 어차피 바빠진 공부를 하고 남은 시간에는 그녀와 만나느라 놀러나간지도 오래되었으니까.


"그 말 진짜야?"
"진짜라니까."

그는 그가 생각했던 방법을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 방법이란 그와 함께 시찰을 나가는 것이었다. 사실상 놀러 다니는 것뿐이지만 집에 잠깐이나마 가길 원하는 그녀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덕분에 잠깐이나마 밝아졌던 그녀의 얼굴도 잠시 다시 어두워지는 그녀의 표정에 당황했다.


"아니야. 돌아가도 받아주지 않을 거야."
"받아주지 않는다니?"
"그러니까 혼자서 다녀와. 나는 여기 있을 테니까."


그녀는 그의 권유를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놓아줄  없었다.


"네가 안 가면 나도 안 갈 거야."
"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싫어. 뭔지 몰라도 집에 갈 수 없는 거지? 그러면 잠깐 나갔다 온다고 생각하고 같이 나가자. 안에만 있으면 답답하잖아?"
"아."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가 손을 잡고 이끌자 저항 없이 이끌렸다. 그는 그녀가 덥다고 이야기했을 때부터 같이 가고 싶다고 생각한 곳이 있었으니까.


"여기는."

그녀는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랐는지 멍하니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곳은 풀이 무성한 들판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영지의 성벽이 시야를 가리고 있다는 게 흠이지만 그래도 넓은 들판과  트인 하늘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호수라고 하는 거래."
"호수?"

이곳저곳에 크고 작은 웅덩이처럼 고여있는 호수였다. 그중에서도 제일 커다란 호수가 바로 그들의 앞에 있었다. 그녀가 멍하니 보고만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렇게 고여있거나 땅을 흐르는 물을 찾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구름 지대를 끼고 있는 란투아에는 이런 웅덩이가 상당히 많았고 이런 곳을 바탕으로 이곳에 여러 국가가 생겨나고 연맹이 생겨났다.

"만져볼래?"

그가 먼저 호수에 손을 담그자 그녀도 호기심을 느끼고 다가왔다.


"시원해!"
"그치?"

드디어 표정이 풀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웃었다. 그러다 갑작스레 얼굴을 덮친 물벼락에 그가 멍하니 있자 깔깔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그에게 손으로 물을 퍼 날린 것이었다. 처음엔 그녀가 뿌리는 물을 맞기만 했지만 뒤늦게 그도 그녀처럼 물을 뿌려 반격하다 보니 어느새 그들은 호수 안으로 들어와 놀고 있었다. 그때만큼은 그저 둘만이 이 세상에 남은  같았다. 저녁노을이  때쯤에야 그들은 지쳐 들판에 누웠다.

"고마워."
"뭐가?"
"그냥 이것저것."

그의 옆에 나란히 누워있던 그녀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어 옆을 보면 그녀의 새하얀 옷이 물에 젖어 맨몸이 비친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몸을 적시고 있던 물이 전부 말라버린 것 같았다. 아래로 내려가려던 시선을 막고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그제야 그녀를 이곳에 데리고 오면서 하고 싶었던 말이 떠올랐다. 너무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잊고 말았던 것을 자책하며 근처를 둘러보니 다행히 몇 개가 피어있는 모습이 보여 다가갔다.

"왜 그래?"

그녀는 갑자기 혼자서 일어나 어디로 가는 그를 이상하게 보았지만 그는 바로  일을 마치고 그녀에게 방금 꺾은 꽃을 내밀었다.


"자. 이거."
"...이건."

그 꽃은 이 주변에서 피는 꽃이었다. 원래 이곳에서 피는 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녀를 보고  뒤로 언젠가 보았던 이 꽃이 떠올랐고 이 꽃이 떠오를 때마다 그녀가 떠올랐다. 그래서였다. 이곳에 그녀를 데리고 오고 싶었던 건. 그저 이 꽃을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흑, 히끅. 미안해. 미안해. 난 이걸 받을 수 없어."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그녀는 결국 꽃을 받지 않았다. 그들이 성으로 돌아왔을  그녀는 도망치듯 사라졌고 그는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 그는 멍하니 방으로 돌아왔다. 대체 어째서 그녀는 꽃을 받을 수 없다고 한 것일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단지 그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인데. 눈을 감으면 그녀의 눈물이 떠올라 잘  있을까? 고민했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지친 몸은 금방 잠들고 말았다.


하지만 너무 일찍 잠들었던 탓일까? 눈이 떠졌을 때는 달과 별빛조차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잠도 오지 않아 그는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켰다. 더위 때문에 창문도 열어두었는데 숨을 쉬는 것도 힘들 만큼 답답했다. 그는 복도로 나와 자신이 걷고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하고 멍하니 돌아다녔다. 그러던 그때였다.

"옳지. 옳지. 잘하는구나."

어디선가 그런 소리가 들려온 건. 그건 그의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버지와 아들로서 최소한의 정은 남아 서로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안부 인사 정도는 하고 사는 정도였다. 그도 아버지의 취미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애완동물을 기른다고 하셨던가. 정작 그는 그가 무슨 동물을 기르는지는 단 한 번도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의 신하에게 몰래 물어보기도 했지만 비밀이라는 이야기만 들을  있었다.

평소에는 그러려니 넘겼을 사실이었다. 그래도 이런 늦은 시간에도 저렇게 애완동물을 돌보고 있다는 사실에 그가 생각보다 더 아끼고 있다는  알았다. 그래서였다. 대체 어떤 생물이기에 그가 꽁꽁 숨기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지 궁금해진 건. 그는 소리가 들려오는 아버지의 방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문은 닫혀있었지만 잠겨있지는 않아서 최대한 조심하면 소리 없이 문을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방안을 눈에 담았을 때 그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으윽, 아흐."


침대에는 그의 아버지가 알몸으로 누워있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위에는 오늘 저녁때까지만 해도 그와 함께 호수에서 물을 뿌리며 놀았던 그녀가 앉아 있었다. 그녀가 힘겹게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아버지의 물건이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지식으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그녀가 아버지와 저런 일을 하고 있단 말인가?  번이고 머릿속에 되뇌었지만 오로지 그녀와 아버지가 몸을 섞는 광경만이 눈에 들어왔다. 눈물이 돌았다. 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그는 가슴을 찌르는 아픔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럼에도 그의 눈은 방문의 틈으로 보이는 그녀의 나신을 좇고 있었다. 호숫물에 젖어 달라붙은 옷이 희미하게 보여주었던 그녀의 피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땀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끈적하게 달아오른 이상한 냄새까지 그의 코와 눈물을 자극했다. 대체 언제부터 그의 아버지와 그녀는 이런 일을 해왔던 것일까? 그동안 그녀와 함께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는 사이 그의 아버지가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허리를 움직여 그녀를 찌르기 시작했다.


"아악!"

그건 고통을 참지 못한 비명이었다. 그녀의 비명과 함께 움직임이 멈추고 하얗고 탁한 무언가가 그녀의 균열에서 스며나왔다. 그의 머릿속도 하얗게 변해버렸다. 그때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그를 깨운다.

"흐음, 요즘 들어 반항하는 게 줄어서 좋긴 하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신음을 내지는 못하는구나."
"죄송, 합니다."
"아무렴 됐다. 휴가를 원한다고 했었나?"

그 말에 떠올랐다. 매일 같이 울고 있던 그녀에게 무심코 간단하게 해버렸던 말. 다른 하녀들이 일을 하다 종종 휴가를 받고 집에 가는 일이 있다는  생각하고 했던 말이.

"휴가를 받으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느냐? 내가 너를 지명하기 전에 스스로 오면  빨리  수도 있을 텐데. 꼴에 자존심은 있는 모양이구나."

이토록 끔찍하게 돌아와 그의 가슴을 찢어발겼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때 생각이 닿았어야 했다. 그녀가 이곳에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끌려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했어야 했다. 그의 아버지가 한 번도 보이지 않은 애완동물을 기르고 있다는 사실에 한 번이라도 의심했어야 했다.

"자, 나는 아직 모자라구나. 이리 와서 누우려무나. 너는 내 침대에 누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영광인지 알아야 할 거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과장스러운 그의 말에 감사의 말을 쥐어짜내며 침대에 누웠다. 그의 아버지는 그런 그녀의 다리를 벌리고 들어가 제 흉물을 균열에 꽂아 넣었다.

"으흑!"

그리고 다시 들려오는 비명. 찌걱이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도 힘없이 흔들렸다. 그와 함께 놀며 생기 넘치던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인형처럼 무기질적이고 텅 비어버린 그녀의 몸이 그의 아버지에게 범해지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의 몸 위에서 그는 지칠 줄도 모르고 허리를 계속 흔들었다. 오로지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서 욕구만을 위해서. 그 역겨운 몸뚱이를 움직이다 이내 그녀의 입술마저 삼키려드는 그.

그녀는 그때만큼은 선명한 불쾌함을 드러내며 고개를 돌렸다. 그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얼른 입을 벌리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게 좋을 텐데? 휴가를 얻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
"윽!"

또다 또였다. 그녀를 옭아매는  다른 무엇도 아닌 그가 그녀에게 했던 말이었다.

"흐흐흐, 아이올로스 때문이냐? 이야기는 들었지. 걱정 말아라. 나중엔 너도 그 녀석한테 물려줄 생각이니."


또한 무력하기만  그였다. 결국 눈을 질끈 감은 그녀가 입을 벌리고 그의 침입을 허락해버렸다. 그 이후로도 그는 한참을 그녀의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의 것은 계속 그녀의 균열을 파고들었다 빠져나오며 끈적한 액체들을 흩뿌렸고 그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쳐들어가 저 추악한 작자를 죽이고 싶었지만 그는 현실을 모르는 바보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 그의 아버지를 그가 죽이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가 그의 아버지를 따라서 영지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어린 그는 나약하고 쓸모없었다.

"...."


그제야 그는 자신이 그녀에게 품었던 마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런 끔찍한 광경을 보고 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괴로웠다. 자신이 스스로 영지를 운영할 수 있는 날까지 이런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쫓겨났었던 많은 가신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진실을 알아야 했다. 그는 이 영지의 주인이 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그는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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