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골목을 따라서.
"여기가 맞는 거 같지?"
그들이 골목길로 들어서고 얼마쯤 걸었을까. 어셔는 골목길의 안쪽에서 발견한 문을 보고 메디아에게 물었다.
"네, 그 할아버지가 마법서점이라고 했으니까요."
그 문에는 드발린의 마법서점이라 적힌 문패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곳에 가게를 차려도 장사가 되는 걸까?"
골목의 안쪽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들어오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는 이런 곳에서 장사를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나마 골목길 중에서도 낮은 건물과 부대끼고 있어서 햇빛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구석진 곳이었다.
"아마 이 가게의 주인분도 이런 곳에 가게를 차리고 싶어서 차리신 건 아닐 거예요."
"그럼 왜?"
"아까 말했었죠? 영지에서도 이곳은 많이 낡은 편이라구요."
"그랬었지."
그게 이 가게와 무슨 상관인가 싶었는데.
"이곳은 아주 오래전에 정비를 한 적이 있었데요."
하지만 그때 너무 복잡하게 정비해버린 탓에 아이올로스도 지금까지 손을 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골목이 되어버린 곳에 끼여 이도 저도 안 되는 건물이 많다고 해요."
"그런 의미에서 여기 골목은 더 조심해야 해. 잘못하면 길을 잃고 못 나간다는 소문도 돈다고."
메디아의 말에 류드밀라가 덧붙이듯 말했다. 그래도 이곳은 골목길의 초입이었으니 사정이 좋은 편이었다. 더 안쪽에 이런 곳이 있다면 진작에 망하지 않았을까?
"그럼 들어간다?"
딱히 누가 그의 말에 답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옷깃을 붙잡은 그녀들의 손이 동의하는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낡은 문이 끼기긱 소리를 내며 바닥을 긁었다. 조용한 골목길에서는 그 소리마저 요란하게 들렸다.
"윽, 먼지."
이런 곳에 자리 잡은 만큼 먼지는 어쩔 수 없는지 들어가자마자 퀴퀴한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여기 너무 어둡지 않아?"
"먼지도 이렇게 많은데 이미 망한 건 아닐까?"
"일단 사람을 찾아보죠."
그들은 이곳을 운영하는 사람을 찾아 구석구석 뒤져보았지만 아무도 없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먼지만 잔뜩 뒤집어썼다. 불도 켜져 있지 않아서 램프 안에 남아 있던 초에 직접 불을 붙여야 했다.
"아무도 없는데 정말로 망한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이런 곳에 있으니 어쩔 수 없겠지만요."
결국 허탕이라 생각했는지 기운이 없는 메디아의 모습에 뭐라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겨우 어머니의 흔적을 더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텐데. 류드밀라도 그녀의 모습을 보고 안절부절하고 있으니 문득 벨카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잠깐만 벨카는?"
그들이 사라진 소녀를 찾아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 한 책장 앞에 서서 책을 펼쳐 보고 있는 벨카를 찾을 수 있었다.
"벨카? 뭔가 찾았어?"
그들이 그녀에게 다가가자 소녀는 보고 있던 책을 그들에게 내밀며.
"여기 있는 것. 대부분 이런 책인 것 같아."
"이건...!"
그녀가 내민 페이지에는 메디아의 어머니가 남겨놓은 지도에 맨 처음 새겨져 있었던 이상한 글자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그 글자에 대해 설명해 놓은 듯한 글이 보여 읽어보았다.
"이 문자는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문자다."
이 문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어느 지방, 어느 나라의 언어로도 해석되지 않는 이 문자를 발견한 마도학자들은 이것을 고대의 언어라 생각했다. 이 문자들이 대부분 발견된 곳이 대마도 시대의 유적과 성지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문자의 해석을 위해서 많은 이들이 인생을 바쳤다. 어쩌면 이 글을 해석할 수 있다면 마법사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마도학자?"
"마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에요."
"그거 자기들끼리나 부르는 거야. 사람들은 어른이 되고도 어릴 적 꿈을 버리지 못하는 머저리라고 하더라."
어셔는 류드밀라가 자신에게 한 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뜨끔하는 가슴을 감추었다. 우선 스스로 몸을 단련하며 힘을 키우고 있었지만 마법은 여전히 매력적인 것이었으니까. 사용할 수만 있다면 사용하고 싶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딴 소리 말고 계속 읽어봐 봐. 난 키가 작아서 안 보인단 말이야."
류드밀라의 재촉에 어셔는 다시 책을 읽었다.
"그러나 이것이 고대의 언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이 학자들 사이에서 돌기 시작했다."
이 문자를 연구하던 한 학자가 문자가 새겨져 있지 않았던 곳에서 새로 새겨진 같은 종류의 문자를 발견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잇따르자 그들은 이 문자를 사용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떤 학자는 이것이 고대어가 아닌 이런 문자를 사용하는 자들이 있을 뿐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분분한 의견이지만 이 문자를 사용하는 이들을 부르는 명칭만큼은 단 하나. 카발리스트라고 한다.
"그럼 메아네 엄마가..."
"어머님이...?"
메디아도 자신의 어머니가 그런 사람일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듯 중얼거렸다.
"카발리스트라니."
그건 마법에 대한 것이라면 열정적으로 외워두었던 어셔도 처음으로 안 말이었다. 저런 문자를 쓰는 것만으로도 마법을 쓴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소녀가 그 문자 위에 손을 올려놓고 쓸어내린 것만으로 변형되어 지도 위를 돌아다니던 빛을. 그것을 마법이라 말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마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가 알지 못하는 종류의 마법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셔는 계속해서 책을 읽었다.
카발리스트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많지 않다. 누구도 보았다는 목격담이 없으며 그저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만을 새기고 사라지는 의문의 존재들. 하지만 많은 마도학자들이 그들이 마법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문자는 이러나저러나 대마도 시대의 유물이나 마도구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니까. 그 말은 즉 대마도 시대에 소실된 마법을 계승 받아온 이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문자로 흔적만을 남길 뿐 그 어떤 모습도 드러내지 않기에 어떤 의미에선 마녀들보다도 비밀스러운 자들이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내용이 있었지만 그가 읽은 것은 여기까지였다. 얼마나 알려진 것이 없었는지 카발리스트에 대한 글은 작은 부록 같은 형태로 책에 포함되어 있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들 사이에서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녀의 어머니가 카발리스트라는 것은 알았지만 정작 그 외에 단서가 없다시피 했으니까.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벨카였다.
"이곳에서 책을 찾다 보면 메아의 어머니에 대한 걸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럴까요?"
"으에, 여기를 다 찾아보자고? 책이 이렇게 많은데?"
메디아는 그녀의 말에 솔깃한 듯했다. 류드밀라가 질린 듯이 책장을 훑었지만 불평과는 다르게 벌써 책을 하나 빼들고 있었다. 어셔도 불만은 없었다. 마법책을 애물단지나 동화책 취급하는 어른들이지만 어셔에겐 나름 중요한 책이었으니까. 다만 지금 그가 신경 쓰이는 사실은.
"그런데 너 언제부터 벨카랑 애칭을 부르기로 한 거야?"
"어머, 질투하시는 건가요?"
"질투는 무슨."
그의 이름이나 소녀의 이름이나 워낙 간단해서 애칭을 부를 필요도 없었지만 애초에 벨카는 그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그러니 따로 불만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그냥 저와 류다도 애칭으로 부르는데 벨카 혼자서 그러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애칭으로 불러달라 부탁한 거예요."
그렇게 그들은 따로 흩어져서 서점 내부에서 메디아의 어머니와 관련된 단서를 찾고자 한 구역 씩 맡기로 했다. 시간은 넉넉했으니까. 하지만 조금 과한 기대였을까? 어셔는 갈수록 책을 살펴보는 게 지루해지는 것을 느꼈다.
"본 것만 몇 개야 대체."
마법이라는 것이 결국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일까? 하나하나 읽을수록 내용이 비슷하거나 아예 똑같은 내용이 있는 것도 수두룩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해석이 나름대로 되어 있는 것들인데. 그 해석들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때로는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연구나 어째서 마법을 평범하게 외우고 배우는 것만으로 사용하지 못하는지 연구한 것들도 더러 있었으나 결론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끝이나 허망했다.
"내가 본 것들이랑 다르지도 않네."
이런 곳에 단서가 있기는 한 것일까? 소녀가 맨 처음에 찾았던 카발리스트에 대한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것은 보이지도 않았다. 결국 먼지 냄새가 가득한 책장 사이에서 책을 하나 꺼내고 주르륵 훑어보다 다시 꽂아 넣기를 반복하기를 얼마간 어쩌다 그는 다른 책과는 다른 느낌의 책을 발견했다.
"이건 글이 왜 이렇게 많아?"
다른 마법책이 그림과 함께 여러 가지 설명이 쓰여 있는 것과는 다르게 그저 글이 빼곡히 적혀 있는 모습에 도입부를 살피면 '앨리와 마법사의 밤'이라 적혀 있었다. 보아하니 마법책은 아니고 마법사를 주제로 한 이야기 같았다. 어셔는 슬그머니 책장 너머를 살폈다. 한쪽에서는 류드밀라가 낑낑대면서도 책을 원래 자리에 가져다 두는 모습이 보였고 반대편을 보면 메디아가 책을 뺐다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꽂아두는 모습이 보였다.
어셔는 어차피 읽어도 상관없겠다 싶은 마음으로 천천히 내용을 읽었다. 역시나 책은 마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앨리라는 시골에 사는 여자아이와 시골에 찾아온 낯선 마법사의 이야기였다. 마법사는 전쟁을 생업으로 삼던 이었다. 그러나 오랜 전쟁에 지친 그가 전쟁을 끝내고 한적한 시골을 찾아왔던 것이다. 그가 마법사라는 걸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지만 그는 단지 쉴 곳을 찾았을 뿐이었다.
그는 한적한 시골에서도 한적한 곳에 오두막을 짓고 홀로 살았다. 마을에도 가끔씩 생필품을 사기 위해 들릴 뿐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그는 외로운 밤을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자아이가 그의 오두막을 찾아왔다. 마을에서도 호기심과 장난기가 많아 악동으로 유명한 앨리였다. 그녀는 그가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고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앨리는 매일 같이 그를 찾아왔고 마법사도 알게 모르게 그녀를 기다리는 나날.
어느 날 앨리는 술에 잔뜩 취해 그의 집으로 찾아왔고 마법사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자신의 집에서 재우다 그녀가 어느덧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주무르기 좋은 가슴과 잘록한 허리. 침대에 늘어진 찰랑이는 검은 머리카락까지 마법사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가슴을...
"...."
어셔는 그 대목에 이르러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얼떨결에 계속 읽고 있었는데 설마 이런 내용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는 정말 그만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원래 자리에 꽂아두려 했지만 계속 다음 내용이 궁금해졌다. 그는 다시 한번 책장의 틈으로 류드밀라와 메디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폈다. 메디아는 한 면의 책장은 다 살폈는지 옆으로 옮겨간 상태였고 류드밀라도 비슷한 상태였다.
벨카는 메디아가 있는 곳에서 반대편에 있기에 그의 위치에선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도 찾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책에 집중하려던 순간이었다.
"어셔, 마음에 드는 책이라도 찾았어?"
바로 옆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벨카? 그쪽은 다 살폈어?"
"응, 특별한 건 보이지 않던걸."
벌써 책장을 다 살폈다는 벨카의 말이 놀라웠지만 그녀가 자신이 들고 있는 책을 보려는 듯 다가오는 모습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벨카에겐 딱히 들켜도 상관없지 않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걸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소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황급히 책을 덮어버렸다. 어찌나 급하게 닫아버렸는지 퍽! 하고 종이에서 바람이 빠져나오는 소리가 서점 안을 울렸다.
"무슨 소리야? 뭔가 터지는 소리 같았는데?"
"어셔?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그것이 다른 곳에서 책을 찾던 메디아와 류드밀라까지 불러들여버렸지만.
"아니, 그냥 아무리 찾아도 쓸만한 건 안 보여서."
"그러네요. 아무리 찾아도 어머니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 건 안 보여요."
"나도 마찬가지야. 으으, 손에 먼지만 잔뜩 묻었어."
그의 얼버무림에 순순히 넘어가는 그녀들의 모습에 안심했을 때였다.
"거기 누구냐?"
이름 모를 노인의 목소리가 그들의 귀에 들려온 건. 이내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와 함께 그들은 초록 피부의 허리 굽은 난쟁이를 마주칠 수 있었다. 그 이상한 모습에 잠깐 놀란 찰나. 난쟁이의 눈이 벨카를 향하고.
"사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메디아가 눈을 크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