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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화 〉쌓여가는 것. (103/220)



〈 103화 〉쌓여가는 것.

"후우, 이 녀석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는데."

도나르는 목이 잘려나가 투명하고 거뭇거뭇 한 피를 뚝뚝 흘리는 놈의 단면에 모래를 뿌렸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하겠지만 이건 보통 모래가 아니라 그들이 지긋지긋하게 돌아다녔던 황야의 모래였다. 황야의 모래는 철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보다 많이 차지하는 것은 바로 소금이다. 그러자 괴로운 듯 발버둥 치는 기생충들과 몬스터의 몸.


"어딜."


하지만 이미 녀석의 다리는 전부 잘라낸 뒤였고 몸은 동료들이 창이나 검으로 함께 고정시켜 두어 그저 발버둥으로 끝이 났다. 그들은 잘려나간 머리 쪽도 아직 살아있다고 주장하듯 턱을 벌려 어떻게든 그들을 물어뜯으려 하는 모습이란.

"곤충형 몬스터는 이래서 성가시다니까."
"누가 아니래. 목을 잘라도 끈질기게 움직이니."


곤충형 몬스터는 대부분 목이 잘려도 움직여서 상대를 공격하는 일이 많다. 때문에 곤충형을 처음 상대하거나 그 특징을 자세히 알지 못해서 안타깝게 몬스터의 길동무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 주로 징집된 병사들이 그런 경우가 많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처럼 목을 베고 다리를 잘라 발버둥 쳐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움직이고 있는 머리의 경우.


"기트, 저거 좀 박살 내봐."
"귀찮은데."

그러면서도 그는 어떻게든 그들을 씹어먹고자 턱을 딱딱 거리는 녀석의 머리를 그대로 내려쳐 박살 냈다. 아무리 끈질기다 해도 산산조각 내버리면 결국 죽는다. 마지막까지 확인사살을 마친 그들은 하마터면 몬스터의 숙주가 될 뻔한 여인에게 정보를 얻기로 했다. 덩치가 작은 것을 보면 난쟁이 같았지만 그녀는 그들이 다가오자 부들부들 떨며 제 피부를 넝마 같은 헌 옷으로 가렸다. 하지만 그 행동이  피부를 눈에 띄게 만든다는 걸 알까?

그녀의 피부는 식물과도 같은 연두색이었다. 자세히 보니 아직 여인이라 부르기엔 이른  성년이  듯한 모습이다. 아마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대가 아닐까? 다만 눈에 띄게 여윈 모습이 안쓰럽다.

"이 근처에는 마을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어디의 농민입니까?"


도나르가 묻자 몸을 떠는 그녀. 일단 구하고 보긴 했지만 지도를 보면 이 부근에 마을 같은 곳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본래 성벽을 지켜야  그들이 이렇게 몬스터를 수색하고 있는 이유는 습격한 몬스터들이 데저트 로커스트였기 때문이다. 실크 모스의 경우  특성상 번식기도 확실하고 번식지가 제법 눈에 띄기 때문에 번식지가 된 마을을 찾거나 번식지가 되기 전에 막으면 그만이지만 데저트 로커스트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랐다.


덩치는 다른 대형종에 비하면 작은, 중형종이지만 놈들은 식물이건 동물이건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데  특성 탓에 내버려 두었다간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애매하게  크기는 풀숲에 몸을 숙이면 보이지 않아서 수색  섬멸하는 것이 더 까다로운 녀석들이다. 원래 사막에서 살던 놈들이니만큼 황야를 건너온 그들에게도 익숙한 몬스터이기도 했지만 어째 농경지에서 상대하기  까다로운지 모를 일이다.


"...."
"으음, 곤란하구만."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피하는 그녀의 모습에 도나르는 머리를 긁적였다.

"무슨 일입니까?"


그때 그들과는 다른 갑옷을 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본래 게라르두스와 함께 움직이는 2 기사단의 기사였지만 지금 게라르두스는 성벽을 지키는 중이므로 2 기사단의 절반이 그들과 함께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다가오던 그는 그의 앞에 쭈구려 앉은 난쟁이의 모습을 발견하고 무슨 일인지 알아챈 듯이 혀를 찼다.


"하, 초록 난쟁이군요."


그의 태도에 그들이 당황하는 사이. 그는 말릴 틈도 없이 그녀를 발로  눕혔다.


"꺄악! 끄윽!"


사바톤에 말 그대로 치여버린 그녀를 그대로 발로 짓누르는 그의 행동에 도나르를 비롯한 이들은 너 나 할  없이 경악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 근처에 마을 같은 건 없습니다. 만일 있다고 한다면 초록 난쟁이들이 꾸린 화전 마을이 있겠지요. 강제로 알아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말에 도나르들은 왜 그녀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는지  수 있었다. 그녀가 살던 마을이 영지의 허가를 받지 않고 지어진 마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해도 이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타국에서 오셔서  모르시겠지만 초록 난쟁이와 화전 마을은 란투아의 골칫거리입니다."

그는 그들을 이해한다는  말하면서도 그녀의 가슴팍을 짓누르는 발을 치우지 않았다. 숨이 막히는  끅끅거리며 물기 어린 눈으로 그들에게 손을 뻗는 모습에 기트가 먼저 참지 못하고 그 손을 잡았다.

"됐으니까.   치우십시오."
"하지만 초록 난쟁이는."
"치우라고."

기트의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에 기사는 멈칫하다가 발을 치웠다. 그와 동시에 기트는 그녀를 땅에서 일으켜 안았다.

"타국이니 뭐니 모르겠고 적어도  애들 괴롭히는 꼴은 못 봐."
"...그럼 마을은 어떻게 찾아내시려는 겁니까?"


그 말에는 도나르가 답했다.


"일단 물어보고 말하면 좋고 말하지 않으면 직접 찾으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이 근처인 것 같으니."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이 초록 난쟁이가 몬스터에게서 멀리 도망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결국 기사는 어쩔  없이 물러났다. 그들은 먼저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그녀의 가슴팍에는 초록색 피부 위에서도 선명한 보라색 멍이 보였다.

"스스로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도나르가 응급처치용 연고를 건네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통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벌벌 떠는 손으로 연고를 잡았다. 그녀가 연고를  바를 때까지 기다리며 그들은 아무 이유 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초록 난쟁이 취급이 안 좋다는 건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오두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게. 내가 아는 모습이랑 다르긴 하지만 저렇게 대할 이유는 없었는데."

도나르가 초록 난쟁이를 본 적은 있었지만 그것은 란투아로 오는 길에 들렸던 파르즈에서 잠깐 보았던 정도고 그마저도 늙은 초록 난쟁이였을 뿐이다. 그래서 모든 초록 난쟁이가 비슷하게 생겼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피부색만 제외하면 회색 난쟁이와 다를 것도 없는 모습이다. 초록 난쟁이를 그렇게 대하는 데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지만 무슨 이유를 대더라도 그것이 그렇게 핍박할 이유가  수는 없을 것이다.

"트라우마를 건드릴 건 또 뭐람."


그와는 별개로 기트가 화가 난 이유를 도나르는 알고 있었다. 기트와는 샬비나 오두르, 뜨루스와는 다른 이유로 친한 사이였다. 어쩌다 친해졌는지 기억도 희미할 정도로.


"저기..."
"연고는 다 바르셨습니까?"
"네, 네. 가, 감사합니데이."


그녀는 말을 더듬으면서도 도나르에게 연고를 되돌려 주었다.


"혹시 당신이 살던 마을이 어느 쪽에 있는지 가르쳐주실 수 있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걸 느꼈는지 몸을 떤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뭔가 있나 싶었지만 구름이 잔뜩 껴있는 모습만 볼  있었다. 그러다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는데. 그건 검은  하나가 찍혀 있는 네모나고 반투명한  같았다. 유리와는 어딘가 질감이 다르다. 그녀는 그 돌을 하늘 위로 들어 가늠해 보는듯하더니 한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마을로 가는 방향입니까?"
"...그렇심더."


방향을 확인한 그들은 풀을 뜯고 있을 힐디스비니들을 불러들였다.

-휘이익!

높고 세찬 휘파람 소리가 평야에 울려 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땅이 두두두 조금씩 흔들리며 힐디스비니들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배려가 부족했던 것일까?

"히익!"


그녀는 땅이 흔들림과 동시에 주저앉아 몸을 웅크리며 귀를 막고 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에 기트가 다가와 상태를 살피지만 좀처럼 그녀는 진정하지 못했다. 원인을 해결해 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힐디스비니를 타고 가야 했으니까. 그리고 힐디스비니들이 완전히 도착했을 때. 그들은 어떻게 그녀를 진정시키고 데리고 가나 싶었지만 놀랍게도 힐디스비니들이 도착한 후에는 오히려 신기하다는 듯 힐디스비니를 보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근처에 있을 마을을 수색했다. 그녀는 기트가 태운 상태였다. 그렇게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얼마나 살폈을까? 그들은 곧 드넓게 펼쳐진 밀밭 사이에서 이상할 정도로 텅 빈 공터를 찾았다. 그리고 높이 솟아있는 봉분의 중심에는 사람 하나가 들어갈  있을 법한 구멍이 있었다. 그들이 데리고  그녀는 그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초록 난쟁이가 힐디스비니가 다가올 때 겁을 먹고 웅크렸던 것이 떠올랐다.

"힐디스비니 때문이 아니라 땅이 흔들렸기 때문이었나."


땅 아래에 굴을 파고 산다면 그럴 법한 이야기였다. 그때였다.


-끼리리릭.
"...!"
-쿠륵!


어디선가 들려온 데저트 로커스트의 소리에 그들은 각자 무기를 빼들었고 힐디스비니들도 잔뜩 경계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들이 한참을 경계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오두르와 샬비가 포함된 정찰대가 샅샅이 뒤져도 보이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말은 즉 그들이 죽여야 하는 몬스터가 이미 굴속을 점령했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기에. 정말이지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다 어쩔  없이 2 기사단의 기사에게 물었다. 아까와는 다른 이었다.


"혹시 이럴 때는 어떻게 합니까?"
"주로 마른 풀을 태워 그걸 굴속에 밀어 넣습니다. 그렇게 하면 몬스터가 굴 밖으로 나옵니다만..."
"미친."

오두르가 투구 위로 마른 세수를 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점령한 마을에는 적어도 한 달, 많아도 세 달간은 생존자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렇다는 이야기는 뻔했다. 분명히 굴속으로 들어간 몬스터들을 빠짐없이 죽이기엔 무척 효율적인 방식이었지만.

"...여기 말고 또 다른 출구가 있습니까?"

도나르는 한참의 침묵 끝에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망설이는 듯 우물쭈물 거리다 반복되는 침묵과 시선들을 이기지 못해. 고개를 숙이며  쪽을 가리켰다. 다른 출구까지 확인한 도나르는 힐디스비니에서 내려 가만히 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였다. 하물며 인간이 판 굴도 아닌 초록 난쟁이가 판 굴이다. 입구의 크기는 잘만 하면 성인 남성도 들어갈 수 있을 듯했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저 안으로 들어가 몬스터와 전투를 벌일 수 있는가? 초록 난쟁이의 덩치는 막 성년이 된 아이들과 비슷하다. 그런 이들이 만든 굴의 크기가 과연 전투에 아무런 지장이 되지 않는가? 조금 좁은 실내에서도 전투는 많이 제약된다. 그런데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굴에서 불편한 상태로 싸운다?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의 동료들이 보였다. 타국보다 못한 고국에서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동고동락한 전우들이었다.


2 기사단의 기사들이 보였다. 아직은 낯설고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지만 그들 또한 누군가의 가족이며 가장이었다. 마음 같아선 그가 직접 굴에 내려가고 싶었지만 시프와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마음은 굴로 내려가라 말하는데 그의 어깨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있었다. 그것이 누군가가 강제로 지어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짊어진 것이었기에  무게가 너무나 무겁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후우. 어쩔 수 없다."

이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다. 이건 해야만 하는 일이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속삭였다. 아니, 누구도 그의 귀에 속삭이지 않았다. 이건 과거의 기억이었다. 스스로가 부정했던 과거의 상관이 한 일을 지금 개인적인 이유로 행해야만 하는 상황에 그는 토기가 치밀어 올랐다.

"오늘따라 아저씨가 늦네."

어셔는 혼자 연무장에 나와 도나르가 자신이 봐주지 못할 때 하라며 가르쳐 주었던 방식대로 훈련을 반복하며 중얼거렸다. 그는 오후에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고 훈련을 미룬 것 같았지만 그는 점심도 거르고 오후에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몬스터를 잡는 데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라 생각하며 연무장을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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