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9화 〉쌓여가는 것. (99/220)



〈 99화 〉쌓여가는 것.

"으으! 짜증 나 죽겠어!"


류드밀라는 가슴이 갑갑한지 퍽퍽 제 가슴을 두드렸다. 그것만으로도 속을 풀 수 없었는지 이어서 내려찍듯 두드리는 책상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그녀의 아버지와 만나고 메디아의 방으로 돌아온  류드밀라는 쭉 저런 상태였다.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모습에 어셔는 메디아에게 속삭였다.

"화가 나는 건 알겠는데. 얘 원래 이러냐?"
"아하하하, 예전엔 딱히 이렇게 과격한 느낌은 아니었는데 말이죠."


오히려 너무 얌전해서 화를 내는 일이 드물었다는 메디아의 대답에 그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이건 참다못해 터져 나오는 분풀이 같은 것일까?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냥  뛰어다니거나 벨카에게 안겨있으면 그만인데."
"두 번째 방법은 그렇다 치고 첫 번째는 류드밀라에겐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네요."

그러고 보니 귀찮은 걸 싫어한다고 했던가? 지금 당장이라도 다 엎어버릴 듯이 굴면서도 혼자서 속을 삭히려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제대로 스트레스를 풀지 않으면 속이 더 상할  같은데."

난쟁이라 안 그래도 작은 몸인데 저러고 있으면 화 때문에 펑 하고 몸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아! 그거라면!"

그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메디아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탄성을 지른다.

"그래서 나온 게 이거야?"


어셔는 자신들의 앞에 놓인 병들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카페에서처럼 커다란 잔에 들어있는 대신 라벨이 붙은 유리병에 들어있었지만 이건 옐이 확실했다.


"이것만큼 스트레스를 풀 때 좋은 게 어디 있다구요?"
"그냥 네가 마시고 싶었던 게 아니라?"

어셔는 어제 이미 옐을 한 잔 정도 마셔봤기에 그냥 톡 쏘는 느낌이 독특한 주스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보다 이거 카페에서 팔던 거 아니야?"
"옐은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어요. 가끔 기사분들을 위해서 납품받기도 하는걸요."
"그럼 이건?"
"헤헤, 제가 몰래 마시고 싶어서 제 용돈으로 따로 구매한 것들이에요."
"...너 어지간히 이걸 좋아하나 보네."

그녀가 하녀에게 지시해서 가져온 옐은  병은 넘어가고 있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제가 아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라면 이것밖에 없어요. 무엇보다 류다가 이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인걸요."

분명 저희가 헤어진 5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 거겠죠.


"그러니까 그 빈 시간 동안 달라진 류다를 더 알아가고 싶어요."


어디서 보관하고 있었는지 이슬이 맺힌 병은 만져보면 무척이나 차갑다. 그래도 이 정도로 시원하다면 굳이 옐이 아니더라도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메디아는 코르크 마개로 단단히 막혀있는 병을 코르크 따개로 따더니 가장 먼저 아직까지 아우성치던 류드밀라에게 내밀었다.


"자, 류다. 너무 그렇게 화만 내지 말고  마셔봐요."
"이거  아니야?"


살짝 눈물이 맺힌 눈으로 메디아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던 류드밀라는 곧 포기한 것처럼 그녀에게서 옐을 받아들고 병째로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비워버린 병을  책상 위에 올려두며.


"으허엉! 진짜 나한테  그러는데! 일도 열심히 도와줬잖아. 그런데 또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건데?"

술기운에 서러운 마음이 터져버렸는지 울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리도 서러운지 울기 바쁜 류드밀라의 모습에 그들이 멍하니 지켜만 보고 있었을 때. 그녀는 옆에 있던 벨카에게 안겨버렸다. 소녀는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 같으니. 세상을 전부 돈으로만 보는 인간 같으니... 친구를 사귀는 게 뭐가 어때서."


아버지에게 쌓인 것이 어지간히 많았던 모양이라 생각하며 어셔는 메디아를 따라 옐을 마셨다. 아무래도 류드밀라의 푸념은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늦는데?"

도나르는 어셔의 훈련을 봐주기 위해 연무장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1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아 의문을 품었다.

"그러게다.  녀석이 안 오지는 않을 텐데?"


로기의 보호자로서 같이 연무장에 있던 샬비도 의아하게 중얼거렸다. 어셔가 훈련을 빼먹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가 소녀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그들은 알고 있었기에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도나르는  더 기다려 볼까 했지만.


"...아무래도  되겠다. 어디 있는지 찾아봐야겠어."
"그럼 우선 로기 혼자 훈련 시킨다?"
"그래, 어셔에게 무슨 일이 생긴  같으니까."


도나르는 가장 먼저 방을 찾아가 보았지만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시간에는 시프도 고용인의 일을 하느라 바쁠 테니 당연했지만.

"그러면 아가씨의 방인가?"

어셔와 벨카가 아이올로스의 따님인 메디아와 친해진 건 굳이 직접 듣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에게 부럽다며 들려오는 소식이었다. 아이들이 친해지는 것이 뭐가 특별하겠냐마는 가끔씩 타인에게서 부럽다는 소리를 들을 때면 아이들마저 이용수단으로 보는 것 같아 도나르는 기분이 언짢았다. 오늘도 그에게 자신이 돌봐주는 아이들이 메디아에게 어떻게 접근했는지 묻는 가신들이 많았다.

"안 그래도 싱숭생숭 한데 말이야."

그는 오늘 몬스터들의 토벌을 위해 출정했다가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아서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때는 오늘 몬스터들이 쳐들어오던 것을 막아낸 후였다.

"후우, 이곳에선 실크 모스가 이렇게 흔합니까?"
"예, 이맘때가 실크 모스의 번식기이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또다시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자폭하고 공격해오는 커다란 실크 모스들을 막아내느라 진이 빠졌지만 민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문제였지 딱히 죽이는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때 그는 순간적으로 태양을 가리던 그림자가 있음을 느끼고 하늘을 보았다. 그때는 이미 하늘에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는 아주 잠깐이나마 환상처럼 그 그림자를 본 거 같았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그림자의 형태는.


"아니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그림자를 다른 동료들도 보았는지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낮술이라도 했냐는 동료들의 장난스러운 타박이었다. 그래, 그럴 리가 없었다. 놈들의 서식지는  란투아와도 한참은 떨어진 곳이다. 아무리 빠르게  수 있다고 해도 생물인 이상 한계가 있기에 이곳까지 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겨우 찝찝한 기분을 구석으로 밀어 넣은 그가 메디아의 방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이게 무슨 소리지?"


어디선가 서럽게 우는 듯한 소리를 내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혹시 싸우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에 그가 황급히 메디아의 방에 도착했을 때.


"어른들은 다~ 똑같아요!"
"누가 뭐래! 우리가 무슨 말만 하면 어른들 말에 끼어드는 거 아니라고 하고!"
"아무리 봐도 잘못된 걸 지적하면 어린애가 뭘 아냐며 무시한다구요."
"그걸 계속 지적하면 맞기도 한다? 진짜 자기들 입맛대로 행동해. 언제는 그게 안 좋은 거라더니."

그가 볼 수 있었던 건 깔깔 웃으며 비꼬는 메디아와 그에 맞장구치며 화를 내기 바쁜 어셔의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었던 건.

"우우! 아빠 같은 거 진짜 싫어! 어린애라고 할 거면 어린애처럼 대하던가!  또 다 컸다며 돈을 벌라는 건데! 그냥 자기들 멋대로지!"


깐깐한 난쟁이, 히스의 품에서 그의 가슴을 한 손으로 투닥투닥 때리며 서러움을 토로하는 류드밀라와 그런 그녀가 당황스러운 듯 어쩔 줄 모르는 히스였다. 문을 닫아 놓지 않아서 그 모습들을 도나르는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마주친 히스와 어색하게 눈인사를 나눈 그는  가지런히 정리된 술병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개판이래."

한두 병이면 모르겠지만 스무 병이 넘어가는 모습에 도나르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아이들이 술을 마셔도 될 나이라지만 이건 네 명씩 나누어도 많은 양이었다. 그러다 문득 벨카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주변을 돌아보았을 때.

"무엇을 찾고 있어?"
"깜짝이야! 너 언제  뒤로 온 거냐?"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아서 물을 들고 왔어."


다행히도 소녀는 딱히 취한 기색은 없었다. 아니, 얼굴이 살짝 상기된 모습을 보면 마시긴 한 것 같지만 조절을 잘 한 모양이다. 다른 아이들을 챙기기 위해 물까지 들고 온 것을 보면. 결국 도나르와 히스는 아이들의 뒷정리를 해야 했다.


"으으, 머리야."


어셔는 까무룩 끊어졌다 이어지는 어지러운 감각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가장 먼저 보이는 건 그와 함께 자리에 누워있는 소녀의 얼굴이었다. 어찌  일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그가 한참 옐을 마시며 대화하던 메디아의 방이 아닌 그들의 방이 보인다. 심지어 어두컴컴한 것을 보면 아침도 아닌 밤이다.  이 시간에 깨어난 걸까 생각해보지만 그가 기억하는 건 소녀들과 술을 마시다 끊어진 기억뿐이다.

여전히 마치 멀미를 하는 것처럼 어지러운 감각이 남아있었지만 어쩐지 그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 알딸딸하고 조금 들뜬 기분이 오히려 더 빠져들고 싶은 것도 같았다. 그러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벨카의 얼굴이다. 창밖에서 희미하게 비쳐 들어오는 달빛에 비치는 소녀의 잠든 얼굴은 정말 홀릴 만큼 아름다웠다. 그래서였을까? 어셔는 저도 모르는 사이 손을 뻗어 그녀의 볼을 매만졌다. 언제 만져도 부드럽고 매끄러운 감촉이다.


그러다 손가락 끝에 닿은 소녀의 입술의 감촉에 어셔는 흠칫거리면서도 손을 뗄 수 없었다. 지금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좀 더 만지고 싶었다. 이미 소녀는 그의 한쪽 팔을 끌어안고 있었는데도 그녀의 모든 걸 끌어안고 싶었다. 생각하기 무섭게 그는 이미 소녀를 끌어안고 있었다. 어셔는 지금 자신이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을에서 맡았던 이상한 연기를 맡았을 때처럼 정신이 몽롱한 것 같았지만 완전히 통제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자신인  자신이 아닌 것도 같았다.

"벨카, 자?"

그녀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묻고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벨카의 가녀린 몸을 끌어안은 채. 소녀의  사이로 자신의 손을 집어넣고 그녀의 피부를 쓸어내리면 부드러운 그녀의 느낌이 손안에 들어오고 꾹 누르면 저항 없이 눌러지다가도 힘을 빼면 원래대로 돌아오는 말랑거리는 감촉에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벨카에게서 풍기는 향긋한 향기를 더 들이마시고 싶어 소녀의 목덜미에 코를 묻으면 콧속에 한가득 들어차는 달큼한 향기.

차근차근 소녀의 모든 걸 품에 안았음에도 어셔는 더욱더 커져가는 욕망을 주체할 수 없었다. 벨카의 더 많은 것을 품에 넣고 싶었다. 더 많은 걸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소녀와 그를 덮고 있던 얇은 이불이 스르르 흘러내려가고 벨카의 모습이 드러났다. 언젠가부터 원래 입고 있던 검붉은 원피스 대신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는 소녀는 여전히 청초하면서도 흐트러진 모습은 요염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색색 고운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지만 하얀 원피스 아래로 보이는 소녀의 은밀한 곳을 가린 천 조각은 더 이상 그를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이미 벨카에게 몸을 허락받은 몸임에도 그녀가 깨어나지 않게, 들키지 않게 그녀의 원피스 아래로 손을 넣어 천천히 그녀의 속옷을 끌어내렸다. 그러자 드러나는 소녀의 은밀한 계곡.  방을 둘이서 쓰는 것이 아니기도 했고 최근 이런 일을 할 시간도 없었기 때문일까? 더욱 욕망이 솟구쳤다.


오랜만에 보는 소녀의 균열은 꾹 다물려 안쪽의 여린 살을 감추고 있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어셔는 잠시 옆의 침대를 보았다. 역시 그곳에는 도나르와 시프가 함께 잠들어 있었다. 그들 덕분에 이곳에서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이럴 땐 그와 소녀 단둘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잠들어 있으니 지금이 기회였다.


어셔는 다시 소녀의 균열을 바라보다 그곳에 두 검지로 굳게 다물린 소녀의 꽃잎을 옆으로 벌린다. 그러자 은밀하고도 사랑스러운 분홍빛의 여린 살점이 드러났다. 그저 다물려있던 곳을 손으로 열어보았을 뿐인데 그 안에서 욕망을 자극하는 그윽하면서도 은밀하고 달콤하면서도 야한 향기가 흘러넘치는 것 같았다. 어셔는 입안을 가득 채운 군침을 삼키며 그녀의 여리디여린 분홍빛 속살에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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