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간극.
도나르는 원래 자신이 몰던 힐디스비니를 타고 다른 기사와 동료들과 함께 봉화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향하는 대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가장 넓게 트인 대로는 본디 인파로 가득했어야 할 터이지만 봉화가 피어오른 순간부터 이미 사람들은 저마다 집으로 숨어들었다. 썩 특별한 광경은 아니다. 어디에서나 몬스터들은 질리지도 않고 인간들을 습격하고 사냥하며 노려왔고 봉화나 비상 종이 울리면 대비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것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파시페니아의 인간들이 참으로 대담했기 때문이었겠지. 드래곤들이 너무나 많이 습격해왔기 때문인지 파시페니아의 시민들은 봉화나 비상 종이 울려도 시끄러운 알람이 울린다는 정도의 감상으로 끝내고는 했다. 그야 기사들이 드래곤들이 시가지로 들어가는 것만큼은 필사적으로 막아내었으니까. 혹시라도 드래곤에게 재산을 잃거나 목숨을 잃는 시민이 있다면 그 구역 담당의 기사들은 많은 책망을 받아야 했기에.
기사들에게 있어서 죽음보다도 두려운 것은 시민들의 책망과 명예의 상실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버릇처럼 봉화가 올라오자마자 전투준비를 마쳤다. 원래 이곳에 머물던 기사들마저 놀란 표정으로 볼 줄은 몰랐지만 지금은 그들도 이렇게 동료로서 몬스터들을 막기 위해 함께 질주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점심시간에 쳐들어오고 난리야! 저것들은 식사도 안 하냐?!"
"저것들한테는 식사시간이니까 쳐들어온 거겠지 뭐!"
"이래 봬도 장벽의 가장 안쪽에 가까운데 잘도 쳐들어 오더라!"
기트의 비명과도 같은 불평에 이곳의 기사들도 다르지 않은 듯 적잖은 수가 동의했다. 붙임성 좋은 이들은 그의 말에 맞장구까지 친다.
"말할 시간 있으면 계속 달려! 비행형이다!"
앞서 달리던 기사의 말대로 도나르의 눈에도 저 멀리 하늘에서 다가오는 형체들이 보였다. 순간 드래곤인가 싶었지만 곧 부정했다. 지역의 특성상 파시페니아와 성지가 주로 드래곤들의 습격을 받지 다른 지역에는 웬만하면 쳐들어가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날개의 형태와 날갯짓을 하는 모습만 봐도 드래곤 같지는 않았다. 계속 달려 성벽에 도착하기 무섭게 그들은 성벽 뒤의 계단을 타고 성벽 위로 올라갔다.
"어, 어느 소속 기사분들이신지?"
성벽 위에 있던 이름 모를 병사가 그들을 보고 당황했다. 아마 그들의 갑옷이 란투아의 갑옷과는 달랐기 때문이리라.
"이번에 새로 고용된 분들이다. 기억해두도록."
그들도 이곳은 처음이기에 뭐라 말하기 어색했지만 뒤따라온 이곳의 기사 중 한 명이 대충이나마 설명하고 물었다.
"그보다 상황은 어떻지?"
"예! 비행형이라 일찍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만 아무래도 바깥쪽에 있던 몇몇 마을은 이미 습격을 당한 것 같습니다."
그 병사의 말대로 안쪽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지만 저 멀리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두 개의 마을이 하얀 무언가로 뒤덮여 있었다. 푸른 초원 사이에 하얀 마을들은 너무 부자연스러운 광경이다.
"쯧, 나가야 할 일이 생겼군. 마을을 하얗게 뒤덮은 모습을 보면 실크 모스인가?"
"실크 모스? 그건 뭐 하는 몬스터입니까?"
도나르는 처음 들어보는 몬스터의 이름에 그에게 물었다.
"당신들에겐 이쪽의 몬스터는 처음이겠군요. 나중에 다른 녀석들에 대해서도 설명드리겠지만 지금은 저 녀석들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는 도나르와 함께 성벽 위를 걸으며 성벽에 머물던 병사들과 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도나르에게 설명했다.
"놈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실을 뿜고 그것으로 사람을 납치해 갑니다."
그 정도까지는 드래곤에 비하면 정말 귀여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의 설명이 끝나지 않았기에 경청했다.
"혹시 방독면은 착용하고 계십니까?"
"예, 장비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독을 뿜는 드래곤도 있기에 그런 장비는 기본적으로 장비되어 있었다. 놈들의 독이 호흡기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죽는 게 차라리 나을 고통을 느낀다던가. 다행히 그는 독을 들이킨 적은 없었다. 직접 맞아버리면 방독면도 의미 없겠지만.
"다행이군요. 놈들은 날개가 무척이나 약해서 화살이나 돌만 맞아도 쉽게 떨어트릴 수 있습니다만 온몸이 독성을 띈 털로 가득한 놈들입니다. 날개의 인분 하나까지요."
그건 또 다른 문제였다. 드래곤은 일단 죽이면 그만이었지만 실크 모스는 죽이거나 떨어트린다 해도 민가에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최대한 멀리서 떨어트려야겠군요."
"그 말대로. 모두 사격 준비!"
모두가 활과 화살을 들고 이쪽으로 날아드려는 실크 모스들에게 겨누었다. 그리고 사정거리에 들어왔을 때쯤.
"발사!"
이어지는 호령에 화살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벗어났다. 하늘로 거슬러 오르는 비처럼 화살들이 높이 솟아오르는 것도 잠시 중력으로 인해 곡선을 그리며 하강하는 화살들. 실크 모스들은 화살들이 날아드는 모습을 보고 날개를 펄럭이며 회피하려 했지만 많은 기사들과 병사들이 쏘아내어 만들어낸 촘촘한 화살비를 거대한 몸집과 날개로 피하기란 쉽지 않았는지 대부분 화살에 맞아 날개를 찢기거나 몸을 맞아 추락하기 시작했다.
남아 있던 실크 모스들은 그 모습에 겁이라도 먹었는지 돌아섰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화살에 맞아 날개가 찢기거나 상처 입은 놈들이 그대로 추락하는가 싶더니 성치 않은 날개와 몸을 움직여 방향을 잡고 그들을 향해 빠르게 몸을 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자폭인가!?"
"모두 충격에 대비해라!"
도나르가 놀라는 사이 옆의 기사는 익숙하다는 듯 소리쳤다. 놈들의 저런 행태가 한두 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구름 지대에서 보았던 가재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달려들었던 것을 보면 이곳의 몬스터는 직접적인 공격 능력보다는 저런 식의 자폭 공격이 특징이라도 되는 것일까. 다른 건 몰라도 꽤 효율적인 방식이긴 했다. 죽더라도 인간들에게 피해 정도는 주겠다는 결사의 각오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인간에게 증오라도 품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생명마저 가볍게 여기며 그들에게 피해를 주려는 모습이 도저히 동물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모두가 저마다 방패를 들며 충격을 대비할 때. 오두르가 도나르에게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몇 마리의 고도가 너무 높아! 이대로라면 저거 성벽이 아니라 민가로 떨어진다!"
그의 말에 고개를 든 기사도 그것들을 발견했다.
"혹시 밧줄을 묶은 작살이 있습니까?!"
"예! 저런 놈들을 대비해서 준비해 둔 게 있습니다."
오두르는 작살을 받아들었고 창을 특기로 하는 이들이 나서서 작살을 들고뛰었다. 곧 성벽의 아래쪽부터 실크 모스들이 몸을 부딪히기 시작한다. 아래쪽에서 퍽! 퍽! 살이 뭉개지는 것처럼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하얀 가루들이 퍼져 나오지만 그것에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방패 들어!"
곧 그들이 있는 쪽으로 떨어지는 실크 모스들이 있었으니까. 멀리에서도 제법 거대하다고 느꼈지만 가까이서 보는 녀석들은 생각보다 더 거대했다. 웬만한 드래곤들보다 큰 것이 위압감은 상당했지만 생각보다 무게는 가벼운 편인지 타워 실드를 두세 명씩 받치는 것으로 감당은 되는 것 같았다. 그보다는 빠른 속도로 낙하해 성벽과 방패에 부딪혀 죽으면서 연막처럼 퍼지는 독성 가루들이었지만 시야마저 가리는 탓에 작살을 든 이들이 걱정이었다.
"맞췄다! 민가 쪽으로 떨어지지 않게 당겨!"
다행히 그들은 제 역할을 잘 해주었다. 작살에 맞은 실크 모스들이 작살 끝의 밧줄에 끌어당겨져 방향이 엇나가 성벽으로 떨어지거나 성벽 위로 내동댕이 쳐졌다. 놈들은 마치 새하얀 솜털로 가득해 만져보면 푹신푹신할 것 같은 인형처럼 보였다. 새하얗기까지 해서 의외로 귀여운 모습이다.
-끼리리리릭!
하지만 아직 죽지 않아 기어 다니려는 녀석의 몸에 다른 기사가 칼을 꽂아 넣어 마무리 짓는 모습을 보고 한숨 돌리려 했지만 그럴 새는 없었다.
"또 온다!"
도망치는가 싶었던 실크 모스들이 선회하여 다시 그들 쪽으로 돌아오고 있었으니까. 그럴 때마다 화살을 날려 격추시켰지만 놈들은 질리지도 않고 공격과 후퇴를 반복해 한 마리도 남지 않을 때까지 몰아쳐왔다. 그런 일들을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모든 실크 모스들을 없앨 수 있었다.
"이거 청소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습니다."
때문에 약간의 노란빛을 띄던 성벽은 놈들의 터져 죽은 시체와 함께 하얗게 변해있었다. 전부 놈들의 독성 가루였다.
"그건 병사들에게 시키면 됩니다. 진짜 문제는..."
"이봐! 칸! 왜 그래!?"
그가 말을 이으려 했지만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그의 말은 끊겼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사람들이 몰려든 곡으로 가보니 바닥에 쓰러져 있는 병사가 있었다.
"컥! 끄윽!"
"다들 멀쩡한데 혼자서 뭐가 문제인데!"
몸을 부르르 떨며 발작하는 모양새를 보면.
"독에 중독된 건가?"
"말도 안 됩니다! 우리는 모두 방독면을...!"
칸이란 병사를 붇잡고 있던 이는 말하면서 뭐가 문제인지 깨달은 듯 입을 다물었다. 그의 옆에 있던 기사는 곧바로 다가가 병사의 투구를 벗겼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얼굴에는 코와 입을 감싸고 있어야 할 마스크가 보이지 않았다.
"보급품으로 나누어 주었던 방독면은 어쨌지?"
하지만 그걸 물어봐야 발작하는 이가 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독에 중독된 이상 너무 늦었다. 편히 보내주지."
이어서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든 기사가 그의 심장을 찔렀다. 말릴 생각도 없었지만 그럴 틈도 없는 빠르고 깔끔한 솜씨였다. 그러자 눈을 부릅 뜨며 움직임을 멈춘 그는 이내 축 늘어졌고 침묵이 맴돌았다.
"방독면을 깜빡했는지 팔아넘겼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경고하겠다. 보급품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죽는 건 너희들이라는 걸 명심하도록."
이어서 그는 옆의 남자에게 물었다.
"아는 사이인가?"
"예, 예!"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답했다.
"시신을 수습해라. 사정은 후에 듣지."
그들은 이어서 기사들을 따로 불러 모았다. 물론 도나르들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아이올로스 님께 보고를 드릴 전령은 보냈지만 저희들은 놈들이 습격했을 작은 마을을 조사하러 가야 합니다."
방금 전의 일은 금세 잊힌 것처럼 보였다.
"이곳을 지킬 분들과 조사를 갈 분들로 나누어야 하니 자원할 분들은 손을 드십시오."
도나르는 빨리 돌아가 시프를 보고 싶었지만 어차피 남아도 이곳을 지켜야 할 테니 조사단에 합류하기로 했다. 그렇게 이들을 나누고 나면 우연찮게도 도나르의 일행과 이곳의 기사들이 반반씩 섞여있는 모습이다.
"그럼 조사단은 저를 따라주십시오."
도나르는 그를 따라 다른 기사들과 함께 힐디스비니를 타고 성벽의 밖으로 나섰다. 펼쳐지는 드넓은 초원은 다시 보아도 보기 좋았지만 작금의 일 때문인지 지금은 썩 집중되는 광경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떻습니까? 이곳의 몬스터를 처음 상대한 느낌은."
나란히 달리고 있으면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은 그였다.
"사람 사는 게 딱히 다르지는 않군요."
"소문은 들었지만 역시 파시페니아도 살기 좋은 곳은 아니었나 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일이 익숙해 보여서 말입니다."
그에 도나르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 그의 말대로 익숙한 일이었다. 괴로워하는 동료의 숨을 끊어주는 것은.
"저는 게라르두스라고 합니다. 과분하지만 제2 기사단을 맡고 있습니다."
"도나르라고 불러주십시오. 여기서는 제4 기사단이 되겠군요."
아이올로스는 파시페니아에서 온 그들을 한데 묶어 4 기사단으로 편입했다. 그의 말을 들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빈자리가 있었으니 그곳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어쩐지 기사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울 텐데도 기다렸다는 듯 너무 딱 맞게 자리를 마련한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빈자리가 났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기사단은...?"
"인원수가 부족하여 해산했습니다. 전멸이라 보아도 좋습니다."
이후로도 힐디스비니를 타고 달리며 간간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이곳의 사정이라던가 몬스터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습격당한 마을이 점점 더 가까워 올수록 말수는 줄었다. 그야 가까워질수록 마을을 뒤덮은 하얀 것들을 더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작지만 그래도 마을이라 부를 수 있었을 곳은 미리 마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로 하얀 실에 두텁게 묻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