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간극.
"진짜 벨카랑 너무 붙어 있는 거 아니냐고."
어셔는 불만스레 중얼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도나르는 메디아가 또래 친구가 그리웠을 거라며 이해하라고 했었지만 벨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여전히 불만이었다. 또래의 여자아이라면 상단에도 많지 않았던가? 하필이면 벨카가 메디아의 마음에 들었다는 게 좋은 듯 좋지 않은 듯 미묘한 기분이다. 그가 그렇게 구시렁거리며 복도를 걷던 중이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이와 눈을 마주친 건.
""....""
깐깐한 난쟁이, 히스였다. 좋고 싫고를 떠나서 딱히 말을 많이 해봤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딱 봐도 까칠하고 깐깐한 인상이 괜히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 다행히 그는 아무 말 없이 어셔를 지나쳤다. 여기서 사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저런 사람들과는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모르겠다며 어셔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정말로 관리받으신 적이 없나요?"
메디아는 벨카와 함께 목욕을 하러 들어온 뒤로 연신 감탄만 터뜨렸다. 뽀얀 빛으로 자꾸만 시선을 사로잡는 하얀 피부에 무심코 껴안고 싶어지는 허리, 가슴이 좀 작은 편이긴 하지만 그것이 무슨 대수랴. 무척이나 가녀리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소녀의 나신은 보는 이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아름답다. 만약 소녀가 정말로 잘 만들어진 인형이었다면 그 어떤 값을 주고도 받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몸을 씻기 위해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벨카는 또 다른 매력을 풍겼다. 붉은 머리카락이라 하면 꼭 뜨거운 느낌을 주기 마련이건만 가녀린 몸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은 물에 젖은 꽃잎을 떠올리게 만든다. 메디아는 그 모습에 홀린 듯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런 걸 한 적은 없는걸."
"그런, 너무 부러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작 그녀는 벨카의 몸을 구경하기 바빴다. 그것은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질투가 날 법한데도 오히려 저 하얀 피부에 자신의 흔적을 새겨 넣고 싶은 듯한 욕망. 메디아는 그런 생소한 감각에 휩쓸려 망설이면서도 그녀의 몸에 손을 대었다.
"히읏?!"
그러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놀라는 벨카에 오히려 메디아가 놀랐다.
"제가 어디를 잘못 건드렸나요?"
"우으, 거기는 조금 예민하니까."
메디아가 만졌던 곳은 소녀의 허리였다.
"흐응, 그런가요? 그보다 혹시 어셔 씨와도 목욕을 같이하신 적이 있나요?"
"읏, 그런 건 어째서."
"그냥 궁금해서요."
이미 벨카와 어셔가 갈 때까지 간 사이라는 건 첫날부터 알았으니 말이다. 그럴 법하다고 생각한 것이지만 지금 그것을 물어보는 이유는 소녀를 방심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한 번뿐이지만... 있어."
"세상에 벨카 씨는 생각보다 대담하시네요."
"대담, 한 거야?"
"대담한 거예요. 하긴 서로 그렇고 그런 일까지 하셨으니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녀의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애써 차가운 물로 얼굴을 식혀보려는 벨카가 보였다. 어쩜 이리 놀리기 좋은 커플인가 생각하면서 메디아는 기회를 노렸다.
"잡았다!"
"흐으으?!"
소녀가 방심한 순간 메디아는 그녀의 허리를 잡아 꾹 눌렀다. 물기 탓인지 손에 착 감기는 듯한 가녀린 허리는 계속 주무르고 싶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아읏, 흐아? 어, 어째서."
묘하게 야릇한 신음을 흘리며 물기 어린 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에 메디아는 웃었다. 그리고 목욕이 끝날 때까지 벨카는 그녀에게 붙잡혀 허리를 농락당해야 했다.
"...못됐어."
목욕이 끝나고 삐져버린 소녀를 달래는 건 조금 힘들었지만 즐거웠다고 생각하며 메디아가 벨카와 함께 옷을 입고 방을 빠져나왔을 때였다.
"아가씨."
"히스?"
방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히스와 마주친 건.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요?"
그녀의 아버지의 보좌관인 그는 메디아에게도 익숙한 인물이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깐깐한 성격까지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녀의 아버지가 바쁜 만큼 그도 바쁘니 말이다. 메디아의 물음에 히스는 입을 열었다.
"아이올로스 님께서 저녁식사 후에 그분을 잠깐 뵙으면 한다고 하십니다."
"아버님께서요?"
그는 메디아를 바라보다 그분이라는 대목에서 벨카를 보았다. 생각해보면 벨카는 그녀의 어머니와 너무도 닮아있었다. 어렸을 때 이후로 어머니를 직접 뵌 적이 없는 그녀도 그렇게 느끼는데 그녀의 아버지라고 하여 다를 리가. 메디아는 불안해졌다.
"사람이 많이 줄었네요."
그날 저녁, 도나르와 마부들이 성으로 돌아와 식사를 함께 했지만 고용된 기사의 가족이 아니라 이 성에 머무르지 못하는 상단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라져 어셔의 말대로 만찬장은 텅 비어 보였다.
"뭐, 그렇지. 성에 머무르는 걸 허락받은 건 고용된 이들이나 가족뿐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예정대로 살 곳을 찾아갔어."
"단주님도 몸이 편찮으실 텐데."
"뜨루스도 같은 곳에서 산다니까 괜찮을 거야."
도나르와 시프는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긴 아무튼 같은 고향 출신의 사람들일 텐데 말이다. 어셔는 식사를 계속했다.
"어셔, 이것도."
"켁, 그거 맛없던데."
"편식하면 못써."
벨카는 어김없이 그에게 음식을 권하고 있어서 어셔는 그것들을 받아먹느라 맨 앞의 상석에서 그들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메디아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본래 그녀의 옆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어야 할 남자는 본인의 방에서 식사를 한다는 이유로 만찬장에 없었다.
"후우."
조금 늦게 처리해도 되는 일마저 처리하며 집중하던 아이올로스는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한숨을 돌렸다. 원래는 쉬었어야 할 시간이지만 그는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있었다. 어차피 곧 하녀가 그의 식사를 가져다주러 올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똑똑 그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라."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은 연한 갈색 머리카락의 하녀, 아냐였다. 그녀는 익숙하게 들어와 그의 앞에 간단하게 차린 식사들을 올렸다. 그와 같은 이의 식사치고는 무척이나 단출한 편이었지만 이럴 때는 과하게 많은 음식보다는 간단한 식사가 더 취향이었다. 말없이 수저를 들어 식사를 마쳐갈 즘이었다. 음식의 냄새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하던 향이 그의 코를 간질인 것은.
그다지 자극적이지도 강렬한 향기도 아니라 음식의 냄새에 가려질 정도로 미미한 향이었지만 그 향은 확실하게 그에게 닿았다. 그는 시선을 돌려 한구석에 얌전히 서있던 아냐를 보았다. 그 향은 확실하게 그녀로부터 오고 있었다. 꾸미는 것이 제한된 하녀로서 최대한 꾸며본 것이리라. 오늘따라 그 미미한 향이 유독 강하게 느껴졌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유혹해 온다면 응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이리 와라."
"네."
그의 명령에 아무런 이견 없이 다가오는 아냐. 그러자 조금 약하다 생각했던 여인의 체향이 확 다가와 붙는다. 그는 한 손으로는 자신의 옆에 붙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천천히 그녀의 가슴을 주물렀다. 그리고 그녀의 옷깃을 열어 손을 집어넣자 곧바로 풍만한 모성의 상징이 잡힌다.
"오늘은 아주 작정한 모양이구나."
"으흣, 그."
"그만, 말하지 않아도 된다."
고작해야 인간의 살덩이에 불과할 텐데 여인의 가슴이란 이토록 남성의 정욕을 자극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가 그녀의 가슴을 꾹 쥐었다 풀어주고 슬며시 쓰다듬듯 어루만졌다. 그러다 가슴 끝 몽우리를 잡고 약하게 잡아당긴다.
"흐으."
천천히 달아오르는 아냐의 모습을 지켜보다 그녀의 치마 아래로 불쑥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손가락에 닿는 축축한 균열. 그는 느긋하게 그곳을 문질렀다. 몇 번이고 몸을 섞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 있었으니까. 그는 살짝 배어 나오는 축축한 액을 더 많이 뽑아내려 했지만 급하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욱 천천히 느긋하게 그녀의 은밀한 곳을 문지른다.
"하아!"
처음에는 그저 작은 신음으로 끝나던 것이 갈수록 커지는 것을 느끼고 가끔씩 손끝에 걸리던 것을 툭 치자 아냐가 허리를 휘었다. 가볍게 가버린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그는 그녀의 허리를 잡고 천천히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곧바로 그녀의 치마를 들춘다.
"아."
아냐가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지만 그 가벼운 전회는 어디까지나 그녀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에 불과했다. 아니 배려조차 아니었다. 성욕의 해소를 위해선 그런 일을 해두는 것이 더 도움이 되었기에 하는 일이었을 뿐이다. 상대가 아픈 소리를 내어봐야 썩 좋지는 않았으니까.
"눈을 감아라."
아냐는 그의 명령대로 눈을 감았다. 흐트러진 하녀복과 들춰진 치마 아래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아 끈적하게 흘러내린 꿀물의 흔적이 가득한 음부를 드러내고 다리를 벌린 채 눈을 감은 그녀. 누군가 본다면 당장 박아대도 할 말이 없을 만큼 무방비한 모습으로 잠이 든 듯한 모습이다. 그는 그런 아냐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물건을 꺼내들어 축축하게 젖은 그녀의 아래에 쑤셔 넣었다.
"으흑!"
그녀가 신음을 내뱉지만 결코 눈을 뜨지는 않는다. 당연히 잠이 든 것은 아니었다. 눈을 감으라 하여 눈을 감고 움직이지 말라는 암묵적인 요구에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 행위에 상대에 대한 배려란 존재하지 않는다. 물건을 사용하는 것처럼 제멋대로 아냐의 몸을 사용하고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관계를 맺은 상대로서 최소한의 책임은 쳐 줄 생각이다. 하지만 그뿐 이런 행위에 사랑이나 애정 같은 감정은 끼어들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성욕의 해소를 위해 그녀의 몸을 사용하는 것이니까. 허리를 흔들 때마다 그의 물건을 얽어오는 강한 쾌감과 들러붙는 살결에 몇 번이고 부딪히다 보면 다른 감정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이를 들이기엔 그의 가슴속에는 아직도 한 사람이 꽉 들어차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참으로 미련하게도 그는 제 아내의 모습을 눈을 감은 아냐에게 비추어 보았다. 닮은 부분이라곤 전혀 없는데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선택한 여인이었는데 어디에서나 그녀의 흔적을 찾고 마는 자신이 한심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의 몸은 쌓아두기만 했던 것이 터져나가듯 그녀의 몸을 탐하기 바쁘다. 도구라 취급하고 싶어도 결국은 살아있는 여인이기에 끓어오르는 정욕과 아래 입으로 그의 물건을 삼키는 아냐에게 느끼는 정복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서로 동의한 일이었다고는 해도 이런 식으로 관계를 맺으리라곤 스스로도 몰랐던 일이었으니.
"하아앙!"
아냐가 자신의 속에 들어차는 뜨거운 감각에 신음을 내지른다.
"아, 아이올로스 님?"
이어서 그가 물건을 빼지 않고 허리를 흔들자 그녀가 당혹스러워하며 그를 부른다. 사정을 한 후에도 자신을 놓아주지 않으니 그런 것이리라. 원래라면 그는 이쯤에서 끝냈겠지만 오늘은 그녀가 더 필요했다. 때문에 그는 잠시 눈을 뜨고 입을 열었던 아냐를 모른척했다.
"오늘은 좀 오래 걸릴 것 같군."
"흐윽!"
오늘은 원치 않더라도 체력이 남아있는 한 많은 것을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모든 관계가 끝나고 저녁 식사가 완전히 마무리되었을 시간. 문밖에서 히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셔왔습니다."
그는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그가 불러들인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긴장으로 가슴이 떨려왔다. 잘못해서 자신을 잃을까 몇 번이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킨 그는 뒤늦게나마 답했다.
"들여보내라."
그러자 소리마저 느리게 느껴지도록 문은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온 붉은 소녀의 모습에 그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방금 막 들어왔을 뿐인데 아직은 관계 후의 불쾌한 냄새가 남아있던 방 안이 달큼한 꽃향기로 가득 채워진 것 같았다. 그곳에는 어린 시절의 그녀가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그녀가 아니었다. 적어도 그녀의 눈동자는 금빛이 아니었으니까. 소녀에게서 그녀와의 차이점을 간신히 발견하는 것으로 그는 이성을 부여잡았다.
그마저도 아슬아슬하고 너덜너덜한 동아줄 같은 것이었지만 그에게는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아마 미리 아냐를 불러 해소하지 않았다면 그는 이미 소녀를 덮치고 있었을 지도 모르니까. 그는 치밀어 오르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에 혀를 찼다. 그는 미쳐선 안 되었다. 아무리 그가 이 소녀를 권력으로, 약점으로 손쉽게 제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고 해도 그녀의 남편이었던 그만큼은 그런 행동을 해선 아니 되었다.
"메디아와 친하게 지낸다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