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8화 〉여름의 철새. (68/220)



〈 68화 〉여름의 철새.

"여기는 사람들이 대체 얼마나 많이 사는 거래."

다음날, 상단이 왔다는 소식이 멀리까지 퍼졌는지 어셔는 아침부터 붐비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어제는 그나마 발 디딜 틈이라도 있었던  같은데 오늘은 저 사이에 끼이기라도 하면 빠져나가지도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오늘은 어제 선금을 주고 왔던 구두를 가지러 가야 하는 날이었기에 어셔는 벨카의 손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며 인파를 헤쳐나갔고 겨우겨우 구두를 주문했던 가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저희 왔는데요!"


노인은 어제 그들이 찾아왔을 때 보았던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무두질 된 가죽의 독특한 냄새와 희미한 기름 냄새,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작은 단칸 가게의 향은 오래된 과거를 그리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를 들었을까? 노인이 손에 들고 있던 헝겊으로 무언가 닦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어슴푸레한 눈으로 그들을 보는듯하더니 이내 낡은 손으로 쥐고 있던 헝겊을 옆으로 치웠다.


그러자 보이는 건 희끄무레한 광택이 감도는 검은 가죽 신이었다. 낡은 단칸 가게에서 만들어졌다고 보기 힘든 새 구두의 모습에 어셔는 감탄했다. 표면은 광택이 적고 밋밋해 보였지만 소녀의 발만큼이나 작아 보이는 구두는 오히려 그편이 더 어울려 보였다. 다소 심심한 느낌은 그 위에 얹어진 작은 리본 장식이 해결해 주었다.

"한 번 신어보게나."

한참 구경하던 중 노인의 말에 어셔는 소녀를 재촉했다. 분명 구두를 신는 건 그녀였는데도 그가 더 신이 났다.


"벨카! 얼른!"
"알았으니까. 너무 밀지 말아줘."

결국 벨카는 그의 재촉에 떠밀리듯 다가가 신고 있던 나무신을 벗고 노인이 건네는 구두를 신었다. 발이 그대로 보이는 나무신과는 달리 발이 갇히는 구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셔가 물었다.

"불편하지는 않아?"
"폭신폭신해."

소녀는 살짝 놀란  구두를 신고 작게 발걸음을 옮기며 신기하다는  구두를 신은 제 발을 내려다보았다. 구두가 그녀의 마음에도 든  같아 어셔는 뿌듯한 마음으로 노인에게 나머지 철전 여섯 개를 내밀었다.


"여기요."
"철전 여섯 전..., 무게도 확실하군."

어제 꺼냈던 저울로 철전 하나의 무게를 재고 무게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노인의 모습을 보며 그는 혹시 다음에  신발을 살 일이 생긴다면 이곳에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죽신을 사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이곳이 잘 만드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작은 단칸 가게와 그 가게를 지키는 노인의 모습도, 그가 만들어준 신발도 마음에 들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노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상단으로 돌아가는 길. 벨카는 새로 신게  가죽신이 신기한지 여전히 내려다보고 걷고 있었다. 걸을 땐 앞을 보는 게 좋았지만 그녀를 말리기엔 어셔는 그런 소녀의 모습을 더 지켜보고 싶었다. 혹시 넘어지거나 부딪히려 하면 그가 잡아주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소녀를 쳐다보고 있었을까? 뒤늦게 그의 시선을 눈치챈 듯 벨카가 흠칫 몸을 떨었다.


"저, 어셔?"
"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바라보자 소녀가 고개를  숙였다. 어쩐지 가면 속의 얼굴을 직접 보지 않아도 그녀가 어떤 상태일지 알  있을 것 같아 배싯 웃음이 흘러나왔다.

"...고마워."


아주 작게 웅얼거리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용케도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그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셔는 그저 웃어주며 상단으로 돌아가고자 발걸음을 옮겼다. 마음 같아선 어제 가보지 못했던 이 근처를 더 탐방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경매가 열리는 오늘은 더 혼잡하고 사람이 많은 탓에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며 꼭  일만 보고 오라며 도나르에게 당부 받았던 것이다. 괜한 참견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그 말을 들은 어셔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야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그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으니까. 벨카를 제외한다면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소녀가 아니라면 어셔를 그렇게 신경 써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가벼운 발걸음으로 상단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즘이었다.

"사샤?"

누군가 벨카의 손을 잡아채듯 붙잡은 것은. 탁! 하고 소리가 울릴 정도라 어셔가 놀라 바라보면 로브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그녀의 반대쪽 손을 붙잡고 있었다. 그에 벨카가 차갑게 말했다.

"나는 사샤가 아니야."
"...그렇지, 그렇겠지. 하지만..."


로브를 눌러 쓴 사내가 벨카의 말에도 좀처럼 손을 놓지 않자 무슨 일인가 싶은지 사람들의 시선이 이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읏."

그러자 소녀가 부담스러운  몸을 움츠렸다. 더 이상 그의 행동을 간과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 어셔가 끼어들려던 찰나 먼저 끼어드는 이가 있었다.


"우리 상단의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다름 아닌 도나르였다. 때마침 나타난 믿음직한 어른의 모습에 어셔는 안심하며 소녀의 손을 남자의 손에서 빼내었다. 그에 잠시 남자의 시선이 그에게 옮겨졌다 도나르에게 향했다.


"미안하군. 내가 사람을 착각했어."

의외로 남자는 순순히 사과했다.


"아, 예, 그럼 저희는 이만."


도나르라면 뭐라도 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다렸지만 그는 냉큼 사내의 사과를 받으며 어셔와 벨카를 이끌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그대로 도나르에게 이끌려 가면서도 어셔는 흘긋 뒤를 바라보았다. 로브를  사내는 어디론가 걸어가지도 않고 멀어지는 그들을, 정확히는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인파에 묻혀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도나르는 그들을 이끌고 상단으로 돌아올 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후우, 딱히 쫓아오지는 않는 건가."

도나르는 상단에 도착한 뒤에야 살았다는  한숨을 내쉬며 그들을 놓아주었다.

"악! 왜 때려요?!"

그리고는 어셔의 머리에 가볍게 꿀밤을 먹이는 행동에 그는 억울한 마음에 소리쳤다. 힘을 주지도 않아서 아프지는 않았지만 반사적으로 소리치자.

"야 인마. 너는  조심성 있게 굴어. 네가 부주의하면 피해를 받는  너만이 아니라 벨카도 마찬가지라고 오히려 더 위험하기까지 하지."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의 말을 이해할  없었던 어셔가 묻자 도나르는 골치가 아프다는  이마 부근을 짚었다.

"상대가 정중한 편이라 다행이었지 잘못했으면 큰일이  뻔했다고."

길에서 멀쩡히 지나가던 사람의 손을 붙잡고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 그게 어디가 정중하다는 것일까? 어셔가 못 알아들은 눈치이자 도나르는 한숨을 내쉬며.

"끙, 지금 뭐라 말하기는 애매한데 웬만하면 길에서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사람을 보면 상대하거나 마주치지 말고 피해 다녀."
"그건 어째서."
"아무튼 엮여서 좋은  하나 없는 인간들이니까. 피하라면 피해."

그는 언짢은 기색이 역력해서 어셔는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쯧, 혹시나 했는데 직접 오는 사람도 있을 줄이야. 다른 사람한테도 주의를 줘야겠는데. 얘들아 너희도 경매 시작하기 전에 빨리 마차로 돌아가는 편이 좋겠다."
"네? 하지만."
"너네 마차에 시프도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얼른!"


평소와는 다른 조급한 도나르의 말에 어셔는 벨카와 함께 마차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도착한 마차의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프가 그들을 맞이했다. 혹시 그녀라면 도나르가 왜 저러는지 알까 싶어서 어셔가 물으면.

"그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도나르가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러지는 않을 거야."

시프도 도나르와 다른 이들에게 오늘은 마차 안에서 나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결국 그들은 마차 안에 하루 종일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보고가 사실이라는  확인했지만, 맨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아쉽군."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본의가 아니었어도 먼저 무례를 범한 것은 그였으니까. 억지로 가면까지 벗어달라 요구할 수는 없었다. 하라면 할 수는 있어도 그렇게까지 하면서 먼저 미움받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꾸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역시. 그의 기억 속에 묻은 한 여인과 소녀의 붉음이 너무나도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직접 얼굴을 보지도 않았는데도 아직까지도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색과 같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흔들리다니 스스로도 참 주책이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절제하지 않았다면 소녀의 가면을 벗기고 말았겠지. 그래도 혹시 한  더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는 경매가 열리는 곳으로 향하다 그와 비슷하게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와 마주쳤지만 둘은 별다른 말을 주고받는 일도 없이 스쳐 지나갔다.

"파시페니아의 기사라."

기사국, 파시페니아. 그 거리는 이곳과는 멀고도 멀고 험하고도 험하여 교류한 적이 손에 꼽을 지경이었으나 그 이름만큼은 유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성지와 함께 드래곤들에게 유이하게 맞설  있는 국가를 어찌 모를  있으랴. 특히 유명한  그 나라의 기사들이다.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파시페니아를 기사국이라 부르는 것은 그만큼 뛰어난 기사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드래곤도 쓰러트릴 수 있는 기사라면 다른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것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니.


실제로 구름 지대 아래에서의 위험성만큼은 드래곤에 비견된다는 가재를 잡아  껍데기를 전리품으로 삼아 경매에 팔고 있지 않던가? 대체 왜 그런 기사들이 고국을 버리고 나와 상단의 일원으로서 이곳에 들어왔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좋은 소식이 될  같았다.

"여름의 손님인가..."


결국 그도 이곳의 토박이라는 생각에 쓰게 웃었다. 그는 자꾸만 떠오르는 붉음을 떨치지 못했다.

경매는 잘 될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성황을 이루었다. 타국의 물건이라는 것이 귀한 것도 있었겠지만 역시 가장 큰 화제를 모은  가재의 껍데기였다. 수레에 실려가는 가재의 머리를 보며 도나르는 샬비와 대화를 나누었다.


"이야, 저거 머리 부위만 얼마에 팔린 거냐?"

가재의 껍데기는 그 악명과 희소성 때문인지 가격이 순식간에 치솟아 올랐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부서진 부분을 고려해 부위별로 따로 팔았음에도 하나하나가 비싸게 팔렸다. 가장 비싼 값에 팔린 것은 역시 방금 낙찰된 머리 부분이다.

"철전 1370전이면 우리 월급 몇 달 치지?"
"딱 7년 치 정도 되겠는데?"
"세상에 우리가 드래곤 몇  마리를 잡아도 저 값은 안 나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가재를  마리 팔아서 나온 값이 그들이 고국에서  달 동안 드래곤 몇 십 마리를 잡으며 보내야 했던 시간 동안 받았던 값보다 훨씬 더 많았다.

"우린 애초에 애국심으로 먹고사는 사는 직업이었잖냐. 돈은 무슨."

그를 핀잔하듯 말하는 샬비였지만 정작 그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가득했다. 그도 그렇겠지 아무리 애국심으로 먹고살아야 했던 직업이긴 했지만 자신들이 고생고생하며 쓰러트렸던 드래곤의 부산물이 어떻게 쓰였는지 기사로서 살아가던 이들이라면 모르는 것이  힘들었다. 단지 알고도 모르는 척 보았음에도 보지 못한  눈 감아왔을 뿐이다. 그들은 필요 이상의 노동이라도 목숨을 위협받는 일이라 할지라도 애국이라는 이름하에 감당해 왔었다.


드래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바빠서 그게 바보 같은 일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문제였다. 그쯤엔 그들은 어디에서나 호구 취급을 당하는 호의를 베푸는 것이 의무가 된 멍청이가 되어 있었지. 비록 상황은 드래곤을 상대할 때보다 좋지 않긴 했지만 정말로 드래곤보다 힘들다는 생각이  정도는 아니었던 가재의 부산물이 팔리는 가격에 그와 같은 출신의 기사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지나간 일 생각해서 후회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긍정적으로 정착할 자금이 많으면 좋잖아?"

도나르는 괜히 침울해진 듯한 동료들을 다독였다. 드래곤을 잡는 것보다 어렵지는 않았지만 가재 때문에 인명피해가 나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뻔하기도 했으니까. 이미 떠나간 고국,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는 것도 미련한 일이다. 앞으로 그들은 란투아에서 살아갈 생각을 하는 편이  좋았다. 가재의 머리가 팔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들은 벌어들인 돈들을 정산했다.

"으음, 이러면 애들한테 더 미안해지는데."

도나르는 가재를 팔아서 나온 값을 보며 어셔와 벨카를 생각했다.

"응? 왜?"
"가재를 부위별로 팔긴 했는데 한 마리 값이라 치면 엄청나잖아?"

가재의 부산물들은 그들이  돈에 약 3할을 차지했다. 아이들은 별로 필요 없다고 하긴 했지만. 그가 고민하고 있자 오두르가 말했다.


"그럼 애들한테도  챙겨주라고 생각보다 정착 자금도  모였으니까."
"...그래도 괜찮겠냐?"
"사실상 애들 덕분에 잡은 거잖아."
"그렇지, 그럼 애들한테 안 주려고 그랬냐? 세상에 도나르 너도 돈 욕심이 있긴 했구나?"
"야! 남이 진지하게 고민하는데 뭐?"

생각보다 시원시원한 동의에 도나르가 걱정스럽게 되묻자 돌아오는 동료들의 놀림에 그가 달려들고 동료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도망쳤다. 결국엔 도나르에게 동료들이 줄줄이 잡혀 엎치락뒤치락 거리다 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그래도 그거 그 인간들한텐 이야기하지 마라."
"아, 그렇지."

샬비의 충고에 도나르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샬비가 말하는 그 인간들이란 판만큼 큰일을 벌이지는 않았을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억지를 부리거나 민폐를 끼쳐서 소위 찍혔다고 부르는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큰일이 날 뻔한 적도 있어서 에르미스 씨가 단호하게 본보기를 보인 이후로 조용한 편이지만 말이다. 그들에게도 정확하게 똑같이 1인당 정착금을 나누어줄 텐데. 그들이 너무 적다며 억지를 부리면 일이 귀찮아졌다.


"왜 파시페니아를 떠나왔는지 모를 사람들이니까 뭐."
"타국에 대한 환상이라도 있는 건지. 그 정도면 차라리 그쪽에서 사는 편이 나을 텐데."


기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단 생활이 고달플 것이라는 건 이미 출발 전에  번이고 당부했는데도 상행 도중에 부리는 억지는 영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에르미스의 중재도 있고 해서 되도록 무시로 일관하고 있지만 정착금만 주고 끝낼 관계였다. 그렇게 그들이 정산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로브를 쓴 누군가가 그들에게 다가온 것은.

"경매는 모두 끝났습니다만 따로 볼 일이 있으십니까?"


그에 도나르는 동료들과 눈짓을 주고받다 대표로 물었다. 수상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모습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모습에 무례하게 대할만한 배짱이 있거나 멍청한 이들은 드물 것이다. 우선 로브의 재질부터가 다르니까. 저런 종류의 로브는 높으신 분들이 시찰을 나올 때 사용하는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런  어디를 가나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르는척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몰라서 건드리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도 봉변이고 높으신 분들에게도 귀찮은 일이다.

그러한 이유로 소위 귀족이라 부르는 이들은 모습은 감출지언정 쉽게 대하기 어려운 비싼 원단을 사용하는 로브를 쓰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정말 방금 그걸로 경매가 끝난 건가?"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까 소녀의 손목을 붙잡았던 그 남자였다. 도나르는 낭패를 느끼면서도 대답했다.

"예, 더 이상  물건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아직 마차와 힐디스비니, 안 쓰는 갑옷이 남아 있지만 그건 따로 신중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다. 마차는 대장장이들에게 부탁해 분해해서 팔아치운다 치더라도 힐디스비니와 안 쓰는 갑옷은 처리가 특히 곤란했다. 힐디스비니는 성미가 매우 까다롭고 그들이 길들인 것이나 다름이 없어서 새 주인을 찾기가 힘들었고 안 쓰는 갑옷의 경우 그들과 함께 온 대장장이들이 이만큼 실력이 좋다는 선전용 같은 느낌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갑옷과 외형이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혹시라도 잘못 팔린 갑옷이 엉뚱한 곳에 쓰인다면 잘못해서 같은 갑옷을 입고 다니는 그들이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음에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도나르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분명 말 한 마리도 같이 들어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해두지만 그들이 란투아에 들어온 것은 고작 이틀 째였다. 아무리 소문이 빠르다지만 그 사이에 말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는 건 명백히 이상했다. 게다가 말은 아이들의 것이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도록 여전히 마차에 숨겨둔 상태다. 그런데도 이 남자가 알고 있다는 건 그가 생각보다 더 높은 신분의 인물이라는 소리였다.

"죄송합니다만 그건 판매품이 아닙니다."

적어도 그들의 입국을 심사했던 회색 난쟁이의 상관이 아니라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눈앞의 남자는 그들을 란투아에 입장하는 것을 허락할만한 권력을 가진 인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건 최소한 영주라는 뜻이고 최대는 왕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가 알기로 란투아는 연맹 국가였다. 영지를 가진 권력자들과 이 지방의 왕이나 다름없던 이들이 호시탐탐 쳐들어오는 몬스터들을 대비해 서로 협의하여 완성된 거대 국가가 바로 란투아였으니까.


"이상하군. 그럼 무엇 때문에 데리고  거지?"


그러다 그는 그들의 규모와 수상한 인원에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의문이 풀릴 것 같았다. 설마 말을 팔 것이라 생각하고 그들을 통과시킨 것이었던가? 그렇다면 그들을 통과시킨 이유가 아주 납득이 안 되는  아니었다. 말은 무척이나 희귀한 동물이었고 아무리 고명하신 분이라도 없어서 구하기 힘든 게 바로 말이었으니까. 등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점점 늘어가는 것을 느끼며 어떻게든 말을 이었다.

"주인이 따로 있는 말이라 그렇습니다."
"주인? 주인이라."

남자가 고민하는 모습에 도나르는 더욱 불안해졌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 주인을 한 번 만나  수 있겠나? 직접 이야기해보고 싶군."
'이럴 줄 알았어!'

그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는 어떻게든 변명해 보고자 했으나.


"하지만... 그건."
"왜? 곤란하기라도 한가?"

변명할 거리가 전혀 없으니 도나르도 어쩔 수 없었다.


"끄으으, 답답해."


어셔는 아무리 기다려도 마차 안에서 나갈  없는  상황에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마차가 움직일 땐 멀미 때문에 잠드는 일이 많아서 시간이 빨리 가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움직이지도 않으니 심심하고 괜히 공기가 텁텁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나마 벨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면 참지 못하고 혼자 밖을 나섰을 것이다.


"정 심심하면 책을 읽는 건 어떻니?"
"그건 좀..."

시프의 권유에 어셔는 말끝을 흐렸다. 그는 썩 책을 읽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면 마법책은 무엇이냐 묻는다면 그건 마법책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마법에 대한 것이라서 책을 읽었을 뿐이지 애초에 책은 구하기도 힘들고 읽는 것도 귀찮은 물건이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라면  번이라도 읽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결국 그가 선택한  소녀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눕는 것이었다.

"벨카, 나와도 된다고 하면 깨워줘."
"응."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망설임 없는 대답에 안심하고 잠들려던 순간 갑자기 발소리가 들려왔다. 밖이 갑자기 조용해진 탓인지 마차 안에서도 들리는 발자국 소리는 쇳소리가 섞인 것이 도나르나 마부들 중  명의  같았다.  외에도 다른 발자국 소리가 하나. 경매가 끝났나 싶어 잠들려던 것도 그만두고 창밖을 살피려 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 순간 마차의 문이 열렸으니까.


"도나르?"

그  앞에는 도나르가 있었지만  다른 이가 서있는 모습에 시프는 의아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의 옆에는 아까 소녀의 손을 잡았던 로브와 똑같은 로브의 남자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마차의 안에 있어 가면을 쓰지 않은 벨카를 보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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