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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화 〉상처 자국. (64/220)



〈 64화 〉상처 자국.

"읏, 흐윽, 흣!"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에게서 신음이 들려오기 시작한 건 그다지 오래 걸린 일은 아니었다. 벨카는 어셔를 거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를 원한다며 조르는 듯했다. 그는 그녀의 사랑을 받는 어셔가 미웠다. 자신이 아닌 어셔를 사랑하는 벨카가 미웠다. 소녀의 사랑이 그 아름다운 금빛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그는 그저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으응!"


소녀는 더 이상 그를 거부하지 않았고 기꺼이 두 다리를 벌리고  음란한 문을 열어 그의 육봉을 받아들였다. 다시는 느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소녀의 안쪽을 허락받아 그의 물건이 파고들어 맛보고 있었다. 뜨겁게 달구어진 그의 육봉이 소녀의 꿀물에 가득 젖어 아무런 저항도 없이 단내가 나는 소녀의 보지를 들락날락했다.


"흐읏! 흐응!"

보지가 그의 자지를 삼켰다 뱉을 때마다 소녀의 쾌락에 찬 신음이 마차를 울리고 있었다. 그가 그녀를 강제로 범했을 때와는 다른 고통도 거부감도 없는 쾌락에 찬 목소리였다. 끈끈하게 달라붙은 땀과 애액이 불쾌하다기보다 기꺼웠다.

"아읏."

자신의 아래에 깔려 신음을 내뱉는 소녀의 모습이 이렇게 만족스러울 줄은 몰랐다. 강제로 할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반응이었다. 그 사랑스러운 금빛이 덧없이 감기기는커녕 그를 바라보며  빛을 더했다.

"후으으, 로기."


그 행위가 오래된 탓인지 울상을 짓는 소녀의 표정마저도 사랑스러워 그의 성욕을 가라앉히기보다 더욱 부추기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들의 움직임이 절정에 달했을 때.

"아흐읏...! 아!"


그는 숨소리를 최대한 죽인 채 사정했고 소녀는 어느 때보다도 큰 교성을 내뱉으며 거부감도 없이 그의 정을 뱃속에 받아들였다. 눈앞이 일순간 하얗게 물들고 다시 시야가 정상적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뜨뜻하고 끈적한 기분 나쁜 점액질이 자신의 손에 묻어있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허여멀건 액체로 이루어진 웅덩이가 고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으, 어셔."


멀게만 느껴지던 소녀의 목소리가 어느새 현실감을 되찾았다. 그래, 모든  그의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애써 어셔의 존재를 지우고 그 자리에 자신을 끼워 넣어도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달빛조차 닿지 않는 어두운 침대 밑에 숨어서 그들의 행위를 훔쳐보고 있었고 그들은 한참이나 그 행위를 반복했다. 그리고 겨우 그 행위가 끝났을 때. 서로에 대한 애정을 속삭이는 그들이 보였다.

"좋아해. 벨카."
"응, 나도 어셔가 정말 좋아."

가슴이 아팠다. 소녀를 바라보고 있으면 들떠서 뛰어다니던 심장이 그를 너무 아프게 만들었다. 그들이 입술을 맞추는 순간 그의 심장은 아예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내 어셔가 소녀의 품에 기대어 잠을 청할 때. 그의 심장이 너무 거세게 뛰어서 가슴이 아팠다.  아픔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을 지켜보다가 로기는 보게 된 것이다. 벨카가 우는 모습을.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자신이 숨어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다가가 위로하고 싶을 만큼. 소녀는 제대로 된 소리조차 내지 못하며 울고 또 울다가 지쳐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기는 침대 밑에서 빠져나왔다. 벨카와 어셔는 관계의 흔적이 남아 흐트러진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어셔를 제 가슴에 품듯 안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또 가슴이 아팠다. 차라리 뜯어내고 싶을 만큼 괴로우면서도 버릴 수 없는 아픔이었다.

그녀를  때마다 느끼는  아픔이 너무나 싫으면서도 자꾸만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지금은 잠들어버린 소녀의 눈물 자국을 손으로 조심스레 닦아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가 그의 손가락에 살짝 닿으면 소녀의 가늘고  속눈썹에 매달린 투명한 눈물이 그의 손가락으로 옮겨와 맺혔다. 그것으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끝이 났는데 자꾸만 미련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시간은 더 이상 그가 소녀의 곁에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차의 밖에서  다른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기에. 마차의 문이 끼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서서히 열렸다.


"이, 이제 자는 건가?"
"그런 거 같아요."

그리고 들려오는 것은 당황스러운 기색의 한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 그들이 주섬주섬 어딘가를 뒤지다 양초에 불을 켜자 드러나는 그들의 인영. 그들은 다름 아닌 도나르와 시프였다. 그들이 아이들의 정사를 엿듣게 된 건 우연이었다. 파랴르와 함께 돌덩이 같은 이곳의 독특한 음식을 화로에 구워 먹을 때. 어셔가 그것의 모습에 기겁하다 마차로 돌아가 버리고 벨카 또한 당연하다는 듯 그를 따라 마차로 들어가 버렸기에 남아있는 이들 사이에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저기 내가 뭘 잘못한 게 있었는가?"
"아, 아니요. 그건 저희도 잘."
"그, 어쩌면 이것과 비슷하게 생긴 것에 안 좋은 추억이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시프와 도나르는 머쓱한 표정의 파랴르에게 아이들을 위해서 어떻게든 변명했다. 그들이 함부로 굴만  성격이 아니라는 건 그들과 동행하면서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이게 보기 드문 음식인데 그곳에도 동굴 같은 곳이 있었나 보구먼."
"이게 동굴에서 나는 건가 보군요."
"머, 조개 같은 거니. 주로 짠물이 흐르는 동굴에서 살지. 우리는 광산을 캐다가 겸사겸사 이게 먹을만하다는 걸  거요."

다행히 파랴르란 난쟁이는 그리 모난 성격이 아니라서 좋게 좋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럼 이만 빠져 줄 테니 깨들 볶으시게!"

그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그들이 하고 있는 반지의 모습을 보고 눈치를  것 같았다. 도나르와 시프는 뜨거워진 얼굴로 그를 배웅했다. 음식을 구워 먹다가 떠오른 것은 먼저 마차로 돌아가버린 아이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셔 얼굴이 좋지 않던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 아닐까?"
"그럼 한 번 확인해 보는 게 어떨까요?"

그리하여 그들은 어셔가 걱정되는 마음에 그들이 머무르는 마차를 찾았다가 교성을 듣게 된 것이다. 때문에 마차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그들은 일단 식사를 마무리하기로 하고 다시 마차로 돌아왔던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식사 중에도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요즘 애들은 참 빨라."
"그, 그러게요."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벌써 그런 일을 하는 관계였으리라곤 그들도 예상치 못했다. 마차 안은 그들의 관계가 얼마나 격렬했는지 알려주듯 달아오른 소녀의 체향과 어딘가 야하고 끈적한 공기로 가득해서 마차에 들어온 도나르와 시프는 얼굴을 붉혔다.


"그럼 난 바람이나 좀 쐬고 올게."
"네."

아이들이 감기에라도 걸릴까 걱정하던 시프가 적어도 소녀의 옷이라도 갈아입혀주는 사이 도나르는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기로 했다. 시프가 눈치채지 못한 것을 확인한 그는 침대 밑에 숨어 꾸물거리던 인영을 향해 손짓하며 같이 나가자며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우물쭈물 대다가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에게 다가오는 소년을 데리고 재빨리 마차 밖으로 나왔다. 그 소년의 정체는 역시 로기였다. 도나르는 그를 추궁하는 대신 허름한 자투리 천을 내밀었다.

"아저씨. 이건."
"그냥 써."


갑옷을 닦을 때나 사용하는 천이고 어차피 버리려던 것이지만 손에 묻은 것을 닦기엔 충분할 것이다. 그가 로기를 발견하게 된 건 일을 하며 단련된 감각 때문이었다. 기사라는 직업상 전투는 항상 있는 일이었고 같은 사람과 싸울 일도 많았던 그에게 소년이 급하게 기척을 감춘다고 해봐야 그래봤자였다. 그렇지 않아도 침대 밑에서 허여멀건 액체가 작게 고여있는 모습을 본다면 어쩔  없이 눈치채겠지만.


로기는 문을 열고 들어온 도나르와 시프의 목소리에 로기는 침대 밑으로 황급히 숨어야 했다. 숨을 죽이고 그들이 빨리  마차에서 나가기를 바랐지만. 바람을 쐬러 간다는 그의 손은 침대 밑의 그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우연도 착각도 아니었다. 그는 로기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있었다. 로기가 도나르에게 숨어있다는 것을 들켰을 때. 그는 심장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조금 싸우기는 했지만 로기에게 그만큼 친근한 사람은 드물었으니까.

그는 사고뭉치인 그를 많이 혼내지만 그만큼 많은 신경을 써주고 보살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의 조언 때문에 소녀와 일이 꼬이기도 했지만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원망할 수는 없었다. 그에 그 신호를 무시할지 말지 고민하던 그는 시프에게도 들키기 전에 그를 따라 나가기로 했다. 도나르라면 몰라도 시프에게 들키는 것은 최악이었다. 그렇게 마차를 빠져나왔을 때 로기는 그에게 혼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내민 것은 허름한  조각이었다.


"...."


어째서였을까? 눈물이 흘렀다. 소년의 훌쩍이는 소리가 밤바람을 타고 흐르지만 도나르는 아무 말도 없이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


도나르는 기운 없이 흐느적거리는 발걸음으로 어디론가 사라지는 소년의 뒷모습을 착잡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상단에 참여하고 나서야 알게 된 인연이었지만 넘치는 기운으로 유독 장난을 많이 치던 사고뭉치였기 때문일까? 로기는 상단의 아이들  그의 기억에 가장 뚜렷하게 남아있는 소년이었다.


"어쩌다가  같은 자식에게 잘못 걸려서."

로기가 잘못한 것은 사실일지 몰라도 도나르는 무조건 그를 탓할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소년이 그런 일을 겪게 된 이유는 판이 그의 소중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살게 굴던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그의 잘못이었으니까. 게다가 그로 인해 소년의 첫사랑까지 최악의 결과로 남게 되어버렸다. 침대 밑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 이야기하며 애정을 속삭이며 관계를 맺었을 소녀를 로기는 어떤 심정으로 보았을까?

그는 감히 단정 짓지 않았다. 그저 아프고 괴로웠을 것이라 조심스레 추측할 뿐이다. 이름 모를 풀벌레가 슬피 우는 밤이었다. 이윽고 소년의 뒷모습마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야 그는 마차로 되돌아가고자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소녀의 옷을 전부 갈아입힌 모양인지 마차 안에서 들려오는 시프의 목소리에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그를 반기는 시프의 모습과 예비용으로 준비되어 있던 아이의 옷을 입고 곤히 잠들어 있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어셔의 경우 일단 사내아이니까 그렇다 치지만 이불 정도는 똑바로 덮어주었다. 소녀의 옷을 갈아입히면서 시프도 옷을 갈아입었는지 간편한 차림이었다. 힐긋 바라본 침대의 밑에는 고여있던 허여멀건 웅덩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에 그는 괜히 머리를 긁적이면서 그녀가 앉은 침대의 옆에 앉았다.

"바람은 잘 쐬다 오셨나요?"
"그렇지 뭐."

시프의 금색 머리카락이 창문을 타고 들어온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풀과 같은 녹음을 머금은 그녀의 에메랄드빛 눈동자도 희미한 빛을 담고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에게 따로 하실 이야기는 없나요?"
"어, 딱히 없는 것 같은데."


그는 식은땀을 흐르는 것을 느끼며 뚫어질 듯한 그녀의 시선을 회피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의리가 있지 아무리 들켰다 해도 그의 입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도나르가 그녀의 시선을 피하고 시프가 눈으로 그를 쫓는 묘한 추격전이 얼마나 계속되었을까? 먼저 입을 연건 시프였다.

"그 갑옷은 언제까지 입고 있을 생각이에요? 지금은 저희 둘밖에 없잖아요?"


생각해보니 그랬다. 이곳에 있던 환자들의 경우 난쟁이들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있는 건물로 옮긴 후였다. 뜨루스가 의사라는 것과 이곳에서 정착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난쟁이들이 어찌나 반겨줬는지 기꺼이 환자들을 옮겨준 것이다. 난쟁이들에게 떠받들어지듯 끌려가던 뜨루스가 당황하며 그와 샬비, 오두르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행운을 빌어주는 것뿐이었다. 지금도 난쟁이들에게 늦게까지 붙잡혀 실컷 맥주를 마시고 있으리라. 그가 하나둘 갑옷을 벗어낸 직후였다.


"도나르."

도나르가 모든 갑옷을 벗어두기가 무섭게 시프가 그를 덮치듯이 달라붙어왔다. 얇은 천 너머로 그녀의 부드럽고 풍만한 가슴이 그의 살에 밀착해 모양이 변하는 감촉과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시프가 그의 손을 붙잡아 가져다  그녀의 은밀한 곳이 축축하게 젖어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도나르는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제 보니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은은한 열기를 담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러려던 생각이었어?"
"아니요. 그, 뭐랄까. 아이들이 그런 일을 했다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도나르의 말에 시프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면서도 그의 손과 몸을 놓아주지 않았다. 이런 그녀의 모습에 그가 응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축축하지만 따스한 시프의 은밀한 곳에 닿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균열을 훑었다.

"흐읏!"


그러자 곧바로 달뜬 신음을 흘리는 그녀. 이미 그녀의 그곳은 제법 굵은 그의 손가락이 파고들어도 아무런 저항 없이 삼킬 만큼 촉촉이 젖어있었다. 옆의 침대에 잠들어 있는 아이들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적극적으로 그를 요구해 오는 시프의 행동에 도나르가  이상 그들을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다시 시작된 열락의 시간은 좀 더 여유롭고 느렸다. 침대에 누운 도나르의 위에 올라탄 시프가 춤을 추었다.

"하앗! 하윽!"

꼿꼿이 선 그의 물건을 축축하게 젖은 은밀한 균열로 삼켜버린 채 조금씩 허리를 비틀며 위아래로 움직이는 그녀의 행동은 그야말로 춤과도 같았다. 그 춤을 따라 보기 좋게 흔들리는 그녀의 젖가슴은 그의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조금씩 속도를 올리는 그녀의 행동에 그는 결국 그녀의 안에 자신의 씨를 털어놓았다.


"흐으으응!"

시프의 허리가 휘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도나르는 몸을 일으켜 줄곧 신경이 쓰였던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도, 도나르?"


그에 그녀가 당황스러워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와 그녀의 이런 행위는 비슷한 행동을 몇 번쯤 반복했을 때야 끝이 났다. 모든 행위가 끝이 났을 때 시프는 그의 팔에 머리를 대고 천장을 바라보는 도나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나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 모든 게 꿈만 같아서."

그렇게 길었던 여행이 끝이 난 것도 당신이 나의 곁에 있는 것도. 보통 같았으면 이미 끝이 났을 저녁도 인원수가 많아지면서 분위기에 취한 이들이 많은지 아직까지도 파티는 계속되고 있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그 분위기가 더 현실감을 부족하게 만들었다. 그의 말에 시프는 쿡쿡 웃으며 그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이러면 이제 꿈이 아니란 걸   같나요?"
"시프, 너."

마차가 비어 있어서 그런지 쪽 하고 울려 퍼지는 소리에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입술이 닿은 볼을 감싸니.

"후후, 방금 전에 더 한 것도 했으면서 부끄러워하는 건가요?"
"아니다."

그의 변명은 씨알도 먹히지 않은 듯 시프의 웃음소리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멈추었다. 그에 도나르는 뜨거워진 얼굴을 어둠 속에 숨기려 노력하다가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시프."
"네?"
"내가 아이들한테 같이 살자고 하긴 했지만 너도 같이 살자고 했잖아. 무슨 이유라도 있어?"

도나르가 어셔와 벨카에게 이곳에 머무르는 시간만이라도 같이 살자고 했던  그들이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은 아직 때묻지 않은 아이들이 살아가기엔 너무 험하니까. 거의 충동적으로 했던 말이라 같이 살 시프와 의논할 시간도 없었는데 그녀도 도나르처럼 그들에게 같이 살자고 이야기했던 것이 떠오른 것이다. 그러자 잠시 입을 다문 시프는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책임감... 때문일까요? 아무리 협박 당했다고 해도 저는 그 아이들을 휘말리게 만들었으니까요."


자책이 섞인 시프의 말에 그가 무어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괜찮아요. 이미  아이가 용서해 주었으니까요."

그녀가 씁쓸한 눈으로 바라본 곳에는 색색 작은 숨소리를 내는 붉은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가 그보다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감사한 마음을 느끼고 있으니 시프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래도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어떻게든 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그때 그가 아이들에게 했던 제안이 들렸던 것뿐이라 그녀는 이야기했다.

"그러면 도나르는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게 말이지..."


그는 뭐라 말을 이어야 할지 몰라 뜸을 들였다. 그에게 소녀들은 첫인상부터 이상한 아이들이었다. 마차와 힐디스비니 없이는 하루도 제대로 버티지 못할 황야의 한복판에서 귀하디 귀한 말과 함께 갑자기 튀어나온 듯한 아이들이었으니까. 아이들  나중에 깨어난 벨카라는 소녀는 더욱 이상했다. 언제나 사라질  세상에 발을 디딘 듯 딛지 않은 듯 행동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기보다는 관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우연이라도 대화를 할 때는 그 이상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반응이 한 박자 느리달까. 감정이 낯설기라도 하듯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 맞는지 확인해보고 반응하는  같았다. 그 행동이 마치 인형이 인간의 행동을 흉내 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소녀를 인형이라 생각할 수 없었던 건 타인에 대한 호의를 바탕으로 하는 행동과 어셔와 마주했을 때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헤아릴 수 없는 그 아득한 애정 때문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순수하게 좋아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 어떤 것에도 때묻지 않은 것만 같은 소녀였기에 저절로 시선이 갔다. 특히 어셔의 앞이 아니라면 타인을 따라 하듯 감정이 결여되어 있던 소녀가 본연의 마음 그대로 웃었을 때의 모습은 평생이 가도 잊을 수 없을  같았다.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


"...우리가 아이를 낳으면 딸이었으면 좋겠네."

시프와 아이를 가진다면 그런 딸을 가지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 미소를 평생 지켜줄 텐데.

"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시프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내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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