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3화 〉상처 자국. (63/220)



〈 63화 〉상처 자국.

"어셔."
"아."

벨카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가까이 다가와 이마를 맞대자 어셔는 코앞에서 금빛을 마주할  있었다. 그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소녀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으니 그 금빛 속에 스며든 따스하고 달콤한 온기에 동굴 속에서 무저갱 아래로 그를 끌어내리려 드는 손들이, 몸을 기어 다니던 끔찍한 감각이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 안심하고 있으니.


"무슨 문제라도 있었니?"


파랴르의 목소리가 들려와 옆을 보면 그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나르와 시프도 어셔를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보고 있어서 그는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몸이 안 좋아서. 먼저 마차에 들어가 있을게요."


그렇게 어셔는 마차로 들어가 버렸다. 파랴르에겐 미안한 일이었지만 그는 그 돌덩이 같은 음식에 도저히 입을 댈 수 없었다. 보고 있으면 자꾸만 동굴에서 보았던  혐오스러운 것들이 떠오를 것 같았으니까.

"왜 하필 그런  떠오른 건지."


솔직히 돌같이 생긴 주제에 생물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아무런 공통점도 없었다. 크기도 달랐고 날카로운 이빨이나 녹아내린 사람의 손 같은 끔찍한 모습도 없었는데. 비어있는 침대에 퍼질러 누워있으니 작은 생각에도 꼬리를 물듯이 다시 떠오르려 하는 놈들의 그림자와 관련도 없는 일에 그런 것들을 떠올리는 바람에 어색해진 분위기를 떠올리고 한숨을 내쉬고 있으면 들려오는 목소리.


"그 일로 너무 괴로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런 건 결국 자연스러운 일인 걸."
"벨카."


위에서 들려오는 벨카의 목소리에 시선을 올리자 다시 마주치는 따스한 금빛. 어느새 그를 따라왔는지 소녀는 그의 머리맡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말로 그럴까?"
"응, 지금 어셔는 이렇게 이곳에 있으니까."

소녀는 그렇게 말하지만 어셔는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새하얀 인어들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사실 그가 가장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건  동굴 속에서 보았던 기괴한 물고기나 인어들이 아니었다. 동굴 속에서 인어들과 맺어야 했던 관계가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곳에 평생 머물러도 상관없지 않냐고 묻던 들끓는 욕망이, 그런 욕망을 품었던 자신이 그는 가장 끔찍했다.

어쩌면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벨카가 아니었다면 그는 어둡고도 진득한 욕망으로 가득한 인어들에게 몸을 맡기고 말았으리라는 묘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검고도 끈적한 욕망이 아직도 속에서 끓고 있는 것만 같아서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그런 욕망들이 소녀에게 몇 번이고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밀려드는 혐오감을 주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도 그는 자신을 위로하고자 하는 소녀에게 그런 욕망을 느끼고 있었기에. 자꾸만 소녀의 옷 아래에 있을 그녀의 맨살이 떠올라 무의식적으로 훑어 내리는 자신의 시선을 막고자 어셔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는 이런 자신이 너무나 싫었다. 그러다 그의 머리맡으로 천천히 올라오는 기척과 볼을 쓸어내리는 부드러운 느낌에 놀라 눈을 떴다.


"베, 벨카?! 이게 무슨."


그와는 반대의 위치에서 그를 내려다보는 소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천천히 내려오는 그녀의 얼굴에 다시금 눈을 감으면 이마에서 느껴지는 촉촉하고 부드러운 감촉. 그리곤 곧바로 떨어진 감촉이었으나 뜨거운 도장을 찍은 것처럼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감촉에 그는 멍하니 제 이마를 감싸고 소녀를 올려다보았다. 짙은 음영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희미하게 비쳐들어오는 달빛에도 눈에 띌 만큼 붉어진 소녀의 얼굴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이러면 기운이 날까?"

자신이 없는 듯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소녀의 말이었지만 오로지 둘만 있는 마차의 안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그에게 너무나 선명하게 들려왔다. 되도록이면 참고 싶었다. 그의 욕망이 다른 이들의 욕망처럼 소녀에게 상처가 될까. 아픔이 될까. 전전긍긍하며 계속 억누르고 있었는데. 소녀의 사랑스러움이 너무나 커서  이상은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녀가 엎드려 있어 늘어진 소복과 헐렁해진 원피스가 드러낸 소녀의 작은 가슴골과 봉긋한 몽우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히읏?!"


어셔는 더 이상 욕망을 참지 못하고 소녀의 몸을 붙잡아 내렸다. 소녀가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전에 그녀의 원피스를 밀어내고 그 안의 과실을 입에 머금었다. 아무리 빨고 물며 혀로 굴려도 역시 소녀의 과실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행위를 멈출 수 없었다.


"흐읏, 흐아... 아으...!"
-츕 츄읍!


한동안 마차의 안에는 그가 소녀의 가슴을 빠는 소리와 그녀의 신음만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얼마나 소녀의 가슴을 탐했을까? 그는 작게 떨리는 소녀의 팔을 보고 몸을 일으켜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흐으으."

그러자 가슴 아래까지 흘러내린 원피스에 드러난 소녀의 작은 가슴은 그가 실컷 빨았던 탓에 그의 침으로 번들거리며 달빛을 희미하게 반사했다. 그런 상태로 가쁜 숨을 내쉬는 소녀의 모습이 너무나 색정적이라 그가 자신의 물건을 꺼내려던 찰나 소녀의 목덜미에 새겨진 처음 보는 상처 자국에 그는 행동을 멈추었다. 누군가 강하게 목을 물기라도 했는지 피멍이 든 그 모습은 소녀에 대한 배려도 없는  선명했다.

무는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지금은 굳어있는 핏자국도 살짝 엿보여서 대체 어떻게 눈에 띄지 않았는지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소녀는 새하얀 소복을 겉옷 삼아 상처를 가려온 것이다.


"읏!!"


그가 멍하니  자국에 조심스레 손을 가져다 대자 인상을 찌푸리며 아픔을 내뱉는 소녀. 벨카는 손으로 그 자국을 감싸며 흔들리는 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내 슬픔으로 채워진 그녀의 눈동자에 어셔는 가슴이 미어졌다.

"이건 또 누가 그런 거야?"
"...내가 말해주기로 했던 일, 기억나?"


소녀는 망설이는 듯했지만 곧 제 목에 새겨진 자국을 감싸던 손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그녀가 말해주기로 했던 일이라면 기억이 있었다. 구름 지대를 통과하기 전 그녀를 찾아왔던 로기를 벨카가 매몰차게 거부한 일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소녀는 확실하게 로기에게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로기?"

벨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떠오르는  그 일이 있기 전  밤의 일이었다. 그날은 분명 소녀가 밤 산책을 가자며 그를 졸랐던 날이었다.

"흐아암, 그거 오늘 꼭 해야 하는 거야?"

보통 그에게 무언가 조르거나 하는 일이 전혀 없던 그녀였지만 그날따라 그를 조르며 부탁했었다. 하지만 그날 그는 어떻게 했던가?

"너무 피곤한데... 내일 하면 안 돼?"


판을 잡았다는 생각으로 긴장이 풀린 탓이었을까? 그는 몰려오는 수마를 이길 수가 없어서 밤 산책을 가자며 조르는 소녀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 하필이면 그때  녀석이 그녀를 범했다는 것이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소녀의 슬픔으로 가득한 금빛과 차마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소녀의 모습이 그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어셔는 자신의 뒤통수를 누군가 망치로 내려친듯한 느낌에 휘청거렸다.


자신이 그런 녀석을 잠시나마 동정했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소녀를 강제로 범하려던 로기를 한 번 봐주었을 때부터? 아니면 그 이전부터?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그는 이번에도 소녀를 지키지 못했다.


"난, 그런 것도 모르고."


다른 무엇도 아닌 소녀의 부탁 하나 들어주지 못해서 그녀가  그런 일을 겪었다는 것이 그에게 죄책감을 주었다. 그가 눈물을 흘리자 소녀는 손을 뻗어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어셔의 탓이 아니야."


소녀는 그의 탓이 아니라며 위로하지만 어셔는 이번만큼은 그런 소녀의 위로를 받아들일  없었다. 자꾸만 흘러넘치는 눈물을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 않는다. 소녀를 지켜주기로 했는데 번번이 실패하는 자신이 약하디 약한 자신이 어셔는 너무나 싫고 저주스러웠다. 계속 눈물을 흘리는 그의 눈물을 더 이상 감당할  없었는지 벨카는 결국 그의 눈물을 닦던 손길을 멈추었다. 대신 그의 얼굴을 감싸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감촉에 놀라 어셔는 눈을 떴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소녀의 하얀 살갗과 작은 쇄골의 모습이었다. 그는 지금 소녀의 가슴에 안겨 있었다. 콧속으로 스며드는 달큼한 향기에 다시금 부풀어 오르는 자신의 욕구가 부끄러웠다. 왜 이런 상황에서도  욕구는 줄어들 줄을 모른단 말인가? 그가 몸을 빼려 하자 소녀는 오히려 제 품에 안은 그의 머리를 더 강하게 끌어안으며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부끄러워하지 말아 줘. 나, 어셔가 아니면 싫은걸. 그러니까 부탁이야. 나를 어셔로 채워줘."

꽉 끌어안은 탓인지 아니면 그곳의 감각이 유독 예민한 탓인지 그의 물건이 소녀의 은밀한 곳에 닿고 있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읏, 흐윽, 흣!"


소녀의 신음이 그의 귀를 간질였다. 소녀의 작은 균열 속으로 파고들었다 빠져나오는 자신의 물건을 직접 보지 않고도 있는 그대로 전부를 느낄  있었다. 그의 물건을 삼키는 소녀의 끈적끈적하고 물컹한 공간 또한 생생하게 그와 하나가 되어 그 안쪽의 감각을 그에게 전해온다. 소녀에게서 새어 나온 꿀물을 윤활제 삼아 그의 물건으로 그녀의 속살을 탐하면 다시 꿀물이 새어 나와 그의 것을 적셨다. 그러면 소녀의 꿀물에 젖은 자신의 물건으로 다시금 소녀의 안쪽을 탐하는 끝날 것 같지 않은 순환.

"으응!"


그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면서도 아래의 은밀한 곳으로 그의 물건을 받아들인 소녀의 가녀린 몸이 보였다. 평소라면 찝찝하게 느꼈을 땀조차 기분 좋게 만드는, 타오르는 듯하면서도 뜨겁지 않고 미지근하다고 말하기엔 뜨거운 미열. 서로가 섞이며 뭉근하게 달아오른 몸에 소녀의 달큼한 향기가 피어올라 더욱 진하게 마차 안을 채웠다. 허리를 흔들면 흔들수록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쾌락이 그의 뇌리를 때린다. 모든 걸 잊고 이 감각에 모든 걸 맡기고 싶을 만큼 강렬한 쾌감.


"후으으, 어셔."

그러다 보면 달콤하게 취한  몽롱하게 그를 바라보는 금빛이 보였다. 그와 함께 강렬한 쾌락에 취한듯하면서도 그만을 바라보는 선명한 애정이.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으면 단순한 쾌락만으로는 차마 표현할 수 없게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린다. 하지만  이상으로 행복했다. 가슴속의 빈 공간을 달큰하게 채워주는 그녀의 금빛이 어셔는 너무나 좋았다. 이렇게 몸을 맞대고 있으면 벨카의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고 맞대고 있는 맨살과 깍지를 낀 손에서 느껴지는 땀은 그들이 얼마나 밀착해 있는지 확실하게 알려 주었다.


"아으, 읏!"

자신의 모든 게 그녀와 하나가 되어버릴 듯 아찔하고 아득한 쾌감 속에서도 소녀의 교성은 선명하다. 자신을 감싸 안는 소녀의 손길도 미치도록 부드러운 그녀의 맨살도 뜨거운 듯 따스한 그녀의 체온도. 자신과 소녀의 경계가 아슬아슬해지는  순간. 그녀의 안을 비집고 들어찬 그의 물건이 맥동했다. 자각한 뒤에는 참아내는 것이 무의미한 아득한 절정. 순간 마주친 소녀는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그녀의 안에 퍼부었다.

"아흐읏...! 아!"


눈앞이 까마득해지며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그 감각은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그가 소녀를 물들이는 시간. 다른 무엇도 아니라 그녀가 그를 원하기에 이루어진 시간 속에서 어셔는 잠시 정신을 차렸다. 옷을 제대로 벗지 않아 몸에 달라붙는 느낌이 조금 찝찝했지만 그것도 잠시.


"아읏?!"


그의 물건은 아직 줄어들지 않았다. 때문에 벨카는 잠시 놀란듯했지만 이내 그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며 몇 번이고 그녀의 안을 채우는 그의 정을 받아들였다.

"하아하아."
"흐읏흐아."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가는지도 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해 흘러가버린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마차 안에 울리는 가운데 어셔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들은 땀을 잔뜩 흘리며 아직도 몸을 겹치고 있었다. 격한 운동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잔뜩 지쳐 나른해진 몸과 땀에 젖어 찝찝한 옷이 신경 쓰였다. 소녀의 위에 쓰러지듯 누워있던 그가 몸을 일으키자 땀을 어찌나 많이 흘렸는지 그들의 옷이  젖어있다.


아직도 소녀의 은밀한 곳이 그의 물건을 삼키고 있는 모습이 보여 조심스레 빼내자 끈끈하게 늘어나다가  하고 끊어지는 투명한 실들. 그의 물건이 입구를 막고 있었던 것인지  하얀 액체가 흘러나왔다.


"하으, 어셔."

그러자 소녀도 정신이 들었는지 그의 이름을 부르다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에 왠지 그도 덩달아 부끄러워져서 얼굴을 붉혔다. 분위기를 타서 너무 지나치게  것 같았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옷을 벗고 할 걸 그랬나 봐."


 때는 좋긴 했지만 땀에  젖어버린 옷을 그대로 입고 있으니 너무 찝찝했다. 그가 투덜거리자 몸을 일으킨 벨카가 말했다.

"그러면 다음에는 벗고 하자."
"다음에도?"

그러면서 그가 벨카를 쳐다보자 그녀는 아직도 격렬한 행위의 영향이 남아 달아올라있던 얼굴을 더욱 붉게 물들였다.

"우으, 바보."

그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했다. 이런 행위가 기분이 좋긴 했지만 이렇게나 행복한 이유는 그 상대가 벨카였기 때문이었다. 그 무엇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귀여운 소녀. 그녀와 함께이기 때문에 지금 그는 행복하다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부디  순간이 영원하기를 빌면서 어셔는 속삭였다.

"좋아해. 벨카."
"응, 나도 어셔가 정말 좋아."


그들의 그림자가 다시 한번 겹쳐졌다. 어셔가 소녀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어 있으면 벨카는 그의 등을 두드리며 작게 콧노래를 불러주었다. 낮고 편안한 음으로 마차의 안을 잔잔하게 울리는 허밍. 어셔는 그녀의 품에 안겨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찾아오는 포근한 감각 속에서 천천히 잠이 들었다. 소녀는 그가 잠든 뒤에도 가사를 알  없는 노래를 부르다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그녀의 금빛이 달빛에 일렁이는가 싶더니 이윽고 한줄기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우윽... 흐으, 미안해... 미안해. 어셔."


자신의 울음소리 때문에 그의 단잠을 방해라기라도 할까. 소녀는 숨을 죽이고 또 죽이며 울었다.


"나는 나를 지킬 힘이 없어."

그리고 흘러나오는 것은 제 품에 기대어 잠든 사랑스러운 이에게 차마 털어놓지 못한 진실.

"너무 싫고 괴롭고 아픈데도. 나는 그걸 받아들여야만 해."


난 그렇게 만들어졌는걸. 깨져버린 유리조각을 억지로 토해내듯 소녀는 그렇게 속삭였다. 그 모습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로기는 그런 소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게 무슨.'

그가 처음부터 그들의 정사를 훔쳐보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그에겐 혼자서 조용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를 처음으로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소녀를 볼 자격은 없었다. 그럼에도 울고 있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던 상냥한 손길이 미련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어긋난 관계였다. 그는 판의 강요가 있었다지만 잠들어 있던 소녀를 범했다. 하지만 그때 그 광경을 목격했을 때 어른들에게 일러바친다는 선택지도 있었다.

그랬다면 판이 벌였던 짓을 사람들이 더 일찍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로기는 순간의 유혹에 넘어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해버렸다. 기분 나쁘게도 무방비한 소녀를 범할 때의  감각은 여전히 떠오를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소녀가 그를 직접 찾아온 후였다. 소녀가 추궁하러  것이라 오해해버렸다. 마지막은 무엇보다 최악이었다. 그는 추악한 질투심 때문에 제대로 저항하지도 못하는 소녀를 범했다.

그저 화가 나서 소녀가 그를 말렸을 때 그만두어야만 했었다. 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모든 게 지나간 일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여전히 소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소녀의 붉음도 하얀 피부도 원피스와 그 아래의 새하얀 살갗을 계속 눈에 담고 싶었고 소녀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소녀와 함께 있기엔 이미 많은 것을 잃고 말았다. 배도 고프지 않아서 식사도 거르고 소녀가 있던 마차로 찾아와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러다 소녀가 누워있었던 침대에서 그녀의 향기가 나는 것을 깨달았다.


그에 그의 의사와는 다르게 멋대로 부풀어 올라 좀처럼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 물건에 짜증이 났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가라앉혀 보려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소녀의 안에 넣었을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손에 힘을 주어 잡고 있으면 기분이 좋았던 것이었다. 그 느낌에 그는 한 손으로 물건을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소녀의 감촉을 떠올리면서.


고급스러운 천의 결처럼 고운 붉은색과 촉촉하고 말랑말랑한 입술, 치마 아래의 은밀한  안쪽까지. 부드러운 듯하면서 축축하고 따스하면서 끈끈하게 감싸던 그 황홀한 감각을 쫓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

누군가 마차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로기는 손에 쥐고 있던 자신의 물건도 놓으며 옆 침대의 밑으로 숨었다. 이렇게까지 숨을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긴 했지만 자신이 혼자서 이런 일을 하고 있었다는 걸 절대로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특히 그 소녀에게는 더욱.  하고 마차의 문이 거세게 열리는 순간 로기의 심장도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잔뜩 긴장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그의 시야에 보인 것은 한 소년이었다.

노란빛에 가까운 금발, 태양 아래에 많이 있지는 않은 듯 뽀얀 피부, 조금은 허름해 보이는 옷을 입은 소년이 떠들썩한 밖의 불빛에 비쳐 보였다. 그는 그가 기다리던 소녀가 아닌 어셔였다. 그에 로기는 실망하면서도 그에게 어쩔 수 없는 적의를 품었다. 솔직히 그는 그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싫어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이유는  한 가지.


"...이러면 기운이 날까?"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마차로 들어와 풀이 죽어있던 어셔를 따라 들어와 상냥하게 감싸 안는 소녀, 벨카 때문이었다. 로기는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녀가 좋았다. 저 붉음도 하얀 피부와 입고 있는 옷, 그를 바라보던 금빛 눈동자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와 가까운 어셔가 너무 부럽고 질투가 났다. 그가 애끓는 감정을 최대한 가라앉히는 사이.

"히읏?!"

문득 들려오는 소녀의 신음에 그는 깨달았다. 지금부터 그들이  행동이 그가 알고 있는 그 행위가 분명하다는 것을. 그는 그들의 행동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두 사람을 떼어내고 싶었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그 뒤에 일어날 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뿐더러.


"이건 또 누가 그런 거야?"
"...내가 말해주기로 했던 일, 기억나?"
"...로기?"


그의 이름이 들려왔기 때문에. 소녀가 그로 인해 상처받았음을 알았기에 그는 아무것도 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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