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2화 〉상처 자국. (62/220)



〈 62화 〉상처 자국.

란투아는 세상에 존재하는  안 되는 낙원이라 불리는 풍요로운 나라다. 그런 란투아에 대한 소문은 구름 지대와 황야 너머의 머나먼 나라까지 퍼져있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소문으로는 들어봤었지만.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이야."

마부들과 도나르는 보았다. 마차를 몰고 처음의 성벽을 통과했을 때 보인 드넓은 초록 평야를.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 평야를 구성하는 대부분이 식량으로 쓰이는  같은 곡식들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놀라웠다. 지형과 여러 문제로 다른 나라는 꿈도 꾸지 못하는 식량의 대량생산을 란투아는 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란투아의 성벽을 보았을 때. 그렇게 긴 성벽은 만들기도 어렵고 관리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왜 만들었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


실제로 외곽의 성벽은 입구를 제외하면 관리를 하지 않은지 오래된 것처럼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있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깨진 달걀 껍질의 단면처럼 불규칙한 모습이 그대로 보일 정도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함께 보이는 것들이 저 성벽이 단지 방치되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가장 외곽의 성벽을 기준으로 저마다 작은 벽을 세운 크고 작은 마을들이 분포되어 있었고 또 외곽과 안쪽을 가르는 두 번째 성벽이 있었으니까.

도나르가 행렬을 이끌고  번째 성벽에 도착했을 때 첫 번째 성벽과 달리 잘 관리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통과하기 전에 들었던 문지기의 말을 떠올렸다. 들고 있는 상단용 패로는 각각 도시를 다스리는 영주의 허락이 없다면 자유롭게 통과할 수 없으니 주의하라는 이야기였다. 란투아가 낙원이라 불리는 곳이지만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인 만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연맹국이라더니 같은 장벽의 안쪽에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완전히 다른 나라나 다름없지 않은가?


심지어 두 번째 성벽을 넘을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돈과 신분의 차이리라. 아마도 가장 외곽의 벽과 가까운 마을들은 빈민들이 사는 곳이며 외곽에 있어도 그나마 두 번째 성벽과 가까운 이들은 그래도 보호할 필요성이 있는 농민 같은 이들이겠지. 도나르는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풍요로운 나라라는 건 맞는 것 같지만.

"마냥 낙원 같은 곳은 아니었나."
"뭐가요?"

그때 그의 뒤에서 애정이 가득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그의 머리를 껴안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두말할 것도 없이 그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투구를 벗어놓았기 때문에 부드러운 가슴의 감촉을 뒷머리로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그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를 불렀다.

"시프."
"이런 곳에서  하고 계셨어요?"
"뭘 하고 있긴 경치 구경이지 제법 멋진 광경이잖아."


복잡한 건 둘째 쳐도 지금 이곳의 광경이 아름답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없었다. 시프도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이 광경이 눈에 들어왔는지 감탄했다. 경사진 곳에 지어진 마을은 작고 네모난 건물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계단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런 거대한 계단에서 바라본 노을과 노을빛을 받는 마을은 상당히 아름다운 것이었다.

"우리 집은 여기로 할까?"
"저는 좋아요."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에 곧바로 시프의 대답이 돌아오자 그는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구름 지대를 통과했을 때 기트가 전해주었던 와인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와인 말이야. 어디서 난 거냐?"


와인은 비싼 물건이다.  그래도 귀한 과일을 술로 만들어 잘 숙성시킨 와인은 귀족 같은 이들이 아니라면 한 모금 마셔보기도 힘들다. 그런 물건이라면 상단의 판매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놓았을 텐데 도나르가 기억하기로 와인은커녕  같은 것도  적이 없었다. 시프에게 받은 물건이긴 하지만 이 귀한 걸 함부로 마실 수도 없다는 생각에 일단 들고만 있었는데.

"네? 와인이라뇨?"
"네가 줬던 거 말이야."

일단 마시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끈을 묶어 허리춤에 매달아 놓았던 병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거 네가 준 거 맞지?"
"네, 맞아요."
"와인이 들어 있던데?"
"와인이라고요?"

그녀가 전해달라 했을 물건인데도 모르는 눈치에 열어보고 향을 맡게 해주자.


"달달한 향이 나긴 하는데. 이게 와인인가요?"

생각해보니 와인이라는 것은 쉽게 접해볼 수 있는  아니었다. 그녀가 모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그래, 그것도 엄청 비싼 거라고."

도나르는 운 좋게 하급품을 맛보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와인이 정말로 좋은 품질이라는 것을  수 있었다. 하급품은 이것보다 향이 옅어서 제대로 맡아지지도 않았고 정말로 쓰기까지 했었다. 그녀가  것은 아마 귀족들이나 마실  있는 상등품이 확실했다. 그녀가 이런 걸 어디서 구했는지 궁금해하니 시프는 우물쭈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걸 그분께서 주신 거라고?"
"아마도요."

시프의 말에 따르면 그녀를 상단에 태워 보내기 전 그분께서 찾아와 상자 하나를 건네주면서 "결혼하기 전까지 절대 열어보지 말고 결혼하거든 남편에게 전해주거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시프가 이번에 그분의 말씀을 떠올리고 열어보았을 때 나온 물건이 이 병이었다고.


"잠깐만 그렇다면 이거 혼수품이라는 말이잖아?"
"혼수품이요?"
"보통 시집을 가는 여자의 집안에서 결혼할  보내주는 건데."

와인 같은 물건을 혼수품으로 쓸리가 없겠지만 그분의 말을 생각해보면 이 와인은 분명 혼수품 대신이 확실했다. 시프도 그것을 깨달았을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니 노을빛으로도 가릴 수 없을 만큼 빨개진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프는 뜨거워진 얼굴을 식히려 부채질했고 도나르는 이마를 짚었다.

"크흠, 그래서 어떻게  거냐? 그냥 마실 수도 있고  수도 있는데."
"이, 일단 보관해두는 게 어떨까요? 물건들을 모두 팔고 나면 각자가 살 수 있을 만큼 나누기로 했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도나르는 시프의 말대로 와인을 따로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그분의 마음을 생각하면 같이 마시는 편이 좋겠지만 혹시라도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돈이 필요할 수도 있었으니까. 자신들을 찾는 상단 사람들의 목소리에 돌아가는 그들의 손과 목에는 은색 반지가 노을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그럼 잠꾸러기들을 깨우러 가볼까?"

아직 멀미의 여파로 잠들어있을 아이들을 깨우려 그는 시프와 함께 마차로 돌아갔다.

"흐암. 몸이 찌뿌둥해."


어셔는 기지개를 켜며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성벽을 통과하면 바로 란투아에 도착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마차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달린 것이다. 때문에 멀미를 버티지 못하고 잠들었던 그는 도착했다는 것을 알리는 마부들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잠기운에 취해 비몽사몽하고 있으면.

"얘들아! 도착했다!"

때마침 도나르가 마차 문을 열어젖히며 소리쳤다. 덕분에 깜짝 놀라 달아나는 잠기운. 그가 열어젖힌 문 사이로 도착을 알리는 마부들의 목소리들이 더 크게 들려오고 사람들의 들뜬 목소리들이 흘러들어왔다. 그러자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던 소녀가 그에게 다가오며 손을 내밀었다.


"어셔, 가자."
"응."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낯선 곳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그들이 마차를 나오자 반겨주는 것은 노란 벽돌로 이루어진 크고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었다. 집뿐만이 아니었다. 길바닥부터 계단까지 하나하나가 색은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한 톤의 벽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건물의 크기는 모두 제각각이다. 시골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던 도축장보다 큰 건물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커도 건물보다는 작은 마차보다 훨씬 작은 건물들이 보였다.


어셔나 벨카라면 문제없이 들어갈 수 있었지만 어른들이라면 들어가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작은 집들은 난쟁이들의 집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난쟁이들에겐 집이겠지만 어셔가 알던 것보다 모든 것이 작은 집들의 모습은 커다란 장난감 마을 같아서 신기한 기분이다. 그렇게 마을을 살피다가 깨달은 것은 난쟁이들의 존재였다. 낯선 사람들이 두려운 것일까? 작은 집만큼이나 작은 창문 사이로 난쟁이로 보이는 이들이 빼꼼 고개를 내밀며 이쪽을 살피는 모습들이 얼핏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자세히 보니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여있는 시선들이 이곳저곳에서 날아들고 있었다. 그러다 어셔는 몸을 숨기고 이쪽을 바라보던 작은 어린아이 하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이는 시선을 마주치자마자 놀랐는지 몸을 감춰버렸지만 말이다. 어셔도 딱히 키가 큰 편은 아니었으나 그 아이의 키와 체구는 그가 보기에도 지나치게 작았다. 잘만 하면  손으로 들 수 있을  같아서 시선을 빼앗겼던 그는 이 란투아라는 곳에 대한 호기심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경사진 산에 마을이 세워졌는지 계단처럼 차곡차곡 쌓여 올라가는 건물들의 모습이 노을에 물들어 있었다. 그 수많은 건물들을 보면 이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난쟁이들이 살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여기 정말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나 봐."

어셔가 살던 시골과는 정말로 다른 곳이었다. 집은 나무가 아닌 벽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조금만 넘어가면 나무들이 시야를 가리던 것과는 달리 보이는 모든 곳이 사람들이 사는 건물들로 가득했다. 그가 살던 마을은 노을이 비치면 사람이 없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감돌았는데 이곳은 노란 벽돌들이 노을빛을 반사해 오히려 밝은 느낌을 주었다. 난쟁이라는 신기한 이들부터 화사한 건물들까지 어셔는 벌써부터 이 마을에 대한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벨카, 나중에 같이 구경하러 가보자!"
"좋아."

소녀의 머리카락이 노을빛을 받아 반짝이고 그녀의 금빛이 가슴을 간지럽히는 듯한 따스함을 품고 그를 바라보았다. 세상은 그녀의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태양이 완전히 저물어 밤이 찾아온 마을을 대신 비추는 것은 커다란 달과 밤하늘에 솔솔 뿌려진  조각들이었다. 어셔는 이곳이 상단인 만큼 란투아에 도착하면 바로 물건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장사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라는 모양이다.


"여기서 머무는 게 아니에요?"


어셔는 상단이 이곳에서 머물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실망하고 말았다. 그는 처음 도착했을    거대한 계단 같은 마을의 모습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벨카와 함께 마을을 탐방하고자 약속했던 것인데. 그가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자 곁에서 저녁을 먹던 도나르가 말을 걸었다.

"정 그렇게 아쉬우면 우리랑 같이 살 테냐?"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어셔가 그를 올려다보자 그는 웃으며.


"아니, 우리도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 말이다. 물건을  팔면 시프랑 같이 살기로 했거든."
"시프 누나랑요?"

그만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묘한 표정으로 그를 보다가 시프를 바라보니.


"그래, 우리랑 함께 사는  어떠니?"

어셔는 어째서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같이 살자고 하지만.


"저는 벨카와..."
"둘이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거지?"
"그게, 네."


그가 소녀와 시작한 이 여행은 단순하게 살만한 곳을 찾아서 떠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모험가라는 꿈이 있었으니까. 단지 꿈만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그러면 너희가 이곳을 떠나기 전까지만이라도 우리와 함께 사는  어떻겠니? 너희들은 아직 어려. 너희들만 두었다간 분명 나쁜 사람들에게 노려질지도 몰라."


어셔는 시프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는 충분히 벨카와 같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들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부족했다. 특히 벨카의 외모가 아름답기 때문에 더욱 그런 마음을 품기 쉬운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것쯤은 어셔도 알  있었다.


"하지만 그건 도나르 아저씨랑 시프 누나에게 민폐가 되잖아요."

그는 어째서 그들이 자신들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지   없었다. 그들의 말대로 그들은 아직 어리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았으니까. 어셔는 이미 떠나온 마을에서 부모님이 없었던 마리와 자신을 두고 어른들이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맡아 기르기엔 너무 귀찮고 힘만 드니까 마을 전체에서 적당히 돌봐주자고 했던 말들을 말이다. 그래서 어셔는 마리가 죽기 전까지 어른들에게 미움받기 싫어서 무조건 착한 아이로 살아왔었다.


착한 아이가 되지 않으면 그날 그를 돌봐주는 어른이 불씨를 주지 않거나 밥을 주지 않는 일이 많았으니까. 마리가 죽고 벨카를 만나게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몇 가지만 빼면 어른들에게 미움받을만한 일들은 애들이 같이 하자고 억지를 부려도 피했었다. 그러지 않으면 그건 어른들에게 민폐가 되었고 민폐를 끼친 날에는 밥을 얻어먹을 수도 없었으니까. 어셔는 도나르와 시프가 그들처럼 자신을 미워할까  무서웠다. 결국 어셔는 대답을 잠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벨카."
"응."

이름을 부르자 언제나 그랬듯 곧바로 돌아오는 그녀의 대답에 안심하며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벨카의 언제나 그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었으니까. 이번에도 그러리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쉽게 대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셔는 어떻게 하는  좋을 거 같아?"


벨카는 종종 이처럼 짓궂게도 그의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일이 많았으니까.


"잘 모르겠어."

그가 돌려줄 수 있는 건 이런 대답뿐이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도. 이런 말밖에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어셔가 우울해하자 소녀는 괜찮다고 위로하듯 그의 머리를 품에 안고 토닥이며.

"우리끼리 이곳에서 머무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야."
"그러면."
"하지만 어셔도 알고 있잖아. 그건 무척 힘든 일이 될 거야."

그는 소녀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벨카의 말대로였다. 어셔는 이미 이 세상이 생각했던 것만큼 간단하고 아름답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나르와 시프에게 민폐를 끼쳐도 되는 걸까?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미움받는 것이 더 무서웠다.


"잘 생각하는 게 좋아. 어셔, 시간은 언제나 유한하고 해야 할 일은 많으니까."

되도록이면 그들과 함께하는 편이 안전하고 시간을 아낄 수 있을 거야. 그래도 정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면 그들의 일을 도우면서 부담을 나누는 것은 어떨까?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싶어."

그렇게 어셔의 고민이 깊어갈 무렵이었다. 그는 자신의 앞에서 타오르던 화로에 다른 것이 얹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건 얇지만 억센 철사들을 꼬아서 만들어진 듬성듬성한 그물망 같은 불판이었다. 그걸 화로 위에 올린 건 누군가에게 불려가 자리를 비웠었던 도나르와 시프였다. 저녁을 거의 다 먹어가던 차에 새로이 올려진 그것의 모습은 어딘가 이질적이다. 마치 무언가를 더 준비하려는 것 같지 않은가? 의문을 품으니 도나르가 들고 온 포대 자루에서 꺼낸 것은 이상하게 생긴 돌덩이였다.


"이젠 돌덩이도 구워 먹는 거예요?"


그렇게까지 먹을  없었던가? 아니, 애초에 돌덩이를 먹을 수나 있었던가? 그의 표정이 점점 이상하게 변하자 도나르는 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마을 특산품 중에 하나라는데."

그는 그렇게 말하며 울퉁불퉁한 돌덩이 몇 개를 불판 위에 올렸다.


"특산품이라니  돌이요?"
"돌은 아니라는 것 같은데.  안에 들어 있는 걸 먹으면 된다나?"
"그럼 이걸 받으러 간 거였어요?"
"그래, 이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가 잘 된 모양인지 어르신께서 같이 먹자며 나눠주더라."

그의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니 확실히 상단에만 있을 때보다 많은 사람들과 난쟁이들이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축제를 벌이듯 어디서부터인가 시작된 즐거운 소란이 점점 더 퍼져나가는 듯한 모습이다.

"어, 처음 본 난쟁이랑은 느낌이 다르네요."


란투아의 입국을 심사하던 난쟁이는 엄격하고 어딘가 날이 서있는 분위기라 난쟁이들은  그럴 것이라 생각했는데. 대부분 우락부락한 근육에 단단한 철모를 쓰고 곡괭이나 삽 같은 것을 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들이다. 이렇게 보니 오히려 처음 만났던 그 난쟁이가 특별하게 보였다.


"난쟁이라고 사람과 특별히 다른  없어. 하는 일이나 성격도 천차만별이지."

도나르도 어느새 분위기를 탄 듯 들뜬 목소리다.


"그보다 방금 전까지는 아예 안 보이다시피 했었잖아요."

처음에 상단의 사람들은 이곳의 주민들이 낯선 그들을 경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솔직히 그들이 탄 마차와 힐디스비니는 사람에게도 위협적으로 보일 만큼 크고 갑옷을 입은 사람들까지 있는데. 난쟁이들에겐 어떻게 보이겠는가? 하지만 이제 보니 딱히 그런  같지도 않아 의문이었다.

"그게 들어보니까. 방금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더라."


도나르가 노인과 함께 이야기를 해보니 이 마을 전체가 광부를 생업으로 삼는 곳이라는 모양이다. 심지어 늦게까지 일을 하기 때문에 마을에 남는 것이 대부분 아녀자들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것 같다. 그래서 돌아오는 일꾼들이 이제야 그들과 마주쳤고 이야기를 나눌  있었다.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그들이 물건을 팔고 정착할 곳을 찾는 상단이라는 것을 알자 오래간만에 찾아온 손님이라며 파티를 하자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눠준 게 이 돌덩이 같은 것들과 술을 나눠주었다고.


"이야, 맥주라니! 이게 얼마 만이냐!"


그는 신나게 철로 된 병을 땄다. 이 정도면 매일 먹을  있겠다고 말하는 그를 시프가 타박했다.

"세  이상은 안 돼요."
"켁, 적어도 네 병으로 해줘라."
"안 돼요."
"끄응."


그녀의 말에 도나르는 눈에 띄게 아쉬워하며 맥주를 들이켰다. 그때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하! 허우대 좋은 기사 양반이 아가씨한테 꽉 잡혀 사는구먼!"


귀청이 떨어질 듯 우렁찬 목소리에 어셔가 귀를 막고 돌아보니 덥수룩한 갈색 수염과 우락부락한 몸이 인상적인 난쟁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옷과 얼굴 이곳저곳을 가리지 않고 검댕이 묻어 있는 모습으로  손에는 작은 칼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장갑을 끼고 술이 들어있는 쇠컵을 들고 있었다.

"누구세요?"


작지만 칼을 들고 있는 모습에 어셔가 놀라며 물러서자 그는 술을 꿀떡꿀떡 마시며 화로에 다가왔다.

"나는 퍄랴르라고 한단다! 아무래도 외지인에겐 생소한 음식이니까 어떻게 먹는지 알려주려고 왔지!"

그는 그러면서 작은 칼의 면으로 불판에 올려진 돌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자세히 보니 그가 들고 있는 칼은 날이 무뎌서 뭔가를 제대로 자를 수도 없을 것처럼 보였다. 대체 어디에 쓰려고 저런 칼을 들고 다니는지 궁금해 보고 있었을 때였다. 퍽! 하고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크게  것은. 어디에서  소리가  건지 찾아보니 그 소리는 불판 위에 올려 두었던 돌덩이에서 난 소리였다. 그들이 놀란 표정을 보이자 그는 웃으면서 장갑을 낀 돌덩이 하나를 건져냈다.


"자, 이건 이렇게!"

그러면서 살짝 벌어진 틈으로 날이 무딘 칼을 넣고는  돌리자 돌덩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며 그 속을 드러냈다. 새까만 돌덩이의 안쪽은 의외로 새하얬고 그 중심에는 타원형의 무언가가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남아있던 돌을 그릇처럼 사용해 안에 있던 것을 후루룩 삼켜버렸다.

"쏙 빼먹으면 되는 거라고!"
"오."


 모습에 도나르는 곧바로 따라 하려는 것처럼 돌덩이 하나를 들고 허리춤에서 날카로운 단검을 빼내들었다.

"그건  익은...!"

파랴르란 난쟁이는 그가 든 돌덩이를 보고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채 말하기도 전에 단검으로 돌덩이의 틈을 쑤셔 가볍게 따버렸다.

"음? 뭐라고 하셨습니까?"

도나르가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는  파랴르를 바라보니 그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안 익었다고 말하려고 했네만."
"아, 안 익은 거였습니까?"
"도나르, 제가 사람 말은 끝까지 들으라고 했었죠?"

그의 말을 들은 도나르가 어색하게 이미 따버린 돌덩이를 보고 시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자 파랴르가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는 다시 퍽! 하는 소리가 터진 돌덩이를 들어 보였다.

"생으로 먹어도 괜찮으니까 별로 문제는 없다네. 단지 안 익으면 이렇게 틈을 벌리지 않으니까 잘 안 따진다고 하려고 했는데 검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구먼."


그는 일단 따버렸으니 먹어보라며 권했다. 그에 이미 따낸 돌덩이 안의 내용물을 파랴르가 했던 것처럼 후루룩 삼킨 도나르가 감탄하며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켰다.


"캬아! 이거 죽이는데요?"
"기사 양반이 뭘 좀 아는구먼!"


정말로 맛있게 그의 모습에 어셔는 그것이 무슨 맛인지 궁금했다. 그 모습을 눈치챈 파랴르가 친절하게 들고 있던 돌덩이를 따내어 그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어셔는 아무리 봐도 돌덩이 같은 것 안에 이런 것이 들어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돌 같으면서도 하나의 생물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이런 것과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숲에서 늑대의 시험을 받기 위해 들어갔던 동굴 속에서 보았던 이상한 물고기를 말이다. 어셔는 그것만으로도 손이 덜덜 떨렸지만 문제는 이어서 떠오르는 형상들이었다. 축축하고 기분 나쁜 동굴 속에서 보았던 무저갱과 그를 그곳으로 끌어내리려 드는 수많은 하얀 손들을.

그와 동시에 다리가 수없이 많은 벌레가 몸을 기어 다니는 듯한 감각에 어셔는 그것을 차마 입에 댈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