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상처 자국.
그가 절망에 빠진 순간. 투웅! 하고 거친 파공음이 사람들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가재의 몸이 무언가에 맞고 옆으로 고꾸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가재의 뒤를 쫓아가던 그는 그 창이 무서운 기세로 날아들어 놈의 옆구리를 관통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도록 땅에 고정시키는 듯한 모습까지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 도나르는 가재의 옆구리를 파고든 그 창이 낯이 익었다. 그건 그가 발리스타에 장전해 두었던 창이었다.
우박에 맞아 고장 나는 바람에 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시프는 무사할 수 있었지만 대체 누가? 의문을 품을 필요도 없이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발리스타를 사용한 누군가를 알 수 있었다.
"끄앗! 머리, 머리가!"
모두가 조용한 가운데 그쪽에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오니 모를 수도 없었다. 아니, 노리고 발사했다고 보기에도 어려울 것 같다.
"많이 아파?"
"으으으, 벨카."
아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도나르를 포함한 사람들은 허탈한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그게 그렇게 절묘하게 작동하다니 어이가 없어서 원."
가재 소동이 끝나고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듣던 샬비는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
"아직도 머리가 아파."
혹이 난 듯 볼록한 것이 만져지는 머리를 문지르며 어셔는 울상을 지었다. 그는 도나르가 두고 간 마차의 지붕 위에서 사람들이 달려드는 가재를 막으려는 모습을 전부 지켜볼 수 있었다. 결국 그들이 놓치는 바람에 시프가 위험해지는 모습을 본 그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가 바로 위의 발리스타에 머리를 부딪혀 버렸다. 때문에 고장 나 있던 발리스타가 우연히 작동되어버렸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어셔의 자초지종을 들은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서 웃어버렸다.
혹시 치기 어린 마음에 시프를 구하고자 발리스타를 작동시킨 것이라면 정말로 위험했다고 뭐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고장 난 발리스타의 단순한 오작동이 시프를 구했으니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네 덕분에 살았어. 고마워."
"하지만 딱히 제가 한 일은."
시프의 감사 인사에 어셔는 그냥 우연이었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도나르가 말했다.
"너희가 있었으니까 일어난 우연이잖냐. 너희가 아주 복덩이야."
"엑, 아저씨까지."
가재 때문에 부상자는 좀 생겼지만 죽은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어셔는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들의 감사 인사가 부담스러웠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가재 껍데기 비쌀 텐데. 정말로 너희가 안 받을 거냐?"
도나르는 창에 맞아 절명한 가재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가재는 잡히는 일이 거의 없는 만큼 부르는 것이 값이 정도로 비싼 부산물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가재의 단단한 껍데기는 호사가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만큼 귀한 물건이다.
"됐어요. 그런 거 받아서 어디에 쓴다고."
그는 정말로 비싼 것이라며 어셔를 설득해 보았지만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은 가재의 살을 파내 잔뜩 넣고 끓인 스튜였다. 맛은 사람들이 누구 할 것 없이 최고라 말할 정도였지만 도나르는 아직도 가재의 행동이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성격이 사납고 화가 났다고 해도 보통 그런 식으로 달려들던가."
동물들은 직접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라 하더라도 자신이 다칠 우려가 있다면 싸움을 피하는 편이다. 오늘 본 가재처럼 앞뒤 없이 달려드는 것은 정말로 보기 힘든 일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따라 대처가 늦은 것이기도 했다. 보통은 그렇게 달려들 것이라고 상상도 할 수 없으니까.
"그 아이는 당신에게 껍데기가 깨져버린 순간부터 죽을 운명이었으니까."
도나르의 의문에 답해준 것은 벨카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의 물음에 소녀는 대답 대신 자신의 그릇을 그에게 내밀었다. 받아달라는 느낌에 그녀의 그릇을 건네받고 보니 그 안에 담겨 있던 스튜를 한 숟가락도 뜨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너 이거."
"자신의 약한 모습을 다른 이에게 절대로 보여 주어선 안돼. 설령 동족이라 해도. 그러니 그 소중함을 잊지 말아 줘."
왜 먹지 않았냐고 묻고 싶었지만 소녀는 이미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어셔."
"다 먹었어?"
벨카는 어셔에게 아무 말도 없이 손을 내밀었고 어셔는 그것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그대로 자신들이 머무는 마차로 가버렸다. 졸지에 닭 쫓던 개가 된 그는 소녀의 말을 속으로 되새기다가 가재의 습성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참으로 닮지 않았는가?
구름 지대를 빠져나와 하루를 더 쉰 그들은 드디어 란투아의 성벽을 온전히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어셔는 그 성벽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구름이 만들어낸 하늘의 장벽만큼 압도적으로 큰 크기는 아니었지만 노란 모래색을 띠는 성벽은 그들이 타고 온 마차를 몇 대나 쌓아올려도 모자랄 만큼 커 보였다. 저런 걸 만드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정작 그의 옆에 있던 벨카는 그런 성벽보다는 성벽에 새겨진 상흔들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어셔의 관심도 그쪽으로 향했다.
"성벽이 왜 저렇게 삐뚤빼뚤하지?"
그동안 겪은 풍파를 보여주듯 수많은 상흔이 새겨진 성벽의 가장 윗부분은 너무 불규칙적으로 생겼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부서지고 녹기도 한 듯 인위적으로 그런 모양을 만들었다고 보기엔 이상했다.
"저건 습격 받은 흔적일 거다."
그들의 옆에서 감개무량한 듯 성벽을 올려다보던 샬비의 말이었다. 어셔는 그의 말에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습격이라니 보통 사람이 사는 곳에 무언가 습격할 일이 있었던가? 어셔가 살던 마을은 시골일지언정 그가 떠나던 마지막 날을 제외하면 습격을 받을 일 없이 아주 오랫동안 평화로웠으니까. 혹시 숲 밖에는 그가 살던 마을을 습격했던 몬스터 같은 것들이 흔한 생물인 걸까? 어제 상단을 쫓아와 큰일을 일으킬 뻔했던 커다란 가재의 모습을 떠올린 어셔는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드래곤의 습격이 잦아서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다른 곳도 평화롭지만은 않거든."
사람을 먹이로 삼거나 노리는 생물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최소한 마을에서 도시 단위로 뭉쳐 살아야 한다는 그의 말에 어셔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숲 밖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낯설고 위험한 것 투성이인 것 같다. 그때 도나르가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샬비! 여기 있었냐?"
"왜? 무슨 일 있냐?"
"사람들한테 전해. 곧 심사가 있을 거야."
도나르가 심사라는 이야기를 샬비와 마부들을 통해 전하면서 성벽을 구경하던 어셔와 벨카는 자신들이 지내던 마차로 돌아가야 했다. 심사를 위해서 마차들을 살펴볼 예정이기 때문에 모두 제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들과 함께 마차에 타있는 뜨루스도 잔뜩 긴장한 기색으로 심사를 기다리고 있자 어셔는 벨카의 귀에 속삭였다.
"이 심사라는 건 왜 하는 거야?"
"아마도 안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는 게 아닐까."
혹시라도 그런 사람이 들어와서 안 좋은 일을 한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그녀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하면 황야에 버려두고 왔던 판 같은 사람도 같이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심사를 하는 것도 당연해 보였다. 그렇게 그들이 속삭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때였다. 마차의 문이 휙 열리며 노인과 함께 한 남자가 나타난 건. 어셔는 그 남자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 남자의 키는 키가 작은 그와 비교해도 눈에 띌 정도로 작았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 남자가 아이들과 같은 나이대였다면 그다지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남자는 어린아이라 보기에도 이상하지 않을 키였지만 분명 성인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셔의 머릿속에서 란투아에 난쟁이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난쟁이라는 말을 듣고 작을 거라 생각하긴 했었지만 저렇게 작을 줄은 몰랐다. 흑갈색 머리카락을 꼼꼼하게 빗어내리고 깔끔한 옷을 입고 있는 난쟁이는 무척이나 깐깐해 보였다.
"이곳은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난쟁이의 목소리는 앳된 느낌도 없이 차갑고 날카로우며 생긴 것처럼 냉정했다.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곳이라오."
노인은 자신보다 한참은 어려 보이는 그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어셔는 그 모습을 보고 저 난쟁이에게 함부로 굴면 안 된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여러 명의 환자들이 잠들어있는 마차 안을 살폈다.
"상단에 전문적인 기사들과 환자들을 수용할 공간과 의사라."
그는 미심쩍은 기색으로 중얼거리며 마차 안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의 눈이 이 상단을 수상하게 여기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더 긴장되는 심사에 어셔가 침을 삼키고 있을 때. 드디어 그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했다. 그리고 놀란 표정.
"저 아이들은."
아이들이라고 했지만 난쟁이의 시선은 벨카에게 향해 있었다. 문제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 소녀의 손을 꼭 잡고 있으니 그는 머리를 흔들며 다시 냉정한 모습으로 말했다.
"저 아이들도 환자입니까? 겉으로 보기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만."
"몸이 약한 아이가 있어서 말일세. 한 명은 친구가 걱정돼서 같이 있는 것뿐이라네."
"그렇습니까?"
그의 시선은 한참을 벨카에게 머물렀다가 떨어졌다.
"그리고 말의 주인이기도 하다네."
"말이라면, 힐디스비니가 아니라 설마 그 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난쟁이는 말이 있다는 이야기에 정말로 놀란 것 같았다. 도나르에게 말이 귀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었던 거 같지만 저렇게 반응할 정도였던가? 어셔는 아직도 말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생긴 것만 그럴싸한 말보다는 튼튼하고 강한 힐디스비니가 더 비싸 보였으니까. 크기도 힐디스비니가 압도적이었으니 말이다. 숲을 나와서 며칠간 말을 타고 다녀 본 적이 있는 그에겐 더욱 그랬다.
말은 그들을 태우고 황야에서 달리기는커녕 오래 걷는 것조차 헉헉거리며 힘들어했는데. 힐디스비니는 자신들보다 덩치가 큰 마차를 끌면서 하루 종일 달리면서도 지친 기색이 없는 모습을 봤으니까.
"그 말을 직접 살펴봐도 상관없겠습니까?"
그의 질문은 그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직접 보고 싶다고 하는 난쟁이의 말을 듣고 보면 말이 귀하긴 한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벨카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까?"
"상관없을 거야. 오히려 보여주는 편이 도시로 들어가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벨카는 그의 물음에 노인을 쳐다보다가 어셔에게 속삭였다.
"그리고 말의 주인은 어셔야. 그러니 어셔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좋아."
"으, 응."
별로 그 밝히는 성격의 말의 주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셔는 허락의 뜻으로 난쟁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어요."
잔뜩 긴장해서 그가 딱딱하게 대답하자 그는 콧소리를 흘리며.
"흠, 실례가 안 된다면 함께 가서 말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만."
무슨 의도인지는 몰라 당황스러웠지만 벨카도 가는 편이 좋을 것이라 말했기에 그들은 마차를 나와 노인과 난쟁이의 뒤를 따라다녀야 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말을 넣어주었던 마차다.
"이건 정말로 말이군요."
"앗! 함부로 건드리면 안 돼요!"
난쟁이는 놀랍다는 듯이 말에게 손을 가져다 대려 했지만 어셔는 기겁하며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기가 무섭게 말이 이빨을 딱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말이 그가 내밀었던 손을 물려고 했던 것이다. 아마 어셔가 붙잡지 않았다면 깨물렸으리라. 그가 얼떨떨하게 말을 보고 있자 어셔는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었다.
"얘는 성격이 더러워서 물기도 한다고요."
-히이잉
말은 억울하다는 듯이 울었지만 그는 도나르나 다른 마부들이 돌봐줄 때 물릴 뻔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었기에 속아넘어가지 않았다. 어셔가 눈총을 주며 말의 주둥이를 붙잡고 있으니 말은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 그와 말의 모습을 지켜보던 난쟁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곧바로 돌아가는 것도 어색해서 노인과 난쟁이의 뒤를 따라다녔다. 우박이 한가득 들어있는 마차도 보고 마지막으로 가재의 껍질도 확인한 그는 만족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고향이 파시페니아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흠, 드래곤들의 습격이 잦아 나라를 지키는 기사들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소문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을 줄은 몰랐군요."
그는 가재 껍데기의 상태를 확인하듯 두드리다가 자신이 들고 있던 양피지에 펜으로 무언가 쓰고 살펴보았다.
"좋습니다. 미심쩍은 부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물품들의 상태나 질도 나쁘지 않으니 상관없겠죠."
마침 인력도 필요한 참이었다고 말하며 그는 양피지를 말아 품 속에 집어넣었다.
"반나절 안으로 결과가 나올 겁니다."
난쟁이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처음 보는 마차에 올라탔다. 그들이 타고 온 마차에 비하면 작은 크기지만 그래도 큰 마차였다. 벨카를 바라보는 시선이 유독 길었던 것 같지만 그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다. 어셔가 알 수 있었던 건 단지 사무적이고 꼼꼼하게 살펴보는 시선이 로기가 벨카를 보던 시선과는 다르다는 사실뿐이었다. 난쟁이를 태운 그 마차는 성벽 사이의 거대한 철문을 통해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