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8화 〉상처 자국. (58/220)



〈 58화 〉상처 자국.

한편 마차의 밖, 마부들은 막 구름 지대에 들어서는 것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힐디스비니들이 땅을 박차면 풀 대신 자리 잡고 있던 두꺼운 이끼들이 그들의 발에 치이고 뜯겨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으악, 기분 나쁘게."

그의 옆에 있던 동료는 그중에 하나가 갑옷에 달라붙자 기겁하며 옆으로 던져버렸다. 이끼라는 것이 썩 좋은 느낌은 아니니까. 이해할  있었다.

"이제  저 이끼도 그리워질걸."
"아무리 그래도 난 구름 지대 밑에서 자라는 저 커다란 이끼가 징그러워."

하지만 저런 이끼들도 그나마 햇빛이 드는 외곽에서나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저런 이끼조차 볼 수 없다. 볼 수 있는 것이라곤 물기를 머금은 대지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기분 나쁜 생물들뿐. 벌써부터 축축한 소금기를 머금은 짠 공기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횃불  준비는 됐지?"
"어, 냄새가  고약하긴 하지만."
"새삼스럽게 뭘."

횃불을 켠다고 많은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 어쩔 수 없이 준비는 해놓았다. 횃불도 기름만 묻혀서 태우는 일반적인 횃불이 아니다. 죽은 힐디스비니의 지방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화로에 쓰는 기름을 먹인 천을 감싼 것으로.  번 불을 붙여놓으면 비가 와도 어지간하면 꺼지지 않는 횃불이었다. 그들의 마차를 이끄는 생물의 지방을 어떻게 얻었냐고 묻는다면 여행 길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드래곤들이 내뱉는  물에 집어넣어도  꺼지던데!"
"그렇다고 걔네들이 뱉는  얻어보려고 했다간 모두 다 불타 죽는다!"

점점 어두워지는 주변에 긴장감으로 자신들의 목소리가 절로 격앙되는 것을 느끼며 농담 아닌 농담을 나누었다. 실제로 드래곤들의 불꽃을 가지고 싶었는지 위에서 내려왔던 명령 때문에 그런 걸 시도하다가 뼈도 못 추린 사람이 많다. 어찌어찌 원리 정도는 비슷하게 알아내서 이렇게 써먹고 있지만 역시 드래곤들의 불꽃만큼 강하게 타오르지는 않는다. 그것들의 불꽃은 물에 집어넣으면 오히려 더 격하게 타오르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건 물이 묻어도 버티긴 해도 지나치게 많이 묻으면 꺼져버린다.

"불 붙여!"

이윽고 희미하게 비쳐들어오던 빛마저 사라지고 갓 타오르기 시작한 횃불이 주변을 간신히 밝혔다.

-삐이이익!


자신의 뒤를 쫓아오고 있을 마차들을 확인하기 위해 휘슬을 불자 그들도 휘슬을 불어 답한다. 소리의 간격으로 보면 아직 아무도 행렬을 이탈하거나 일을 당한 것 같지는 않았다. 횃불을 만든 방식이 방식인 만큼 웬만하면 꺼지지 않겠지만 어떤 돌발 상황 때문에 꺼질지 모르고 깃발을 흔들어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휘슬로 신호를 주고받는 것이 제일 안정적이었다. 지금은 그나마 횃불 덕분에 그럴 일은 적겠지만 선두를 이끄는 그는 방향을 잡는 것을 전부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마차를 모는 일은 생각보다 더 큰 긴장감을 준다.

"이대로 직선으로만 가면 문제는 없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곳은 포장된 길도 없었고 사방은 어둠이란 닿지 않는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방향을 잡을 지표도 없다. 힐디스비니는 밤눈이 밝은 편이니 장애물 정도야 알아서 피한다고 해도 위험한 생물의 여부는 중요하다. 힐디스비니가 아무리 강인한 생물이라 한들 구름 지대의 아래에서 살아가는 터줏대감들을 두고 이곳에서 살아남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구름 속에서 창백한 번개 줄기가 소리 없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잠깐 동안 구름 지대의 밑을 밝혔다. 잠깐 드러났던 암흑 속의 대지는 질척한 진흙으로 이루어진 평야였다. 그들이 지금까지 달려왔던 건조한 황야와는 정 반대다. 쿠르릉! 번개 소리가 한 박자 늦게 들려오고 동료가 불평했다.


"이놈의 환경은 뭐가 이렇게 극단적이야!"


차마 부정할 수가 없는 말이라 그의 짜증 섞인 불평에도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말이 씨가 된다고 마침 우박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토를 달 틈도 없었다.


"악! 미친!"


얼음덩어리가 투구 사이에 꼈다며 욕설을 내뱉는 동료의 목소리와 힐디스비니가 땅을 박차는 소리도 떨어지는 우박이 마부석에 달린 방패와 그들의 갑옷, 마차를 구분하지 않고 때려대는 소리에 묻히기 시작했다.

"횃불을 지켜! 벌써부터 횃불을 잃으면 답도 없어!"

그러다 다시 한번 번개 줄기가 하늘을 가르고 도나르는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방패 들어!!!"


왜냐하면 번개가 사방을 밝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횃불의 밝기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사람의 머리통만 한 우박이 그들의 지척까지 다가와 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투웅! 하고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행히 그의 옆에 있던 마부가 방패를 들어 커다란 우박에 직격 당하는 것은 막아내었지만 그들의 걱정은 더욱 커졌다.

"젠장! 이거 너무 묵직한데."

작지만 우지끈하는 소리가 들린 것을 보면 방패도 많이 부서진  같았다. 이 정도 크기의 우박이 내리는 것을 보면 사상자가 없기를 바랄 수도 없다. 우박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는 않지만 뒤에서 작은 비명 소리가 들려온 것을 보면 더욱. 그것을 눈치챘는지 그 또한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작은 것에 비하면 적게 떨어지고 있지만 큰 우박이 심심치 않게 섞여있었다.


"운이  좋았어."

구름 지대 밑에서 우박을 맞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지만 저렇게 커다란 우박은 비교적 만날 확률이 적다. 그런데 하필이면 저런 우박이 떨어지다니.

"어떻게 할 거야? 돌아가려면 지금 돌아갈 수밖에 없어. 더 깊이 들어가면 빼도 박도 못할 거야."

도나르의 옆에서 방패를 들던 그가 그렇게 이야기하며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결정하라는 듯이. 그리고 그가 결정해야  일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가 이 마차를 이끌고 있었으니. 이 행렬은 전적으로 그의 판단에 따라야 했다.

"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상단에 들어오면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많았지만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정이 든 사람들이다. 아무리 정을 주고 싶어도 정이 안 가는 이들도 많았지만 정이 안 들 수가 없는 시간. 샬비나 뜨루스 같은 친구도 생겼다. 잘못하면 이곳을 무사히 통과하더라도 잃을 수도 있는 인연들이다. 그리고 시프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곳만 통과한다면 결혼을 약속한 연인. 고삐를 꽉 쥐었다. 지금 이곳에서 그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도나르는 돌아가자고 말하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입을 열려는 순간. 그를 지켜보는 동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에. 방패를 들고 자신들의 머리통만 한 우박들을 묵묵히 막아 흘리며 그를 바라보는 기사의 모습이. 그곳에서 자신을 책망하는 자신이 있었다. 착각이다. 단순히 동료도 자신과 똑같은 갑옷, 똑같은 투구로 얼굴을 가리고 있기에 그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였을 뿐일 것이다. 문득 어젯밤 소녀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이런 것뿐이야."
"잠깐, 이게 뭐길래."
"나머지는 스스로 나아가야만 얻을 수 있는 거야."

 이후로 화로의 불이 꺼지며 함께 감쪽같이 사라진 소녀의 모습은 그녀와의 만남이 하룻밤 사이의 꿈처럼 느껴지게 만들었지만 고향의 심벌이 떨어져 밋밋했던 갑옷의 왼쪽 가슴에는 지금도 십자가가 붙어있었다.


"이대로 간다."

도나르는 돌아가자고 하려던 말을 멈추고 이대로 나아가자고 말했다. 만일 지금 돌아간다고 하면 다음이 최악이 아닐 가능성은? 이미 피해를 본 상황에서 돌아간다고 해도 그 피해를 수복할 방법이나 다시 이곳을 통과할 방법이 있을까?

"최선의 상황은 아니지만, 최악의 상황도 아니잖아."

날씨도 좋지 않았고 우박도 그냥 우박이 아니라 커다란 우박이 함께 내리지만 정말로 최악은 아니었다. 정말로 최악이라면 우박이 기본적으로 사람의 머리통 만했을 것이고 심하면 마차와 같은 크기일 수도 있었다. 이미 피워 놓았던 횃불도 용케 우박에 부러지지 않고 아직도 그들의 근처 정도는 밝혀주고 있다. 그의 동료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은 건 이대로 구름 지대를 통과하면서 정말로 최악이 아니길 비는 것이 전부다. 다행히 구름 지대를 달리며 달릴수록 하늘에서 내리는 우박의 기세는 점점 약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쳤다.

"좋았어!"

그는 환호하면서 휘슬을 입에 물었다.

-삐이이익!


뒤에서 그를 쫓는 마차들의 휘슬 소리도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이대로만 가면 충분히 안전하게 구름 지대를 통과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번개가 하늘에 퍼져나가며 세상을 밝혔을 때. 순간적으로 그것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면 말이다.

"가재...라고?"


마차를 이끄는 힐디스비니와 비교해도 커다란 덩치. 천연의 갑옷이라 할 수 있는 갑각은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기다란 수염과 크고 날카로운 집게발이 창백한 번개 빛에 광택을 보이며 빛을 반사했다. 구름 지대 아래에서 마주치면 그 순간 끝장이라고 하는 여행자들의 천적이었다. 우박이 그친 것을 기뻐할 새도 없었다. 구름 지대 아래에서 가장 만나선   것의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으니까.

"아직 우리를 못 본 거 같은데."


이대로 끝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재는 그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 가만히 있던 모습을 보면 어쩌면 그들을 발견하지 못한 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도나르는 긴장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가재는 드래곤에 비하면 덜 위험한 생물이다. 그야 가재는 날아다니지도 않고 마법을 사용하지도 못하며 사는 곳조차 한정적이니까. 그러나 그것도 비교한다면의 이야기다.

가재가 여행자들의 천적이라 불리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가재의 커다란 집게 발은 튼튼한 마차도 붙잡아 뜯을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세다. 가재의 단단한 껍데기는 창칼로는 흠집을 내는 것조차 힘들다. 메이스를 휘두르거나 총포를 쏴야 깨부술  있다. 문제는 메이스는 마차를 모는 상태로 휘둘러 때리는 건 어림도 없으며 총포는 드래곤을 상대하기 위해 성벽에나 설치되는 물건이다. 그런 무거운 물건을 마차에 실을 수도 없었다.


소형 발리스타는 있지만 성체쯤 되는 가재의 갑피는 소형 발리스타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가장  문제는 놈들이 무리를 짓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몇 마리 정도는 어찌하더라도 나머지에게 전멸 당하고 말 것이다. 그나마 드래곤이 도시를 습격할 때는 상대할 수 있는 무기라도 주어지는데 가재를 마주칠 때는 상대할 무기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발버둥 쳐야 한다는 소리다.

-삐이이삑!


우선 휘슬로 신호를 보낸 그는 힐디스비니를 재촉해 속도를 높이며 놈과 주변의 동태를 살피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어둠 속에서는 도저히 살펴볼 수가 없었다. 번개가 한 번 더 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가재를 피하고자 최고 속력으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놈들이 이미 이쪽을 발견하고 어둠 속에서 다가오고 있을 지도 모른다.

'번개가 빨리 쳤으면 좋겠는데.'

가끔씩 치는 번개가 하필이면 이때 잠잠하다. 초조한 마음에 횃불이라도 던져 가재의 위치를 찾으라고 해야 할지 휘슬을 입에 물었을 때. 때마침 번개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불행히도 그의 불안한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꽤 멀리서 보였던 가재가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보인 것이다. 그들이 가는 길목을 예상하고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기쁜 오산이 있었다.

"한 마리라고?"
-우르르쾅!

번개 빛이 세상을 비추고 어두워졌을 때야 번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번개 빛이 어둠을 걷어내는 순간 거대한 가재가 진흙 같은 대지를 헤엄치며 그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모습은 기겁할만한 것이었지만 한 마리 밖에 없는 것을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잘못 본 것이 아닐까? 스스로 고찰해보지만 그는 확실하게 한 마리 밖에 없는 가재의 모습을 보았다.

"설마."

어쩌면 생각보다 순조롭게 구름 지대 밑을 통과할 수도 있다.

"기트!"

그는 희망을 가지고 제 동료의 이름을 불렀다.

"나 대신 마차를 몰아줄 수 있겠냐!?"
"방법이 있는 거냐?"
"내 생각이 맞다면!"


그는 손을 내밀었고 도나르는 그의 손에 휘슬과 고삐를 쥐여주었다. 그리고 여분의 홰에 불을 붙여 들고 마부석보다 높은 마차의 지붕으로 올라갔다. 달리는 마차에서 위험한 행동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래 이렇게 사용하기 위해 사다리까지 설치되어 있으니까. 지붕 위에 올라온 그는 최대한 몸을 숙여 맞바람에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며 마차의 지붕을 더듬었다.


"이쯤에 있었을 텐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잡히는 손잡이를 잡아 밀자 열리는 문. 마차 지붕에  문이 있냐고 물으면 그 밑에 있던 것을 보면  수 있었다. 횃불을 비추자 드러나는 숨겨져 있던 무기가 드러났다. 그건 발리스타였다. 발리스타 중에서도 작은 크기에 조립되지 않은 상태라 초라하지만 이 마차에 설치할 수 있는 최대 크기의 병기였다. 보관을 위해 눕혀져 있던 지지대를 세우다 세상이 다시 번쩍이자 가재가 벌써 근처까지 다가온 모습을 발견했다. 이대로라면 조립을 끝내기도 전에 부딪힐 거라는 생각에 그는 휘슬을 불었다.


-부우우우!

그러나 마차를 움직일  사용하는 휘슬이 아니다. 그 휘슬은 이미 제 동료에게 넘겨준 뒤였기에. 그리고 도나르는 제 손에 있던 횃불로 나머지 홰에 불을 붙이고 창을 던질 때처럼 역수로 쥐었다. 철로  홰니까 문제는 없었다. 문제는 이걸 가재에게 꽂아 넣을 수 있느냐 없느냐다. 그의 예상이 맞는다면 분명 횃불은 놈의 몸에 꽂힐 것이다. 틀리다면 전멸을 각오해야겠지만 그 순간 가재가 지척까지 다가와 마차의 횃불에 놈의 모습이 슬쩍 드러나는 것이 보였다.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은 커다란 집게 발. 그것을 발견한 그는 놈의 머리가 있을 곳을 예상해 있는 힘껏 던졌다. 그의 판단에 조금의 오류라도 있었다면 그리고 조금의 실수라도 있다면 모두가 죽을 수도 있다. 그의 손을 떠난 횃불이 하나의 쐐기가 되어 주변의 어둠을 조금씩 걷어내며 허공을 가르는 모습이 느리게 보였다. 이윽고 여러 개의 선이 엮어 만들어진 듯한 가재의 흉측한 안면이 드러나는 순간.

-끼리리릭!

퍽! 하고 놈의 안면에 횃대가 꽂히자 놈이 고통스러운 듯 기괴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의 생각이 전부 맞아떨어진 것이다.


"역시 탈피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건가!"


본래 놈의 껍데기는 것은 고작 날카로운 철 말뚝을 사람이 던졌다고 뚫릴만한 것이 아니었다. 보통 무리를 지어 다니는 놈이 동족도 없이 혼자서 달려드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에 혹시나 했었는데 그의 예상대로였다. 가재는 상당히 이상한 생물이다. 무리를 지어 다니며 풀이 건 다른 생물이건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대식가에 사납기는  사나워서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생물은 끈질기게 쫓아내거나 죽일 때까지 끝까지 쫓아다닌다. 그러나 가재는 그 사나움이 도가 지나쳤다.


가재는 몸이 자라면 제 껍데기를 벗는 탈피를 하는데.  상태의 가재는 적어도 하루 동안은 몸이 약한 상태로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상태를 동족이 보게 된다면 그 가재는 동족에게 먹혀버리고 만다. 놈들은 약한 상태의 동족을 보면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동족상잔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재는 탈피를  때면 조용히 무리를 이탈해서 혼자 탈피를 끝내고 다시 껍데기가 단단해질 때 동족과 합류하는 것이다. 놈이 혼자 있었던  그런 이유였으리라.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휘리릭! 퍽!

놈은 제 안면에 꽂힌 횃불을 빼내려 비교적 작은 집게 발을 움직였지만 갑작스레 날아든 우박이 놈을 후려갈겼다. 또 우박이 내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바로 뒤를 따르던 마차를 보면 슬링을 휙휙 돌리며 아까 떨어졌던 우박을 탄환 대신 던지는 마부석에 동석한 오두르가 있었으니까. 역시 저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지만 탈피를 끝낸지 얼마 되지 않은 놈에겐 잘 먹혀들어서 놈의 움직임을 막았다. 덕분에 가재는 마차에서 뒤처졌고 그는 그 틈을 이용해 발리스타를 전부 조립했다.

기트가 몰고 있을 마차는 여전히 최고 속도로 달리고 있었고 한 번 뒤처진 가재가 쫓아올  있을 리는 없겠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으니까. 발리스타의 조종간을 쥐고 가재가 사라진 뒤편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행히 가재는  이상 쫓아오지 않는지 뒤편에서 비상사태를 알리는 신호는 없었다. 그렇게 잠시 안심했을 때. 후드득 떨어지는 우박이 그의 갑옷을 때렸다.

"윽! 또 우박인가!"


그는 조립했던 발리스타도 두고 다시 마부석으로 내려가야 했다.

"컥!?"
"기트!"

비명 소리에 황급히 마부석으로 내려가면 우박에 얻어맞고 쓰러진 동료의 모습이 보였다.

"끄으, 난 괜찮으니까 마차나 계속 몰아!"


다행히 목숨에 지장은 없는 듯 멀쩡히 이야기하는 모습에 그가 놓친 것으로 보이는 휘슬을 들며 고삐를 쥐었다. 그렇게 마차의 속도를 늦추지 않고 떨어져 내리는 우박 사이를 얼마나 헤쳐나갔을까?


"빛이다! 빛이라고!"


끝없이 이어지던 암흑의 끝에서 빛이 보였다. 기트가 호들갑스럽게 소리쳤다.

"아직 통과하려면 멀었으니까. 우박이나  막고 있어!"
"알고 있다고!"

가재를 피하느라 힐디스비니를 상당히 무리시켜 버렸지만 그것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듯 곧 눈부신 빛이 그들의 시야를 가렸다. 눈이 빛에 적응했을 무렵 도나르의 눈에 드넓은 초원과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란투아로 추측되는 도시의 성벽이 보였다. 그들은 드디어 구름 지대의 밑을 벗어난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 기세를 몰아 란투아까지 마차를 몰고 싶었지만 반나절을 구름 지대 밑에서 버틴 마부들의 정신 상태나 전속력을 유지하느라 무리한 힐디스비니의 체력을 고려했을 때 구름 지대의 근처에서 쉬어야 했다.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긴장감 때문에 쿵쿵 울리는 심장 소리를 진정시키려 심호흡하며 숨을 들이켜고 휘슬을 불었다.


-삐이이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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