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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화 〉마법이란. (55/220)



〈 55화 〉마법이란.

그는 한껏 울고 나니 가슴 한구석에 박혀있던 돌덩이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시원한 기분이었지만 어색한 마음이 들어 벗어던졌던 투구를 뒤집어썼다.

"아."


그러자 시프가 아쉬운 듯 목소리를 흘렸지만 그는 우느라 메인 목을 풀고자 헛기침하며 입을 열었다.

"으흠, 시간도 늦었는데 오늘은 이만 자러 가자고."

그의 말에 어쩔  없다는 듯 웃음 지은 시프가 일어서자 도나르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담요를 한  털어내고 그녀의 몸에 덮어주었다. 텅  마차를 나오니 이미 밤은 깊어질 대로 깊어져 세상은 밤에 물들어 있었다. 태양 대신 반짝이는 별들이 그리는 은하수가 그들이 걸어가는 길을 비추었다.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닿지만 이상할 정도로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한 마차의 앞.

"여기가 네가 자는 곳이었지?"
"네, 오늘은 고마웠어요."
"아니, 내가  했다고."

위로해도 모자랄 판에 울어버렸으니 도나르는 부끄러웠다. 마차의 문을 열고 문안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도나르는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시프."
"네?"


자신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돌아본 시프는 곧 자신의 입술을 막는 부드러운 감촉에 눈을 크게 떴다. 도나르는 어느새 바이저를 올려둔 상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떨어졌지만 예상하지 못한 기습에 시프가 멍하니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고 있으니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좋아해.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이 한마디가 너무 무겁고 어려워서 이렇게 늦어버렸어."

밤은 아직도 별빛에 젖어가고 있었다.


"흐읏!"
"내가 잘못 건드린 건 아니지?"

시프가 신음을 흘리자 도나르는 그녀의 비부를 문지르던 손가락을 멈추고 물었다. 그녀가 혹시 아파하지는 않을지 물어보는 말이 조심스럽고 따뜻했다.

"으응, 괴, 괜찮아요. 그러니까 계속."


그녀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흥분과 기대에 달아오르는 몸을 느끼며 아무렇지 않다며 그를 재촉했다. 시프는 감당하지 못할 감정의 격류가 그녀의 마음을 놓아주질 않아서 고백하고 도망치듯 돌아가려던 그를 붙잡는 걸로도 모자라 안으로 이끌고 말았다. 원래라면 이곳에서 이런 일을 할 예정은 아니었다. 시프와 함께 마차를 쓰는 친구가 한 명 있었기 때문이다. 잠들고 나면 무슨 짓을 해도 잘 깨어나지 않는 친구지만 그래도 다른 곳에서 하는 편이 더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그곳으로 갔던 것인데. 이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도나르의 고백과 함께 수줍은 키스를 받은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원래부터 그와 잠자리를 함께 하고자 했던 생각 때문일까? 스스로도 부끄러울 만큼 음란하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충동이 그녀를 행동하게 만들었다. 시프는 부끄러운 마음도 꾹 누르고 그를 자신이 사용하는 침대로 데려가 최선을 다해 유혹했다. 고작 입술과 입술을 맞추는 키스로는 모자라다며 그와 하나가 되고 싶다며 속삭였다. 그녀의 유혹이 통했을까? 도나르는 드디어 그 차가운 갑옷을 벗었다.


"흣, 하아!"

시프의 달뜬 신음이 그의 귀를 간지럽히자 도나르는 침을 삼켰다. 처음 그녀가 그를 마차 안으로 이끌고 들어와 유혹했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빈 마차 안에서는 그저 차갑고 오래된 먼지 냄새가 났다면 시프가 지내는 마차의 안은 따뜻했고  그녀의 향기가 났다. 텅 빈 마차의 안에서 모든 것을 포기한  애처로이 그를 유혹하던 그녀보다 지금 자신의 방에서 그를 원한다며 속삭이는 그녀가 더욱 유혹적이었다.


시프의 금발이 반짝이고 탐스러운 가슴이 조금씩 흔들렸다. 저 배 아래에 자리 잡은 그녀의 은밀한 곳이 그의 손길에 문질러져 하얀 속옷을 축축하게 적셨다.  젖은 속옷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둔덕의 감촉이 손가락에 감겼다. 그쯤 되자 도나르는 그녀의 속옷을 옆으로 젖히고 굵은 손가락을 그녀의 안쪽으로 찔러 넣었다.


"흐앗!"

질꺽이는 소리와 함께 시프의 입이 절로 신음을 내뱉었다. 그가 자신을 음란한 여자라 생각하지는 않을까? 시프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시프는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판은 그녀의 몸을 장난감처럼 다루었을 뿐이지 이렇게 그녀를 바라보면서 신경을 쓰진 않았다. 그 남자가 자신을 만질 때는 그저 이 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는데. 단지 사람이 바뀌는 것만으로 끔찍했던 일이 열락의 순간이 되었다.


도나르가 자신의 몸을 만지는 곳마다 부끄럽지만 홧홧하고 뜨거운 느낌이 간지럽혔다. 그녀의 피부와 가슴을 약하게 쥐는 그의 호기심과 배려, 애욕이 뒤섞인 손길이 사랑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가 시프를 원하고 있었다. 아랫배가 근질거리면서 그곳이 너무나 가려웠다. 그의 굵은 손가락이 그녀의 안쪽을 콕콕 찌르다 긁어내리며 애간장을 태웠다. 그녀가 도나르를 원하고 있었다. 아무리 굵다고 해도 손가락만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아쉬운 쾌감과 열망이었다.


"도나르."

항상 그 이름 뒤에 붙던 말조차 붙이지 않고서 애타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시프의 허리를 안아 올렸고 곧 침대의 위에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그냥 누워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렇게 마주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이마를 마주 대며 도나르의 맑은 갈색 눈동자와 시프의 애달픈 녹색 눈동자가 서로의 시선을 좇았다. 이내 입술마저 맞대었다. 그러고만 있어도 가슴속이 요동쳤다. 이 한순간을 영원처럼 간직하고 싶었다. 그러다 시프는 자신의 아랫배 위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느꼈다. 보지 않아도 알  있다. 그건 도나르의 것이었다.


"이제 그만, 당신의 것을. 흣."

도나르는 시프의 몸을 잡고 그녀가 힘들지 않게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밑에서 시프를 올려다보니 그녀의 가슴이 그의 얼굴과 마주 보고 있었다. 고개를 드는 그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넣을게."

그녀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을 보고 물건의 끄트머리를 그녀의 그곳과 맞춘 도나르는 천천히 그녀의 몸을 내려놓았다. 축축하게 젖어있는 그녀의 꽃잎은 그의 물건을 조금씩 받아들이며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이윽고 그녀의 몸은 완전히 내려와 그와 딱 들어맞았다.


"하으윽!"


그녀는 그를 끌어안으며 달콤한 한숨을 내쉬었다. 바야흐로 욕망과 사랑 사이를 오가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의 시작이었다. 서로의 몸을 겹치며 흔들리며 생겨나는 쾌락, 염원하던 상대와의 합일에서 생겨나는 기쁨.

"흐아앙!"
"큽!"

저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쾌락에 피어오르는 결실을 맺는  사람의 모습을 창가에 내려앉은 달빛이 지켜보고 있었다.


"난 이제 가볼게."
"...같이 자면 안 되나요?"

모든 관계가 끝나고 차갑고 무거운 갑옷을 입는 도나르의 모습에 시프는 아쉬워하며 그를 붙잡았다.


"이제라도 자야지. 내일 마차를 몰다가 졸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그렇겠죠."


그는 어린애처럼 투정을 부리는 그녀의 볼에 키스했다. 잠깐의 마법의 시간은 끝이 나고 이제 다시 기사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내일은 구름 지대를 통과할 거야. 그리고 그 구름 지대만 벗어나면 이 길고 긴 여행도 끝이  거야."
"란투아에 도착하는 거군요."

란투아, 주로 난쟁이들이 나라의 주권을 쥐고 있는 이 나라는 자유 도시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고향에서 이 머나먼 길을 여행해 온 것이기도 했다. 오는 데만 1년 이상이 걸렸으며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나 멀기 때문에 고향의 손길이 닿지 않는 아주 머나먼 곳. 그분께서 상단을 만드는데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이곳까지 올 수도 없었으리라.

"그래서 말인데. 그곳에 도착하면 말이야."
"네?"

시프가 뜸을 들이는 그의 모습에 의아해하니 도나르는 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나와 결혼해 주지 않겠냐?"


시프는 자신이 혹시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착각이 아니라 이야기하듯 반지를 내밀었다. 그가 내미는 반지는 한 쌍으로 수수하지만 비싼 은제였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 띈 것은  반지를 감싸고 있는 천이었다. 대체 언제 준비를 해놓았던 걸까? 반지를 감싼 천은 아주 낡은 헝겊처럼 보일 만큼. 일부를 제외하곤 멀쩡한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무늬가 본래 어떤 값어치를 가진 천이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이, 이런 건 언제."
"조금, 아니 많이 오래됐지."

도나르는 그녀의 물음에 쑥스럽다는  머리를 긁적인다.


"하지만 저는, 더럽혀진 몸이에요. 그런 제가 이런 걸."
"그런 건 신경 안 써.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네가 아니면  되겠거든."

좋아하는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하는 것도 몰랐던 바보 같고 한심한 남자지만 이런 나를 받아주겠어?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흐윽. 네, 좋아요."

이번에는 시프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렇게 그들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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