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7화 〉기만. (47/220)



〈 47화 〉기만.

현재 어셔와 벨카는 도나르의 일행과 함께 늦은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굳이 찾아다닐 필요 없이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그들과 마주쳐서 자의든 아니든 간에 그들과 함께 먹게 되었지만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도 이곳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친숙한 도나르와 있는 편이 좋았으니까.


"나야 점검할  생겨서 그렇다지만 너희들은 뭐 하다가 왔길래 이렇게 늦었냐?"
"조금 일이 있어서요."

도나르의 물음에 어셔는 대충 얼버무렸다.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뻔하긴 했지만 소녀가 더 이상 책망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었으니까. 어째선지 자기가 그런 일을 저지르려  주제에 본인이 더 겁을 먹은 눈치라서 누군가에게 일러바칠 생각까지 들지는 않았다. 한 번  그런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너희가 딱히  일도 없을 텐데. 일은 무슨."


도나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굳이 그들에게 캐묻지는 않았다. 어셔는 그와 대충 대화를 나누다 다 익은 물고기 구이를 그에게 받아 크게 베어 물었다.

"그런데 이 물고기들은 맛이 좀 독특하네요."
"물고기?"

그리고 들려오는 어셔의 말에 도나르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네, 뭔가 물고기보다는 닭이나  같은, 새 같은 걸 구워 먹고 있는 느낌이라서요."

어셔는 그의 기색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오늘 저녁 식사로 나온 물고기 구이의 맛을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예 물고기 같은 맛이 안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치 새 고기를 먹는 것 같은 식감이 신기했다.

"성지 말고도 어류를 물고기라 부르는 곳이 있었을 줄이야."


도나르의 말에서 이제야 이상한 것을 느낀 어셔가 그를 바라보면 그제야 바이저 사이로 드러난 그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왜 그런 표정이에요?"
"너,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손을 내저으며 새로 익힌 물고기 구이를 뜯었다. 그가 이번에 몇 마리를 먹었는지 생각하던 어셔는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이 근처에서 물은 전혀 안 보이던데. 이 물고기들은 다 어디서 구한 거예요?"

식사로 나온 물고기의 숫자는 이곳의 사람들이 넉넉하게 먹는 것을 넘어 남을 정도로 많았다. 사람들이 오랜만에 먹어보는 반가운 음식처럼 조금  많이 먹어치우고 있음에도 괜찮아 보일 정도라 이 많은 물고기들이 어디에서 났는지 그는 의문이었다.


"끙, 혹시나 했는데."

도나르가 무어라 중얼거렸지만 그 소리가 워낙 작아서 그에게 들리지는 않았다.

"어디긴 어디야. 하늘에서 잡았지."
"네?"


잠시 한숨을 내쉬고 이어진 그의 말에 어셔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물고기를 하늘에서 잡았다니. 이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란 말인가? 어셔는 그가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면 이 많은 생선이 어디서 났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야 근처에 호수 같은 거라도 발견했다거나."
"오아시스를 말하는 거라면 마차를 모는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장담한다."


도나르의 말로는 황야를 돌아다니면서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일은 평생 동안 한 번 발견해도 기적이라 부를 만큼 엄청난 행운이라 전해진다고 한다. 그나마 발견한 오아시스도 모래폭풍 같은 자연적인 요소로 인해 금방 사라져버려서 그곳에 다시 오아시스를 찾으러 가도 다시는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도 많다고.


"그 오아시스에도 물만 있지 생선은 잘  살아."


지하수 같은  가끔 위로 올라와서 생기는 것일 뿐이라서 물고기 같은 게  여건은 안 된다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는 하늘을 가리켰다.


"자 하늘을 봐. 뭔가 달라졌다는 생각 안 드냐?"
"어?"


그의 말에 따라 하늘을 본 어셔는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구름 한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 하늘에는 거대한 장벽이 있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왜 이제 발견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달빛에 때묻지 않은 솜처럼 새하얗게 빛나는 거대한 구름의 장벽. 하늘에 마련된 거대한 구름의 장벽은 과연 누구를 막기 위해 세워졌을까? 사람들을 막고자 한다면 땅에 세워졌어야 함에도 그리 높지 않은 하늘에서부터 시작되어 결국 땅에 뿌리내리지 않은 새하얀 구름의 장벽은 아래에선 보이지 않는 드높은 하늘까지 치솟아있었다.


높이만 높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양옆으로도 그 끝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원을 그리고 있는 듯 휘어져있는 모습은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지만 저 거대한 장벽은 그 곡선의 존재감마저 희미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아무리 저것과 같은 크기의 벽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발악해도 만들 수 없을 새하얗고 거대한 장벽이었다. 그가 그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광경에 시선을 빼앗겨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자 구이 하나를 다 먹어치운 도나르가 말했다.

"어때, 멋지지?"


그는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광경이라 했고 어셔 또한 그의 말에 동의했다.


"이 생선은 저렇게 형성된 구름바다에서 사는 것들이다."


그래도 아직 구름바다의 영향권에 완전히 들어온 것은 아니라서 이번에 잡은 물고기들은 완벽하게 저곳에서 잡은 것들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좀 더 자세히 관찰해 봐."

그의 말을 따라서 구름의 장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장벽 사이를 빠져나왔다 다시 들어가는 작은 그림자들의 존재를 깨달았다. 거대한 장벽에 비하면 너무 작아서 눈을 가늘게 뜨고 집중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그림자들. 그러다 장벽을 완전히 빠져나온 그림자들이 확실하게 눈에 들어올 정도로 무리 지어 밤하늘을 돌아다니는 모습에 그 그림자들의 윤곽이 숲에서 보았던 물고기들의 것과 거의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금 더 넓적한 느낌이긴 했지만.


"보이는 대로 가끔 저렇게 구름을 튀어나와 돌아다니다 다시 돌아가는 경우가 있거든."


낮에는 태양빛이 뜨거워서 멀리 나오지도 않고 나오는 빈도도 적지만 밤에는 저렇게 자주 튀어나온다고 한다. 지금 그들이 먹고 있는 생선들도 같은 것이라고.


"그런데 저 하늘에 있는 걸 무슨 수로 잡아요?"
"보통은 부유석을 매단 그물로 잡지."
"부유석이요?"

또 모르는 단어가 나왔다.


"말 그대로 하늘을 떠다니는 돌이다. 이게 요긴하게 많이 쓰이거든."


마을에 들렸던 사람에게도 바깥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하늘을 떠다니는 돌에 대한 이야기는 어셔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어셔가 바깥은 정말로 신기한  많다고 생각하면서 도나르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이야기가 끝나갈  그의 옷자락을 꾹꾹 잡아당기는 작은 힘이 느껴진 것은. 그를 확실하게 당길만큼 강한 힘은 아니었지만 그를 돌아보게  수는 있었다.

"...어셔, 그런 건 나도 알고 있는걸."


소녀는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가면 너머로도 느껴지는 부루퉁한 기색에 어셔는 아차 했다. 평소라면 그녀에게 했을 질문을 다른 사람에게 많이  탓인지 소녀는 토라진 것 같았다. 토라진 소녀와 그런 소녀를 달래는 어셔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도나르는 웃었다. 그러다 그는 고개를 들어 새하얀 거벽이 자리 잡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언제 봐도 경이롭고 장엄한  구름의 장벽은 세상 여러 곳에 형성되어 있다.

구름바다가 생겨나는 자세한 이유는 누구도 알 수 없었지만 식량이 될 수 있는 생선들이 살아가며 비도 뿌려주는 저 구름은 사람들의 생존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보통 도시나 나라는  구름바다의 근처에 세워진다. 그들의 목적지가 멀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의 고향 파시페니아도 마찬가지로 저런 구름바다의 근처에 있었다. 오래간만에 맛보는 생선이 반가워 사람들의 저녁식사가 예정보다 길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길어도 결국 끝은 찾아왔고 하나둘 재판을 준비하며 아이들을 마차로 데려다주는 이들의 모습을 보았다. 재판의 내용은 아이들이 듣기엔 부적절한 것이 사실이니까. 예외적으로 이 아이들은 재판을 지켜보기로 했다던가.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거창한 재판도 아닌데 말이지."


그래, 거창한 재판이 아니었다. 정황은 확실했고 그와 시프가 목격자였으며 뜨루스도 아무런 변명을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상단의 특성상 재판을 오래 끌 수도 없기에 증거가 부족해도 상단주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상단주를 맡은 에르미스가 온화한 성격이라  더 확실한 증거를 찾고자 했을 뿐. 이 재판이 형식상으로 열린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재판의 준비를 지켜보고 있었을 때였다. 그에게 익숙한 소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은.


"응? 로기잖아? 아직 마차로 안 돌아가고  하는 거지?"

장난기 가득한 녀석이라 도나르에게 혼날 일이 많아서 그에겐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들 중에 한 명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거의 다 마차로 돌아갔는데. 왜 아직도 남아있는지 궁금한 마음에 지켜보고 있으니.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다가 도나르가 있는 곳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다만 그를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 듯했다.


"아하, 저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도 결국 포로였던 건가."


로기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어셔와 함께 있는 벨카에게 향하고 있었다. 딱히 이상하게 여길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만큼 소녀의 외모는 치명적일 만큼 아름다웠으니까. 그리고 무심코 붙잡고 싶어지는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철없는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겠지.

'가장 큰 장애물이 항상 곁에 있는데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처음 만났을 때 로기가 자신의 발을 걸어넘어트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직감적으로 숙적이라는 걸 알아챈 것일까? 도나르는 로기를 특히 경계하는 어셔를 떠올렸다.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둘이 대판 싸우기까지 했었고. 아이들끼리 싸우면서 큰다지만 이래저래 로기에게 험난한 첫사랑이 될 것이라 예상한 도나르가 피식 웃었을 때.

"도나르!"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돌아보니 샬비가 그를 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급한지 빠르게 달려오면서.


"무슨 일이야? 네가 그렇게 달려오고."

침착한 성격의 샬비가 달리는 일은 어지간히 급한 일이라면 없기 때문에 도나르는 의아한 마음으로 물었다. 심지어 그의 말에 답하기 전에 먼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에 의문이 더욱 커져가는 것을 느꼈을 때. 그의 귓속말에 도나르는 얼굴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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