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기만.
벨카를 마차 안으로 끌고 들어온 로기는 마차의 문을 잠궈버렸다.
"잠깐 내 말을, 읍!"
벨카는 그의 행동에 당황스러워하면서 뭐라 하려 했지만 로기는 문을 잠근 뒤 말을 하던 소녀의 입을 다시 자신의 손으로 막았다. 듣고 싶지 않다. 듣고 싶지 않았다. 저 사랑스러운 입에서 어떤 말들이 튀어나올지 두려워서 막아버렸다. 혹시라도 자신을 책망할까 봐. 원망과 분노를 쏟아낼까 봐. 소녀의 입을 손으로 막아버리고 그대로 손에 힘을 주어 밀어붙였다. 벨카는 발버둥 쳤으나 그녀는 그 모습만큼이나 여리고 가벼워서 로기의 힘에 속절없이 밀려났다.
"으읍!"
결국 침대에 허리를 부딪힌 벨카는 고통을 호소했지만 로기는 소녀의 입을 막고 미는 손에서 힘을 뺄 생각이 없었다. 그 상태로 계속 밀어붙이자 벨카는 그의 힘에 밀려 침대에 몸을 눕히고 말았다. 소녀의 검붉은 원피스 아래로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새하얀 다리는 침대에 오르지 못했다. 그 관능적인 모습에 참지 못하고 로기가 벨카의 원피스 자락을 잡아 올렸다. 그제야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흐트러진 가면 사이로 소녀의 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로기의 시선은 무방비하게 드러난 소녀의 하반신에 못 박혀 있었다. 원피스 아래에는 유려한 종아리와 이어진 매끈한 허벅지가 있었고 그 허벅지의 위에는 소녀의 군더더기 없는 허리와 배꼽이 보였다. 이번이 두 번째로 보는 광경이었지만 그때와는 다른 것이 소녀의 은밀한 계곡을 가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검은색의 속옷이 소녀의 은밀한 곳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이런 얇은 천 쪼가리 한 장으로 그를 막기엔 무리가 있었다.
검은색의 속옷은 소녀의 하얀 피부를 더욱 부각시켜 주었고 수수하지만 얇아서 그 아래의 도톰한 살점과 그 사이를 가르는 작은 도끼 자국까지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기에. 로기가 그 광경을 감상이라도 하듯이 바라만 보고 있자 눈치를 보던 벨카는 빠져나갈 틈을 찾아 바르작거렸다. 하지만 그것이 그를 더 자극했다. 소녀가 자신에게서 벗어나려 한다는 생각에 찾아온 분노와 슬픔에 벨카의 국부를 마지막으로 가리고 있던 속옷마저 거칠게 벗겨버린 것이다.
"흐읍!?"
결국 소녀의 허벅지 사이, 사타구니에 자리 잡은 은밀한 계곡이 로기의 앞에서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로기가 그녀의 은밀한 계곡에 정신이 팔린 덕분에 벨카는 입을 열 수 있었지만.
"흐읏... 내 말을, 아윽?!"
그녀의 사타구니에 얼굴을 들이밀고 도톰한 살점을 이빨로 깨무는 그의 난폭한 행동에 벨카는 작게 비명을 질렀다.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로기도 알 수 없었다. 그냥 배가 고팠다. 배가 고파서 소녀를 먹어치우려는 것처럼 행동했다. 마치 그녀의 은밀한 곳을 직접 먹어치우려는 듯한 행동에 벨카가 다리를 더욱 버둥거렸다. 그것이 거슬렸던 로기는 소녀의 허벅지를 붙잡아 그의 머리를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끼워버리는 듯한 모습으로 만들어버렸다. 심지어 그 상태로 그녀의 도톰한 살점을 잘근잘근 깨물기 시작했다.
"읏, 그, 그만."
이대로라면 원치 않는 쾌락이 찾아올 것이라 깨달은 벨카는 간신히 허리를 들어 두 손으로 그의 머리를 밀어내려 했다. 잠든 사이에 무슨 짓을 당했었는지 더 민감해진 몸이 그녀를 괴롭게 만들었다. 벨카는 온 힘을 다해 소년의 머리를 밀어냈지만 소녀의 미약한 힘으로는 오히려 그의 머리를 붙잡고 있는 듯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아, 하아!?"
소녀의 팬티를 대신하듯 그녀의 균열 전체를 입으로 가리고 있던 로기가 물컹한 혓바닥으로 은밀한 균열을 맛보듯이 핥았다. 그리고 균열을 가리던 도톰한 살점을 혀로 열어젖히고 그녀의 구멍 속으로 파고든다. 마치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더듬어가는 듯한 그 행동에 로기가 이미 그녀가 잠들었을 때 똑같은 일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소녀의 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때까지 미약한 힘이라도 저항을 멈추지 않던 소녀가 저항을 멈추고 힘을 빼자 로기는 의아한 마음에 그녀의 사타구니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고 벨카를 내려다보았다. 입고 있던 원피스가 들춰져 드러나버린 새하얀 하반신과 그 위로는 비교적 평소와 같아 보이는 소녀의 상반신이 모든 힘을 잃은 것처럼 힘없이 늘어진 모습이 보였다. 빛을 잃은 소녀의 금빛과 함께.
"...누가, 누가 너에게 이런 걸?"
마차에 들어갔을 때 우연히 보았던 그 아름다운 금빛을 드디어 다시 볼 수 있었던 로기였으나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를 참고 삼키는 듯한 소녀의 눈이 역겨움을 비롯한 온갖 어두운 감정을 꾹 눌러 참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들어."
로기는 벨카의 말을 무시하고 그렇게 말하며 들췄던 그녀의 원피스를 위로 더 펼쳐서 소녀의 눈이 보이지 않도록 그녀의 얼굴을 전부 덮어버렸다. 그에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던 로기는 그 아쉬움이 뭔지 깨닫고 소녀의 상반신을 덮고 있던 원피스를 가슴까지 올렸다. 그러자 소녀의 부드러운 젖가슴과 그 끝의 작은 과실이 보였다. 소녀의 얼굴과 팔은 들춰진 어둠과의 경계가 옅은 원피스에 전부 다 가려져 버리고 가슴을 비롯한 그 아래의 가녀린 몸과 다리만이 마차의 창문으로 들어온 달빛에 새하얗게 비쳤다.
로기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만족하며 자신의 옷을 벗었다. 그러자 어느 사이에 크게 부풀어 올라 자신의 존재감을 자랑하는 그의 남성기가 드러났다. 로기에게 이 물건은 그의 것이 분명한데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통제되지 않아 곤란한 물건이었다. 자신의 일부임에도 일부 같지 않은 이상한 것. 벨카의 몸을 생각하고 부드러운 살결과 그 아래를 떠올리고 한 번 균열 속으로 들어갔던 감촉이 결코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괴로웠다. 하지만 지금 그 소녀의 몸이 지금 이렇게 그의 눈앞에 무방비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가 옷을 벗는 동안 도망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고 계속 신경 쓰고 있었는데. 그의 걱정이 무색하게 벨카는 체념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로기는 그 모습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그의 것 말고도 다른 사람의 물건도 받아들였던 소녀다. 계속 발버둥 쳤다면 괘씸한 마음에 더 거칠게 행동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가만히 있어."
얼굴이 가려져 보이지 않는 벨카에게 말한 로기가 그의 침으로 번들거리는 소녀의 균열에 밖으로 꺼내 놓았던 물건의 끄트머리를 맞추는 순간이었다.
"읏, 싫...어!"
"악!?"
발버둥을 멈췄다고 생각했던 소녀가 다리를 들어 힘껏 그를 밀친 것은. 하필이면 얼굴에 발을 맞은 로기는 지금까지 그를 막는 것만으로도 힘겨워했던 소녀가 맞는지. 그는 그 한 번에 크게 밀려나 마차 벽에 부딪혔다. 다만 그것이 소녀의 마지막 발악이었던 걸까? 그녀는 괴로운 듯 인상을 찌푸리고 제 가슴께를 부여잡고 있었다. 소녀는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가누면서도 로기가 들어오면서 잠가놓았던 문으로 향했다. 그녀는 힘겨웠지만 그럼에도 문으로 걸어갔다. 이내 문고리를 붙잡는 순간.
로기가 문고리를 잡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녀를 이대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그는 이미 많은 걸 포기한 후였다. 이대로 소녀를 내보낸다면 아마도 그는 평생 동안 그녀를 붙잡을 수 없을 테니까. 문고리에서 손을 떼지 않는 소녀를 거칠게 떼어내 바닥에 누르듯 눕혔다.
"움직이지 마!"
이미 소녀의 가면은 벗겨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소녀의 원망스러운 듯한 금빛이 그를 향하는 것에 로기는 이를 갈았다.
"어째서! 어째서! 가만히 있지 않는 거야!"
사실 그런 이유쯤이야 알고 있었다. 이런 일을 저지르면서 모르는 것이 더 이상했다. 그럼에도 흐르는 눈물과 아픈 가슴을 억누를 수가 없어서 충동과 감정에 몸을 맡겨 움직였다.
"아읏!"
소녀의 원피스 위로 봉긋하게 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그녀의 가슴을 꽉 쥐자 벨카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그의 손에 쥐어진 소녀의 가슴은 정말이지 빌어먹게도 부드러웠다. 어차피 이러기 위해 소녀를 아무도 없는 마차로 끌고 들어온 것이 아니었던가? 아무리 그녀가 발버둥 쳐도 그만큼 짓누르고 아무리 괴로워해도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프단 말인가? 그러니 자꾸만 자신의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소녀의 발버둥을 멈추기 위해 계속 그녀의 발버둥을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
결국 체력의 한계가 다가오는지 점점 미약해지는 소녀의 발버둥을 느끼며 로기는 계속 그녀를 억눌렀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린다면 이번에야말로 이 소녀에게 자신의 흔적을 새길 수 있었다. 이윽고 끝내 소녀의 움직임이 멈추었을 때.
"벨카한테서..."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떨어져!!!"
충격이 그의 머리를 뒤흔들었다.
로기는 충격과 함께 밀쳐져 바닥을 뒹굴었다. 소녀가 있는 곳을 돌아보니 어셔가 그녀를 보호하듯 서서 노려보는 모습에 로기는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분명 마차의 문을 잠가놓았을 텐데. 어떻게 이 녀석이 이곳에 들어와 있단 말인가? 그러다 마차의 문에 손을 댔던 소녀가 떠올랐다. 설마 그때. 그러나 로기에게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어셔가 쓰러진 그에게 다가와 주먹을 날렸으니까.
원래 어셔는 벨카의 부탁에 일단은 먼저 아저씨들을 따라 식사를 하러 갈 생각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소녀에 대한 믿음과는 별개로 걱정이 되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일단은 기다려 보고자 했었지만.
"로기, 그 녀석 걔가 처음 왔을 때는 그렇게 같이 있고 싶어 하더니 찾아오니까 왜 도망가 버렸대?"
"딱 봐도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잖아."
지나가던 아이들에게서 그런 이야기가 들려왔다. 로기라면 분명 이곳에서 처음 만났던 기분 나쁜 녀석의 이름이었다. 그보다 그 녀석이 좋아하는 아이가 설마 벨카란 말인가?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이 상단에 최근에 들어온 이들은 그와 소녀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 여자애 로기를 쫓아가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고백이라도 하려는 거겠지 뭐."
"설마? 걔 남자친구 있잖아."
그 이야기까지 듣게 된 순간 그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야, 너희들."
"어?! 우, 우리?"
어셔가 다가가 부르자 아이들은 그가 먼저 다가와 말을 걸 줄은 몰랐는지 당황했다.
"벨카가 어디로 갔다고?"
"어, 그게 딱 중간쯤이었는데."
"야! 그걸 말하면 어떡해!"
원래 그들은 벨카와 로기가 어디로 갔는지 알려줄 생각이 없었던 거 같았지만 한 명이 얼떨결에 말해준 덕분에 그는 곧바로 그 근처의 마차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는 생각했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소녀가 그럴 생각이 없다고 해도 상대가 강제로 그녀를 범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었으니까. 중간쯤이라는 말만 들었기에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그냥 그 주변 마차를 전부 열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사람들은 거의 다 식사를 하러 간 후였기에 거리낌 없이 마차의 문을 열고 닫으며 소녀를 찾고 있었을 때였다. 우당탕하고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 건. 어셔는 곧바로 그 소리를 쫓아갔다. 소리는 그가 찾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가 들려오는 마차의 문을 열었을 때 보인 것은 자신보다 덩치가 큰 소년, 로기와 그의 밑에 깔려 간신히 발버둥 치던 소녀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어셔는 제대로 생각하기도 전에 로기를 밀쳐내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벨카의 상태를 살폈다. 로기가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소녀의 옷은 흐트러져 있었다. 치맛자락은 말려 올라가 있었고 속옷이 벗겨졌는지 그녀의 은밀한 곳까지 아슬아슬하게 드러났다. 그것만으로도 화를 주체할 수 없었는데. 그를 가장 화나게 만든 것은 어찌나 강하게 쥐었는지 소녀의 하얀 피부 위에 얼룩처럼 물든 시퍼런 멍과 그녀의 눈꼬리에 매달린 눈물이었다.
"으읏... 어셔."
안심한 듯 그를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에 어셔는 울컥하는 마음을 잠깐 가라앉히며 그녀의 옷을 추슬러주었다.
"잠깐만 기다려."
벨카를 강제로 범하려 한 저 녀석을 당장 때려눕히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이미 그가 모르는 사이에 소녀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소식에 화가 나 있던 중이라 더욱 열이 받아서 이 분을 풀어놓지 않으면 그의 속이 타버릴 것 같았다. 그에게 밀쳐져 떨어진 로기를 보면 겁을 먹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더 열받아서 그는 로기를 두드려팼다. 여차하면 저항할 수 있을 텐데도 저항하지 않는 모습이 이상하긴 했지만 머리끝까지 차오른 열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차릴 새는 없었다.
그를 말릴 것 같았던 소녀도 그를 말리지 않아서 어셔가 로기를 때리는 걸 멈춘 것은 그가 지쳤을 무렵이었다.
"...이제 정신이 들어?"
벨카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도. 어셔는 처음에 자신에게 말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녀의 시선은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는 로기에게 향하고 있었다. 소녀의 말에 답하듯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셔는 자신이 없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소녀의 금빛에서 발견한 감정에 말을 잇지 못했다.
"뭐, 뭐야? 너, 왜 날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그것은 로기도 마찬가지였을까?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던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을 알아차림 것처럼 파드득 뒤로 물러났다.
이상할 정도로 강렬하게 다가오는 소녀의 슬픔, 연민, 괴로움은 로기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를 경멸하고 원망할 것이라 생각했다. 책망할 것이라 생각했다. 더 이상 소녀에게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차라리 속 시원하게 소녀의 몸이라도 탐하며 원망 받고자 했다. 그런데 어째서 잠들어 있던 소녀에게 그런 짓을 하고 또 하려 했던 그를 바라보는 소녀의 금빛에는 그런 기색이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는 것인가? 그런 그에게 소녀가 한 걸음씩 다가오자 로기는 구석으로 또 구석으로 물러났다.
"오지 마! 대체! 대체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거야!?"
로기는 그런 벨카의 모습이 두려웠다. 같은 인간이 아닌, 보다 높은 존재의 앞에 선듯한 형언할 수 없는 공포. 그가 얼마나 뒷걸음질을 쳤을까? 로기는 곧 자신의 등에 벽이 닿았음을 깨달았다. 그는 옆으로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포식자 앞에 선 초식동물처럼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힘이나 덩치,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는 그가 어째서 저런 가녀린 소녀가 이토록 두려운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윽고 소녀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왔을 때. 로기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 한계였다. 그 순간.
"어?"
소녀의 것과 같은 달큼한 꽃향기가 확 다가선듯한 느낌과 함게 부드러운 것이 그를 감싸 안아주는 것을 느낀 것은. 그에 당황하며 눈을 뜬 로기에게 그를 껴안은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보다 작은 덩치로, 그 약하고 가녀린 몸으로 그를 전부 감싸주려는 것처럼.
"그가 너를 더럽혀버렸구나."
그리고 들려오는 소녀의 상냥한 목소리는 로기를 아연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미안해. 너를 이렇게 몰아붙이려는 생각은 아니었어."
분명 그녀를 억지로 범한 것은, 범하려던 것은 그였는데. 정작 그런 일을 당한 소녀는 그가 안쓰럽고 가엾다는 듯. 한없이 상냥하고 자상한 목소리로 그를 달래고 있었다. 마치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미안해. 빨리 알아차리지 못해서."
어째서였을까? 눈물이 흘렀다. 로기는 자신이 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멈추려 해도 멈추지 않는 눈물이 더욱 그를 더욱 서글프게 만들었다. 그녀를 볼 면목이 없었다. 그녀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입은 어느새 다른 말을 내뱉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나는, 나는! 그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왜 이제야 깨달았던 것일까? 소녀의 눈을 보기 싫었던 이유를. 그 속에 꾹 눌러 참고 있었던 부정적인 감정들은 사실 소녀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닌 그 금빛 속에 담겨있던 그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감정이었다는걸. 그녀를 범하려 하면서 원피스로 얼굴을 가려버린 건 잠든 소녀에게 그런 짓을 하고 또 똑같은 일을 하려는 그런 자신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걸 말이다. 로기는 자신이 한심하고 비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도저히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흑, 젠장. 젠장!!"
벨카는 위로하듯 그런 로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을 뿐이었다.
"그런 녀석, 왜 위로해 준 거야?"
위로해 줄 필요가 있었냐는 듯 소녀와 둘만 남아있는 마차의 안에서 어셔가 부루퉁하게 말했다. 로기는 이미 밖으로 내보낸 후였다.
"그러니까 괜히 내가 나빠 보이잖아. 잘못한 건 그 녀석인데."
"어셔는 나쁘지 않아."
벨카가 그의 어깨에 기대며 답했다.
"그 아이는 단지 겁을 먹었던 것뿐이니까."
"겁을 먹어?"
"응. 내가 너무 섣불렀던 탓이야."
"그게 왜 벨카 탓이야."
어셔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며 구시렁거렸다.
"그런데 왜 하필 둘이서 만났던 거야?"
"다른 아이가 있다면 더 겁을 먹을 것 같았어."
"...그 녀석이 마음에 든 건 아니고?"
그가 툭 쏘듯이 이야기하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야. 나에겐 어셔뿐인걸."
소녀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그는 정말로 혹시나 혹시나 했던 생각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그냥 어셔와 닮아서."
"닮았다니. 내가? 그런 녀석이랑?"
"응, 그래서 내버려 둘 수가 없었어."
그런 말을 들으니 어셔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보다 아까 그 녀석이 했던 말 사실이야?"
로기가 울면서 워낙 횡설수설하게 이야기했던 탓에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이것만은 알 수 있었다.
"응, 거짓말이 아니었으니까."
벨카를 약으로 재우고 그런 일을 한 범인이 뜨루스가 아니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