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기만.
시프는 어셔의 옆에 붙어있는 소녀, 벨카를 보았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순식간에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지금도 소녀를 힐긋힐긋 훔쳐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녀가 보고 있는 건 소녀의 행동이다. 홀릴듯한 금빛의 눈동자는 그저 낯을 가린다고 보기엔 조금 과하게 보일 정도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그 작은 손으로 자신의 아랫배를 조심스레 덮는 행동도 볼 수 있다.
단순히 배가 아픈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시프는 그 행동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아랫배, 다리 사이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에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리라. 낯선 상황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저 소동물 같은 모습을 그 남자는 어디선가 지켜보며 웃고 있겠지.
"한 그릇 더!"
"이게 벌써 몇 그릇째야? 너 혼자 냄비를 비울 생각이냐!"
눈치 없는 도나르의 요청에 그녀는 쓰게 웃으면서도 그의 그릇을 받아 냄비에서 국을 떠주면. 그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샬비의 모습이 부러웠다. 그녀는 자신의 그릇에 담긴 갈색을 띠는 국물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 랍스카우스라는 음식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다. 보존용으로 만들어진 벽돌처럼 단단한 빵을 냄비에 담아 놓은 물에 풀어 두고 염장 고기를 썰어 말린 야채와 함께 볶아 넣고 끓인 것이다. 단지 물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먹기 힘든 음식일 뿐이었다.
"도나르 아저씨는 이게 뭐가 맛있다고 먹는 걸까."
"그래도 그냥 먹는 것보단 훨씬 났잖아."
그녀의 뒤편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이 음식을 맛있게 먹는 도나르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하다는 시선이 섞여있었다. 확실히 맛은 나쁘지 않지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서 도나르처럼 먹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야, 너희는 도나르가 앞으로 몇 그릇이나 먹을 것 같냐?"
"난 다섯 그릇에 건다!"
"네 그릇에 철전 세 푼 건다!"
"야 인마 적어도 동화로 해."
도나르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즐거운 쇼라도 보는 것처럼 마부들이 내기하는 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가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가 있으면 언제나 이런 분위기다. 고된 여행길이지만 그가 있는 곳은 늘 떠들썩하고 누구나 즐겁게 어울린다. 그래서 그가 좋았다. 하지만 모두가 이렇게 즐거워하고 있는데 자신만 이렇게 동떨어져 있는 기분은 역시 쓸쓸했다.
"아이들의 음식에 수면제를 타. 이제 몰래 약을 먹이는 것도 힘들거든."
그 남자는 시프에게 그런 말을 하며 병을 건넸다. 이것이 옳지 못한 일이라는 건. 저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이라는 것쯤은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이제 그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모르는 누군가를 대신 끌어들여야 한다는 조건에 누가 혹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시프, 시프!"
"네, 네! 불렀나요?"
그러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녀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도나르의 모습이 보였다. 음식을 먹느라 투구의 바이저를 들어 올린 그의 맨얼굴을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답하면.
"좀 피곤하면 일찍 들어가서 자는 게 어때?"
"도나르, 네가 쓸데없이 음식을 더 달라고 하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야, 내기는?"
그의 걱정과 함께 사람들의 농담이 들려왔다. 그래도 그녀가 피곤해 보였는지 노인이 그녀에게 말했다.
"음식 만드느라 피곤했을 텐데. 먼저 들어가서 자는 건 어떻겠느냐?"
"저는 괜찮아요. 설거지도 해야 하고. 저보다 아이들이 더 피곤해 보이는걸요."
시프는 약효가 도는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어셔와 졸린 기색으로 눈을 비비면서도 그를 걱정하는 벨카의 모습이 보였다. 소년의 그릇은 확실하게 비워져 있었다. 다만 소녀의 그릇이 줄어든 것 같지 않아 먹지 않은 건가 싶었지만 야채만 사라진 것을 보면 고기를 먹지 못하는 것 같다. 이렇게 하면 된다고 이제 그의 지시를 조금만 더 따르면 자유라고 생각하면서 가슴속의 비명을 무시했다.
"으윽, 피곤해."
얼마 뒤 어셔와 벨카는 그들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신세를 졌던 뜨루스의 마차의 침대에 누워 잠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직 잘 시간은 멀고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저녁을 먹는 중이었지만 그들이 졸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시프에 의해 샬비가 그들을 마차로 안내해 준 것이다.
"어셔, 우리 꼭 여기서 자야 하는 걸까?"
"사람들이 많아서 그래? 어차피 다들 잠들어 있다니까."
가면을 벗은 소녀가 금빛에 불안함을 담고 주변을 살피고 있었지만 잠에 취한 어셔는 그녀가 단순히 사람들 사이에서 잠드는 것을 꺼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정 안 되겠으면 껴안고 자자."
"...응, 좋아."
그가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은 목소리로 팔을 벌리자 벨카는 못 이기겠다는 듯 그를 껴안아 주었다. 더없이 소중해서 놓아주고 싶지 않은 것처럼. 이윽고 그는 소녀의 품에 편안히 안겨 얕은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셔가 잠들어버린 후에도 벨카는 여전히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품 안에 있는 어셔의 단잠을 방해할까.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애써 졸린 기색을 지우고 최대한 버티려는 듯 한참을 주변을 살피던 소녀였으나 결국 그녀는 수마를 이기지 못하고 그 금빛을 감추고 말았다.
그 모습을 훔쳐보던 남자는 소녀가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 그들이 누워있는 침대로 천천히 다가갔다.
"아아,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그는 소녀의 눈동자를 처음 봤을 때의 그 느낌을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예쁜 금빛을 눈동자에 담을 수 있는지. 또 그 눈동자에 어찌나 그렇게 보는 것만으로 달콤하게 느껴지는 감정들을 담을 수 있는지. 지금 당장이라도 소녀를 깨워서 물어 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잠든 소녀를 범하면서 소녀의 눈동자가 어떨지 기대하기는 했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소녀의 금빛 눈동자가 불안을 담고 있을 때도 좋았지만 어셔를 바라볼 때의 그 눈동자는 황홀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잠재웠을 때보다는 소녀가 깨어나 있을 때의 반응을 즐기고 싶었지만 이 소녀를 마음 놓고 그의 것으로 만들려면 적어도 오늘 하루는 참아야 했다. 저녁을 먹고 있을 때. 남자들을 경계하며 불안에 떠는 소녀의 모습도 참으로 좋았다. 남들에게 들키지 않게 위화감이 느껴졌을 아랫배를 덮으며 두려움에 떨던 사랑스러운 소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안면조차 없는 누군가가 자신이 잠든 사이 가장 은밀한 곳을 탐했다는 사실에 누구도 신뢰하지 못하고 떨고 있던 모습은 그를 부추겼다.
때문에 그는 참지 못하고 방해되는 어셔를 소녀로부터 강제로 떨어트리고 그녀의 옷을 벗겼다. 거추장스러운 바지도 이미 벗어 놓은 후였다. 하필이면 그때였다.
-끼이이익
천천히 마차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소녀의 몸에 너무 정신이 팔렸던 탓이었을까?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실수였다. 시프에게 되도록 이곳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도록 유도하게끔 명령했기에 방심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평소처럼 몸을 숨길까? 하지만 문을 열 정도로 가까우니 상대는 그가 움직이면 소리를 듣고 말 것이다. 이 마차는 안의 잠금장치가 망가져 있어서 잠그지도 못해 마차에 다가오는 소리를 유심히 듣는 걸로 해결해 왔는데. 여차하면 상대를 기절시킬 생각으로 뒤돌아본 순간.
"당신, 뭐하고 있는 거야?!"
들려오는 것은 앳된 소년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보이는 소년, 로기의 모습에 그는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로기는 자신의 자리에서 저녁을 먹으며 노인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딱히 노인의 근처에 앉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단지 노인이 앉아있는 곳에 같이 있는 한 소녀 때문이었다. 이름이 벨카라고 했던가. 로기는 음식이 입에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지도 못하고 그 소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그 소녀의 바로 옆에 앉아서 같이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로기는 그럴 수 없었다.
"켁."
순간적으로 마주친 어셔의 눈빛에서 오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읽은 로기는 분한 심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체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을까?'
그리고 한숨. 로기는 아직도 아픈 이마를 문지르며 그가 잠시 기절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로기가 가장 억울한 것은 역시 그 소녀가 낯을 가린다지만 그를 딱히 거부하는 기색이 없었는데도 어셔가 난리 치며 그를 쫓아낸 것이다. 로기는 다시 싸우라고 한다면 이길 수 있겠지만 기세에서부터 밀린 상태였고 그와 소녀는 각별한 사이로 보여서 이긴다고 해도 미움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첫인상을 망친 것은 결국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아는 로기는 한숨만 푹푹 내쉴 뿐이었다.
그렇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구경만 하고 있을 때였다. 로기의 눈에 그들이 한 마부의 도움을 받아서 마차로 돌아가는 모습을 발견한 건. 마침 어셔가 졸고 있는 모습이라 그는 기회라 생각하고 허겁지겁 음식을 다 먹어치우고 그들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어떻게 얘기해야 하지?'
쫓아온 것은 좋은데. 문제는 그들에게 어떻게 말을 거느냐였다. 타인으로 인한 문제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자신에게 있었다는 걸 로기는 뒤늦게 알아챘다. 아무리 가까이 가는데 성공하면 뭐 하는가? 제 가슴이 지나치게 두근거려서 입을 여는 것조차 어려운데. 결국 마차의 앞에 있으면서도 한참을 들어가지 못하고 고민했지만 그런다고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냥 눈 딱 감고 들어가자!'
로기는 용기를 내어 들어가기로 했다. 촛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면 아직 잠든 건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문을 연 순간. 그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던 상황을 마주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잠들어 있는 소녀의 앞에 바지를 벗고 서있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당신, 뭐하고 있는 거야?!"
로기는 그 남자가 뭘 하려고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그것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필이면 그 소녀에게 남자가 안 좋은 일을 하려는 것을 알고 화내려고 했던 로기였지만, 뜻밖에도 그를 본 남자가 씨익 보란 듯이 웃었다.
"뭐, 뭐야?"
그 음습한 미소에 로기가 당황하자. 남자는 그에게 다가오라는 듯 손짓하며.
"내가 좋은 걸 가르쳐주마."
로기는 다가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마치 거부할 수 없는 유혹처럼 느껴졌다. 소년은 뒷걸음질 쳤다. 남자가 다가오라고 이야기했지만 무엇을 믿고 다가간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 남자의 옆에 새하얀 나신을 전부 드러내고 있는 소녀가 신경이 쓰여 힐긋 쳐다보았다.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남자와 대치 중인 상태에서도 소녀의 새하얀 살결이 자꾸만 눈을 사로잡아서.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 없었다. 그가 계속 우물쭈물거리자 남자는 소녀에게 손을 뻗으며.
"안 올 거냐?"
로기는 이를 악 물었다. 어디선가 넘어가면 안 된다는 목소리와 함께 넘어가자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대체 어느 쪽을 따라야 할지 망설이며 주춤거리는 그때.
"혹시라도 도망치면 이 애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읏."
벨카에게 뻗어진 남자의 손이 그녀의 가슴을 꽉 틀어쥐었다. 그러자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는 소녀. 때문에 로기는 그녀를 걱정하면서도 남자의 손가락 사이로 척 봐도 부드러워 보이는 소녀의 가슴과 도드라지는 열매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윽, 젠장!"
결국 로기는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면서 그에게 다가갔다.
"흐흐흐."
"그, 그래서 왜 부른 건데."
그의 음침한 웃음소리에서 불길함과 두려움을 느끼고 몸을 떨면서도 로기를 짐짓 당당하게 물었다. 로기는 자신이 싸움을 잘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어른에 비할 바가 안 된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덩치에서부터 힘, 팔의 길이까지 어느 것 하나 불리한 것밖에 없으니. 진작에 도망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리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소녀는? 저 남자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는데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내 남자는 로기에게 손을 뻗었고 소년이 맞는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아도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단지 남자는 그의 양 어깨를 붙잡은 것이다. 의아하게 눈을 뜨는 순간. 남자는 힘으로 그의 몸을 돌렸다.
"잠깐만...?!"
그때 로기는 자신이 벨카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옆에서 보았을 때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렇게 보니 소녀의 새하얀 나신 전체가 빠짐없이 보였다. 그리고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어때? 아름답지 않니?"
그는 남자의 말에 동조하고 싶지 않았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녀의 모습은 그저 남자에 대한 반발심만으로 부정하기엔 지나치게 아름다웠으니까. 그 아름다움이 그를 속박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저 독특한 빛깔의 붉은 머리카락은 일어나 있었을 때와는 달리 묶여있지 않아 침대에 물줄기처럼 흘러내렸고 곱게 감긴 눈은 언뜻 보았던 소녀의 금빛을 감추고 있었다. 그에 안도감과 함께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고 있으면.
"여기서 있었던 일들 비밀로 하면 이 애를 마음대로 하게 해줄게."
마치 그녀가 자신의 소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인심 쓴다는 듯이 하는 말에 소년은 경악했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확실하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로기는 남자에게서 도망치고자 했으나 남자가 잡고 있던 그의 어깨에 힘을 주는 것이 먼저였다.
"끄악!?"
어깨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자 남자는 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소년의 귀에 중얼거리듯 속삭였다.
"도망치려면 신중하게 생각해. 도망치려고 하면 난 여기서 너를 곧바로 죽여버릴 수도 있어."
그의 말에 오싹한 느낌이 그의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주먹을 꽉 쥐며 저항해 보지만 덜덜 떨리는 다리를 멈출 수가 없었다. 로기가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리고 먼저 말했었잖아? 네가 무사히 도망쳐도 내가 이 애를 가만히 둘 거라고 생각해?"
"흡!"
소년은 그의 말에 헛숨을 삼키며 나신의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어떤 의미로든 빠르게 뛰고 있는 이 심장이 지금은 원망스러웠다.
"아니면 지금 당장 내가 이 애를 손대도 상관없냐?"
"뭐?"
로기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있자 남자는 그의 어깨를 놓으며 벨카에게 다가갔다. 그는 지금이라도 달려서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다리가 마차 바닥에 딱 붙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단지 남자가 소녀의 위에 올라타는 모습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은 남자의 하반신 아래에 튀어나온 커다란 남성기였다. 소년에게도 존재하는 물건이었지만 저렇게 크지는 않았다. 소년은 그 모습에 알 수 없는 굴욕감을 느끼며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멈춰!"
소년은 남자가 하려는 행위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의 고향에서 저런 걸 아이를 만들기 위해 하는 일이라 가르치는 걸 들어봤으니까.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런 행위를 해본 적은 없었다. 고향에서 저런 건 배우자끼리 하는 것이라 엄격하게 가르치곤 했고 그의 선배들이나 어른들도 함부로 하지 말라 신신당부하곤 했으니까.
"도망치지 않을 테니까! 멈춰."
"흐흐, 잘 생각했어."
그러자 남자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일어나 로기의 뒤로 걸어왔다. 그리고 소년의 등을 떠밀었다.
"어어?"
그는 넘어지지 않고자 했지만 발까지 건 남자의 행동에 로기가 할 수 있었던 행동은 소녀가 누워있는 침대와 얼굴을 부딪히기 전에 손으로 짚는 것뿐이었다.
"이게 무슨 짓! 헉?!"
남자에게 소리치며 일어나려 했던 로기는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광경에 헛숨을 들이켰다. 소년의 눈앞에는 작고 도톰한 살이 감싸고 있는 분홍색의 균열이 있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소녀의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깨달았다. 자신은 살짝 벌어져 있던 소녀의 허벅지 사이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게 그녀의 가장 소중한 곳이라는걸. 어디선가 달콤한 향과 함께 갑자기 배가 고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식사를 하고 왔기 때문에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자, 네 마음대로 해. 너도 방법 정도는 알고 있을 거 아니야?"
"하, 하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너도 참고 있었잖아? 네가 다른 애들이랑 가끔 여자애들을 훔쳐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윽!"
"그 빌어먹을 곳에서 우리는 억압받기만 했어! 한 번쯤 이러는 것도 괜찮잖아?"
그런 것과 이런 건 이야기가 다르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로기는 소녀의 그 은밀한 곳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좋아하는 아이랑 언제 이런 걸 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몰라."
남자의 목소리가 계속 소년을 부추기고 있었다. 남자가 귀에 속삭이면 속삭일수록 충동이 억누르고 있던 이성을 뿌리치려 하고 있다.
"수면제를 먹어서 어차피 일어나지도 못해. 자고 있는 사이에 해버리면 그 애는 네가 뭘 했는지도 모를 거라고?"
이윽고 충동이 이성이라는 댐을 무너트리고 말았다. 소년은 천천히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소녀의 균열을 벌렸다. 그러자 희미했던 단내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이거다. 자꾸만 소년의 충동을 부추기던 것 중에 하나가.
"꿀꺽."
로기는 군침을 삼키며 확실하게 드러난 소녀의 은밀한 구멍에 손가락 하나를 집어넣었다. 어째서 이런 행동을 하는지는 로기도 알 수 없었다. 단지 뭐라도 넣어보고 싶은 기분이었다.
"으응."
자신의 안쪽에 이물질이 들어왔기 때문일까. 소녀의 불편한 신음에 로기가 깜짝 놀라자 남자가 다시 속삭였다.
"계속해라. 어차피 내일 아침까지는 일어나지도 못한다고."
그 말에 안심하고 마는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로기는 소녀의 은밀한 곳에 집어넣은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였다. 소녀의 그곳은 따뜻하고 축축했다. 얼마쯤 했을까? 이상한 느낌에 손가락을 빼면 투명하고 끈적한 액체가 축 늘어지더니 결국 툭 끊어졌다. 로기는 다시 허기를 느끼며 소녀의 구멍에 넣었던 자신의 손가락을 빨아보았다.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지만 달짝지근한 향기가 식욕을 자극했다.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느껴?"
남자의 목소리에 의문이 들어 물어보았다.
"네 손길이 기분 좋았다는 소리지."
이제 그가 말하는 것에 거부감조차 희미해졌다.
"혀로 직접 핥아주는 건 어때? 더 기뻐할 거라고."
이제 그가 하는 말이 남자의 목소리인지 자신의 생각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오로지 소녀의 은밀한 구멍이 자신을 유혹했다. 소년은 충동을 참지 못하고 벨카의 사타구니에 얼굴을 파묻어 버렸다. 소녀의 보드라운 허벅지가 얼굴에 달라붙고 코밑에는 소녀의 은밀한 곳을 덮고 있던 도톰한 살덩이가 달라붙었다. 달콤한 향이 콧속을 가득 채우고 혀를 뻗어 소녀의 안쪽을 맛보았을 때.
"읏...!"
거부하듯 빠듯하게 혀를 조이는 소녀의 안과 작지만 쾌락을 담은 소녀의 신음에 로기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츕! 쮸읍! 츄릅!
"흣. 흐아."
로기는 벨카의 가느다란 허벅지를 붙잡고 몇 번이고 또 몇 번이고 소녀의 고간을 탐했다. 그 은밀한 구멍에 키스라도 하는 듯한 모습을 남자가 보면서 즐겁게 웃고 있다는 사실조차 로기는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