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방랑자들.
소녀의 아랫배를 핥자 부드러운 살결의 그의 혓바닥에 눌려 일그러졌다. 소녀 특유의 달큼한 향이 날뿐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는 맛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아랫배의 안쪽에 소녀에게 가장 소중한 곳이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좋은 느낌이었다.
-츄릅! 츱! 쯔읏!
그는 계속 집요하게 소녀의 아랫배를 핥고 어떨 때는 입까지 이용해 빨아 보기도 했다. 얼마나 집요하게 괴롭혔는지 소녀의 아랫배는 그의 침으로 질펀하게 젖어 촛불의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남자도 이렇게까지 소녀의 아랫배를 괴롭힐 작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얼마쯤 소녀의 배를 핥았을 때.
"흣."
소녀의 입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신음을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러 번 아랫배를 핥다가 슬며시 소녀의 은밀한 계곡에 손을 대보았고 믿을 수 없게도 달콤한 꿀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래, 아랫배는 다름 아닌 소녀의 성감대였다. 이 우연찮은 발견에 그는 희열하며 집요하게 소녀의 아랫배를 괴롭혔고.
"흐으으."
깊이 잠들어버린 소녀는 쾌락에 저항할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본능에 따라 은밀한 계곡을 조금이나마 적시고 있었다. 그는 이런 일을 꽤 여러번 해왔지만 여자들은 깊이 자고 있을 때 성적인 반응이 꽤 약한 편이다. 특히 지금처럼 수면제를 이용하면 축 늘어진 고기 인형과 다름이 없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를 범한다는 상황이 좋아 늘 애용하는데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같은 상황이라도 여자들의 몸은 다르게 반응한다는 사실이었다. 아예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확실하게 반응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 소녀는 꽤 예민한 편이었다. 소녀가 달뜬 숨을 내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더 이상 부풀어 오른 자신의 육봉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플 정도로 부풀어버린 이 고기의 창을 당장 소녀의 구멍에 쑤셔 박아버리고 싶었다. 마침 소녀의 은밀한 계곡은 달콤한 꿀물에 흠뻑 젖어서 뻐끔뻐끔 호흡을 하듯 벌렸다 닫히며 남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끝났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제멋대로 허락이라 생각하고 소녀의 은밀한 계곡을 향해 고기의 창을 찔러 넣었다.
"아읏."
그리고 흘러나오는 소녀의 신음. 그의 육봉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자그마한 소녀의 안쪽은 그의 물건을 확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끈적거리고 따뜻하게 육봉을 감싸오는 소녀의 고기 단지는 억지로 참지 않았다면 바로 사정해버렸을 정도로 확실하게 기대 이상의 쾌락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고 있었다.
"어딘가의 고아한 영애라 생각했는데. 이미 다른 녀석이 따먹었던 건가?"
그는 힘차게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수면향을 피우는 상태에서 강한 수면제까지 사용한 덕분에 소녀가 깨어날 걱정도 없었다. 처음부터 배려라곤 없었지만 이제는 충동을 자제하려는 시도도 없이 본능에 따라 거칠게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어려 보이는데! 처녀가 아니라니!"
"으으, 아...!"
그보다 그는 질투가 났다. 강간이든 서로 동의하에 한 것이든 상관은 없었다. 그는 지금 이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소녀를 어떤 식으로든 먼저 맛보았던 다른 수컷에게 셈이 나서 버틸 수가 없었다.
"벌써 남자의 맛을 알고 있다니!"
무엇보다 자신은 이 소녀의 눈동자를 보지도 못했는데. 소녀의 머리카락처럼 예쁜 빨간색일까? 아니면 어떤 색일까? 설레고 있었는데. 다른 놈들이 먼저 공포에 물든 소녀의 눈동자를 마주 본 채, 혹은 사랑스러운 눈길을 받으며 관계를 맺었을 것을 생각하니 배알이 뒤틀렸다. 그러다 그는 켜놓았던 촛불의 모습이 문득 보이자 지체하지 않고 들었다. 스스로가 놀랄 정도의 행동력이었다.
"음탕한 년에겐 벌이다!"
"읏!"
그가 아랫배에 녹아있던 촛농을 한꺼번에 떨어트리며 육봉으로 고기 단지 안쪽을 푹푹 찌르자 소녀는 쾌락에 젖은 숨을 토해내며 뜨거운 고통에 안쓰럽게 몸을 떨었다. 그러다 그는 좋은 생각이 떠올라 강하게 움직이던 허리를 멈추었다.
-툭툭
바로 촛농이 떨어져 소녀의 아랫배에 닿을 때마다 자신의 육봉을 천천히 넣었다 빼는 것이었다. 뜨거운 고통이 쾌락으로 느껴지도록 마침 아랫배는 소녀의 성감대이지 않은가? 촛농이 아랫배에 닿을 때마다 소녀의 고기 단지가 살짝씩 조여드는 느낌은 최고였다. 이 소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것이 익숙하게 돼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미 그의 물건을 많이 써먹었던 탓일까?
"크흐음!"
급박한 사정감에 그는 자신의 고기 창이 소녀의 안쪽 끝에 닿을 때까지 거칠게 찔러 넣었고 그에 따라 소녀의 허리가 튀어 오르듯 휘었다. 꿀렁꿀렁 육봉이 요동치며 소녀의 안쪽에 요란하게 정액을 쏟아냈다. 한동안 소녀를 안고서 물건을 꽂은 채 거친 숨을 내쉬던 그는 지금 끝을 내야 할 때라는 것을 느꼈다. 마음만 먹는다면 밤새도록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뒤처리가 문제다. 최근 들어 늘 피워두는 수면향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소녀가 중간에 깨어나버리거나 다른 놈들에게 들켰을지도 모른다.
이 행위는 결국 불쾌한 냄새를 동반해서 아무리 약초 냄새가 가득한 이곳이라도 눈치채는 이들이 있을 수 있으니 공을 들여 청소를 해야 했다. 그가 일어서며 소녀의 안에 꽂혀있던 물건을 빼내자 그의 물건에서 묻어 나온 소녀의 꿀물과 그의 정액이 뒤섞여 떨어져 내렸다.
"으으..."
소녀의 아랫배는 그의 정액과 소녀의 꿀물, 굳어버린 촛농으로 가득해 엉망이었다. 그러나 소녀의 부드러운 피부 위에 가득 뿌려진 그 모습이 디저트 위에 뿌려진 달콤한 시럽을 연상케 해 그는 군침을 삼켰다. 그 모습에 다시 그의 물건이 부풀어 오른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 깨어나지 않았는지 살피면서 그는 빼내려던 자신의 물건을 소녀의 꽃잎에 다시 꽂아 넣었다. 저항하지 못하는 소녀는 천하디 천한 짐승에게 그저 달콤한 디저트일 뿐이었다.
어셔는 수마의 늪에서 천천히 떠올라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새하얀 천장과 코끝을 스치는 알싸한 약초의 향. 그는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져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 이제 일어났구나."
그리고 들려오는 경계심을 품기엔 너무나 어수룩한 남자의 목소리.
"의사 아저씨?"
잠기운에 멍한 머리를 억지로 깨우며 그 목소리가 어제 만난 의사의 것이라는 걸 떠올렸다.
"제가 왜 여기에 누워있어요?"
어셔가 누워있는 곳은 그가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기억하던 자리와 위치가 달랐다. 어제는 분명 의자에 앉아서 벨카가 누워있던 침대에 엎드려 잠들었던 것 같은데. 그는 지금 마차 바닥에 깔린 모포 위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있었다. 대체 왜 이곳에서 잠들어 있는지 의아해하니 그가 답해주었다.
"너, 너무 불편하게 자는 것 같아서. 내가 오, 옮겼어."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보니 그가 누렇게 변색된 붕대를 모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면 침대 위에 누워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어제보다 새하얗게 보여 눈을 비볐지만 다시 보아도 밝아 보이는 모습을 보아 붕대를 갈아 둔 모양이었다.
"아, 벨카는."
그러다 소녀의 모습을 발견하고 다가갔지만 그녀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듯했다. 그 순간 어딘가 익숙한 냄새가 난 것 같아 어셔는 미심쩍은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도 아주 불쾌한 냄새. 잠이 확 깨는 기분이었지만 다시 맡아보면 다른 냄새라는 것을 알 수 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에 그에게 물었다.
"혹시 벨카에게 무슨 일이라도 했나요?"
"그, 그그, 체력이나 힘이 조, 좋은 편은 아닌 것 같은데. 무리하게 기력을 짜 낸 것 가, 같아서. 기력 회복에 좋은 약을 머, 먹이고 근육통도 이, 있을까 봐 약을 발라줬어."
다행스럽게도 그가 우려하던 일이 일어난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던 그때. 마차의 문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뜨루스! 밥 먹으러 가자고!"
도나르란 사내의 목소리였다. 이내 마차의 문이 열리더니 먼저 나타나는 것은 황동색 투구였다.
"오, 너도 깨어나 있었구나. 친구는 좀 어때?"
"그게, 아직."
힐끔 벨카를 바라보면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잠들어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피부가 하얀 그녀는 아주 옅은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인형이라 착각할 만큼 아슬아슬한 모습이다.
"이 아이가 깨, 깨어나려면 시간이 걸릴 거야. 빨리 깨어나도 저, 저녁쯤에."
뜨루스 또한 덧붙여 말했다.
"으음, 그래? 조금 아쉽지만 꼬마야. 너라도 같이 밥 먹으러 오는 게 어떠냐?"
"어, 하지만 마차는."
그들이 모두 밥을 먹으러 가면 이곳에는 벨카를 포함한 환자들뿐이었다.
"뭘, 걱정하는지 알겠는데. 점심에는 아무것도 못 먹으니까. 최대한 든든하게 먹는 게 좋다고."
"그, 그래. 이럴 때라도 바깥공기를 쐬어주지 않으면 다, 답답할 거야."
무언가 어셔와 그들이 걱정하며 이야기하는 것이 다른 기분이었지만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며 밥을 먹자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환자들 몫은 따로 준비되어 있으니까."
그도 지금 배가 고팠으니까.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소녀를 걱정하면서도 도나르의 재촉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마차에서 내리면 아침이라 덜하지만 뜨겁고 건조한 황야의 날씨가 그를 반기고 있었다.
"윽, 따가워."
하지만 그보다 성가신 건 바람에 섞여 피부를 날카롭게 때리는 모래먼지다. 막 태양이 떠오르고 있는 탓인지 거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 황야가 불편한 이유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이렇게 태양이 뜨는 시간이 되면 바람 한 점 불지 않던 황야에 강한 바람이 분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마차 안에 있었던 덕분에 편하게 잠들었지만 둘만 있었을 땐 아침부터 저 바람에 강제로 깨어날 정도였다. 낮에는 그렇게 불어달라고 속으로 빌어도 불지 않았던 바람이 불지 않았으면 할 때는 한꺼번에 불었다.
"조금 성가시긴 하지만 태양에 쪄죽거나 너무 추워서 얼어 죽는 것보단 좋잖아?"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피부를 때리는 쇳내가 풍기는 모래먼지가 눈까지 때릴까 그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때였다.
"혹시나 해서 들고 왔는데. 자, 이거라도 써라."
"이건?"
볼을 따끔하게 때리고 지나가는 모래들에 인상을 찌푸리다 떠지지 않는 눈을 강제로 뜨고 보면 그에게 두텁고 낡은 천과 검은색의 무언가로 이루어진 것을 내미는 거친 가죽 장갑을 낀 사내의 손이 보였다.
"이게 뭔데요?"
"간단하게 검은 게 눈 쪽으로 오게 쓰면 돼."
"그걸 물어본 게 아니잖아요."
어떻게 쓰라는 건지는 알 것 같았지만 검은색의 무언가가 마음에 걸려서 머뭇거리던 것뿐이었다. 그래도 일단 머리에 뒤집어쓰고 보니 어셔는 놀라고 말았다. 더 이상 모래 먼지가 피부를 때리지 않는다는 간단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이거, 새까매서 아무것도 안 보일 줄 알았는데. 앞이 보이네요?"
그의 말대로 검은색 부분이 눈 쪽으로 오도록 썼더니 검은색으로만 보였던 것은 생각보다 투명해서 앞이 잘 보였다. 그래도 완전히 투명하진 않아서 세상이 어두워진 느낌이지만 얇은 천으로 얼굴을 덮을 때보다도 깔끔하게 앞이 보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지만 어째선지 놀란 목소리는 그녀만이 아니었다.
"도, 도나르! 그, 그그그거! 엄청 귀한 거라고 네가 아끼던 게?!"
뜨루스의 경악에 가까운 외침에 돌아보면 그도 비슷한 천을 얼굴에 하고 있어서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충분히 놀라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뒤집어쓴 눈 쪽에는 그가 받은 것과는 다르게 검은색의 무언가가 아닌 얇은 천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체 이 검은 게 뭔가 싶어서 도나르가 있는 곳을 보면 그는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렇긴 한데. 생각해보니까 나는 쓸 일이 거의 없더라."
도나르는 자신이 뒤집어쓴 투구를 톡톡 두드렸다.
"그건, 그, 그렇지만! 팔기만 해도 얼마가!"
"그냥 빌려주는 거잖아. 그보다 식사하는 곳까지 거의 다 왔다고."
뜨루스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어제 그 노인의 마차였다. 그의 마차 앞에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어제와는 달리 천막들이 완성된 모습으로 모래바람을 막아주고 있었다. 어째서 날아가지 않는지 의아했지만 자세히 보니 천막들은 제각각 마차와 연결되어 있었다. 천막과 마차에 바람이 막혀 불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도나르가 건네주었던 것을 벗고 있으니 노인이 그들을 반겼다.
"좋은 아침이구나."
"아, 네! 그... 할아버지도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가 노인을 부를 호칭을 고민하다 어색하게 부르며 묻자. 주변 사람들은 놀란 기색이다. 여기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도 놀라는 건가? 아니면 그가 시골에서 살다 온 탓에 다른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 일이 많은 것일까? 주변의 분위기에 어셔가 눈을 굴리며 눈치를 보자 노인은 마치 그리운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인자하게 표정을 풀며.
"그래, 식사하러 온 게냐?"
"그렇긴 한데."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 어쩐지 끼어들면 안 될 듯한 분위기라 말했다.
"그, 따로 챙겨둔 게 있으니까."
"괜찮으니 같이 먹자꾸나."
그의 말에도 노인은 웃으며 손짓했다. 심지어 옆에 앉으라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직도 놀란 눈치라 어색하게 노인에게 다가가다가도 멈칫하고 있으니 도나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자, 우물쭈물거리지 말고 어르신 기다리신다."
"자, 잠깐만요! 굳이 안 끌고 가도 알아서 갈 테니까!"
어셔의 당황스러운 외침에도 그는 천연덕스럽게 그의 등을 밀어 노인의 옆으로 데리고 갔다. 반쯤 억지로 노인의 옆자리에 앉게 된 그는 곧 뒤늦게 콧속으로 들어오는 고소한 냄새를 맡았다. 이제 보니 노인의 앞에서 타고 있던 불 근처에는 쇠꼬챙이에 꿰어진 이름 모를 고기가 보기 좋게 그을려지며 익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면 그 불의 아래에는 태워지고 있는 나무가 없었다. 대신 항아리처럼 생긴 무언가가 대신 그 불길을 토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어셔는 긴장도 잊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건 뭐예요?"
그가 살던 마을에서는 나무를 태워서 불을 피웠다. 게다가 한 번 불을 쓰고 난 뒤에도 최소한 불씨 정도는 항상 유지해야 했기에 한 집에 한 사람 정도는 반드시 화로를 지켜봐야 해서 불편했던 일이 떠올랐다. 정작 혼자 살던 어셔는 불씨를 유지할 턱이 없어 벨카에게 받은 부싯돌로 불을 피우곤 했다. 항아리에서는 나무가 탈 때와는 다르게 어딘가 매캐하고 불쾌한 냄새가 났지만 그것이 신경이 쓰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도 없이 스스로 불길을 내뿜는 항아리의 존재가 너무 신기했다.
"그렇게 신기하느냐?"
"네, 이런 건 처음 봐요."
그래서였을까? 어셔는 자신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길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처음 보는 물건에 호기심을 품는 것도 잠시. 근 며칠간 황야를 걸으면서 먹은 것이라고는 늑대들이 건네주었던 말린 육포 몇 개와 자세한 건 알 수 없어도 단맛이 나는 가루 같은 것들이 몇 줌이 전부였던 어셔에게 제대로 조리된 음식의 모습은 무척이나 유혹적이었다. 노인이 익었다 싶은 꼬치를 내밀자 사양할 생각도 못 하고 감사하다 말하며 받아들었을 정도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너 운도 좋다."
"뭐가요?"
도나르의 말에 그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묻자 사내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우리라고 늘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건 아니거든."
"그럼 이건."
그 또한 잘 익은 꼬치 하나를 들며.
"너희 만나기 전에 조금 커다란 놈이 습격해서 말이야. 이건 그놈의 고기다."
"엑!"
어셔는 놀라 자신이 들고 있는 꼬챙이를 보았다. 그보다 습격이라니 커다란 놈? 어쩌면 이 황야에 살고 있는 생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놈 때문에 부상자가 생기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쓰러트렸어. 덕분에 이렇게 식량도 생겼고."
그는 도나르의 이야기를 들으니 자신이 들고 있는 꼬치에 입이 가지 않았다. 맛있는 냄새가 그를 유혹하고 뱃속이 밥을 달라 말하는데. 이 고기를 얻으려고 부상자까지 생겼다는 소식을 들으니 입맛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다.
"어, 부담 가지라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말이지."
그의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도나르가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본의 아니게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볼 때였다.
"예전부터 이야기했었지만 도나르 씨는 말할 타이밍이라는 걸 좀 생각하고 이야기하세요."
"시프."
그때 한 여인이 끼어들어 이야기하자 분위기가 조금 풀렸다. 도나르의 바로 옆에 앉는 그녀는 찰랑이는 금발의 화사한 인상의 여인이었다. 어셔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모습은.
"마리, 누나?"
지금은 추억으로 밖에 남지 않은 가족과도 같았던 소녀의 화사한 금발에 푸르른 녹음처럼 녹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셔는 그 여인에게 마리와의 관계를 묻는 것을 포기했다. 단순히 머리색과 눈 색이 같다는 사실만으로 연관 짓기에는 근거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얘."
"네, 네?!"
그 여인이 어셔를 부르자 그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마주치는 옛 추억을 떠오르게 만드는 녹색 눈동자.
"이 사람 말은 신경 쓰지 말고 먹으렴. 그보다 당신! 말을 좀 가려서 해요! 애한테 부담을 줘서 뭐 하려고요!"
"아니, 나는 그러려던 게."
"그게 더 문제에요!"
어쩐지 그 안에 담긴 친절이 더욱 마리를 떠올리게 만들어 울컥하는 마음에 입술을 깨물자. 여인은 도나르의 말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그를 타박했다. 다행히 그가 중얼거렸던 소리는 듣지 못한 모양이다. 그렇게 여인이 도나르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쏟아내고 그가 쩔쩔매고 있자 어색했던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어딜 가! 당신!"
"나는 할 일이 있어서!"
결국 여인의 잔소리는 도나르가 할 일이 있다며 어디론가 도망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 모습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모두 웃으며 소란스러워졌다.
"저 사람 때문에 미안해. 체하지는 않았니?"
"그, 저는 괜찮아요."
마치 자신이 잘못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과하는 여인의 모습에 어셔는 당황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마리 누나가 무사히 자랐다면 저런 모습일까? 싶은 그녀의 모습에 그의 마음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