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4화 〉방랑자들. (34/220)



〈 34화 〉방랑자들.

"이런 곳에서 무얼 하고 있었던 게냐?"


그가 저 괴상한 생물이 이끌고 있는 마차에 타고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반응이 늦어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어셔는 황급히 말했다.


"그게, 그러니까! 벨카가 쓰러졌어요! 혹시 도와주실 수 있나요?!"


상대가 벨카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한다는 사실도 잊고 다짜고짜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그 때문에 당황할 법도 하건만 그는 천천히 말했다.

"조금만 진정하려무나. 혹시 네 뒤에 있는  아이가 벨카라는 아이니?"
"네, 네! 물도 먹지 않고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어셔는 반쯤 울먹이면서 횡설수설 거렸다. 노인은 그의 뒤로 돌아가 소녀의 이마에 손을 대며.

"으음, 열은 높은데 땀은 흐르는  같지는 않고... 열사병인가? 일단 내가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보마."
"감사합니다! 부탁드려요!"


그가 타고 있던 마차의 뒤에서 따라오던 마차들은 어느새 길을 벗어나 커다란 원을 그리도록 멈춰 세운 후였다. 그 마차에서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하며 신기하다는 듯 그들을 바라보자 어셔는 조금 위축되는 것 같으면서도 말에서 내려왔다.

"우선  말은."
-푸르릉!


노인이 말을 보며 어디에 둘지 고민하는 기색이 보이자 말은 귀찮다고 말하듯 푸르릉 소리를 내며 그가 있었던 마차의 근처로 다가가 누웠다.


"똑똑한 녀석이로구나."

그러자 감탄하는 그의 모습에 말은 잘난 척 콧김을 내뱉는다. 그 모습이 어셔에겐 어이가 없었다. 저 말이 똑똑한  사실인 것 같지만 여자를 밝히고 원래는 뿔도 달려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도 지금은 벨카를 치료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말에게 정신이 팔린 노인을 재촉했다.

"저기."
"아! 미안하구나."


안내해 주겠다며 어디론가 향하는 그의 뒤를 따라 움직이며 야영을 준비하는 듯한 사람들의 사이로 지나가면 이따금 그들에게 시선이 몰리는 것이 느껴져 어셔는 잔뜩 긴장했다. 그야 그는 마을 사람들과 지내본 경험이 있어도 벨카는 어떤 이유 때문인지 다른 사람들과 만나본 일 자체가 거의 없었으니까. 혹시 맥과 같은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히 주변을 경계했다. 그렇게 커다란 마차를  개 정도 지나쳤을 때. 어디선가 알싸한 풀 냄새와 그와 비슷하면서 다른 향이 풍겼다. 앞서가던 노인이 드디어 걸음을 멈춘 곳은 그 향이 진하게 나는 마차의 근처에서 천막을 설치하던 남자의 앞이었다.

"이보게 의사 양반 많이 바쁜가?"
"에, 에르미스 씨?"


 남자는 노인에게 의사라고 불렸지만 어쩐지 그의 다리 한쪽에는 붕대가 둘둘 말려 있었고 머리와 허리에도 붕대를 두르고 있었다. 다리를 쩔뚝거리며 노인에게 다가온 그의 모습은 정말로 의사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저기, 저 사람 정말로 의사예요?"
"음, 저래 보여도 실력은 확실하니. 걱정하지 마려무나."

의사라기보다는 당장같이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처럼 보여서 실례라는 걸 알면서도 노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실력은 의외로 괜찮은 모양이다.


"어, 어, 어쩐 일로?"

말까지 심하게 더듬는 그의 모습은 믿음직함과는 거리가 매우 떨어져 있어서 불안함만 늘었다. 그런 어셔의 마음과는 다르게 노인은 익숙하게 그를 상대했다.


"이 아이가 데리고 있는 아이의 상태를  봐줬으면 좋을  같아서 말이네."


그의 말에 겨우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린 듯 남자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처, 처, 처음 보는 아이들인데. 이런 아, 아이들이 피나..."
"어허! 이 사람아!"

남자가 말을 너무 심하게 더듬자 화가 났는지 노인이 호통쳤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뭔가 이상했는데. 그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지! 됐으니까 얼른 치료해 주게!"
"아, 아아, 알겠습니다!"


결국 벨카는 이 어리바리한 남자에게 치료받아야 하는 모양이다. 정말로  남자를 믿어도 되는지 걱정스럽게 노인을 쳐다보아도 그는 걱정 말라는 듯이 웃으며 남자를 따라가라 손짓했다.


"자, 아, 아아직 천막은 만드는 중이라 안 되겠고. 마차로 오, 오렴."


어셔는 어리바리한 남자의 말까지 듣고 마지못해 그를 따라 그 남자가 타던 것으로 보이는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의 안은 그 크기만큼이나 넓고 허름하긴 하지만 깔끔해 보였다. 언뜻 붕대를 감고 누워있는 몇몇 사람들이 신경 쓰였지만 남자의 말이 들렸다.


"여, 여, 여기에 눕히렴."
"네."

그가 가리킨 곳은  침대였다. 다만 높이가  있어서 그가 대신 벨카를 받아들어 눕혔다. 괜히 의사라고 하는 건 아니었는지 그 모양새가 익숙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행동에 소리치고 말았다.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으힉?!"


그가 손을 떨면서 소녀의 옷 앞섶을 풀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가 화가 난 목소리로 씩씩거리자. 그는 말을 더듬으면서도 말했다.


"그, 그야. 처처처, 청진기를 대려면 오, 옷을 벗어야 하니까."
"아."

어셔는 그가 보란 듯이 꺼내든 의료도구처럼 보이는 물건에 뜨거워지는 얼굴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진료가 끝나고 어셔는 침대에 누워 미동도 없이 얕은 숨을 내쉬는 소녀를 옆의 의자에 앉아서 지켜보았다. 의사는 열사병 같은 것은 아니라 무리하게 기력을 소모해서 잠들었을 뿐이라 조금만 자고 일어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 이야기했지만, 혹시 벨카가 정말로 아픈데 알아채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도저히 안심하고 그녀의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저기, 그?"
"왜요?"
"그, 그 아이가 깨어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가, 같으니까. 밖에서 다른 아이들과 놀고 오는 것은 어, 어떻니?"


다른 아이들이 있다는 이야기에 아주 호기심이 없는  아니었지만 역시 이 말을 더듬는 남자가 어셔는 영 못 미더웠다.

"됐어요. 저는 벨카만 있으면 되니까."
"그 아이 이름이 베, 벨카구나."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소녀의 이름을 확인하는 남자의 모습에 그가 의심스러워 쳐다보면.

"네, 네 이름은 뭐니?"
"...어셔에요."

그의 이름을 물어보며 바보처럼 실실 웃는 그의 모습에 맥이 빠져버렸다. 이런 사람이 의사라는 것은 여전히 의심스러웠지만 그래도 경계심까지는 들지 않았다.


"나, 나는 뜨루스라고 한단다."
"이상한 이름이네요."

기껏 소개한 그의 이름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지 그는 헤실헤실 웃었다.


"그래도 거, 걱정된다니까. 피, 피로약이라도 조금 먹여 둘게."

그는 품 속에서 투명한 병을 꺼내더니 그 안에 담긴 액체를 소녀의 입술에 몇 방울 떨어트렸다. 아마도 약처럼 보였다.

"호, 혹시 에르미스 씨께 마실 물이라도 바, 바받아와줄 수 있겠니?"
"직접 들고 오시면 되잖아요."

그보다 그런 건 보통 미리 준비 해놓지 않던가?

"마, 마실 물 같은 건. 에르미스 씨가 관리하고 이, 있으니까. 환자들한테 먹여야 하, 하는데. 여기서 쓰는 무, 물은 마시지 못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그는 물이 든 양동이에 수건 하나를 깊게 담가 적신 뒤 다시 양동이에 물이 들어가도록 짜내고 소녀의 이마에 얹고 있었다. 이후에는 바쁘다면서 다른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확인하며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그의 모습은 그나마 의사라는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해주었다.

"억!"

그래도 그가 못 미덥다는 건 바뀌지 않았다. 걸어가다가 무엇에 걸렸는지 넘어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어셔는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마실 물을 그에게 맡기지 않는 이유를  것 같았다. 어셔는 넘어져 버린 그를 내버려 두고 문 앞으로 향했다. 처음 만났던 노인을 저 남자가 에르미스 씨라고 불렀던 것을 기억하고 찾으려는 것이었다. 마차는 그 크기만큼 높아서 이 마차에도 내려갈 땐 작은 사다리를 필요로 했다. 사다리를 밟고 마차 밖으로 천천히 내려가자.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날아와 그의 뺨에 꽂혔다. 낯선 것 혹은 신기하는 것을 보는 눈초리가 쏟아지자 부담스러운 마음에 그는 몸을 움츠렸다가 에르미스라는 노인을 찾고자 발걸음을 빨리했다. 노인을 따라 걸었던 길을 반대로 걷고 있을 때. 그의 앞에 무언가가 튀어나와 발을 걸었다.


"엇!?"

급한 마음에 발걸음이 빨랐던 그는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요란하게 엎어질 뻔했다. 넘어지려는 그를 누군가 받쳐주지 않았다면 말이다.

"꼬마야. 안 다쳤니?"


넘어지려던 그를 받쳐준 것은 황동색의 낡은 갑옷을 입고 있는 사내였다. 머리까지 투구를 써서 얼굴을 가린 남자는 친절하게 그에게 묻고 있었고 잠시 어안이 벙벙했던 어셔는 뒤늦게 상황을 깨닫고 감사 인사를 했다.

"그, 감사합니다."
"아니, 우리  잘못이니까."
"네? 그게 무슨."

사내의 말에 무슨 뜻인지 물으려 했지만 곧 그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야 인마! 로기! 어딜 도망치려 들어!"
"케엑!"


그는 그를 세워두고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슬금슬금 걸음을 옮기던 한 남자아이의 목덜미를 잡아올렸다.

"이젠 하다 하다 처음 보는 애까지 괴롭히는 거냐?!"
"우 씨! 내가  했다고요?!"

그 아이는 사내의 손에 들려 발버둥 쳤지만 힘을 이기지 못하고 녀석은 결국 그의 앞까지 끌려왔다. 가까이서 본 남자아이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그보다 머리 반개는 컸다. 짧게 잘린 머리는 아무렇게나 뻗어있었고 뻔뻔스레 억울하다 말하는 얼굴이 악동이라 말하는 것 같다.

"자, 사과해."

어셔는 그의 말에 이 소년이 어떻게 행동할지 알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말에 소년은 부루퉁한 표정으로 그를 흘겨보더니 픽, 비웃으며.

"앞 좀 잘보고 다녀라. 난쟁이 똥자루."
"야! 사과하라니까! 그게 할 소리냐?"
"증거도 없잖아요!"
"내가 다 봤다! 이놈아!"


정말로 예상하던 것과 한치의 차이도 없는 그 모습에 어셔는 소년의 머리를 주먹으로 가볍게 내려치려는 사내를 말렸다.

"잠깐만요. 굳이 안 그러셔도 되니까요."
"엥? 하지만  녀석이."
"헹, 괜찮다잖아요!"

그의 말에 그가 의아해하고 소년은 자신만만해했지만 어셔가 하려는 일을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흐읍!"

어셔는 기합을 내며 다리를 쳐올렸고 그의 다리는 정확하게 소년의 허벅지 안쪽을 타격했다.

"어어억?!"

설마 그가 그렇게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건지 소년은 얼굴을 새하얗게 물들이며 허벅지를 부여잡았다. 소년은 어셔의 덩치가 작아서 만만하게 본 것 같지만 이래 봬도 그는 원래 살던 마을에서 제일 가는 악동이었다. 벨카 덕분에 그의 성격은 의외로 얌전한 편이지만 그래도 악동 기질이 사라지는  아니다. 그 장면을  사내까지 어색하게 몸을 굳혔을 때. 그는 상쾌한 얼굴로 말했다.


"이젠 괜찮은  같네요."

오히려 덕분에 긴장이 풀린 기분이라고 생각하며 조금은  낯설어진 사람들의 틈을 지나 노인을 찾으러 갔다.


"야, 너, 잘못 건드린 것 같다."
"끄윽, 닥쳐요."

뒤에서 들려오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노인이 타고 있었던 마차를 찾았을 때. 어셔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어? 저기는."


 노인의 마차가 있던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이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저곳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그러다 그는 자신과 소녀를 태우고  말의 존재를 떠올렸다.


"설마!"

혹시 그 말이 사고라도 친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사람들의 틈에 끼어들었다.

"잠시만요! 잠시만 비켜주세요!"


그렇게 사람들의 틈을 넘어서 그들이 감싸고 있었던 안쪽에 도착하자 웅성거리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확실하게 들렸다.


"이게  말이래요?"
"단주님 말로는 어떤 아이들이 데리고 있던 말이라던데."


딱히 말이 사고를 친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들은 말이라는 동물 자체를 신기하게 여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 서있던 어셔를 찾은 건 그가 찾던 노인이었다.

"오, 돌아왔구나.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느냐?"
"그, 감사합니다! 의사 아저씨 말로는 한숨  자고 나면 괜찮을 거래요."


그 의사가  미더워도 어쩔  없는 노릇이었다. 노인에게 고마운 감정을 느끼는  사실이었지만 어째서 그들을 도와주었는지 의문이었다. 그래도 어른들이 하는 일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만 하면 별로 좋은 인상을 주지 않는다는 건 이미 마을에서도 충분히 겪었던 일이다. 어셔는 쓰러진 벨카를 위해서라도 이 행렬을 이끄는 것처럼 보이는 노인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었다.

"저기, 단주님?"


그때 사람들 사이에 있던 한 여인이 앞으로 나오며 노인을 향해 말했다. 단주님이란 말의 자세한 뜻은 알  없지만 노인이 마을의 촌장님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느낄  있었다.

"그 아이는 누군가요?"


그리고 여인의 시선이 어셔를 향했다. 모여들어있던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들까지 모이자. 그는 부담스러워졌다. 마차가 엄청 크다는  봤을 때부터 생각했어야 했는데. 이곳으로 오는 길에 천막을 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았으니. 마차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이곳에 모인 것은 아닌데도 마을 사람들의 숫자보다 많아 보였다.

'정말, 시골이긴 했구나.'

새삼 자신이 살던 마을이 한적한 시골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낯을 가리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셔는 긴장감이 들었다.


"아까 말했던 아이들 중  명이네."
"이 말을 데리고 있었다던?"
"그렇네."

노인의 말에 사람들의 웅성이는 소리들이 더욱 커졌다. 무슨 말을 나누는 것 같기는 했지만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너무 많아서 이야기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다.

"험험!"


헛기침과 함께 사람들을 침묵시킨 노인은 곧 그에게 손짓했다.

"그래서, 의사 양반이 무얼 부탁하더냐?"


노인은 어셔가 무슨 일로 그를 찾아왔는지 예상하고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아! 마실 물을  가져다 달라고 했어요. 환자들에게 필요하다면서."
"그래,  이걸 가져가려무나."

그러면서 그가 뚜껑이 덮인 양동이 하나를 내밀자 그것을 받으려 했던 어셔는 노인이 갑자기 양동이를 거두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혹시 물을 주기 싫어하는 건가 싶어 노인을 바라보면.


"음, 네가 직접 들고 가는 건 무리일 것 같구나."
"아."

어셔는 자신이 또래의 아이들보다 체구가 작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도 딱히 힘으로 져본적은 없어서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노인의 말이  빨랐다.


"이보게! 도나르!"

그가 누군가의 이름을 우렁차게 외치자. 사람들의 틈을 뚫고  사내가 튀어나왔다. 어셔는  사내의 모습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예! 어르신! 부르셨습니까?"
"이 아이를 대신해서 의사 양반의 마차에 물을 들어다  수 있겠나?"
"그거야 물론. 응? 너는."

그는 아까 장난기 많은 소년을 잡아 주었던 특이한 사내였던 것이다. 그들이 서로를 아는 듯하자 낌새를 눈치챈 듯 노인은 턱을 쓰다듬으며.

"혹시 이미 만났던 겐가?"
"아, 예. 오는 길에 말썽꾸러기 녀석의 장난에 당하는  보여서 도와주느라 조금."


노인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어셔에게 말했다.


"너희도 그냥 이곳을 헤매던 건 아닐 테고 물통이 있다면 물을 조금 나눠주마."
"단주님?!"


어디서 그를 말리려는 듯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처럼 소리를 높이진 않았어도 놀란 눈치였는데. 그는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그에게 눈짓했다. 이 노인이  이렇게 친절하게 구는지 조금은 의문을 품으면서도 어셔는 말에게 다가갔다. 말이 짊어지고 있는 가방에서 가죽 물병들을 꺼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물병을 꺼내어 노인에게 다가가면 사람들이 그를 보다 더 놀란 모습으로 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혹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고라도 쳤냐는 뜻을 담아 말을 바라보면 말은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저을 뿐이니 알 수가 없었다.

"이제 그만 제 몫의 물을 챙겨서 돌아가 밤을 준비하는 게 어떻겠나? 슬슬 해가 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네."


 노인의 말을 끝으로 다른 사람들도 하나  물을 받기 시작했고. 어셔는 그가 붙여준 사내와 함께 벨카가 있을 마차로 향하는 길. 노인의 말대로 태양은 황야의 너머로 일렁이는 아지랑이와 함께 저물어가고 있었고 불규칙하게 모래가 쌓인 황야에는 그림자가 생겨 듬성듬성 구멍이  것처럼 보였다.  광경은 그가 이곳에서 가장 적응이 안 되는 모습 중에 하나였다. 숲이라면 이미 해가 저물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저물고 있어도 아직 밝은 태양이 이 땅을 비추고 있었다.


"너는  이상한 아이구나."


그 광경을 바라보며 걷고 있으니 어셔와 나란히 양동이를 들고 가던 사내가 말했다.

"지금 시비 거는 거예요?"

그에 발끈 한 그가 노려보자 그는 기겁하며 손을 내저었다.


"어이쿠, 나도  발 차기는 사양이다."


사내는 그 또래의 아이들을 상대하는 것이 익숙한 것처럼 보였고 어셔는 저도 모르게 그와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다가 의사가 있던 마차에 도착해 있었다.

"어? 마차 문이 왜 닫혀있지?"
"천막도 다 안 쳤네."

이상한  분명 그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열려있던 마차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그가 치고 있던 천막도 치다가 만  같았다.


"뚜르스! 천막도 안 치고 뭐하고 있어!"


양동이를 땅에 내려둔 사내는 쿵쿵 마차 문을 두드렸고 그 순간. 마차 안에서 우당탕탕! 요란한 소리가 들리며 작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것 같았다.

"의사 아저씨, 원래 저래요?"
"어, 좀 어리바리하긴 하지만 실력은 믿을만해."
"으헤엑!"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차의 문이 벌컥 열리며 의사 아저씨가 굴러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어셔가 말없이 사내를 쳐다보자. 그는 작게 속삭였다.

"아마도."

참으로 믿음이 가지 않는 대답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