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방랑자들.
"숲 밖이 이런 곳이라면 탈만한 걸 준비해 둘 걸."
원래 이곳으로 오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으니 탈것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었지만 그들이 이 광활한 대지를 과연 맨몸으로 걸어갈 수 있을지 고민할 때였다.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뭐?"
미리 탈것이라도 준비해 놓았던 것일까? 소녀가 숲을 바라보자. 그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러자 수풀이 몇 번 움찔거리며 소리를 내더니. 튀어나오는 하얀 그림자의 모습에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야! 네가 왜 여기에 있어!"
-히히히힝!
그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머리에 뿔이 달린 것 빼고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하얀 말이었다.
"아까부터 쫓아오던걸."
"아, 진짜! 이걸 돌아가라고 할 수도 없고."
어셔는 두통이 오는 것 같아 관자놀이를 짚었다. 일단 확실하게 타고 갈 것이 생긴 것은 좋았지만. 탈것도 탈것 나름이다.
-히이이힝!
"저기 나에게 이러면 곤란해."
보아라 지금도 벨카에게 제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고 말하는 것처럼 머리를 들이대고 있지 않은가? 소녀가 말을 밀어내며 도와달라는 듯 그를 바라보는 모습에 기분이 약간 풀렸지만 어쨌든 말이 짜증 나는 것은 짜증 나는 것이었다.
"벨카한테 들이대지 마!"
-히이이이이잉!!!!
숲과 황야의 경계에서 말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어셔는 갑자기 동행하게 된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숲 밖의 광경을 보고도 말을 내버려 두고 가자며 억지를 부릴 만큼 생각이 없지는 않았으니까. 저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를 제대로 된 목적지도 알지 못하는 그들이 맨몸으로 헤매고 다니는 건 무모한 일이라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저 말이 생긴 것과는 다르게 여자를 밝힌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참을 건 참아야 했다. 말을 타고 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이 뿔은 대체 어디에 써먹어야 할지 모르겠네."
결국 말을 타고 황야를 나아가는 길. 본디 말의 머리에 있었을 뿔은 현재 그의 손 위에 있었다. 원래는 말이 벨카에게 주려던 것처럼 머리를 들이밀었던 것이지만 곤란해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가 참지 못하고 가로채듯이 말의 뿔을 잡았다가 우연찮게 뽑아들게 된 것이었다. 그 순간 말이 무척이나 억울하다는 듯 울부짖는 광경이란. 혹시 말이 잘 못 된 게 아닌가 싶어서 벨카를 보았었지만.
"괜찮아. 그걸 주겠다는 건 자신의 등을 허락하겠다는 표시 같은 거니까."
그 말이 사실이었는지 이후로 말은 제법 고분고분 해져서 지금 소녀와 함께 타고 가는 길이었다. 말의 뿔은 정말로 말의 것이 맞는지 의문일 정도로 이상한 감촉이었다. 돌 같기도 하고 호수의 바닥에서 잡아 보았던 조개껍데기의 감촉과도 비슷한 단단한 느낌. 말의 일부라기보다는 전혀 다른 생물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그것도 잠시, 내리쬐는 따가운 햇빛에 그는 구경하던 뿔을 가방에 넣었다.
"윽, 더워."
숲을 나선 그들이 가장 먼저 직면했던 문제는 가감 없이 내리쬐는 햇볕이었다. 숲속에서 지낼 때는 나무가 많아 더운 일이 거의 없었는데 변변찮은 나무 하나 자라나지 않은 주홍빛 황야는 어셔에게 너무 더웠다. 때문에 그는 햇빛을 직접 맞는 것을 피하고자 하얀 웃옷 하나를 두 쪽으로 나누어 만든 천으로 머리와 얼굴을 덮고 있었다. 그 옷은 다른 옷들을 동굴에 두고 온 바람에 한 장만 남아 있던 옷이었다. 땀에 젖어 달라붙는 것이 불쾌해 벗어버리고 싶어도 그럴 수는 없었다.
직접 내리쬐는 태양빛만이 문제가 아니라 땅에서도 열기가 올라왔으니 말이다. 바람이라도 불었으면 좋겠는데 이곳은 어떻게 된 건지 바람도 잘 불지 않는다.
"벨카도 마실래?"
말에게 짊어지운 가방에서 가죽 물통을 꺼내 마시며 벨카에게 물어보면, 말없이 고개만 젓는 소녀가 보였다. 이렇게나 더운데 정말로 괜찮은가 싶었지만 가면과 베일을 쓰고 있는 그녀의 목 아래로 땀방울 하나 흐르지 않는 것이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어쩐지 말수도 적어졌고 힘이 없는 듯 그의 등에 기대어 있는 일이 많았지만 소녀는 숲을 나온 이후부터 계속 이런 상태였다. 혹시 숲을 나온 것 때문에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지 고민해 보았지만 지금으로선 해결할 방법도 보이지 않아 그의 걱정만 늘어갔다.
그러다 눈에 띄게 지친 기색으로 말이 숨을 헐떡이는 것이 보여 그들은 잠시 길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뜨거운 햇빛을 막아줄 것이라곤 그가 가져온 가방밖에 없었고 그늘에 들어가려면 가방에 바짝 붙어있어야 했다. 그들은 숲 밖으로 나온 뒤. 말을 천천히 타고 가면서 말이 지칠 때면 이렇게 휴식을 취하고 충분히 쉬고 나면 다시 천천히 오래 걷기를 반복했다. 때문에 그들이 마시는 물보다 말이 마신 물의 양이 더 많은 것 같았지만 직접 움직이는 건 말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말을 지지대 삼아 세워둔 가방에 기대어 앉으며 끝없이 이어진 황야를 보았다.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희미하게 남은 길을 따라 가고는 있었지만 말을 타고 몇 시간이 지났는데. 여전히 보이는 것이라고는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진 황야뿐이었다. 말을 타지 않고 그들끼리 걸어갔다면 많이 걷지도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겠지.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푸르릉!
"이 녀석은 왜 이렇게 땀이 많은 거야."
분명 말은 체력이 좋은 것으로 아는데 땀을 너무 많이 흘린 탓에 털이 푹 젖어 어째 붙잡고 다니는 것이 영 찝찝했다.
"그건 이 아이도 어쩔 수 없을 거야."
소녀가 쓰고 있던 가면을 벗으며 말했다. 하긴 원래 숲에서 살던 동물이었을 텐데 이런 사막에서는 어쩔 수 없으리라. 그래도 말이 좀 쉬었다 싶으면 타고 가기를 얼마간.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던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강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해 마저 슬슬 저물어 가는 모습에 그들은 결국 이 드넓은 황야의 한 가운데에서 잠을 자고 가기로 했다. 다행히 해가 완전히 저물면서 바람은 잦아들었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번엔 왜 이렇게 추워!?"
밤의 황야는 상당히, 아니 정말로 추웠다. 낮에 그렇게 더웠던 것이 정말이었나 싶을 정도에 덜덜 떨고 있으니 가방 속에서 담요 두 장을 꺼내든 소녀가 그에게 손짓했다. 담요 한 장은 어쩔 수 없이 말에게 덮어주었지만 그들이 딱 붙어있으니 담요 한 장만으로도 충분했다. 말은 많이 지쳐 있었는지 금방 잠이 들었다. 약간 의문스러운 점이 있었다면.
"난 담요를 넣은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사실 여행을 하다 보면 노숙을 할 일이 많다는 모험가의 말에 담요를 챙겨두긴 했었다. 그러나 이전에 마을을 빠져나올 때 가방의 크기가 너무 커서 정말로 필요할 거라 생각했던 물건들을 제외하면 전부 빼내버렸던 터라 지금은 없었어야 할 물건이었다.
"숲의 아이들에게 부탁했더니 가져다주던걸."
"그 늑대들?"
벨카가 말하는 아이의 기준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라 뭐라 콕 집어 말하긴 그랬지만 지금 생각나는 건 숲을 빠져나오기 전에 만났던 늑대들밖에 없었다. 이제 보니 살짝 쿰쿰한 냄새가 나는 이 담요는 그들이 늑대들의 동굴 속에서 잘 때 썼던 이름 모를 동물의 가죽이었다. 얇기는 해도 동물의 가죽을 덮고 있으면 추위를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소녀와 함께 담요를 돌돌 말고 있으면 말랑거리는 그녀의 몸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런 모래먼지로 가득한 황야 속에서도 소녀의 향기만큼은 뚜렷하게 그의 코를 자극했다. 생각해보니 어제는 인어들에게 쥐여짜이는 바람에 벨카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애매한 곳에서 멈췄던가?
"아읏?!"
마침 그와 밀착되어 있는 소녀의 몸에 손을 올리자 그녀의 자그마한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에게 등을 딱 붙이고 있어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지도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는 그녀의 몸 위를 타고 어셔는 손을 움직였다. 담요에 둘러싸여 보이진 않았지만 그의 오른손은 이미 소녀의 작은 가슴을 하나를 붙잡았다. 다른 손 또한 그녀의 치마를 걷어 올려 속옷 속에 감춰진 은밀한 균열을 그러쥐듯 붙잡아 제 손가락을 균열 속에 밀어 넣었다.
"흐으읏!"
둘둘 말고 있는 담요가 풀어져 찬 바람이 들어올까 크게 움직이지 못하지만 그 제한된 움직임이 그를 더 흥분하게 만들었다. 옷 너머로 소녀의 엉덩이 골 사이에 제 물건이 끼워진 것이 느껴진다. 그녀가 제 물건이 어떤 상태인지 알려주고 싶어 그곳에 힘을 주면.
"우으으."
그들을 비추는 달빛에 붉어진 소녀의 귀가 보였다. 장난을 치듯 그녀의 엉덩이 골 사이에 끼워진 제 물건을 위아래로 움직여 문지르면 흠칫흠칫 몸을 떠는 벨카. 소녀를 안달 나게 하고 싶은 마음에 그녀의 가슴을 부드럽게 문지르고 그녀의 균열을 쑤시며 그 행위를 반복했다. 정작 그런 일을 하는 스스로가 안달이 날 정도로. 소녀의 균열이 축축하게 젖다 못해 속옷과 치마마저 적실 때쯤. 잘못하면 그녀의 안쪽에 물건을 넣기도 전에 정을 토해낼 것 같았을 때. 그의 품에 가둬져 있던 벨카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흐에, 어셔어... 이제, 후아, 그만."
그리고 볼 수 있었던 건 직접 핥아주고 싶을 만큼 달콤하게 녹아내린 소녀의 얼굴이었다.
"흐읏! 아으"
그의 품 속에서 잔뜩 달아오른 소녀가 쾌락으로 신음했다. 그녀는 그와 담요에 꽁꽁 싸여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딱히 저항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소녀가 제게 안겨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커다란 애벌레가 기어가듯 물건을 움직여서 엉덩이 골을 타고 내려가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끼워 넣었다. 그리고 꿈틀꿈틀 소녀의 허벅지 안쪽의 부드러운 살결을 헤치며 기어가기 시작하는 그의 물건.
"햐읏?!"
그 움직임을 느꼈는지 벨카가 다시 그를 올려다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상기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금빛 속에 작은 부끄러움과 기대감이 맴돈다. 그런 소녀의 기대에 대답하듯 어셔는 물건을 더욱 부지런히 움직였다. 결국 물건의 끄트머리가 푹 젖어 끈적한 꿀물을 흘리는 소녀의 균열에 닿았다. 그리고는 원래부터 제 집이었다는 듯 균열을 제 머리로 직접 열어젖히며 찔꺽찔꺽 파고드는 자지에 그녀의 신음이 더욱 커졌다.
"응으읏! 흐아."
끈적한 균열은 자지의 움직임에 입구를 열어 방문을 허락했다. 끄트머리가 소녀의 구멍에 들어갔지만 고작 머리가 들어갔을 뿐이다. 욕심 많은 육욕이 그것만으로 만족할 리가 없었다. 깊이 더욱 깊이 안쪽으로 파고드는 그의 물건. 조금이라도 더 소녀의 따스함을 만끽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소녀의 안쪽을 느끼기 위해 그는 자지를 꾸물꾸물 움직여 소녀의 안을 제 것으로 가득 채웠다.
"하으."
역시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앞뒤로 움직이고 때로는 몸을 비틀기도 하며 편한 자리를 찾았다. 더욱 거칠어진 자지의 움직임에 소녀의 안쪽 살이 거칠게 쓸리는지 이젠 숨을 죽이는 것조차 잊은 벨카가 신음을 한가득 내뱉는다.
"으응! 흣! 아흣!"
살과 살이 계속 쓸리면 아플 법도 하건만 소녀의 안쪽에 가득한 꿀물은 서로에게 그저 쾌락만을 선물했다. 그렇게 자지가 소녀의 몸속에서 태동하기를 얼마간. 곧 정액을 그녀의 안에 가득 쏟아냈다.
"흐우우."
벨카는 배가 부른 것처럼 노곤노곤한 모습으로 그에게 기대었다. 평소였다면 몇 번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황야에서 이미 많은 체력을 썼기 때문일까? 그들은 그렇게 하나가 되어 황야의 한 가운데에서 잠들었다. 다음날, 어셔를 깨운 것은 그의 얼굴을 때리는 모래 먼지였다.
"웁! 퉤퉤! 또 바람이야?"
아무래도 이곳은 낮과 밤이 바뀌는 새벽과 저녁쯤에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드넓은 황야를 오로지 희미한 길의 색만을 쫓아서 다닌 것이 며칠째였다.
"이 지긋지긋한 황야는 언제쯤이면 끝날까."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 이 황야는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대체 언제쯤이면 사람이 살만한 곳에 도착할까? 싶으면서 끝이 없는 황야의 모습은 그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보이는 것이라고는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진 황야뿐이었다. 말을 타지 않고 그들끼리 걸었다면 많이 걷지도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겠지.
"벨카, 우리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
소녀에게선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왜 이런 건 대답해 주지 않는 건데?"
숲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는 생각이 들어도 가방 안에 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식량만큼은 문제가 없었지만 이런 곳에서 물 없이 버틸 수는 없었다.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지만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만큼은 이야기해 주지 않는 벨카가 야속해서 그녀를 보았다. 원래도 말수가 적었던 소녀에게 익숙해져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따라 더욱 덥게 느껴지는 날씨 때문이었을까? 땀에 젖어 자꾸만 달라붙는 천이 불쾌했기 때문일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에게 기대어있는 그녀가 평소보다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될 것을 알았다면 좀 멀더라도 차라리 계획대로 숲 근처의 다른 마을을 거쳐가는 게 훨씬 더 나았을 것이란 생각을 저버릴 수 없어서 더 초조했다. 그래서였다. 처음으로 벨카에게 짜증을 낸 건.
"뭐라도 좀 말해...! 벨카?"
그래서 휙 돌아보았을 뿐인데. 그런 작은 충격에도 밀쳐져 힘없이 넘어가는 소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는 초조한 마음과 피로도 잊고 황급히 그녀를 붙잡았다.
"벨카? 벨카! 정신 차려 봐! 벨카!"
-히이히히힝!
그들을 태우던 말이 놀라 발걸음을 멈추고 걱정스레 바라보는 가운데. 숨소리를 확인해보자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지만 그 숨은 귀를 가까이 대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얕고 불안정했다. 소녀의 어깨를 흔들며 소리쳐봐도 깨어나지 않는 모습에 더욱 커져가는 불안을 느끼며 그녀가 왜 쓰러졌는지를 생각하다가 며칠 사이 벨카가 단 한 번도 물을 요구한 적이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어셔는 그제야 새파래진 얼굴로 물통을 꺼내 그녀의 입에 입구를 대었다.
그는 잠시나마 벨카에게 짜증을 냈던 자신을 질책하며 어떻게든 물을 먹이고자 했지만 얼마 남지 않은 물은 그녀의 입에 들어가지 못하고 허무하게 입가를 흘러내렸다. 설마 이대로 그녀를 잃고 혼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때였다.
-쿠구구구구!
그건 땅이 울리는 소리 같았다. 거대한 무언가들이 떼거지로 움직이며 땅을 박차는 듯한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면 저 멀리에서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마차 행렬이 보였다. 그들이 있는 곳으로 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말을 타고 원래 가던 길을 따라가면 마주칠 법한 거리다. 게다가 그 앞에는.
"부표?"
그는 황야를 헤매다 소녀가 말해주었던 부표라는 것이 그들의 경로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길을 알아보기 힘든 곳이라면 위치를 알려주는 표시가 있을 것이고 그곳은 많은 사람들이 여행 중에 거쳐가는 곳이라 말해주었던 것을 떠올렸다. 하늘에 떠있는 커다란 공 같은 것 아래로 쇠사슬이 이어진듯한 그것이 그녀가 말해주었던 부표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아마 예상대로라면 저 행렬은 저 부표에서 멈출 테니까.
그는 말의 목을 때리듯 두드렸다. 말은 그의 생각을 알아차린 것처럼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말이 걸어 다닐 때도 허리는 아픈 편이었지만 달리기 시작하면서 심하게 흔들리는 탓에 허리가 더욱 아팠다. 어셔는 입술을 꾹 다물어 참고 말의 목 언저리를 붙잡았다. 말의 털은 짧고 매끄러운 편이라 꽉 붙잡지 않으면 떨어질 것 같아 아슬아슬했다. 머리를 덮었던 천으로 그의 허리와 벨카의 허리를 묶어놓은 탓에 따가운 햇빛과 땅에서 올라오는 열이 얼굴을 찔렀지만 꾹 참으며 길을 따라 달렸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건 그들이 따라 걷고 있었던 끊어질 듯 말 듯 희미한 길과는 다르게 그 모양이 뚜렷한 길의 모습이었다. 그 길을 보고 마차들이 달려오던 곳을 보면 그 행렬은 확실하게 이 길을 지날 것 같았다.
"이봐요!!"
그들은 이곳을 향해 오고 있었지만 혹시 그들을 보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지나칠까. 어셔는 말위에 탄 그대로 두 손을 흔들어 이목을 끌었다. 그때 그는 이상한 광경을 보고 말았다. 마차들은 상당히 커다랬다. 멀리서 보아도 크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을 만큼. 그 정도로는 단순하게 마차가 큰 것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 마차를 이끌고 있는 생물이었다. 처음 그 생물을 멀리서 봤을 땐 주황색 바탕에 푸른색으로 얼룩덜룩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마차의 행렬이 가까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그건 그의 착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그 형태만큼은 말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들의 피부는 말처럼 윤기나는 털이 아닌 파충류에 가까운 단단한 비늘로 뒤덮여 있었다. 그나마 드문드문 나있는 털들도 얇은 실같은 털이 아닌 새들의 깃털처럼 뿌리가 굵고 억센 털이다. 마차를 이끄는 그 기괴한 생물의 모습에 그들을 부르는 것도 멈추고 어색하게 굳어있으니. 그들을 발견한 것일까?
맨 앞에서 달리고 있던 마차의 마부가 뒤의 창문을 열고 뭐라 말하는 듯하더니 위로 깃발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그 뒤에서 달리던 마차들도 그 행동을 반복하며 서서히 속도를 낮추었다. 그리고 맨 앞에 있던 마차가 그들의 앞에 도착했을 즘에는 완전히 멈춰 선 후였다.
-쿠르륵! 쿠르륵!
커다란 마차를 이끌던 생물들은 지쳤는지 거친 숨소리를 내었지만 그건 날카롭고 침이 끓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다. 말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모양새만 비슷할 뿐. 거대한 파충류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 크기는 어찌나 큰지 어셔가 말을 타고 있어도 올려다봐야 할 정도다. 그 뒤에 이어지던 마차들도 같은 생물들이 이끌고 있는 모습이었다. 단순한 움직임만으로도 말과 그들을 간단하게 죽여버릴 수 있을 듯한 괴생물의 모습에 어셔가 주춤거리며 혹시 부르면 안 될 이들을 불러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했을 때였다. 끼릭 소리를 내며 커다란 마차의 문이 열린 것은. 그리고 그 문안에서 사다리가 내려오더니 어떤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허어, 이런 곳에 웬 말과 아이들이 있다고 해서 헛것을 본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희끗희끗한 회색 머리카락에 인자한 인상의 노인은 믿기지 않은 사실을 확인한 것처럼 허탈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