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1화 〉고대로부터. (31/220)



〈 31화 〉고대로부터.

때문에 짜증을 내려던 그는 레나의 알몸을 보고 헛숨을 들이켰다.


"나 혼자  움직이겠단 말이야."

원래는 이렇게  쌍둥이의 알몸을 봐도 아무렇지 않았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같이 목욕을 했었는데. 오늘따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작은 가슴과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아 드러난 제 쌍둥이의 균열이 이상할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평소였다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상한 생각이 들어도 거부했을 것이다.


"...어떻게 해도 난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잊고 싶어서 그  수 없는 유혹에 손을 뻗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욕실에 있던 바가지에 물을 푸어 그녀에게 붓는 것이었다. 그의 마음 같아서는 곧바로 제 쌍둥이의 몸을 만져보고 싶었지만 씻긴다는 핑계 정도는 필요할  같았기 때문이다.

"앗, 차가워!"
"조금만 참아."

자신의 쌍둥이의 몸 전체에 물기가 묻도록 바가지를 최대한 천천히 기울여 조금씩 물을 묻혔다. 그들의 엄마가 했던 것처럼 그녀의 머리카락을 피해 몸만을 적시면서. 물을 담은 바가지가 무거워 손이 떨리고 물을 조절하는데 실패하기도 했지만 물을 모두 묻힐  있었다.

"오빠 옷도 젖었어."

조절을 실패해서 그의 옷까지 젖어버렸다는 것은 문제였다. 앞쪽이 완전히 물에 젖어버린 것을 보고 그는 레나처럼 옷을 벗어버렸다. 자신도 씻을 필요가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왠지 그러고 싶다는 기분이 컸다. 알몸이 된 김에 자신의 몸에도 물을 뿌렸지만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없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평소처럼 같이 씻고 있는 것일 뿐인데. 둘이서 알몸으로 있는  상황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그에겐 그보다 커다란 호기심이 있었다.

"그럼, 씻는다?"
"응."

톰은 자신의 속내를 알지도 못하고 그저 몸을 맡기는  쌍둥이의 모습에 죄책감이 들었지만 이내  죄책감도 커져버린 호기심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정말로 아무렇지 않았었는데. 오늘따라 저의 것과 같은 레나의 갈색 머리카락도  아무것도 모르는 검은 눈도 신경이 쓰였다. 그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역시. 그녀의 작은 가슴과 저 아래에 자리 잡은 균열이다. 손을 뻗어 그녀의 가슴에 갖다 대자 부드러운 감각이 있었다. 크기는 그와 비교해도 별 차이는 없지만 어딘가 몽우리 져 있다. 특별할 것도 없는데 대체 무엇이 이렇게 만지고 싶을 정도로 자극하는지  수 없어 계속 만지고 있었을 때였다.


"다른 곳은 안 씻어?"
"마, 맞다."

어느새 피부와 피부가 만나면서 생겨난 미묘한 열기로 그녀의 가슴에서 물기가 사라졌을 때 들려온 레나의 말에 톰은 들킨 건가 싶어 무척 당황했다. 그래도 아닌  부자연스럽지 않게 다시 물을 뿌리고 그녀의 몸을 손으로 닦았다. 그녀의 피부는 부드러웠지만 어쩐지 가슴을 만지고 있을 때만큼의 두근거림은 없었다. 그나마 엉덩이와 다리 즈음을 만질 때는 비슷한 느낌이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만히 있어."
"응."

지금 그가 씻기려 하는 다리 사이의 고간만큼은 특히 자신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어른들에게 혼날 우려가 있는 못된 장난을  때처럼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레나의 배에서 흘러내리도록 다시 물을 뿌리고 그녀의 뒤에서 천천히 또 천천히 기어가듯이 그곳을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톰은 겁이 났다. 대체 자신은 뭘 하고 있는 걸까. 이런 짓을 정말로 해도 되는 걸까? 혹시 엄마가 지금 이 상황을 본다면? 그는 결국 뻗어가던 손을 멈추었다. 현실에서 도망치고자 했던 행동이 무엇이었는지 깨닫자.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깊은 자괴감이었다.


"대충 씻고 나가자."
"왜?"


자신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알지도 못하는 듯 순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모습에 괜히 속이 답답해지는  같았다.

"이럴  그놈들이 오면 어떻게 하려고 빨리 씻고 나가야 해."

그의 말에 잊고 있었던 것이 기억난 듯 레나는 새파래진 얼굴로 재빠르게 몸을 씻었다. 덩달아 몸을 씻은 톰은  제 쌍둥이와 함께 조심스레 자신이 처음 깨어났던 방으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그들이 정말로 처음과 같았던 것은 아니었다. 몸은 마른 헝겊이나 수건으로 닦으면 그만이었지만 그들의 옷은 젖어서 아무리 열심히 짜내 보아도 마를 기미를 보이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알몸으로 방안에 있어야 했다. 엄마가 옷을 말릴 때면 허공에 팽팽하게 늘어선 새끼줄에 널어 놓았던 기억이 있었지만 그들에겐 그럴 힘도 키도 부족했고 밖에는 그런 것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 끔찍한 것들이 돌아다니는데 느긋하게 옷을 널만큼 그들은 담이 크지 않았다. 결국 젖은 옷을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짜내고 방안에 늘어놓는 것이 한계였다.

"아 좀 떨어져."
"싫어! 무섭단 말이야!"


알몸이 된 둘은 함께 이불을 덮고 있었다. 톰은 레나에게 하려 했던 행동 때문에 서로 알몸이라는 것이 부담스러워 떨어지려고 했지만 그녀는 떼를 쓰며 가까이 달라붙었다.

"옷, 언제 마를까?"
"아마 오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에게 착 달라붙어 그대로 느껴지는 맨몸을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그는 레나의 말에 답해주었다. 씻은지 얼마 되지 않아 추웠지만 이불 속에 함께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서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럴게 얼마를 멍하니 있었을까.

"새액새액."
"야, 자냐?"


어느새 잠들었는지 자신을 끌어안고 작게 숨소리를 내는 그녀의 모습에 톰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고 무방비하게 잠든 레나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미안해."

그 행동이 어째서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왠지 그런 행동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듣지도 못할 테지만 조용히 중얼거리듯 사과했다. 여전히 자신과 밀착된 그녀의 몸이 신경 쓰였지만 더 이상 그런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아서 제 쌍둥이를 끌어안은 채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아직도 집 틈으로 스며들어오는 빛은 낮이라 말하고 있었지만 어두운 집안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려니 절로 잠이 쏟아졌다. 레나의 말로는 무척이나 오래 잤다고 했지만 계속 쏟아지는 잠기운에 결국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였다.

-키리리리릭!


문득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온 것은.

"읍!"

그 울음소리는 들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놈들의 울음소리였다. 그 소름 끼치는 소리에 졸음이 달아나 주변을 둘러보면 그나마 낮이라 알려주었던 희미한 빛조차 들지 않는 새카만 암흑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졸고 있는 사이 밤이 찾아온 것이다. 혹시 제 쌍둥이가 당하지는 않았을까 어두운  안에서 더듬어보면 여전히 제 품에 안겨있는 그녀가 느껴졌다. 피곤했던 모양인지 아직도 깨어나지 않았지만 살아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혹시라도 혼자만 남았다면 공포에 목이 졸려 죽었을 지도 모른다. 톰은 그녀가 왜 엄마의 비명소리를 듣고 일어나지 않는 자신을 때려서라도 깨웠었는지 이해했다.

-카가가각!


하지만 공포는 단순히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또 다른 울음소리가 반대편에서 들려온 것이다. 밤이 되어 방 안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키긱.
-키기긱!


놈들의 울음소리가 하나둘 늘어가고 부스럭거리는 소리, 그리고 벽이나 지붕 위를 기어 다니는 듯한 소리까지 들려왔다. 이곳에 숨어만 있는다면 놈들에게 들킬  없다고 생각했던 확신이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두운 방안이 익숙해지자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희미한 빛이 집 틈에서 비치는 것이 보였다. 저건 달빛이었던 같았지만 차라리 그 빛을 눈치채지 않는 편이 차라리 좋았을지도 모른다.  틈으로 스며들어오는 빛들은 놈들이 움직이는 소리를 따라서 전부 깜박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소리로만 들었을 때도 공포스러웠지만 직접 그 공포를 보게 되니 비명소리조차 삼켜져버렸다. 그러다 그 빛의 틈에서 놈들의 눈동자 같은 것과 마주쳤다고 생각한 순간.


-카가가가가가각!


소름 끼치는 놈의 울음소리가 거세졌다. 그건 단순한 동물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아니었다. 마주쳤다고 생각한 순간 느껴지던 짙은 악의가 그것이 웃음소리라 말하고 있었다. 방금 것으로 눈치를 챈 것일까? 쿵쿵 놈들이 집을 부술 듯이 부딪히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어날 법도 하지만 깨어나지 않는 제 쌍둥이에게 도망쳐야 한다고 흔들어 깨우면서도 이 상황을 알지 못하는 것이 조금은 부럽다고 생각했다. 놈들이 집에 부딪히는 소리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이윽고 우지직 소리와 함께 나무판자가 찢겨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카가각!

결국 제 쌍둥이를 깨워 도망치는 것에 실패한 그는 레나를 보호하듯 끌어안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 숨었다. 고작 이불 속에 숨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숨고 숨기고자 노력했다.


-키리릭?


최대한 숨을 죽이고 있을 때. 놈들의 발소리가 옆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울음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미 눈치챘을까? 숨을 쉬는 것도 잊으며 이불 속에 숨어있었을 때.


-카각.

놈들의 따닥거리는 발소리들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놈들은 자신들이 이불 속에 숨어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살았다. 고 생각 했다.


"끄윽!?"


갑작스레 자신의 등을 찌르듯 눌러오는 날카로운 느낌만 아니었다면. 그건 이불을 뚫거나 그의 몸을 뚫을 만큼 뾰족하지도 힘이 실려있지도 않았지만 너무 무거워서 잠깐이나마 방심했던 톰은 고통스러운 소리를  수밖에 없었다. 놈들이 걸어가던 소리가 일제히 멈추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자신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는  알 수 있었다.

-카가가가각!

놈의 울음소리가 두꺼운 이불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려왔다. 제법 두꺼운 이불이지만 그 이불이 전혀 두껍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공포가 다가왔다. 점점  다가오는 소리가 늘어가고 그들을 덮고 있던 이불이 흔들리는 순간.

-쿠웅!


커다란 충격이 몸 전체를 뒤흔들었다. 아니 몸이 흔들리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숨어 바닥에 대고 있던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지진인 걸까?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 지진이 일어난다는 건 이상할 정도로 타이밍이 좋았다. 또한 본의 아니게 귀를 땅에 대고 있었던 톰은 땅이 흔들리기 직전 무언가 커다란 충격이 땅을 후려치는 듯한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큰 의문은 어째서 더 이상 놈들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우응, 무슨 소리야."
"이제 일어났냐."

땅이 흔들리는 소리는 제 쌍둥이도 깨워버린 듯했다.

"그보다 우리 왜 이불을  덮고 있어?"
"야, 잠깐만!"


하지만 차라리 자고 있는 편이 나았다. 레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불을 거리낌 없이 들어버렸으니까. 톰은 놈들이 달려들 것이라 생각해 눈을 감았지만, 들려오는 것은 그녀의 이상하다는 목소리뿐이었다.

"여기, 어디야? 우리 언제 이런데 와있었어?"
"그게 무슨..."

헛소리냐고 물으려던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뒤늦게 투둑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와 그곳을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막대기 같은 것들이 우뚝 서있다 쓰러졌으니까. 하지만 그는  막대기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저건 그놈들의 다리였다.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놈들은 저 다리의 일부만을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가? 의문이 들었을 때. 다시 제 쌍둥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앗! 저기 사람이다! 도와달라고 하자!"
"뭐?"

레나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어 그녀가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았을 때. 톰은 제 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한기를 느꼈다. 그것은 인간의 그림자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걷고 있었다. 그것은 거대했다. 그것은 하나의 철이었다. 멀리서 보았을 뿐인데 마치 세상에서 하나뿐인 천적을 마주한듯한 기분이었다. 그놈들을 보았을 때도 이 정도로 공포스럽지는 않았다. 톰은 황급히 그것을 향해 뛰어가려는 제 쌍둥이를 붙잡았다.


"앗! 아프잖아! 왜 말리는 거야?!"
"가면 안 돼!!"
"왜 안 되는데?"
"보면 모르겠어?! 저건 사람 같은 게 아니야!"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건 인간의 형상을 하되 인간이 아니었다. 스스로 움직이고 있음에도 생명이란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저것은 그저 무기질적인 철과도 같았다.

"그럼 사람이 아니면 뭔데."
"...나도 몰라."

그도 뭐라고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런 것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으니까. 단지 확신할 수 있는 건 결코 그들에게 호의적인 존재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찌어찌 그의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레나는 더 이상 그것에게 다가가고자 하지 않았다. 톰은 그런 그녀를 데리고 다시 이불 속으로 숨었다. 그녀가 답답하다며 칭얼거렸지만 지금은 저것에게 자신들이 들키지 않았기를 비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긴장감 속에서 숨을 죽이며 밤을 보내었다. 그러다 그는 으슬으슬 몸이 떨리는 감각에 눈을 떴다. 숨어있다가 잠이 들어버렸던 것인지 어두웠던 이불 사이로 햇빛이 새어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침, 인가?"


그것이 그들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긴장을 놓지 않고 이불의 틈새로 밖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런 모습으로는 근처의 땅만 보일 뿐이라 이불을 들어 틈새를 넓히면 잠기운에 잠겨있는 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으으, 추워."
"야! 이불을  가져가면 어떻게 해!"


그러면서 같이 덮고 있던 이불을 다 가져간 그녀 때문에 톰은 알몸으로 밖에 그대로 노출되고 말았다. 그런 것이 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리치는 것도 멈추고 주변을 살피면 다행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게 뭐야."

톰은 허망하게 검은 황무지를 바라보았다. 어제는 이상한 벌레들과  사람과 비슷한 것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그가 본 곳에는  이상 마을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마을을 감싸고 있는 푸른 숲만이 평소처럼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 우리가 살던 마을 맞는 거지?"

그에게 깨워진 레나는 아직 잠기운을 떨치지 못한 듯 눈을 비비며 물었다.

"아마도 그럴걸."

누군가 그들을 옮기지도 않았을 텐데 하룻밤 정도 잠들었다고 위치가 바뀌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럼 마을 사람들이랑 집은 다 어디 간 거야?"

톰은 레나의 말에 뭐라 할 수 없었다. 거대한 곤충들과 그것이 사라졌다는 걸 확인하고 원래 마을이 있던 곳으로 내려와 둘러보고 있었지만 어디를 봐도 사람을 찾을 수는 없었으니까. 기껏해야 집터가 간신히 남아있는 수준이었고 대부분은 터조차 남지 않고 사라져버렸으니. 간신히 남은, 어느 집의 벽이었던 벽돌들을 살펴보면 비스듬히 절단된 것처럼 보이는데 그 단면이 물의 표면처럼 다른 것의 모습을 반사할 정도로 너무 깨끗했다. 마치 원래부터 하나의 돌이었던 것처럼. 그것이 대체 무슨 마법 같은 것을 사용했기에 이렇게 깔끔하게 집들이 사라진 것인지 알  없었다.


남아있는 것이라곤  안 되는 집의 밑 부분과 마을이었던 곳을 새카맣게 뒤덮은 재 가루뿐이다. 톰과 레나는 혹시라도 있을 마을 사람을 찾고자 그나마 멀쩡한 곳들을 위주로 돌아다니며 집이었던 곳들을 뒤져보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 봐도 원래부터 이곳이 사람이 살았던 곳이 맞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엊그제만 해도 분명 친절한 이웃 사람들과 엄마와 함께 지냈던 마을이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물건과 집까지 모두 깔끔하게 사라졌다면 이곳이 다른 곳이라 생각이라도 해봤을 텐데.


"여긴,  아저씨네 집인가?"

톰은 물건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던 건지 유독 물건이 많이 남은 집의 물건들을 뒤져보다가  나뭇조각에 써져 있는 이름을 발견하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웬 여자애 옷들이 이렇게..."


맥 아저씨에게 딸이 있었던가 싶으면서도 나중에 레나가 입으면  것이라 생각해 챙기고 있으면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오빠!!"
"어! 왜?!"


혹시 그것들이 남아있나 싶어 섬찟했지만 그리 다급한 목소리는 아니었기에 안심했다. 오히려 기뻐하는 것 같은 목소리에 멀쩡해 보이는 물건들을 챙기며 대충 대답했다. 그들은 이제 알몸은 아니었다. 어제 빨아두었던 옷들이 그새 말라서 입을 수 있었으니. 재 가루 같은 것에 파묻혀 있었던 탓에 회색 옷을 입은 것 같은 모습이 되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오빠! 여기 봐!"

그가 물건을 챙기는 사이 레나의 목소리가 바로 뒤까지 다가와 있었다. 대체 뭐길래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이 어디 갔냐 물으며 칭얼대던 녀석이 이렇게 기뻐하는가 싶어 돌아보면. 회색 떡 같은 것을 들고 있는 제 쌍둥이가 보였다. 그게 뭐길래 그렇게 기쁘냐 물으려던 순간. 떡이 그를 향해 짖었다.

-깡! 캐흥! 깡!
"...강아지?"

 가루를 뒤집어쓴 탓에 재채기를 하며 앙증맞게 짖고 있는 그건 강아지가 분명했다. 이제 보니  가루를 뒤집어써서 회색으로 보였던 것이지 손으로 털어 보니 하얀 털이  드러났다.

"얘는 어디서 찾은 거야?"
"저~기!"


이런 난리  속에서도 잘도 숨어있었다고 생각하며 물으니 그녀가 가리킨 곳은 다른 집 터였다.

"다른 애는 없었어?"
"응,  혼자 끙끙대고 있었어."


저긴 사냥개를 키우던 사냥꾼의 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이 강아지는 사냥꾼이 키우던 개의 새끼이리라. 그러다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얘, 데리고 가자!"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하아, 그래. 데리고 가지 뭐."

그래도 딱히 거부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가루를 뒤집어쓴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고 이대로 내버려 두면 죽을 것이 뻔했으니까. 그는 강아지를  껴안고 있는 레나를 데리고 걸었다.

"그런데 우리 어디로 가?"
"일단 다른 마을을 찾아보자. 어쩔 수 없잖아."


이곳에 사람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톰도 엄마가 어떻게 되었는지  수 없어 불안했지만 그에겐 아직 쌍둥이가 남아있었다. 살길을 찾는 것이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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