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고대로부터.
커너는 턱 끝까지 차오른 숨과 공포에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달리는 걸 멈출 수 없었다.
-까가가가각!
그야 잠시라도 달리는 것을 멈춘다면 저 거대한 벌레와도 같은 몬스터에게 산 채로 잡아먹힐 테니까. 이런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장점이 있었다면 몬스터들이 쳐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몬스터들이 마을을 둘러싼 숲에 들어오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라고 들었었다. 숲 근처의 다른 마을들이 가끔 몬스터들에게 습격 받아 많은 피해를 입거나 궤멸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것에 비해 이곳이 단 한 번도 몬스터에게 습격을 받는 일이 없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꼭 틀린 말도 아니었을 텐데.
그런데 대체 어째서. 하필이면 오늘, 단 한 번도 습격해온 적이 없었던 몬스터가 이곳에 쳐들어왔단 말인가? 오늘도 다른 날과 그리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특별한 점이 있었다면 며칠간 마스카피르가 열리고 있었다는 것이지만 그런 축제, 이 마을에서 오래전부터 열리던 것이라 들었기에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고 싶어도 지금은 머릿속을 가득 채운 달려야만 한다는 직감에 따라 계속 달리느라 여유 따위는 없었다. 결국 숨을 쉬는 것에 한계가 찾아왔을 때.
"야! 야! 좀 멈춰보라고!"
정신없이 달리던 커너는 뒤에서 들려오는 제 친구의 목소리를 겨우 알아듣고 달리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헉헉 지친 숨을 내쉬며 돌아보니 그처럼 숨을 고르는 로버트가 보였다.
"왜?! 더 멀리 도망쳐야...!"
"아까부터 그것들 소리가 안 들린다고 몇 번을 말했잖아!"
"어? 그, 그래?"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그것들의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어떻게든 그것들을 따돌린 모양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후에야 커너는 근처에 있던 나무뿌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로버트도 그의 옆에 따라 주저앉았다. 마을 밖의 커다란 숲처럼 커다란 나무는 그들이 나란히 줄기에 기대어 앉아도 넉넉했다.
"...그러고 보니 마을 밖이네."
몬스터들로부터 도망치다 보니 마을을 벗어나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그것도 마을이 있어야 신경 쓸 일이지."
본의 아니게 규칙을 어겨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로버트의 우울한 타박이 돌아왔다. 그래, 규칙을 어겼다는 걱정도 그 규칙이 있는 마을이 있을 때에야 신경 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다 떠오르는 건 최근 들어 소원해진 또 다른 친구의 이름이다.
"어셔는 어떻게 됐을까?"
"몰라 그런 녀석."
로버트는 아직도 그에게 삐져있는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를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 그들은 어셔가 그들에게 거리를 두는 제대로 된 이유조차 듣지 못했으니까.
"그보다 지금 남 걱정이 되냐? 우리 가족은커녕 우리 목숨부터 걱정해야 할 판인데."
그는 그런 로버트의 말에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할 말이 없었다. 그들이 돌아가야 할 마을은 몬스터들에게 점령되어버렸고 숲 밖의 다른 마을로 가기엔 이미 길을 잃고 말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은 공포와 피로로 지쳐버린 몸을 쉬게 하고자 서로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을 때였다. 로버트가 먼저 입을 연 것은.
"야, 그런데 여기 어디서 본 거 같지 않냐?"
"어른들 따라서 나무 캘 때 자주 나왔으니까. 당연하겠지."
처음에는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다. 밤의 숲이라 다른 느낌이지만 결국엔 같은 숲이다. 익숙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다.
"아씨! 그게 아니라! 우리 옛날에 어른들 몰래 마을 밖에 나왔을 때 말이야!"
그에 좀 더 숲을 자세히 살펴보니 확실히 어딘가 낯이 익었다. 오래된 숲은 나무를 한 번 캐지 않는 이상 변화하는 일이 없어서 예전에 딱 한 번 보았던 그곳의 모습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설마."
사실 그들은 7년 전쯤에 나무를 캐는 일이 아니라면 마을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규칙을 어겼던 적이 있었다. 자세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마을을 나간 적이 있었다. 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보면 아마 왜 그런 규칙이 있는지 또 마을 밖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작 숲은 어디를 가도 거기서 거기라 구분하기 힘들었지만 그때는 숲의 모든 게 그저 신기하기만 해서 뛰어놀았다. 그러다 커너는 무언가에 발이 걸려 넘어졌었다.
"악!"
처음에는 단순히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지상으로 삐져나올 만큼 울퉁불퉁하고 커다란 나무의 뿌리는 정신없이 놀다 보면 자주 걸리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무언가 다른 느낌에 돌아보았을 때. 그곳에 있었던 건 나무의 뿌리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거, 손인가?"
"무슨 손? 손이 왜 땅에 있는데?"
커너와 로버트는 그것을 발견한 순간 호기심을 느꼈다. 그것은 땅에 파묻혀 일부만이 땅 위로 올라와 있었는데. 살짝 만져보면 재질을 알 수 없는 단단한 것으로 되어있었다. 확실히 사람의 손이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 모양은 분명히 사람의 손이었다.
"한 번 파보자!"
"하지만."
커너는 이걸 과연 파도 괜찮을까 싶었지만 이미 로버트가 땅을 파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도와야 했다. 아이들의 연약한 손으로 직접 땅을 파내기에는 숲의 땅이 너무 단단했기 때문에 근처에 있던 적당한 짱돌을 주워 긁어내듯이 파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손의 아랫부분은 상당히 깊이 파묻혀 있어서 상당한 중노동이 되었지만 그들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땅을 파는 것에 집중했다. 고작 땅을 파는 것이 뭔가 싶지만,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정말 재미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무 틈 사이로 새어들어오던 햇빛의 세기가 점점 줄어들고 색마저도 붉게 변했을 때.
""....""
땅을 파내어 손의 전체적인 모습을 확인한 그들은 누구도 쉽사리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것의 전체적인 모습과 크기는 사람과 같았다. 그러나 다르다. 대략적인 모습은 인간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인간이라 부를만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것의 몸체는 지상에 일부나마 드러나 있었던 손처럼 단단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철 같지만 분명 철은 아니었다. 철이었다면 녹이 쓸어있었을 텐데 녹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만져보면 모난 부분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매끈했으니까.
"갑옷인가?"
로버트가 중얼거렸지만 커너는 속으로 그의 말을 바로 부정했다. 갑옷이라면 사람이 입을 수 있게 만들어진 물건이 분명한데 그 물건은 사람이 입을 만한 구조가 아니었고 두드려보면 속도 알 수 없는 것으로 꽉 차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같이 들어서 옮겨보려 했지만 너무나 무거워 꿈쩍도 하지 않았었다. 무엇보다도 아직도 생각나는 그 위압감. 텅 빈 갑옷이라고 주장하기엔 그것을 찾아낸 그들에게 너무나 큰 위압감을 주었다. 마치 거대한 포식자를 마주한 것처럼. 그렇게 한참을 침묵하며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그것에 압도당해 있던 그들은. 시간이 늦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을로 돌아가야 했다.
"그거 다시 묻어야 하지 않을까?"
"그럼 나중에 돌아가서 묻어놓자."
그래도 찝찝한 마음에 다음에 다시 묻어두기로 약속했었지만 그들은 다시는 그것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마을 밖에 나간 사실을 어른들이 알아채고 커너와 로버트는 각자의 부모님에게 각목으로 흠씬 두들겨 맞았으니까. 또한 그날, 그들처럼 마을을 나갔었다는 동네 누나가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는 일이 있었던 탓에 그들은 다시는 마을 밖으로 나갈 생각을 못 했다. 땅에서 파내었던 그것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그거 아직도 있을까? 한 번 확인..."
그러나 로버트의 말은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위에서 투둑 무언가 떨어져내렸으니까. 쭈뼛, 소름이 돋았다. 끈적하고 투명한 그것은 분명 몬스터의 침이다. 그것을 알 수 있었던 건.
-키르르르르륵!
그들의 위에서 들려오는 벌레의 울음소리 때문이었다. 녹이 쓴 문고리처럼 삐걱대는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아니나 다를까? 그들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는 거대한 곤충이 있었다. 그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조차 잊었을 때. 그 일은 갑자기 일어났다. 푸슈슉! 바람 소리 같은 것이 정확히 세 번, 연달아 들려왔다.
-키기기긱!!!
그와 동시에 기분 나쁜 갈색 피를 흩뿌리며 아래로 떨어지는 곤충. 바로 아래에 있던 그들은 깜짝 놀라 떨어지는 곤충으로부터 멀어졌다. 하마터면 거대한 곤충에 깔릴 뻔한 그들이 발견한 건 그것의 머리에 하나, 가슴에 둘, 깔끔하게 뚫려있는 세 개의 구멍이었다. 곤충은 작게 경련하다 움직임을 멈추었다. 마을을 유린하던 몬스터 중 한 마리가 한순간에 절명한 것이다. 커너와 로버트가 어안이 벙벙해 몬스터의 시체를 바라만 보고 있으면 바로 앞에서 퉁퉁 무언가 걸어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자신들을 도운 것이라 생각한 그들이 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았으나 그것은 구원자가 아니요.
"어?"
커너는 멍하니 자신의 볼에 튄 뜨뜻한 무언가를 손으로 닦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그것은 쇳내를 풍겼다. 그것이 튄 곳을 바라보면 로버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아래를 보아야 쓰러진 그의 모습이 보였다. 머리에 하나, 가슴에 둘. 손이 덜덜 떨려왔다. 다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을 때 보인 건 7년 전, 그날 보았던 그것이 붉은 안광을 빛내는 모습이었다. 불꽃이 고리를 그렸다. 그 순간이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톰은 잠에서 깨어나면 언제나 똑같은 하루가 계속될 것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어딘가 어색하고 깨진 그릇을 끼워 맞춘 듯 불안정한 느낌이 드는 마을이었지만 그 불안 속에서도 마을은 평화로웠고 자신의 얄미운 쌍둥이 동생과 투닥거리는 하루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이다.
"아아악!!"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잠결에 들었던 그는 그것이 처음에 꿈이라 생각했다. 그는 지금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기에 너무 피곤하고 조금 깨어났던 정신도 금세 졸음에 파묻히려 했으니까.
"오빠! 오빠!"
그때 그의 쌍둥이 동생 레나의 목소리가 들려와 그의 정신을 붙잡았다. 평소에는 오빠라고 부르기는커녕 그런 취급도 안 해주던 쌍둥이 동생이 그렇게 부르는 것에 조금 의아함을 느꼈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졸음을 쫓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졸음은 그 목소리조차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만들어버린 것이다.
"제발 좀 일어나 봐! 좀!"
이젠 부르는 것만으로 모자라서 두 손으로 그를 퍽퍽 정말로 있는 힘껏 치는 탓에 강제로 깨어난 그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
"아, 진짜, 왜 깨우는 건데."
그렇게 깨어난 톰이 바라본 방은 여전히 어둠으로 가득해서 밤이라고 생각했다. 어째선지 자꾸만 그를 의식 밖으로 끌어내리려는 잠기운과 축축 늘어지는 몸 때문에 정말로 깨어나기 싫었지만 평소라면 계속 잠들어 있었을 시간이니 그러려니 하는 생각이었다.
"대체 얼마나 자고 있는 건데! 정말로 죽은 줄 알았잖아! 흐엉!"
그러나 톰은 그녀가 하는 말에 의아함을 느끼고 졸음기를 억지로 몰아낸 톰은 눈두덩을 팔로 비비며 자신의 쌍둥이 동생, 레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당황했다.
"야, 너 우냐?"
방 안은 어두웠지만 어디선가 희미하게 비치는 빛으로 그녀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더욱 당황스러웠던 건. 그녀의 모습이 엉망이라는 것이었다.
"꼴은 또 왜 그 모양인데?"
"흐어엉! 몰라! 왜 이제 일어난 거야!"
레나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산발이었고 얼굴은 얼마나 울고 있었는지 퉁퉁 불어있었다. 그제야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걸 깨달은 톰은 아직도 그를 붙잡는 졸음을 떨치며 말했다.
"일단 진정하고. 천천히 말해 봐. 뭐가 어떻게 된 건데?"
"흑, 그게."
레나는 말하는 도중에도 겁을 먹은 듯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주변을 둘러보았고 작은 풀벌레 소리에도 깜짝 놀라는 일이 많아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다. 그래도 간신히 모든 사정을 들을 수 있었던 그는 그녀가 무서운 꿈이라도 꾼 것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까각까각
"흐으윽! 또 왔어! 또 왔다고!"
"뭐야, 저게."
레나가 열심히 설명했던 거대한 곤충의 소리가 들려오고 사방이 나무판자 같은 것으로 막혀있는 집의 틈으로 그것의 모습을 본 톰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것은 거대한 여치처럼 생긴 생물이었다. 갑옷을 입은 듯 두꺼운 껍질을 가진 놈은 그 거대한 덩치로 어기적어기적 느릿하게 기어 다니며 집 주변을 살폈고 톰은 절로 숨을 죽이고 말았다. 집 주변을 놈이 기어 다니는 소리를 얼마나 듣고 있었을까. 놈이 떠날 무렵에 레나는 숨이 넘어갈 듯 긴장한 상태였다.
"가, 갔어?"
"어, 이제 갔어."
"정말이지? 정말로 간 거지?"
"갔다니까! 좀 진정하라고!"
놈이 레나의 소리를 듣고 다시 돌아올까. 신경질적으로 말을 내뱉은 톰은 아차 했지만 딸꾹질을 하면서도 어떻게 숨을 죽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색한 침묵이 집안을 채우고 밖에서 들리는 소리라곤 풀벌레 소리와 바람소리만이 들려와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레나의 말로는 저 밖에는 방금 그들이 보았던 거대한 벌레가 수두룩하다니까. 그 기분은 꼭 착각은 아니리라.
"그 이야기, 다 진짜야?"
먼저 입을 연 것은 바로 그였다. 믿을 수 없었지만 이미 확실하게 그 거대한 곤충의 모습을 본 뒤였다.
"진짜라고, 딸꾹, 몇 번을 말해."
레나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는 너무 충격적이고 이상해서 저 거대한 곤충의 모습을 보기 전까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거대한 곤충들은 한밤중에 갑자기 쳐들어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의 비명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레나와 엄마는 집안으로 들어오려는 놈들을 발견하고 톰을 깨웠다고 한다. 그러나 어째선지 그는 아무리 깨우고 깨워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아서 죽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숨을 쉬고 있어서 엄마가 깨어나지 않는 그를 업고 밖으로 나갔다고. 마을 사람들을 습격하는 놈들의 모습에 그녀들은 어떻게든 안전한 곳을 찾다가 마을의 한구석, 제법 멀리 떨어진 어셔의 집을 떠올리고 왔다고 한다.
"그럼 여기는 형의 집이라는 건데. 어셔 형은?"
밖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집안을 살펴보면 확실히 그들의 집은 아니었다. 판자나 나무 따위로 막아놓은 곳은 엄마가 한 일이겠지만 집안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이불이나 작은 서랍만이 있을 뿐 휑한 모습이었다.
"훌쩍, 몰라. 엄마 말로는 먼저 저것들이 습격한 걸 알고 도망갔을 지도 모른대."
그렇게 말하는 레나는 이미 어셔가 먼저 도망쳐버렸다고 확신한 듯 배신감으로 가득한 표정이었다. 처음에는 밤이라고 생각했지만 빛이 들어오는 틈으로 밖을 살펴보았을 때 지금은 밝은 대낮이었다.
"엄마는?"
"오빠가 깨어나기 전에. 흑, 또 먹을 걸 구하러 가겠다고 했는데."
놈들은 밤에는 활발하게 돌아다니지만 해가 뜬 낮에는 확실하게 굼뜬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그들을 안전한 이곳에 놔두고 낮 시간 동안 최대한 먹을 것과 마실 것, 옷 같은 것들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갔었는데.
"엄마가 비명을 질렀어."
"뭐?"
톰은 자신의 피가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정말로 엄마 목소리였어?"
아까 그 꿈이라고 생각했던 비명소리의 주인이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엄마의 것이었다고? 믿고 싶지 않은 사실에 그가 굳은 얼굴로 레나를 바라보며 물었지만 그녀는 다시 눈물을 흘리며 다른 말을 할 뿐이었다.
"으허엉, 우리 이제 어떡해?"
레나의 그 울음소리가 자신들의 엄마가 죽었다고 대신 말하는 것 같아서 톰은 기운이 쫙 빠져나갔다.
"저것들은 낮에는 활동하지 않는 것 같다며."
"흐윽, 모르겠어. 분명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는데."
방금 그들은 이미 대낮에 집 밖을 어슬렁거리는 놈의 모습을 보았다. 정말로 낮에는 약한 듯 굼뜬 모습이었지만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엄마는 역시. 집안은 다시 침묵으로 가득 차서 레나의 울먹이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러다 문득 톰은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이게 무슨 냄새... 아니, 너 오줌 쌌냐?!"
심지어 손끝에서 미지근한 물기를 느끼고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는 빠르게 알 수 있었다.
"훌쩍, 응."
레나가 오줌을 지린 것이었다. 안 그래도 갑작스럽고 어이없는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이러니 그는 자신의 쌍둥이 동생에게 짜증이 났다. 방은 곤충들의 침입을 막으려던 건지 거의 밀폐되어 있어서 냄새도 잘 안 빠져나갔는데.
"밖에 나가서 싸던가!"
"하지만 나가면 죽을지도 모르잖아! 차라리 안에서 쌀 거야!"
그 말에 톰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잊고 싶었던 사실이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저 오줌 냄새는 이렇게 좁은 곳에서 너무 지독했다. 이불로 닦기엔 잘 때가 문제였고 다른 것으로 닦을 필요가 있었는데. 그의 눈에 띈 것은 여전히 훌쩍이고 있던 레나였다.
"야, 너, 옷 벗어."
"흑, 왜?"
"잔말 말고 벗어 봐!"
처음엔 거부감을 느끼는 듯 톰의 말에 우물쭈물거렸지만 그가 강압적으로 말하자 레나는 옷을 벗었다. 원래는 바지 하나로 닦으려 했지만.
"으엑, 옷에 그대로 싼 거였냐."
"하지만, 훌쩍, 엄마가 비명을 지르는데. 오빠는 깨어나지도 않으니까. 흑, 나 혼자 남을 것 같아서."
그녀의 말에 톰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그녀의 상의까지 벗겨 오줌을 닦아내었다. 그런데도 냄새가 가시질 않자.
"야, 좀 씻고 와. 냄새나잖아!"
"싫어! 밖에는 그것들이 있잖아!"
"이미 갔다고 말했잖아!"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 레나는 결국 몸을 씻기로 했다. 하지만.
"나, 다리가 안 움직여."
"아오."
결국 톰은 그녀를 씻기고자 욕실까지 데려가야 했다. 겸사겸사 오줌을 닦은 옷도 빨고자 들고서 그는 조심스레 방 밖을 살폈다. 놈들이 없다고 말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놈들이 없다는 걸 확인한 톰은 레나를 데리고 재빠르게 이 집의 욕실을 찾았다. 다행히 부엌과 연결된 작은 욕실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데려가니. 커다란 나무 물통에 물이 가득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 이제 씻어. 난 니 옷 빨아야 하니까."
"나, 씻겨줘."
"야, 너 진짜...!"
톰은 지금 자신도 이 상황이 혼란스러운데 떼를 쓰며 억지를 부리는 그녀 때문에 속이 터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