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오래된 전통.
남자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비웃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도망이라도 칠 셈이었나 본데 그 꼴을 보니 차라리 가만히 있는 편이 좋았겠어. 그러면 적어도 푹신푹신한 침대에 누워서 나를 기다릴 수 있었을 텐데."
자세히 보면 소녀를 묶고 있는 건 밧줄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발에는 철로 된 족쇄가 쇠사슬로 침대와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마녀면 마녀답게 마법을 사용했다면 탈출할 수 있었을 텐데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 건가?"
그가 계속 소녀를 조롱했지만 정작 그 대상이 된 소녀가 별다른 반응이 없으니 남자는 재미가 없었다. 그와는 별개로 힘 없이 묶여 있는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은 그의 음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지만 말이다. 투박한 족쇄에 묶인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소녀의 다리를 보고 침을 삼킨 그는 더 이상 소용없는 행동은 그만두기로 했다. 안 그래도 지나치게 뛰어난 소녀의 미색에 하루 종일 참는 것도 고역이었다. 마음 같아선 소녀를 데려오자마자 제 물건을 꽂아 넣고 쾌락에 울부짖게 하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벨카는 그가 범하려 할 때마다 도저히 작은 몸에서 나오는 힘이라 생각할 수 없는 힘으로 그를 밀어내거나 패대기쳤다. 그것도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서. 그 사실에 그는 소녀가 소문으로만 듣던 마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쉬이 손을 댈 수가 없어 골치가 아팠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소녀를 범할 방법을 찾았다. 칼을 대거나 물건을 던지는 둥 여러 가지 실험 과정에서 그가 알아낸 사실이 있다면 소녀가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벨카는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힘들고 고통스러워했고 때문인지 그가 그녀에게 정말로 치명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낸 그는 소녀가 마법을 사용하기엔 치명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선에서 소녀를 건드리며 지치게 만들었다. 발버둥 치는 소녀의 몸을 강제로 만지거나 자신이 자위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 결과물을 소녀에게 뿌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부쳐 하루를 보내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마을의 축제에서 사용하는 연기를 이용해 보기도 했지만 마녀이기 때문인지 그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는 소녀에게 가장 효과적일 방법을 떠올렸다. 지금 소녀를 묶어 놓은 밧줄이나 쇠로 된 투박한 족쇄보다도 훨씬 더 효과적일 족쇄를. 그리고 그 족쇄란.
"자, 이 녀석 보여?"
"...대체 무슨."
바로 그가 데리고 온 어셔였다. 남자의 어깨에 짐짝처럼 메어져 늘어진 그의 모습을 발견한 벨카는 애써 모르는 척했지만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인물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혼란으로 금빛이 흔들리는 것만은 감출 수 없었다. 그것을 예민하게 발견한 그가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욕정과 가학성으로 얼룩진 그 천박한 웃음은 보는 것만으로도 더럽혀지는 듯한 괴로움을 준다. 소녀는 그로부터 고개를 돌리고자 했지만.
"모르는 척하시겠다? 그럼 이 녀석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겠지?"
"!"
그녀가 고개를 억지로 멈춰 세우면 비열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둘러메고 있던 어셔를 근처에 있던 책상 위에 올려놓고 도끼를 들었다. 그 움직임이 의미하는 바는 뻔하다. 소녀를 마음대로 하지 못하니 그를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단순하지만 너무나 잔인하고 서로의 관계가 깊으면 깊을수록 무척 효과적인 방법. 남자는 이 방법이 소녀에게 통할 것이라는 걸 확신했다. 그녀에게서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점점 더 도끼를 높이 들어 올리는 남자의 모습에 입술을 짓씹은 벨카가 목소리를 짜내듯이 입을 열었다.
"...나에게 바라는 게 뭐야."
소녀는 그것이 그의 노림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벨카는 이미 그의 목적을 알고 있었지만, 굳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가 원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인간의 생각과 감정에 예민했고 원치 않아도 그가 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남자가 바라는 것은 지극히 단순했다. 그녀의 굴복.
"무슨 짓을 해도 마법을 사용하지 마. 안 그러면 저 녀석 목숨은 없어."
그것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는 도끼를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소녀에게 다가와 그녀를 묶고 있던 밧줄을 풀어버리더니 입은 옷까지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벗겨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선물 상자의 포장을 푸는 것 같다. 벨카는 남자가 그녀의 옷을 벗기고 있어도 아무런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녀의 나신은 그의 앞에서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오오."
그런 소녀의 모습을 본 남자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붉은색은 주로 정열적인 느낌을 주었던가? 그러나 소녀의 붉은 머리카락은 정열적이라는 감상보다는 처연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감상을 준다. 빛을 잃고 바닥을 바라보는 금색의 눈동자와 때묻지 않은 눈송이 같은 피부는 누구도 건드리지 않은 순결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고 양쪽으로 묶어올린 머리카락에 그대로 드러나있는 하얀 목덜미는 당장이라도 이 소녀를 삼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진작에 규격을 벗어난 미색이라 생각했지만 군더더기 하나 보이지 않는 여린 곡선을 그리는 소녀의 나신을 보니 생각 이상으로 욕정이 치솟았다. 꿀꺽 소리가 크게 날 정도로 목울대를 울리며 그가 소녀의 몸을 더듬자 흠칫 몸을 떨며 물러서다가도 굳어버리는 벨카. 무의식적으로 도망치는 행동을 해버렸지만 이내 의미가 없음을 알고 체념하는 소녀의 모습이 남자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욕망을 더욱 자극했다.
"아윽?!"
그는 그대로 벨카를 붙잡아 오두막의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침대 쪽으로 던져버렸다. 침대에 떨어지긴 했지만 발목에 차인 족쇄는 여전했던 탓에 소녀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그 행동에 관계를 맺을 상대에 대한 배려 따위는 없었다. 그저 사냥감을 가지고 놀며 몰아가는 맹수의 가학적인 행동일 뿐이다. 침대 위에 쓰러진 벨카의 위에 그가 깔아뭉개듯이 올라타고 아직 벗지 않은 남자의 옷 너머로 그와 벨카의 은밀한 부분이 맞닿아 있기 때문일까. 남자의 흥분은 줄어들기는커녕 끝없이 늘어만 가고 있었다.
소녀의 눈꼬리에 매달려있던 눈물을 그가 핥아 음미하듯이 마시지만, 그녀는 남자의 커다란 덩치 아래에 깔려있어 바르작거릴 뿐. 제대로 된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인형처럼 휘둘리고 있었다. 남자는 곧 자신의 앞에 무방비하게 드러난 소녀의 몸을 감상하듯 지켜보다가 탐하기 시작했다. 그의 혀가 작게 솟아오른 소녀의 가슴부터 그 위의 과실을 삼킬 듯이 물고 그녀의 배와 배꼽을 가리지 않고 뱀처럼 기어 다녔다. 그러다 이내 소녀의 가장 은밀한 곳까지 얼굴을 들이미는 그.
"흐흐흐, 최고다! 최고라고!"
"으으읏."
물컹한 것이 소녀의 안쪽을 파고들었다. 결국 남자에게도 아주 살짝 남아있었을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온 것일까. 그는 바지를 벗고 크고 흉물스러운 물건을 소녀의 두 다리를 붙잡고 아랫배 위에 올려놓는다. 벨카는 현실을 실감하지 못한 듯 탁해진 금빛 눈동자로 멍하니 그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가 허리를 살짝 뒤로 물리자 그 물건의 머리가 그녀의 입구에 맞닿았다. 그 짧은 순간도 잠시 그가 허리를 다시 당겨 소녀의 균열을 꿰뚫었다. 저항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미 벨카의 의지와는 다르게 소녀의 은밀한 계곡은 남자에게 잔뜩 희롱당해 축축이 젖어있었으니까.
"아으으윽! 하윽."
"허억! 허억!"
상냥함이라고는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는 삽입에 벨카는 괴로움을 느끼고 비명을 질렀지만, 위에서는 남자의 거친 숨결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심지어는 벨카의 비명이 거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의 입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입안마저 희롱하며 삼키려 들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허리를 움직이는 남자. 소녀의 좁은 균열은 신경 쓰지도 않고 그 커다란 덩치로 눌러 제 남근을 그녀의 몸속에 넣었다 빼는 것을 반복했다.
"흐윽! 읍! 으윽!"
도저히 맞지 않는 퍼즐을 맞춘 것처럼 고통을 호소하는 소녀의 목소리 따위 그의 안중에도 없었다. 오히려 흥분하게 만들었는지 더 거칠어지는 그의 행동. 그가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소녀의 꽃잎은 강제로 벌려져 남자의 자지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 행동은 한동안 멈추는 일도 없이 소녀의 몸을 누르고 미약한 발버둥마저 억누른다. 이제는 소녀가 비명을 지르는 것마저 지쳤을 무렵.
"흐으음!"
남자의 숨소리가 크게 거칠어졌다. 그리고 더 크게 부풀어 오르는 남근과 소녀의 몸에 밀착하며 꾹 누르는 그의 허리. 벨카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고 더욱 거세게 발버둥 쳤으나 뱃속에 차오르는 뜨거운 감각에 그녀의 눈이 경악에 물들어 크게 떠졌다. 소녀가 마음에 품은 상대가 아니라면 결코 허락하지 않았을 그곳마저 남자에게 철저히 침범당했다. 벨카의 눈길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그녀의 위치에선 보이지 않는, 어셔가 있을 곳이었다.
소녀의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질퍽질퍽, 진득하게 젖어있는 무언가가 맞닿는 소리가 어셔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깨질 듯이 아픈 머리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이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에 힘겹게 눈을 뜬 그는 눈앞의 광경에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맨 처음으로 보인 것은 침대 위에 올라가 있는 어떤 남자의 벌거벗은 뒤태였다. 이유도 모른 채 그것을 몽롱한 상태로 바라보고 있으니 그는 곧 그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윽."
누군가의 거친 숨결을 비집고 고통과 불쾌함으로 점철된 익숙하게 느껴지는 소녀의 신음이 그의 아래쪽에서 들려오고 있었으니까. 그 소리에 어셔는 몽롱했던 정신이 충격으로 인해 번개를 맞은 것처럼 번뜩 각성하는 것을 느꼈다. 흐릿했던 시야까지 닦인 것처럼 깨끗해졌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어떤 것에 머리를 맞고 정신을 잃었었다는 것을 자각하고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허리를 흔들며 거친 숨을 헐떡이고 있는 남자.
그 뒤태가 뚱뚱하고 거대한 두꺼비와도 같아서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지만 어셔는 그곳으로부터 시선을 떼어낼 수 없었다. 그의 거대한 덩치를 간신히 비집고 나온 하얀 발목과 그의 엉덩이가 무언가를 찍어 누르듯이 들썩일 때마다 보였다가 사라지는 새하얀 둔덕 때문이었다. 그의 엉덩이 아래로 보이는 쭈글쭈글한 주머니와 이어지는 길고 흉물스러운 것이 새하얀 둔덕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균열을 꿰뚫고 그대로 들락날락했다.
때문에 그 가녀린 둔덕은 바들바들 안쓰럽게 경련하고 있었지만 그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거대한 몸을 들썩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어셔는 아까부터 질척이는 소리의 원인이 저 행동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남자의 물건은 정액 같은 진득한 액체에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고 그건 가녀린 둔덕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 개의 몸이 맞지 않는 퍼즐처럼 강제로 맞닿을 때마다 진득한 소리가 방 안을 울리니 모를 수가 없었다.
"흐그윽."
신음을 참고 있었던 것일까? 조금 뒤 남자가 자신이 깔아뭉갠 소녀의 반응을 바라는 듯 거세게 움직이자 다시 들려오는 소녀의 신음은 익숙하지 않은 쾌락에 젖어 깊은 자괴감을 토해내는 것 같다. 어셔는 그제야 지금 상황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저 소녀의 목소리를 못 알아들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단지 그는 이 상황을 저 광경을 믿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저 괴로움으로 가득한 신음의 주인이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소중한 단 하나뿐인 소녀였기에.
"벨...카?"
그리고 그런 그녀를 사정없이 그 몸으로 깔아뭉개고 범하고 있는 남자는 바로 맥이었으니까. 그의 망연자실한 목소리를 들은 것일까? 아래에 깔린 소녀를 범하는 것에 여념이 없던 남자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아하아."
지친 숨을 내쉬며 끔찍한 쾌락에 저항하는 소녀의 숨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그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고 그대로 어셔와 눈을 마주쳤다. 그와 동시에 싱긋 웃어 보이는 모습에 정말로 보아선 안 될 것을 본듯한 오한이 그의 전신을 내달린다.
"오, 일어났구나. 어셔."
그것은 평소대로의 맥이었다. 마을의 천덕꾸러기인 어셔에게도 언제나처럼 친절한 그 웃음 그대로 그러나 어셔는 그런 그의 모습에도 전혀 안심할 수 없었다.
"맥!!!"
그는 분노에 차서 그의 이름을 외쳤다. 빠득빠득 이가 갈린다. 그러자 그는 섭섭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런, 아무리 한 번 싸웠다지만 이제는 아무렇게나 부르는 거니?"
그렇게 말하는 그는 장난을 치는 아이들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맥은 일어서면서 자신의 물건을 소녀에게 깊숙이 찔러 넣었다.
"꺄읏!?"
자신의 물건을 꼬챙이로 그녀를 꿰뚫어 고정시키려는 것만 같은 그 행동에 벨카가 비명을 지르고 그녀의 몸이 위태롭게 휘청이는 모습이 그의 너머로 언뜻 보였다. 완전히 일어선 그는 서서히 몸을 돌려 벨카의 모습을 그에게 완전히 보이게끔 만들었다.
"으윽."
"벨카!"
소녀와 맥이 마주 보는 형태였기 때문에 어셔는 남자의 물건에 꿰어진 소녀의 뒷모습만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벨카가 분명했다. 그러자 맥은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한쪽 손으로는 벨카의 가녀린 허리를 부러트릴 듯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오, 이러면 친구의 얼굴을 볼 수가 없겠구나."
정말로 그것이 호의라고 생각하는 듯 웃어 보였다. 그는 그 모습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다시 두 손으로 소녀의 허리를 붙잡아 자신의 물건을 넣어놓은 상태 그대로 그녀의 몸을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그 행동은 마치 소녀를 자신의 남근을 보관하기 위한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 아아."
"으음!"
다만 그 과정에서 번들번들하게 젖은 그의 물건과 소녀의 안쪽이 부드럽게 마찰했기 때문일까. 벨카는 신음을 흘리며 작게 경련했고 맥 또한 예상치 못한 쾌락에 신음을 삼켰다. 결국 그녀의 몸을 돌려 어셔와 마주 시켰을 때.
"크으음!!"
"아그읏!!"
남자는 크게 경련하며 자신의 물건을 그녀의 안쪽에 더욱 깊숙이 찔러 넣었고 소녀는 덩달아 비명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질렀다. 어셔는 소녀의 안을 침범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흘러넘친 맥의 정액이 자신의 얼굴에 튀었다. 벨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던 것이 떠오른다. 그런 소중한 곳을 그가 더럽혔다. 하필이면 그가 마을에서 가장 친근하게 여겼던 어른에게. 사실 어셔는 바보를 보았을 때부터 그가 소녀를 데려간 범인이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 맥은 최근의 일만 아니었다면 마을에서도 그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몇 안 되는 어른이었으니까. 혹시 자신의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저도 모르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게 정말 바보 같은 희망이라는 것도 모르고. 지금 이 모습을 보아라.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믿음은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고 그 날카로운 조각들이 그의 가슴을 찔렀다. 그 느낌이 너무나 괴롭고 아파서 눈물이 흘렀다.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왜!!"
"왜냐고?"
억울함과 울분으로 가득한 어셔의 외침에도 맥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네가 규칙을 어겼으니까."
"뭐?"
왜 여기서도 규칙이 나온단 말인가? 그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에 맥은 그를 비웃었다.
"네가 나무꾼의 일이 아닌데도 마을을 나가 돌아다닌 걸 정말 아무도 모를 줄 알았니?"
어셔는 충격으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무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가 벨카를 만나기 위해 마을을 나가던 방법을 덩치 큰 어른들이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만큼 그의 집 뒤에 있는 틈새는 좁았고 더욱이 그 틈새에 밖으로 나가는 구멍이 있는 건 어셔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때문에 아무도 그가 마을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을 몰랐었는데. 대체 누가? 그런 어셔의 의문도 주절주절 떠드는 맥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안 건 나도 최근이었지만. 릴리가 알려준 덕분에 알았지."
"릴리...라고?"
하지만 그건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이런 시골 마을에서 사람들의 이름 정도는 알고 싶지 않아도 외워진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마을에서 릴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푸하하하! 모르는 건가? 릴리도 참 불쌍하지. 좋아하는 남자가 자기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니."
그는 마구 웃으면서 믿기지 않은 사실을 떠들었다.
"너와도 하고 싶다고 해서 기껏 보내줬더니 네가 하지도 않고 돌려보낸 여자애 말이다. 이번에는 잘 해보라고 부탁을 들어줬는데 잘 안된 모양이지? 하긴 이런 마녀와 좋은 일을 하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한가?"
그가 말하는 릴리는 소녀와 바꿔치기 된 바보의 이름이었다. 사람들 모두가 동네 바보라고 불렀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동네 바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녀석은 맥이 시켜서 마을 사람들에게 억지로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섹스를 하려던 게 그 녀석이 원하던 것이었다는 말인가? 심지어 그가 마을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과 벨카의 존재를 맥에게 가르쳐 준 것이 그녀였다는 사실에 어셔는 지독한 배신감을 느꼈다.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조차 그 배신감에 도저히 신경 쓰이지가 않았다.
"흐흐흐, 사실은 마리를 가지고 놀다가 죽일 때 함께 죽이려고 했었던 아이였는데 말이야. 어찌나 살려달라 애걸복걸하던지."
그래서 규칙을 어긴 것도 눈감아주고 지금까지 애완동물로 길러주었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말에 어셔는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였을까? 화기와 울분이 가슴속에서 이토록 끓어오르는데 머릿속에서는 감정 하나 느껴지지 않는 건.
"마리 누나를, 당신이 죽였다고?"
벨카를 만나기 전 어셔의 유일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던 누나를 그가 죽였다는 말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