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화 〉오래된 전통. (13/220)



〈 13화 〉오래된 전통.

등불이 비치는 거리. 사람들은 누가 자신의 몸을 보건 말건 당당하게 제 맨살을 드러내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경악스러운 모습이건만 그 거리의 한 가운데서 살을 섞고 있는 이들의 모습도 드물지 않게 보였다. 그것이 단순하게 남녀가 정을 나누는 것이었다면 그나마 외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몇몇은 아예 여럿이서 한데 뒹구는 모습들이 보였다. 여자 하나에게 남자 둘이 붙건 남자 하나에 여자들이 붙건. 그 와중에도 가면으로 자신들의 얼굴만은 가리고 있는 모습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남자들은 길을 가는 여자는 아무나 붙잡아 입을 열어 혀를 섞고 스스럼없이 몸을 만지며 제 물건을 넣었다. 어이가 없는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의 행동을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고  몸을 허락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번 몸을 섞고 나면 그대로 헤어져 다른 이들과 몸을 섞는다. 그들은 제 손에 닿는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하기도 전에 먼저 관계를 맺는 것 같았다. 상대가 누구건 상관없다는 듯이 그들은 몸을 섞고 또 섞었다. 그것을 춤이라 말해도 좋다면 그것은 사람의 몸이 얽히고설키는 광란의 춤이었다.


"하악! 하아!"

어셔가 짐승의 울부짖음과 같다고 여겼던 그 소리는 사람들이 쾌락에 절어서 내는 목소리였다. 어셔는 제멋대로 부풀어 오른 자신의 욕구를 눈치채면서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눈이 제멋대로 길가를 지나가는 여인의 몸을 훑고 그의 것보다 큰 물건을 삼키는 여인의 그곳이 눈에 들어왔다. 온통 살색의 향연이었다. 붉은빛이 감도는 등불에 비치는 그들의 맨살이 그를 어지럽혔다.

"흐응!"
"하악! 하악!"

철썩철썩, 그들의 맨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신음과 함께 계속 귓가에 들려온다. 질퍽이는 살결들이 섬뜩한 등불의 빛을 반사했다. 커다란 뱀의 머리 같은 자지가 누구의 것인지 모를 정액이 흘러내리는 컴컴한 구멍을 아랑곳하지 않고 꿰뚫고 흔들었다. 최소한의 구분도 하지 않고 정액을 토해내고 게걸스럽게 삼킨다. 그 구멍은 계속해서 백탁액을 갈구했고 뱀의 머리들은  욕망을 토해내고자 쉴  없이 그곳을 파고들었다.

코를 스치는 냄새는 뜨겁고 꿉꿉하다. 사람의 머리를 멍하게 만드는 어지럽고 독한 냄새였다. 어째서 진작에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 시야를 흐릿하게 만드는 연기가 이 골목에 가득하다는걸. 위를 보면 하늘이 보였을 그곳에는 하늘 대신 나무판으로 된 지붕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길을 가득 채운 연기가 빠져나가려는 것을 막으려는 것처럼.  연기로 가득한 길목에서 그들은 광란의 춤을 이어나갔다.


"아앙!"

지켜보는 그의 눈으로 질척한 감정이 타고 들어왔다. 저들의 넘쳐나는 욕망이 그에게까지 전염되는  같았다. 하지만 그건 너무 끔찍하고 더러웠다. 내용물을  채운 분뇨 통의 마개를 뽑아버린 것처럼 그런 감정이 그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 감정이 가장 끔찍했던 건 바로 지금 저들의 모습에 성욕을 느끼는 자신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셔."


그러던 그때 따뜻한 목소리가 그를 감싸 안았다. 그들로부터 시선을 떼어내고 싶음에도 욕망에 휩쓸려 떼어내지도 못하고 그들과 자신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빠져 끝없이 괴로워하던 그의 눈을 소녀가 여리디여린 두 손으로 가려준 것이다. 그리고 찾아온 포근한 어둠. 알록달록하지만 음험한 등불의 색에 괴로워하던 눈이 편안해졌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자."

어셔는 벨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이런 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소녀가 이끄는 대로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아직도 남아있는 연기의 잔재에 가면을 쓴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거리를 멍하니 걸었다. 소녀가 그를 데리고 어디로 향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답답했던 가슴이 탁 트이는 것을 느꼈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들은 축제가 벌어지는 마을을 빠져나와 있었다.

찌르르 찌르르, 이름 모를 풀벌레가 우는소리. 쏴아아, 농작물로 이루어지 넓은 밭이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며 스치는 소리. 이런 늦은 시간까지 깨어있는 것은 처음인 만큼 그 광경에 시선을 빼앗겼다. 지난번 잠시 깨어났을 때 보았던 칠흑 같은 밤과는 달랐다. 새하얀 달빛이 비치는 밤은 그의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고 맑고 차가운 공기가 연기와 사람들의 비릿한 냄새로 어지러웠던 머리를 맑게 해주었다.

"이제 괜찮아?"

소녀는 어느샌가 가면과 베일을 벗고 있었다. 달빛 아래에 드러난 소녀의 머리카락은 붉디붉은 양귀비꽃. 소녀의 꽃과도 같은 붉음은 언제나처럼 양쪽으로 묶어내려 소녀의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고 그녀가 입고 있는 소복은 불어오는 바람에 나비의 날갯짓처럼 팔랑였다. 벨카는 금잔화 속에 걱정을 가득 담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가 조금 어지러운 것만 빼면."

그 모습에 정신을 차린 어셔는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돌렸지만 그의 말에 소녀가 어떻게 행동할지 깜박하고 말았다.

"어지러워?"
"엇?! 자, 잠깐만!"

뒤늦게 그 사실을 떠올렸지만 벨카는 이미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그의 이마에 손을 얹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가 가까이 다가온 만큼 달큼한 동백꽃 향이 훅 다가왔다. 마을에서 맡았던 연기의 어지러운 냄새와는 다르게 부담스럽지 않은 향기. 그래, 소녀는 언제나 걱정이 많았으니까. 그녀의 차가운 손길이 그의 이마에 닿자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어지러운 감각은 사라졌다. 다만 아직까지 마을에서 보았던 그 살색으로 가득한 광경과  연기가 주던 흥분감은 여전히 남아있어 곤혹스러웠다.

샘물처럼 맑은 소녀의 금빛을 보고 있으면 그와는 반대로 자꾸만 이상한 생각을 하고 마는 자신이 부끄러워 그만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의아한 기색으로 따라붙는 소녀의 눈길.


"어디가  아파?"
"이, 일단 집으로 가자!"

더 이상 소녀의 무구한 눈빛을 마주했다간 더 부끄러워질 것만 같아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그의 집. 낡고 삐걱대는  집은 그가 이 집에  정만큼이나 삭막했다. 그래도 약간의 정이 있다면 잠시나마 누나와 살았고 벨카와 함께 머무른 곳이 다인 이곳. 그래도 집은 집이라고 조금은 안심되는 기분을 느끼며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지고 바닥에 누우니 편해졌다. 하지만 잠시 눈을 감기가 무섭게 떠오르는 살색의 향연. 사람들이 뒤얽히는 광란의 춤이 매섭게 그의 뇌리를 스쳤다.

"윽!"


그에 절로 역겨운 기분이 들어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그게 정말로 그와 같은 사람인지 의문스러운 광경. 동네 바보에게 들었던  마을의 진실만으로도 남아있던 정은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 축제의 진짜 목적을 알고 나니 없는 정마저 떨어져 버렸다. 하지만 차마 그들을 사람 이하의 짐승이라 비하하기엔 어셔는 잊을 수 없었다. 그 광경에 자신이 흥분했다는 사실을. 자신이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들던 자신에 대한 역겨운 감정을. 때문에 어셔가 스스로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을 때였다.

"어셔."


벨카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소녀는 그의 이름이 특별하다 말하는 것처럼 언제나 이렇게 불러주었다. 사실 그가 특별한 인간이 아니라는 건 그 스스로가 알고 있는데도. 그를 특별하다 이야기하는 듯한 소녀의 부름이 너무나 좋아서 그녀의 부름에 눈을 뜨면.

"아."

어셔는 저절로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왜냐하면 눈을 뜬 그의 바로 위에 소녀의 금빛이 있었기 때문에.

"괴로운 거지?"
"조금 토할 것 같아."

그는 솔직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숨기려 노력해도 이 자그마한 소녀는 금세 눈치채 버리고 마니까.

"괴로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벨카."
"그건 본능이고 자연스러운 거야. 자연스러운 일을 부정해 봐야 괴롭기만 할 거야."

어셔는 무어라 말하고 싶었지만 소녀는 그런 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괜찮다는 듯 그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주었다. 그러자 조금은 편안해지는 마음을 느끼면서도 그는 그런 벨카의 말이 조금 못마땅했다.

"그런 건 좋아하는 사람끼리 하는 거라며. 하지만 그 사람들은 아무나 상관없는 것처럼."

그는 다시 떠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에 매스꺼워지는 속을 겨우 다스리며 몸을 일으켰다. 소녀와는 여전히 마주 보는 모습이었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어, 난 벨카가 했던 말을 믿어."
"...고마워."

소녀는 두 볼을 발그레 물들이면서도 무표정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어셔, 무엇이든 단정 짓는 건 정말로 위험한 일이야. 누군가의 말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닌 것처럼 나의 말도 무조건 옳은 것이 될 수는 없어."

특히 너희에게 있어서 단정 짓는다는 건 고정관념을 만들고 서로를 미워하고 혐오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계기가 되기도 해.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려면 경우에 따라 많은 세월을 소비하게 될 수도 있어.


"그러면 벨카는 내가 그 사람들 사이에 껴도 상관없어?"

그런 벨카의 말을 곱씹던 어셔는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어 그렇게 말했다. 그럴 마음도 없었지만 툭하니 내뱉은 그의 말에 소녀가 멈칫하며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우으, 그렇게 받아들이면 곤란해. 그건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니까.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는 것 또한 너희에겐 중요한 일인 걸. 저기, 그러니까... 가지 말아 줘."


소녀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횡설수설하는 듯하다가 그에게 다가와 옷자락을 붙잡았다. 금방이라도 그가 그 축제에 가버릴까 불안한 모습이었다. 벨카는 알고 있을까? 그런 그녀의 모습이야말로 그가 짓궂게 구는 이유라는걸. 아는 것이 참 많은 소녀는 유독 이런 것은 잘 알지 못했다. 울먹이기까지 하는 소녀를 그가 달래니 뒤늦게 그가 놀렸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소녀가 볼을 부풀렸다.

"어셔는 너무 짓궂어."
"벨카의 말은 너무 어려우니까."


그가 불만스럽게 중얼거리자 볼을 부풀렸던 소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살풋 미소 지었다.

"어렵다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 단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한 번씩  말을 떠올려 줘. 나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거야."

어셔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밤이 늦어 이불을 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질 않는다.

"잠이 안 와?"

그 이유가 있다면 그건 역시 벨카가 그의 곁에 누워 달빛을 받아 빛나는 금빛으로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어제는 소녀와 관계를 맺으며 잠드는 것도 깨닫지 못할 만큼 지쳐버려서 알지 못했지만 옷 너머로 느껴지는 소녀의 부드러운 살결이 신경 쓰여서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조금 그렇네."

그러나 벨카를 탓하기엔 그녀는 단지 그와 함께 자고 싶어서 그의 곁에 누워있었을 뿐이다. 문제는 그가 눈을 감을 때마다 떠오르는 마을에서 보았던 살색의 향연이었다. 그렇게 떠오른 성욕이 자꾸만 소녀를 요구하니 더 죽을 맛이었다.  사실을 말하면 소녀는 그의 요구를 들어줄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어쩐지 거부감이 들었다. 이 욕구를 참지 못하고 계속 소녀를 탐한다면 그에게 역겨운 감정을 품게 만든  마을 사람들과 똑같이 될 것 같아서. 적어도 그는 그들과 똑같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몇 번이고 살색으로 가득한 생각에 사로잡혀 좀처럼 잠에 들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몸만 눕힌 채 뜬 눈으로 달이 떠오른 밤을 보냈을까? 그의 손에서 꼼지락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소녀가 이불 속에서 빠져나가려는 것처럼 위로 움직인 것이다.

"벨카?"

잠을 자려다 말고 어디로 가려는가 싶은 마음에 그녀의 이름을 부른 것이 무색하게 소녀는 어느 정도 올라가서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벨카의 행동에 그는 당황했다. 소녀가 그의 머리를 두 팔로 감싸더니  가슴에  끌어안은 것이었다.

"이러면 잠이 올까?"
"그, 글쎄."

잠이 오기는커녕 머릿속에 가득 차 그를 잠들지 못하게 괴롭히던 살색이  늘어난 기분이었다. 그의 얼굴에 닿아 일그러지는 것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가슴의 감촉과 콧속을 가득 채우는 향긋한 동백꽃 향기까지. 어느 것 하나 그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없어서 더 곤란했다. 소녀에게 들키지 않고자 부풀어 오르는 욕구를 애써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보다 이러면  잠이 잘 올 거리고 생각한 거야?"
"예전에 어셔가 나와 붙어 있으면 잠이 온다고 했었으니까?"


생각해보니 그것과 비슷한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실제로 소녀의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워있거나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있으면 안 오던 잠도 쏟아져서 낮잠으로 시간을 보냈던 적이 꽤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소녀의 살 내음에 욕구를 억누르는 것이 한계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벨카를 덮치고 싶었지만 겨우겨우 참아내고 눈을 감으면.


"~♪"

소녀의 허밍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으로 듣는 노래였지만 소녀의 잔잔한 목소리 덕분일까? 그 노랫소리는 그의 귀를 간지럽히며 그의 마음을 포근하게 가라앉혔다. 가만히 있으면 가슴의 감촉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콩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일정한 속도로 들려오는 그 소리와 소녀의 노랫소리, 언제 손을 뻗었는지 토닥토닥 그의 등을 두드리는 소녀의 손길이 어우러졌다. 자신의 머리를 감싸 안은 소녀의 품속에 기대어 그를 도닥이는 소리를 듣다 잠시 어둠 속에 빠져들었을 때.

"잘 잤어?"


그는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소녀의 금빛을 마주할 수 있었다. 소녀의 노랫소리를 듣다 잠들어버린 모양이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자장가를 듣고 잠이 들어버렸다. 그 사실이 부끄러우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몸을 일으키려 했을 때.

"읏?!"


그의 물건에 스치는 부드러운 느낌과 벨카가 흘린 신음에 당황하고 말았다. 소녀도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그는 뒤늦게 자신들이 어떤 자세인지 깨달았다. 잠든 사이에 껴안아 버렸는지 그는 그녀와 마주하고 껴안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바로 그의 물건이 꼿꼿하게 부풀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어셔는 정말로 되도록이면 참으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소녀를 탐하려 하는 순간.

"어셔! 집에 있니!"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슬아슬하게 그만둘 수 있었다. 소녀는 정해진 것처럼 옷장 안으로 들어가 숨었고  모습을 확인한 어셔는 누군가 또 집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먼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발견한 익숙한 남자의 모습에 기분이 나빠졌다.


"왜 또 오신 건데요?"

그 남자는 맥이었다. 그가 일부러 볼멘소리를 내며 그를 노려봐도 눈치가 없는 건지 뻔뻔한 건지 그는 실실 웃으며 대문 너머에서 어셔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확인할 게 있어서 말이다. 가면  가져와 주겠니?"
"가면은 왜요?"


그는 수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일단 자신을 돌봐주는 어른이었고 아무리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적어도 이 마을에 있는 동안은 최소한 그에게 반항하는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으니까. 그는 잠시 방안으로 돌아가 가면을 들고 그에게 건네면.


"호오."


가면을 본 그가 히죽하고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뭐, 뭐예요?"
"아무것도 아니란다. 일단 확실하게 축제는 즐긴 것 같구나."


 꺼림칙한 웃음에 왜 그러는지 물으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 말하고는 돌아갔다. 마지막까지 축제에 꼭 참여하라는 말을 남긴 채. 어셔는 굳은 표정으로 그가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쩐지 큰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윽고 다시 찾아온 밤.

"오늘도 꼭 가야 하는 거야?"

벨카가 가면을 손에 쥐고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어, 나도 되도록이면 가고 싶지 않은데."

 성인이  사람은  축제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당부하던 맥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그는 자신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참여하지 않으면  사실을 눈치챌 것이 뻔했다. 마을을 벗어날 기회가 있었다면 벨카를 데리고 시도해보았겠지만 낮에 잠시 살펴봤을 때도 경비는 평소보다 삼엄하면 삼엄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결국 그는 할 것이 딱히 없음에도 소녀와 함께 가면을 쓰고 축제를 돌아다녔다.

어제 보았던 그곳에는 아예 발도 들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대놓고 거리에서 섹스를 하거나 어두운 곳에서 관계를 가지는 사람들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어제는 왜 발견하지 못했는지 이해할  없을 만큼 그 모습은 이곳저곳을 가리지 않고 보였다. 역시 그 모습이 불쾌하다고 생각하면서 정처 없이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자자! 이번에 귀한 물건이 들어왔습니다! 무려 수백 년을 산 느티나무라고요?"

어디선가 들려온 커다란 목소리에 어셔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나무토막들을 쌓아두고 사람들에게 파는 가면을 쓴 장사꾼이 있었다. 적어도 어셔가 알기로 이 숲에서 느티나무는 소녀가 있던 그곳의 나무가 유일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돈을 버는데 좋다는 것일까? 마을의 어른으로 보이는 그는 기세 좋게 이 숲에서도 보기 힘든 목재라며 외치고 있었다. 팔고 있는 느티나무는 그 거대한 나무에 비하면 너무 조각조각으로 나누어져서 원래의 모습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저게 진짜!"


때문에 잊고 있던 화가 솟아올라 그에게 다가가려던 그를 막은 건 벨카의 목소리였다.

"돌아가자."


조각조각 나버린 자신의 터전을 눈앞에 두고도 소녀는 그렇게 말했다. 마치 자신과는 처음부터 연이 없던 물건처럼 평이한 목소리로.


"저건 원래 네 거잖아!"
"나의 것은 아니었어. 이 세상 어느 곳에도 나의 것은 없으니까."
"그게 뭐야."

어셔가 항의하듯 중얼거려 보아도 소녀는 그를 위로하듯 그의 손을 토닥일 뿐이었다. 결국 그가 힘없이 돌아섰을 때. 갑자기 늘어난 인파에 휩쓸려 소녀의 손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벨카?! 벨카!"


놀란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잊고 소녀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몰려드는 인파의 사이를 해쳤다. 소녀의 덩치가 작아 인파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식은땀이 흘렀다. 이대로 소녀를 놓쳐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텅 비어버린 손이 조마조마했다.  시간이 점점 늘어날수록 그의 심장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잡았다!"


그는 인파 사이에서 그에게 손을 뻗는 작은 손을 발견하고 간신히 잡아챌 수 있었다.

"하아하아, 다행이다."


그리고 인파 사이를 빠져나오니 그들은 골목길에 들어서 있었다. 일부러 이런 곳은 피하고 있었는데 인파를 피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이 없는 골목으로 들어와 버린 것이었다. 숨을 고르다 길을 보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혼자서 빠져나가기엔 무리가 없어 보였지만 덩치가 작은 소녀는  휩쓸릴 것이다.

"여기서 잠시 쉬다 갈까?"

어쩔  없다는 생각에 제안하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어셔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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