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6. 황홀한 행복을 지키기 위하여 (136/151)


#136. 황홀한 행복을 지키기 위하여
2023.06.18.



 
이상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까웠던 대공성이 다시 멀어지다니.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가득 찬 시각. 물끄러미 창문 바깥을 바라보던 올리비아가 피식 웃었다.

디안은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계속 마차를 흘끔대고 있었다. 올리비아가 창문을 내리자 디안은 화들짝 놀라며 마차 가까이로 다가왔다.


“한 바퀴 더 돌까요. 아가씨?”

한마디만으로 모든 상황의 전말이 드러났다. 올리비아는 비스듬히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하여튼. 비칸데르는 다 눈치도 빠르네요. 배려심도 깊고.”

디안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이었다. 혹시 제 얼굴이 운 것처럼 보이기라도 하는 걸까? 눈물 한 방울 떨구지도 않았는데.


“고마워요. 디안.”

“……예?”

당연한 인사인데, 디안은 눈만 깜빡였다. 생각도 못 했다는 얼굴이 조금 웃겨서 올리비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사람들 다 물려 줘서. 덕분에 추한 꼴 덜 보였네요.”

“그게 뭐 추한 꼴이라고 그러십니까? 사람이 화나면 화도 내고, 쏘아붙이고, 막 그러는 거지 않습니까?”

순간 올리비아의 입꼬리가 굳어졌다. 그것도 모른 채 디안은 살았다는 듯 겨우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저는 아가씨께서 엄청 화가 나신 줄 알고 말도 못 걸고 있었는데.”

“……그럴, 리가요.”

바람결에 떨리듯 나온 부정이 당연히 의례적인 거라 생각한 디안은 다시 쾌활하게 웃었다.


“그러면 바로 성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아가씨.”

 

.
.
.

새벽이 오는데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발코니에 선 올리비아는 환하게 불이 켜진 대공성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기도를 했음에도 선대 대공은 쉬이 눈을 뜨지 않았다. 의원은 기력이 회복되는 데 시간이 걸릴 거라고 말했다. 잔뜩 울어서 쉰 목과 퉁퉁 부은 눈으로 말이다.

올리비아가 축제를 확인하는 동안 성내에는 한바탕 울음이 번졌던 모양이었다. 성에 도착하자마자 저를 껴안고 울었던 베서니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세상에…… 아가씨. 어떻게 대공 전하께서, 어떻게…… 공주님께서 이걸 아셔야……!”

 
저를 안고 울던 베서니의 목소리가 생생했다. 대공 전하, 그 호칭만으로도 순식간에 과거로 돌아간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다. 잔물결처럼 떨리던 그녀의 등에서 놀람이 전해졌다.

지척에 두고도 몰랐다는 슬픔, 먼저 세상을 뜬 선대 대공비에 대한 안타까움과 회한,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덮어 버릴 정도로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함.

수많은 감정들을 헤아리던 올리비아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한기가 몸을 타고 올랐다. 생경한 추위에 눈만 깜빡일 때였다.


“……말했잖아요. 북부의 밤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고.”

잠긴 듯 가라앉은 목소리와 함께 따뜻한 온기가 몸을 감쌌다. 로브를 둘러 준 에드윈은 발코니 난간에 따뜻한 컵을 내려놓으며 윙크했다.

부기 하나 없는 눈두덩이와 달리, 붉은 눈은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특히나, 마석도 없는 지금은 대공성의 마법만 믿으면 안 되죠.”

그제야 올리비아는 허전한 목 앞을 쓸어내렸다. 늘 목에 있던 목걸이는 당분간 선대 대공의 곁에 놓기로 했다.

올리비아는 야무지게 로브 깃을 세워 목을 감쌌다. 그리고 다시 선대 대공이 있는 방을 바라보며 변명하듯 말했다.


“곧 들어가려고 했는데…….”

하지만 변명조차 끝맺지는 못했다.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점차 묽게 번졌다.


“진심으로 고마워요. 리브. 이 말부터 했어야 했는데.”

묻어나오는 진심이 너무 짙어서. 올리비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 단단하고 깊은 사이. 올리비아는 입술을 달싹이다 중얼거렸다.


“……전부 에드윈이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에요.”

“무슨 말이에요. 리브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척에 아버지가 있었으면서도 모르는 천하의 멍청이였을 텐데요.”

“…….”

어지러웠다. 그녀는 에드윈이 아버지를 만난 게 정말 기뻤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진심으로.

한데 지금은 묘한 기분이 섞였다. 이건 기쁜 것과 부러운 것과, 또……. 마델레이네 공작을 향한 정리되지 않은 미움이 다시 치미는 걸까?


“공작과 만났다면서요. 어땠어요?”

참. 정말 눈치 빠르다. 어떻게 이렇게 딱 제 속내를 안 것처럼 말할까. 올리비아는 가만히 로브 끝을 만지작거리다 말했다.


“……화를 냈어요.”

“그렇다면 시원해할 줄 알았는데.”

“시원하다기보다는 이상해서요. 어색하고, 너무 아무 말이나 한 것 같고.”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갈수록 작아졌다. 디안의 말을 들어 보면 분명 똑 부러지게 화를 냈다고 했는데, 올리비아의 얼굴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가족을 끊어 냈을 때보다 더 후련해할 줄 알았는데. 문득 에드윈이 중얼거렸다.


“올리비아는 화를 내 본 적이 별로 없었겠네요.”

“그렇죠. 낼 일이 없었으니까.”

물끄러미 에드윈을 올려다보는 시선이 말갰다. 에드윈은 아릿한 속내를 삼키며 올리비아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화를 안 내 봐서 그런가 봐요. 화를 내는 것도 연습을 해 봐야 하는데.”

참고, 참고 또 참고. 이런 식의 후유증은 생각도 못 했다. 단호하게 말하는 것을 보아서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녀를 염려하는 에드윈의 생각도 모른 채 올리비아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큰일이네요. 여기에서는 화를 낼 사람이 없는데.”

“한 명 있잖아요.”

그러더니 에드윈은 대공성 안 한편에 떨어진 독채를 턱짓했다. 엘킨 공작이 묵고 있는 곳이었다. 올리비아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에드윈은 피식 웃으며 시선을 멀리 던졌다.


“내일은, 같이 거리에 가요. 내가 영주인데, 준비한 축제는 봐야죠.”

당연히 좋다고 할 줄 알았는데 올리비아는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에드윈. 아버지의 날이잖아요. 에드윈은 아버지와 함께 있어요. 축제는 내가 독차지할 거예요.”

“그래도…….”

“모르시나 본데, 이건 꼭 에드윈만을 위한 게 아니랍니다.”

“네?”

“축제 준비, 열과 성을 다하셨잖아요. 영주님.”

올리비아는 혀를 날름 내밀었다.


“저는 그 공만 쏙 누리려고요. 환호받고, 축제도 즐기고. 이런 게 바로 가로채기라는 거예요. 순진한 대공 전하.”

 

* * *

세상에 이렇게 화려한 광경이 다 있을까.

바닥에 떨어진 꽃잎마저도 고왔다. 색색의 풍선이 두둥실 뜨는 것을 홀린 듯 바라보며 어린 티비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 일이나 이어진 ‘아버지의 날 축제’는 마치 이야기에서나 들을 법한 공주님의 축제 같았다.

화려하게 흩날리는 꽃잎과 하늘을 수놓으며 반짝이는 불빛, 위엄 넘치는 기사님들의 행진과 다양한 오락거리들까지.

푸근하게 웃으며 저희를 받아 준 비칸데르의 어른들은 축제가 전례 없이 성대하다고 말했다. 이번 해에도 영주님이 참석하지 않는 게 아쉽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끝에는 웃음 가득한 말 하나가 덧붙었다.


“그래도 뭐, 대공성에 일이 생겼다니 어쩔 수 없지. 이렇게나 열심히 준비한 축제를 구경도 못 해 보시다니, 아마 가장 속 타는 분이야말로 영주님이실걸?”

“그렇겠지. 대신 예비 대공비께서 참석하시니 우리야 서운할 거 하나 없지.”

“내년 축제에는 두 분이 같이 행진하시겠지? 어휴. 생각만 해도 짜릿하구먼.”

“참나. 내년만 생각하는 거야? 내후년을 생각해 봐. 만약에 아기님이라도 태어나시면……!”

낄낄 웃는 어른들 사이에는 어느덧 아빠도 섞여 있었다. 낯선 듯 주변을 둘러보다가도 어느 순간 사람들과 함께 웃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눈물 날 것처럼 좋아 보였다.


“티비. 여기에서는 괜찮을 거야. 모자가 벗겨져도 놀라지 않아도 괜찮아.”

 
그래서 처음 모자를 벗어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을 때, 티비는 좋다 못해 겁이 났다.

‘집’에서는 늘 바깥세상에 나가거든 모자를 쓰라고 했는데. 이 답답한 모자를 벗어도 되는 걸까? 나는 이미 알록달록한 풍선도 가졌고, 부드러운 흰 빵과 칠면조도 먹었는데.

갑자기 얻은 행복이 너무 많아서, 바람이 가득 차 버린 풍선처럼 터져 버리면 어떻게 하지?

그래서 티비는 아가씨가 예쁜 곰 인형을 건넸을 때 받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 덜 예쁜가? 내 눈에 가장 예뻐 보이는 인형으로 가져왔는데.”

공주님처럼 고운 아가씨는 아름다운 초록색 눈을 한껏 휘며 인형을 흔들었다.


“그때. 나를 먼저 깨워 준 것에 대한 선물이야. 고마워.”

꼬마 티비는 혼란스러웠다. 받고 싶었지만, 안 그래도 가득 찬 행복이 저 인형을 받는 순간 터져 버릴 것 같았다.

티비가 인형을 받지 않자, 함께 눈치를 보던 옆의 누군가가 얼른 인형을 받아다 티비의 품에 안겼다.

품에 닿는 인형은 너무 부드러웠다. 감히 제가 가져도 될까, 싶을 만큼.

작은 입술이 웅얼거렸다.

바람처럼 새어 나오는 목소리에 올리비아는 몸을 낮추고 귀를 기울였다.


“……이거, 꿈은 아니죠? 자고 일어나면 다 사라지고. 그런 거 아니죠, 아가씨?”

옅은 희망과 불안함이 공존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기분이 이상했다. 올리비아는 마치 오래전 자신을 보는 기분이었다.

매일 밤 아침마다 뺨을 꼬집어 보고, 대공저가 그녀 자신의 현실이라는 것을 상기하던 그때.


“꿈, 이면 어떻게 하나. 아주 조금 걱정했는데.”

 
올리비아는 그때 제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그리고 이어지던 에드윈의 대답까지 완벽히 간직하고 있었다. 제가 느끼는 지금 이 순간이 현실임을 일깨우는 말.


“꿈일 리가.”

 


“꿈일 리가.”

 
올리비아는 가볍게 티비의 뺨을 꼬집었다. 아이가 머뭇대며 뺨을 만지는 모습을 보면서, 올리비아는 다정하게 말했다.


“이렇게 행복한 현실은 꿈에서도 꿀 수 없을 거야.”

티비의 숨소리가 거세졌다. 울음을 참기 직전의 거친 숨소리에 올리비아는 문득 터닝벨에서 에드윈이 저를 발견했을 때가 떠올랐다.


“절대 꿈이 아니라는 걸, 매일매일 알려 줄게. 앞으로도…….”

제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동시에 에드윈이 제게 알려 주었던 말들.


“앞으로, 비칸데르는 훨씬 더 강하고 굳건하게 모두를 지켜 줄 거거든.”

다짐 같은 말이 바람을 타고 모두에게 전해졌다. 아까 전부터 감동받은 표정으로 올리비아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럼.”

귓가에 닿는 부드러운 음성. 화들짝 놀란 올리비아가 뒤를 돌자, 에드윈이 어깨를 으쓱했다. 대공 전하셔……! 환호하는 영지민들 사이에서 에드윈은 한쪽 눈을 찡긋했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

“베서니가 있잖아요. 안 그래도 나를 보고 나가라고 성화더라고요.”

“베서니가요?”

“불꽃놀이, 같이 보러 오기로 했잖아요.”

때마침 새까만 밤하늘 위로 화려한 불이 꽃처럼 피어났다. 에드윈이 다정히 올리비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현실이었다.

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황홀한 시간은.

이 현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올리비아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밤. 모처럼 밀린 편지를 읽어 내리던 올리비아는 저도 모르게 손을 떨었다.

에셀라로부터 온 편지. 그 안에 적힌 문구는 제 행복을 깨트리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제가 가장 행복한 지금 이 순간에.

불현듯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올리비아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선대 대공의 방을 향해 달렸다. 에드윈은 분명 거기에 있을 거였다.

하지만 방에 들어갔을 때, 올리비아는 턱 끝까지 오른 숨을 삼켰다. 선대 대공의 침대에 엎드린 채 잠든 에드윈은 아주 평화로워 보였다. 아버지의 손을 잡은 아들의 손이 단단했다

올리비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저는, 지켜야 했다.

.
.
.

축제가 끝난 다음 날 아침이었다.


“에드윈. 저 잠시, 트리스탄 곡창 지대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의 말에 대공 전하는 물론이고, 성내의 모두가 반대했다. 축제는 물론, 선대 대공 전하의 호전을 위해 기도를 하느라 쉴 틈 없었던 아가씨에 대한 걱정이 쏟아졌다.

하지만 아가씨는 트리스탄에서 온 편지를 내세우며 성녀로서 입지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력히 말했다.

그리고 모두가 짐작하듯, 아가씨를 이길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루라도 쉬고 가라는 대공 전하의 말에도 빙긋 웃은 아가씨는 그날 오후 바로 트리스탄 곡창 지대로 출발했으니까.

그것도 호위 기사인 디안과 마법사이자 집사인 베서니, 이렇게 둘만 동행해서 말이다.

* * *

남부 트리스탄에는 이미 황금빛 가을이 출렁이고 있었다. 디안은 조금 생경한 눈빛으로 풍요로운 밀밭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도착과 동시에 밀밭 앞에 선 아가씨를.

꼬박 이틀을 달려 트리스탄 곡창 지대에 도착했다. 소풍을 좋아하는 아가씨는 오는 내내 그녀답지 않게 마차를 재촉했다. 그리고 영주 대리인 자브론 남작의 안내가 끝나기도 전에 단호히 말했다.


“대공저에서, 트리스탄을 위해 빵을 비롯한 식량과 한 달을 보낼 수 있는 예산을 지원할 겁니다.”

희게 질려 있던 자브론 남작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수확까지는 남은 기간이 딱 삼 주.

그 정도의 예산과 식량만 있다면 수확이 끝난 후 햇밀을 사용해 얼마든 우는소리를 하는 영지민을 달랠 수 있었다.

상황조차 보지 않고 대번에 이렇게까지 파격적인 제안을 주다니.


“그전에.”

서늘한 말이 귀에 꽂혔다. 자브론 남작은 순간 성녀를 바라보았다. 곧은 시선이 강렬하게 그를 응시했다.


“영주 대리인인 자브론 남작, 그대의 맹세가 선행되어야 할 거예요.”

“어떤, 맹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공, 아니, 아가씨?”

“이 넓은 트리스탄 영지의 영주 대리인으로서,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단 한 번만큼은 내 편에 선다는 맹세예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지금 성녀님께서 저희 트리스탄을 살리고 계신데 무슨 일이든,”

“황가에 반할 수도 있는 일인데. 그럼에도 그 말 유효한가요?”

자브론 남작은 숨을 삼켰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황가에 반하는 일이라니……! 감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손이 벌벌 떨렸다.


“무, 무슨 그런 터무니없는 말씀을! 성, 성녀님께서는 저희 영지를 구원하러 오신 거 아니십니까?”

성녀의 말은 구원은커녕, 트리스탄을 나락으로 처박는 말이었다. 자브론 남작이 애걸하자 올리비아는 빙그레 웃었다.


“남작은, 영주인 황녀 전하가 아닌 내게 연락한 이유가 뭐죠?"

”그건,“

믿을 수가 없어서. 마음 깊이에서 자라난 불신 때문에 도저히 황녀를 영지의 주인으로 인정할 수 없어서. 자브론 남작의 손이 벌벌 떨렸다. 그 모습을 보며 올리비아는 나직이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피치 못할 상황이 왔을 때, 이 트리스탄의 힘이 내게로 기울었으면 해요.”

“…….”

“내 말, 이해하죠?”

 

.
.
.



“아가씨, 그게 무슨……! 황가에 반할 수도 있는 일이라니요.”

자브론 남작과의 대화가 끝났을 때, 베서니와 디안은 황급히 올리비아한테 달려들어 말했다. 듣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한 말을 하고서도, 아가씨는…….


“자세한 건 황궁으로 가면서 이야기할게요. 시간이 없어요.”

“아가씨 그게 무슨……!”

“윈스터와 하워드가, 황궁에 감금되었어요.”

짧게 내뱉어진 말만으로도 눈앞이 아득해졌다. 올리비아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가 폈다.

동시에 어젯밤, 제 손에서 툭 떨어진 편지가 떠올랐다. 단 한 번 본, 태자의 필체로 적힌 편지였다.


- 황족을 모독한 윈스터 칼터와 하워드 인터필드를 구속했어. 그대가 시간 맞춰 오지 않는다면, 국법에 맞게 처리하지.

 
믿지 못할 태자의 편지를 믿게 한 건, 에셀라의 글씨체가 확실한 또 한 통의 편지 때문이었다.


- 언니. 태자 전하로부터 제 편지에 이 편지를 함께 동봉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어요. 미안해요. 그런데 갈색 머리 기사님이 연관된 일이라서 언니한테 알려야 할 것 같아서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