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최선을 이용하려는 레오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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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최선을 이용하려는 레오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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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최선을 이용하려는 레오포드
2023.04.16.
“공작, 잠시 자리를 옮기지.”
태자가 성마른 목소리로 명령했다.
하지만 마델레이네 공작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태자의 채근조차도 먹먹한 이명처럼 들렸다.
그 틈을 꿰뚫고 들어오는 건 귀족들의 수군거림이었다.
“정말 리테일 영지를 복구한 것이 마델레이네 공녀였단 말이에요?”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요. 마델레이네 공녀가 황녀 전하의 일을 대신한 게.”
“세상에, 공녀야말로 성녀셨네요.”
하나둘 쌓이는 말들이 공작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게 모두 무슨 일일까. 공작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제가 들은 게…….
“전부, 사실입니까?”
하지만 그의 입술 밖으로 나가는 목소리는 지독히도 태연했다.
태자는 눈매를 가늘게 접은 채 하, 답답하다는 듯 숨을 토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짜증을 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올리비아에 대해 이야기할 게 있다니까!”
“……그 애의 손목을 멍들게 하셔 놓고, 올리비아에 대해 할 말이 있으시다고요?”
내내 머릿속을 채웠던 말이 그대로 나왔다.
태자의 미간이 일그러진 것도 순식간이었다. 눈을 번뜩이는 태자에게서 날 선 기세가 뻗어 왔지만 공작은 가만히 자세를 유지했다. 태자가 불쾌한 얼굴로 내뱉듯 말했다.
“왜 그런 얼굴이지?”
“……모르겠습니다.“
“하…….”
태자의 눈매가 사납게 올라갔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마델레이네 공작은 제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헤이즐이 죽고 나서는 표정 관리 따위 할 필요가 없이 평생을 살았다.
자식들을 제외하고 저를 기쁘게 하는 건 없었고, 헤이즐의 죽음보다 슬픈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이 회백색인 세상에서 홀로 남은 사람처럼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속이 울렁거리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전하.”
조금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 이야기하는 소리에 공작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대공이 붉은 입술을 짓씹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너무 많잖아.”
“예?”
“인터필드 경은 믿겨? 이 연회장 사방에서 내 아가씨가 했을 법한 일들이 끝도 없이 터져 나오는 게. 고작 스무 살인 내 아가씨가 그 많은 일을 했다고……?”
그 말을 듣고 공작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이제야 깨달았다.
아무리 들어도 너무 많았다. 황녀의 업적이라 할 때에는 당연히 황실을 뒷배로 두어 가능했을 법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올리비아가 했다 치면……. 숨이 턱 막혔다.
그 애에게 가는 건 고작 용돈 정도의 사재, 그뿐이었을 텐데. 심지어 어느 순간부터는 마델레이네 공작가의 장부까지 보고 있었다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공작.”
어느 순간에 다가온 건지 모를 만큼 대공과의 간격이 가까워졌다. 태자가 거친 눈으로 대공을 쏘아보았다.
“대공, 내가 지금 공작과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나!”
“그러면 제가 끼어들죠. 태자 전하. 공작, 대답하게.”
날카로운 태자의 짜증에도 대공의 말끝이 마델레이네 공작을 향했다.
이죽거리듯 비꼬는 얼굴이 아니었다. 대공은, 그저 덤덤하게 묻고 있었다.
“공작이 도왔나? 그래서 내 아가씨가 성녀라 칭송받을 만한 이 수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었던 건가?”
날 선 질문이 공작의 심장을 꿰뚫었다. 공작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아무것도 돕지 않았다. 그저, 황후의 핍박에 말라죽기만 바랐다. 그 외에는 어떠한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당연히 그 애가 황녀의 일을 대신한다는 것은 아예…….
“아니면 아예 몰랐나? 관심조차 없었나?”
속내를 읽은 것처럼 대공은 덤덤히 말했다.
비수처럼 날카로운 지적에 마델레이네 공작은 가만히 대공을 마주 보았다.
붉은 눈 안에서 너울 치는 게 분노인지 애틋함인지, 아니면 그를 뛰어넘는 감정의 무리인지 공작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찰나였다.
대공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아무도 몰라주는 일을. 내 아가씨는 왜, 그렇게 열심히 했을까.”
아. 공작은 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날카로운 파편들이 공작의 심장을 사정없이 후벼팠다.
그거야말로 너무 쉬운 질문이었다.
“아버지세요?”
그가 처음 저를 올려다보던 여섯 살의 둥글고 초록 눈을 미워했으니까.
“잘, 할 수 있어요!”
잘 보이려 하는 그 모습조차 증오스러웠으니까.
“저도, 마델레이네잖아요.”
그래서 더 미워했었다.
헤이즐을 죽게 만들었으면서. 감히 주제도 모르고 마델레이네, 이 단단한 결속에 끼어들려는 모습이 지독히도 미워서.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이제 제게 붙은 마델레이네.”
그래서 정작 몰랐다.
머릿속 흐릿하던 잔상이 점점 선명해졌다.
마델레이네를 지운다는 말을 할 때, 그때 올리비아는 웃고 있었다.
“마델레이네를, 전부. 지우겠습니다.”
모든 미련이 없다는 듯 아주 홀가분하게.
그 모든 게 또렷하게 떠올랐을 때, 공작의 자수정 빛 눈동자가 새까맣게 죽어 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그 애가 마델레이네를 바랐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절대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애는 정말로……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늘 외면해 왔던 사실과 맞부딪혔을 때, 공작은 꼿꼿하던 등허리를 처음으로 둥글게 말아 내렸다. 숨이 막혀서 죽을 것만 같았다.
한 겹, 또 한 겹. 죄책감이, 애증이, 품고 있던 모든 감정들이 공작 위로 뒤엉켜 무너졌다.
숨조차 쉬지 못하고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바라보던 대공은 느리게 혀를 차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공작이 묵인했든 진심으로 몰랐든. 나는 참.”
지나치듯 걷는 대공에게서는 낯익은 향이 났다. 포근한 냄새. 그만큼 더…….
“……속이 아프군.”
눈물처럼 서러운 냄새. 올리비아한테 나던 냄새.
순간 현기증에 공작은 휘청거렸다.
“아버지!”
멀리서 콘라드와 제이드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유약하다 탓했던 자식들은 저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제 몸 반도 안 되던 그 작은 아이의 노력을. 눈을 반짝이며 기대를 품던 시선이 의미하던 바를.
제 아픔에 외면해 버렸던, 제가 속죄를 해야 했던 이는 헤이즐뿐 아니라 한 명이 더 있었는데.
올리비아 마델레이네.
그 애가 버리고 갔던 이름에 대한 모든 순간의 최선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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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공. 이렇게 황족을 무시해도 되는 건가?”
태자가 이를 갈았지만 쳐다볼 이유는 없었다.
더 이상의 티 파티는 없었다. 에드윈은 무뚝뚝한 얼굴로 연회장을 나섰다. 고요한 이곳에서 그를 붙들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연회장을 나섬과 동시에 대기하고 서 있던 윈스터가 따라붙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보고를 시작했다.
“기사는 다 준비해 두었습니다. 황궁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신문사들도 아쉬워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습니다. 소문은 뭐…….”
윈스터가 잠시 말을 끊으며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이 제도 내부에서만 퍼질 정도로 조치했는데, 제도 밖에서는 들불처럼 알아서 번지고 있었습니다.”
에드윈은 윈스터가 내미는 서류를 받아 들었다. 곡창 지대인 트리스탄 영지의 가신이 보낸 편지의 일부였다.
그 안에 담긴 절박함에 에드윈은 쓰게 웃었다.
“왜 그대가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이해가 가는군.”
수도 없이 무시당한 숫자를 가늠하듯, 편지는 여러 번 연락을 한 것에 대한 송구스러움으로 시작했다.
그럼에도 편지를 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트리스탄의 사정까지.
제국이 망하는 것은 기꺼웠으나 피해가 닿는 건 백성이라는 걸 에드윈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개운치 않은 마음에 시선을 돌리자 윈스터가 불쑥 물었다.
“끝까지 읽으셨습니까?”
“아직. 왜?”
“……그, 가신이 아가씨라도 오시길 바란다고 적어 두었던데.”
윈스터의 말에야 에드윈은 바로 다시 편지를 읽어 내렸다. 어려운 사정을 가감 없이 이야기하는 편지의 말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황녀 전하께서 행차하기 어려우심을 십분 알기에, 부디 지난번에 왔던 은발의 시녀 아가씨라도 보내 주신다면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입이 무거운 아가씨라 여기서도 절대로 황녀 전하께 누가 될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부디 풍요로운 이 트리스탄에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은발의 시녀. 입이 무거운 아가씨.
에드윈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애달픈 아가씨가 어디까지 저를 마음 아리게 할 수 있을지 가늠조차 가지 않았다.
“……가야겠어.”
불쑥 치미는 말을 내뱉고 나서야 에드윈은 지금 제 우선순위를 명확히 알았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백수정 광산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도 중요했지만.
“에드윈.”
리브, 올리비아. 황녀의 약점을 얼마든 쥐고 있었으면서도 감쪽같이 내색조차 안 하는 깜찍한 아가씨. 제 작은 아가씨가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아니, 그러면 광물 세율 협상은요?”
깜짝 놀란 윈스터가 질겁하며 물었다. 물론 아가씨가 보고 싶은 마음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무엇을 위해 전하가 이곳에 남았는지를 찬찬히 이야기하려던 찰나였다.
에드윈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무엇을 걱정해. 내게는 유능한 그대들이 있는데.”
“……예?”
“광물 세율 따위야 이제껏 그대들이 잘해 왔잖아. 알아서 마무리하면 되겠지.”
광물 세율에 대한 협상을 맡기겠다는 파격적인 말에 윈스터가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비밀 문서는요?! 아가씨께서도 그 문서가 오기만을 기다리실 텐데!”
“그러니 내 아가씨께서는 모르게 일을 잘 처리해서 문서를 가져와야겠지?”
“전, 전하?”
당황해 눈동자가 흔들리는 윈스터는 안중에도 없는 듯 에드윈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내가 관심을 가져 봐야 황제가 침이나 질질 흘리겠지. 적당히 관심 없는 척. 이것도 작전이야. 그럼 경들, 고생해!”
애교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한 대공이 날렵한 걸음으로 복도를 뛰어가기 시작했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황제 궁의 시종장이 마침 그에게 용무가 있었다는 듯 예를 갖추었다.
“대공 전하. 황제 폐하께서 찾…… 전, 전하!”
당황한 시종장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대공은 훌쩍 계단을 뛰어내렸다. 황제 궁의 시종장이 당황하며 대공을 부르짖었다.
“대공 전하! 황제 폐하께서…… 전, 전하!”
“……전하께서는 이미 가신 듯한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광산 세율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두고 황제 폐하께서 기다리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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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세율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두고 황제 폐하께서 기다리시는데!”
어쩔 줄 모르는 황제 궁 시종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레오포드는 뒤돌아섰다.
연회장에서부터 삭일 수 없는 분한 마음을 안고 대공의 뒤를 따라 나오던 찰나였다.
훌륭한 기사라더니 제 기척조차 못 느끼던 놈은 무책임하게도 그의 기사한테 광산의 세율 협상을 맡기고 빠르게 사라졌다. 꽁무니를 내빼듯 달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레오포드는 설핏 한쪽 눈가를 찡그렸다.
“비밀 문서?”
무언지는 몰라도 놈이 갖고 싶어 하는 것.
찰나, 레오포드의 머릿속에 흩어진 퍼즐 조각 몇 개가 착착 아귀를 맞춰 가기 시작했다.
레오포드는 휙 소리가 나게 몸을 돌렸다. 목적지는 황제 궁, 그 가장 깊고 은밀한…….
이를테면 황제의 침실 같은 곳이었다.
* * *
“폐하, 폐……!”
쾅-. 황제는 애원하듯 저를 부르는 황후를 밀쳐 낸 뒤에 응접실의 문을 닫았다. 붉으락푸르락 분노 가득한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채로 거친 숨을 뱉었다.
“폐하, 황녀이옵니다. 폐하의 적통이에요. 부디 자비를……!”
“듣기 싫소! 그런 소리를 할 거면 썩 꺼지시오!”
문을 두드리는 가냘픈 소리에도 황제는 벌컥 화를 냈다. 놀랐는지, 정적이 찾아왔다. 오히려 반가웠다. 황제는 탁한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앉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끈이 떨어지고 가치가 없는 황녀라니.
멍청하기 짝이 없는 황녀. 동시에 제 일도 제대로 못 했던 황녀.
“정말, 황녀만 아니었어도…….”
섬뜩하게 뇌까렸지만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어떤 낯으로 사절단을 배웅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제 그가 가장 피하고 싶은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공, 황족을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수치 속에 처박은 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꼬였다.
타협을 봐야 하는데. 도통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초조함이 지나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때였다. 똑똑, 노크와 함께 시종장이 들어왔다.
이상하게도, 대공과 함께 돌아오라 보냈던 시종장은 혼자였다.
“왜 혼자 오는가. 시종장.”
“그, 그게.”
시종장은 황망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고했다.
“마델레이네 공녀를 보러 간다고, 비칸데르령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
.
.
“어떻게 그토록 탐하던 것을 두고 갈 수가 있어?!”
침실로 가는 복도. 황제는 분노를 터트리며 이마를 짚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놈에게 우선순위는 무엇보다 죽은 제 부모였는데. 이제 와서 바뀌기라도 한 걸까?
황제는 묵직하게 얹혀 오는 불안감을 애써 누르며 모퉁이를 돌았다. 그리고 잠시간 걸음을 멈추었다.
“……왜, 내 침실의 문이 열려 있지?”
탁하게 내뱉은 말에 침실 앞에서 벌벌 떨던 시종이 바닥에 엎드렸다. 사뭇 이상한 일이었다 황후한테도 문을 열지 않는 시종이 문을 열 법한 이라면……!
황제는 주먹을 말아 쥔 채 침실로 들어갔다. 침실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기만한 직감은 그를 침실의 가장 내밀한 곳으로 이끌었다. 설마. 아무리 요즘 들어 멍청한 짓을 한다 해도 태자가 황제의 침실에 들이닥칠 리가. 그것도 허락조차 없이.
불안한 심장이 일렁이는 순간, 황제는 침실 가장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초상화를 올려다보고 있는 레오포드를 발견했다.
“태자 너 이 자식이……!”
이곳은 자신의 가장 내밀한 공간이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황제와 달리 레오포드는 극도로 침착하게 중얼거렸다.
“이 여인이군요. 로웰의 공주가.”
“네놈이 감히……!”
“정말 대공과 많이 닮았습니다. 다만 눈은…… 공녀의 눈과 똑같군요.”
이상했다.
“맞습니까. 폐하?”
확신을 구하듯 저를 보며 묻는 아들의 얼굴은 근래 들어 가장 태연했다. 얼이라도 빠진 듯 멍청하게 굴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
탐색하듯 바라보는 황제의 눈에 레오포드는 빙그레 입꼬리를 올렸다.
“비밀 문서라 하면, 황녀가 빼앗겼다는 백수정 광산에 관한 문서입니까?”
“그걸 알아서 뭘 하려고 그러는 거야. 또 마리아 에텔 그 계집처럼 일을 망쳐 버리게?”
뼈 있는 독설에도 레오포드는 잔잔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만약, 대공한테 간절한 것이라면. 그걸 제게 주십시오. 폐하.”
“뭐?”
황제가 기함하며 레오포드를 향해 소리쳤다.
“보지 않았느냐! 내가 황녀한테 백수정 광산의 명의를 주어서 지금 이 황실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
“그걸 수습할 수 있습니다. 폐하.”
“뭐?”
자신만만한 레오포드의 모습에 황제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 이게 제가 알던 태자의 모습이었다. 힘 하나 없이 쳐진 모습으로 누군가한테 거절당하는 게 아니라.
오만하게 조소하듯 내려다보는 모습.
동시에 레오포드는 느리게 말을 꺼냈다.
“대공한테 그게 간절한 것이라면…….”
레오포드는 올리비아 마델레이네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거의 없다.
하지만 딱 하나만큼은 확신했다.
그녀는 제 사람에게는 늘 최선을 다했다.
그게 무엇이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 올리비아의 최선은…….
“저는 그걸로 올리비아를 다시 제 옆으로 데려올 수 있을 테니까요.”
비칸데르 대공, 그 개자식한테 닿아 있으니까.
바다 빛 눈은 짙게 잠긴 채 맹렬히 빛나고 있었다. 마치 심해의 깊은 곳처럼 보이는 눈 위로 섬뜩한 집착이 순간 반짝였다.
고고한 태자.
그의 목표는 올리비아가 다시 제 옆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공작은 올리비아의 손목에 멍이 들었다고 했다. 그 말을 떠올리자 짜릿한 희열이 등줄기를 스쳤다.
다시 돌아오면, 그때는 멍이 들지 않게 손목을 잡아 주어야지.
태자는 비스듬히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누군가를 완벽하게 사랑해 본 적 없는 태자가 할 수 있는 사랑이란, 겨우 그런 비뚤어진 집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