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73. 아내를 닮은 딸을 위하여 (73/151)


#073. 아내를 닮은 딸을 위하여
20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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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마델레이네 공작, 지오반니는 차마 말을 끝내지 못했다. 탁한 숨을 내쉬며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제 보석 같은 딸이 요즘 들어 저를 피했던 게 고작 올리비아, 그 애 때문이었다니.

애써 모른 척하려던 사실을 직시하는 순간 누군가 제 숨통을 조르는 것처럼 호흡이 가빠졌다. 참담하다 못해 지독했다.

그 애는 정말, 어디까지 저를 불행하게 하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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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가 뭐라고 했든, 그건 중요치 않아. 에셀라.”

아득해지는 정신을 다잡으며 지오반니는 천천히 말했다. 그건 에셀라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올리비아가 했던 모든 말들은 중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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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델레이네를, 전부. 지우겠습니다.”

 
마델레이네를 지우겠다던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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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공작님을 불행하게 한 건 아니에요.”

 
저를 도발하듯 했던 말도.

되지도 않는 소리였다. 그 애가 지오반니를 불행하게 만든 건 고작 저택에 온 순간부터가 아니었다.

돈이면 다 되는 무희인 그 애의 어미가 술에 취한 저와 함께 있던 이십일 년 전, 그 밤. 귀족파 수장인 엘킨 공작과 독대가 있던 그날 밤부터 그 애는 저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그 애의 효용 가치는 딱 에셀라 대신 황궁에 들이는 것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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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해요.”

에셀라의 젖은 목소리에 손을 내린 지오반니는 순간 가슴이 에이듯 아팠다. 저를 빼닮은 자수정 빛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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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아무 잘못도 안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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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지오반니는 이를 악물었다. 분노로 눈앞이 새까맣게 번졌다. 꽉 쥔 주먹은 감각을 잃을 정도였지만, 차마 제 딸한테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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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네 언니가 아니야.”

타이르려고 나간 말이 날카로웠다. 하지만 눈물이 맺힌 눈동자로도 에셀라는 고집스레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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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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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셀라!”

노성을 터트리고 지오반니는 아차 했다. 한평생 딸한테 이렇게 큰소리를 낸 적이 없었는데…….

왜 그 애가 얽히는 순간마다 저는 이렇게 불행해지는 걸까. 아예 그 애를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모든 게 괜찮았을까.

비참한 심정에 지오반니는 고개를 떨구었다. 거친 숨소리가 응접실에 쌓여 가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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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순간 그는 숨을 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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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저한테, 언니라고 알려 줬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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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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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언니는. 분명히, 제 언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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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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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언니예요.”

에셀라가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지오반니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한참 만에 시선이 거둬지고, 구두 굽 소리가 멀어졌다.

문이 열리고 닫힌 뒤에야 그는 완벽히 혼자가 된 응접실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문을 바라보는 자수정 빛 눈동자는 그리움과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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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셀라는 당신을 정말 쏙 빼닮았군.”

……헤이즐.

탁하게 내뱉은 말 뒤로 차마 부를 수 없는 이름이 떠올랐다.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에 칼이 박힌 것처럼 숨을 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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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형편없는 유모를 붙이고도 한번 들여다보지 않았어? 그 애는 아무 잘못이 없잖아!”

 
싸늘한 목소리가 떠오르는 순간, 지오반니는 입술을 깨물었다. 과거의 잔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 애가 저택으로 들어온 뒤, 굳게 닫혔던 헤이즐의 방문이 처음으로 열렸을 때였다. 문이 열리던 때만 해도 지오반니는 헤이즐이 저를 이해해 주기로 한 거라고 착각했었다.

하지만, 늘 따뜻하던 갈색 눈이 자신을 차갑게 바라보는 순간 현실을 자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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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지오, 당신이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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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어도 당신이 그 애를 데려온 만큼 책임은 져야 한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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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콘라드와 제이드의 동생으로서, 에셀라의 언니로서 내 아이들과 비슷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비수처럼 쏟아지는 목소리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애틋함과 아릿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지오반니는 잠시 비틀거리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마 위로 열이 올랐다. 목덜미가 당기고 찌르는 듯한 통증이 머릿속을 채웠다.

지오반니는 눈을 감았다. 목 뒤가 당겨 오는 증상이 느껴질 때마다 의원이 하라고 했던 행동이었다.

하지만 새까만 암흑이 찾아와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호흡이 가빠졌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헉슬리 경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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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 공녀님이 나가…….”

티 포트와 찻잔을 가져온 헉슬리 경은 황급히 트레이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채 공작 앞으로 다가갔다. 요즘 들어 안색이 좋지 않았지만 오늘처럼 희게 질린 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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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을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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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차나 한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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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잠시 말끝을 흐리던 헉슬리 경은 체념했다. 공작은 뜻을 굽히는 일이 없었다. 대쪽 같은 성정으로 내뱉는 말은 제가 무엇을 한다 해도 바꿀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헉슬리 경은 다시 트레이를 가져왔다. 김이 올라오는 티 포트를 들어 찻잔에 차를 따랐다. 찻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공작의 한쪽 눈썹이 추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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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마시던 차는.”

눈앞의 찻잔에 담긴 차는 수색이 옅은 풀색이었다. 평소 제 예민한 신경을 누그러뜨리던 차는 투명한 갈색이었다. 그 말에 헉슬리 경은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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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합니다, 공작님. 제가 그 차를 구해 보려고 했는데.”

구하다니. 수년째 제 차는 늘 헉슬리 경이 담당하고 있었다. 신출내기 보좌관이었던 그는 처음부터 제 취향에 맞는 차를 내왔었다.

물끄러미 헉슬리 경을 바라보던 공작은 곧 침음을 삼켰다. 머릿속에 반사적으로 저택에서 마시던 차가 떠올랐다.

집무실로 가끔씩 에셀라가 가져오던, 투명하게 갈색으로 우러나오던 차들.

텁텁하게 막힌 기억 속에서 이상하게 흐릿한 모습 하나가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 처음 이 차가 제게 올라오기 시작했던 시절 한 여자아이의 앳된 모습이 점점 선명해졌다.

공작은 이내 상념을 떨쳐 내듯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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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칸데르령에서는 아직도 답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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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죄송합니다.”

헉슬리 경의 자신 없는 대답에 입안이 모래알로 가득 찬 것처럼 꺼끌거렸다. 그러다 공작은 느리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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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슬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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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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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칸데르령에 다녀오게.”

헉슬리 경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보좌관을 한 명밖에 두지 않는 공작이 저를 비칸데르령에 보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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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한테. 저택으로 돌아오라고 직접 전하게.”

그것도 첫째 공녀를 위해서.

처음 듣는 말에 헉슬리 경의 심장이 조금 뛰었다. 늘 기대를 품은 초록색 눈으로 이 집무실을 바라보던 첫째 공녀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기뻐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첫째 공녀가 온다면 사소하게 틀어진 것들조차 모두 제자리를 찾을 것이었다.

혈관 질환을 앓고 있는 공작님의 병환도, 갈 때마다 어딘지 묘하게 쓸쓸해진 공작저도.

조금 전 고개를 똑바로 든 채 눈물 맺힌 얼굴로 나가던 둘째 공녀님의 얼굴까지.

헉슬리 경이 재빨리 움직였다. 그러는 사이, 공작은 나직한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건조한 눈을 껌뻑였다.

올리비아. 그 애를 다시 저택으로 들이는 것은 오로지 제 딸을 위해서였다.

……헤이즐을 닮아 마음이 여린 에셀라를 위해.

제게 늘 불행을 가져오는 그 애를 아주 조금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

지오반니는 다시 눈을 감았다.

지금 제 속내를 안다면, 헤이즐이 아주 조금은 저를 용서해 주지 않을까 간절히 바라면서.

눈을 감은 시야에 몸서리치게 캄캄한 어둠이 들어찼다. 그곳에서 지오반니는 헤이즐의 목소리를 갈망했다.

하지만 구원은 찾아오지 않았다.

* * *

에텔가의 마차가 황녀 궁의 정문을 통과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보며 흥, 하고 마리아 에텔은 콧방귀를 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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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입궁하라시는 황녀 전하의 명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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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성녀 같으신 황녀 전하께서 우리 아가씨를 찾으시다니. 아가씨 이제는 정말 태자비 전하라고 불러야겠어요.”

 
조금 전, 저택에 황궁 시종이 찾아왔었다. 유모는 반색하며 서둘러 제 외출 준비를 도왔다. 하지만 마리아는 내심 짜증이 났다.

안 그래도 거의 매일 태자비 궁에 입궁하는데, 하루 쉬는 날을 못 참고 부르다니.

분명 여름 연회 때문이겠지. 오늘 티 파티를 한다고 그리 연락을 해 대는 걸 결국 참석하지 않았더니 끝나자마자 부른 모양이다.

지난번 부름은 레오포드한테 어리광을 부려 피했으니, 오늘만큼은 피할 수도 없었다.

아니, 피할 이유도 없었다. 어쨌거나 저는 지금 황녀의 일을 대신해 주는 입장이었고, 동시에 이제는 제 신분도 일개 후작 영애가 아닌 태자의 약혼녀인 예비 태자비였으니까.

마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우아하게 마차에서 내린 마리아는 드레스 자락을 잡은 채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다.

앳된 시녀가 마리아를 보고 얼른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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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접실로 모시겠습니다. 따라오신 유모께서는 이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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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아가씨 덕분에 이게 무슨 호사랍니까.”

유모가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황궁에 따라온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했는데.

막상 마리아도 이렇게 예를 갖춘 대접은 처음이었다.

후작 영애의 신분만으로는 누릴 수 없는 공손한 인사였다. 짜릿한 기분에 마리아의 입술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그래. 저는 곧 태자비가 될 사람이었다. 황녀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시녀한테 당부를 한 게 틀림없다.

이쯤 비밀로 했으면 저도 황녀에게 사실을 털어놓을 차례였다.

황후 폐하와 엘킨 공작의 도움을 받아 여름 연회 때 약혼식을 치를 예정이라고.

어쩌면 이미 황후 폐하께서 황녀한테 언질을 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이렇게 시녀들이 공손한 거라면, 말이 되었다.

예쁜 콧대가 조금 더 높아졌다.

마리아는 의기양양하게 걸음을 옮겼다. 궁의 흉흉해진 분위기는 전혀 느끼지 못한 채로 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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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에텔, 황녀 전하를 뵙습니다.”

황녀 궁의 응접실.

낭랑한 목소리가 응접실을 울렸다. 완벽한 자세로 예를 갖춘 마리아 에텔은 고개를 숙인 상태로 눈을 깜빡였다.

일어나라거나, 와 주어 고맙다는 인사가 떨어지지 않았다. 예법상 낮은 신분의 사람은 윗사람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단 삼십 초만 유지해도 이마에 땀이 맺힐 자세가 계속 이어졌다.

마리아도 티 파티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영애들을 골릴 때 자주 쓰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당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저는 에텔 후작가 영애이자 태자의 하나뿐인 연인이었다. 그 누구도 저를 이렇게 모욕할 수는 없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마리아 에텔은 혼란스러웠다. 분명 황녀는 저를 좋아해야 했다. 엘킨 공작님이 황후 폐하께 잘 이야기해 주신다고 했고, 무엇보다 레오포드가 황녀를 잘 다독였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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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다독였으니 앞으로는 마리아, 네가 잘해야 돼. 알겠지?”

 
분명 무슨 오해가 있는 모양이었다. 마리아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이내 윽, 얕은 신음을 냈다.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누군가 억센 힘으로 저를 잡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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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녀 전하께 예를 갖추십시오. 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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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압감 있는 목소리보다 말에 섞인 단어가 더 분했다. 영애라니! 저는, 태자비가 될 사람이었다.

하지만 문이 닫힌 이곳에서 저는 혼자였고, 황녀는 보이지도 않았다.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마 곱게 단장한 화장은 땀에 형편없이 무너졌을 게 뻔했다. 항상 가늘게 유지하는 팔과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에텔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억겁 같은 시간이 흐르는 게 고스란히 느껴질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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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얼굴 한번 보기 힘들군요.”

나른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마리아를 거칠게 일으켰다. 눈물인지 땀인지 모르게 부옇게 번진 시야 너머 환하게 웃고 있는 황녀가 보였다.

가늘게 휜 고운 눈매 속 바다 빛 눈동자는 조소를 가득 담아 마리아 에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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