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71. 다시 제도로 (71/151)


#071. 다시 제도로
2022.11.02.


윈스터는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떨리는 건 대공 전하께 기사의 서약을 바칠 때 이후 처음이었다.

우연히 성으로 오는 길에 만난 베서니한테 오늘 아가씨께 기사들이 맹세를 바친다는 말을 듣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아가씨에 대한 충성심이야 모두가 비슷하겠지만 두 번째 맹세를 바치는 기사는 저여야 했다.

저는 대공저에서부터 아가씨께 충성을 다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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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을 때, 윈스터는 잠시 지옥을 다녀왔다. 맹세를 받아들이는 문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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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제 생일일까요?”

하지만 이내 이어진 말은 다시 윈스터를 천국으로 돌려 두었다.

검을 받아 들며 아가씨가 농담조로 말했다. 태연한 척하지만 역시 떨림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윈스터는 빨리 달려오길 잘했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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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커다란 선물을 받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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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내 맹세 때는 그렇게 이야기 안 해 주셨으면서.”

그 중얼거림에 에드윈은 잠시 투덜댔다. 하지만 그 또한 얼굴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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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예비 대공비로서, 경의 영광됨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부디 제 기쁨이 다시 경의 영광에 속하길.”

떨림 가득한 목소리가 연회장을 울렸다. 두 번째 맹세가 끝나자마자 정신을 차린 하워드와 디안이 순서를 다투듯 예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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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하워드 인터필드, 비칸데르에 충성을 맹세한 기사로서 아가씨의 검이 될 수 있는 영광을 허락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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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디안 스젤린, 비칸데르에 충성을 맹세한 기사로서 아가씨의 검이 될 수 있는 영광을 허락받고 싶습니다.”

연이어 무릎을 꿇는 기사들이 커다랗게 맹세를 바쳤다. 진심을 바치는 기사의 맹세가 이어질 때마다 환호성은 점점 커다래졌다.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 줄 모르겠어서. 올리비아는 입술을 한 번 달싹였다. 그리고 터질 듯 벅찬 마음을 삼키며 그 모든 맹세를 받아들였다.

그 순간, 환호성 사이로 술에 취한 듯 발음이 새는 소리 하나가 섞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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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께서 이제 완전히 비칸데르의 사람이 되신 거야! 역시 대공 전하께서 승리하셨어! 이렇게 완벽한 복,”

읍-. 순식간에 목소리가 사라졌다. 제대로 듣지 못한 올리비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에드윈은 날카로운 눈으로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맹세를 바쳤다는 기쁨에 들떠 있던 윈스터와 하워드, 디안, 그리고 마법으로 폭죽을 터뜨리던 베서니, 맹세를 바치던 많은 기사들까지.

하지만 그 누구도 티를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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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배사 한번 해 주십시오, 아가씨!”

우레 같은 환호에 눈을 반짝이는 올리비아의 기쁨을 방해하고 싶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결국 올리비아가 다시 단에 섰다. 어느새 비어 있던 올리비아의 잔에는 황금빛 과실주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올리비아가 잔을 들자 연회장이 다시금 조용해졌다. 말 한 음절조차 놓치지 않겠다는 듯 수많은 기사들과 가신들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담긴 건 믿음과 충성, 그리고 다정한 애정이었다.

콧날이 시큰하고 목이 따끔했지만, 올리비아는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았다.

올리비아는 잔을 치켜올렸다. 동시에 우아하고 위엄 있는 목소리가 연회장 위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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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칸데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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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하여!”

우렁찬 후창이 따라붙었다. 짠, 하고 부딪치는 잔들의 소리가 마치 악기 선율처럼 짜랑하게 번졌다.

.
.
.

연회가 끝난 깊은 밤.

유쾌한 성내의 분위기와 달리 응접실 안은 얼음처럼 싸늘했다.

대공은 서늘한 눈으로 책상 앞에 선 브록 드로윈을 바라보았다. 윈스터와 디안, 그리고 하워드조차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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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께서 이제 완전히 비칸데르의 사람이 되신 거야! 역시 대공 전하께서 승리하셨어! 이렇게 완벽한 복,”

 
그 말을 지껄인 건 4 기사단의 견습 기사였다. 연회의 분위기를 망칠 수 없어 간신히 참은 뒤 브록을 불러 경위를 묻자, 그에게서 나온 답은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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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나가 있는 동안 아가씨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희는 당연히 전하께서 선대 대공비 전하께서 억울하게 끌려가셨던 것에 대해 황제에게 완벽히 복수를 하셨다고 판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전하.”

그 말을 듣는 하워드는 머리를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선대 대공비 전하의 이야기를 아는 젊은 기사들은 거의 없었다. 그중 한 명인 브록이 하필 저렇게 생각했을 줄이야.

마델레이네 공작가의 공녀가 온다는 것에 기사들이 거세게 반발할 걱정만 했었다. 저런 식으로 선대 대공비 전하의 이야기와 연관 지어 아가씨를 모셔 온 것을 황실에 대한 복수로 생각할 줄은 몰랐다.

어쩐지. 오자마자 히죽히죽 웃으며 아가씨에게 호감을 표할 때부터 알았어야 했는데.

고개조차 들지 못할 정도로 숨 막히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베서니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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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께서는 푹 잠드셨습니다.”

그 말에야 겨우 에드윈의 눈매가 풀어졌다. 응접실 안 모두의 어깨를 짓누르던 위압감이 조금 가셨을 때에서야 나지막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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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속 제대로 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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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전하.”

저 한마디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은 브록 드로윈도 잘 알고 있었다.

날아간 깃털처럼 이미 주울 수 없는 소문을 수습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지만 지금 브록의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절대로 아가씨께 소문이 들어가지 않게 기사들을 단속하는 것.

브록이 굳은 표정으로 응접실을 나갔다. 한시가 급한 사안이었다. 문이 닫히고서야 대공은 느른한 얼굴로 고개를 까딱였다.

이제 보고하라는 얼굴에 윈스터는 제가 가져온 초대장을 바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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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연회의 초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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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에 대한 건 다 이 성안으로 들어올 수 없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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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여름 연회에 헤페르티 사절단을 불러들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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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머리를 좀 썼네.”

에드윈이 나지막하게 말하며 초대장을 책상 위로 던졌다. 이제 필요를 다한 초대장을 바라보며 하워드도 같은 생각을 했다.

여름 연회에 헤페르티의 사절단을 초대한다니.

대공이 귀족 회의에서 ‘헤페르티와의 협약을 첫 공무’로 삼겠다고 단언한 뒤였다.

이렇게 된 이상 연회에 참가하지 않는다면, 황실 쪽 인사들이 대공의 불참을 부풀려 떠들어 댈 게 눈에 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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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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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지.”

하워드뿐 아니라 응접실에 있는 모두의 눈이 커다래졌다. 흔쾌히 대답을 한 에드윈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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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렇게들 놀라.”

응접실에 흐르던 서늘한 기운이 싹 사라졌다. 당황한 윈스터가 더듬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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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야 당연히 제도 쪽으로는 가지 않으실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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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공무인데 당연히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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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그리 공무에 신경 쓰셨습니까. 전하.”

베서니가 놀라움을 담아 중얼거렸다. 그 말에 에드윈의 눈매가 느슨하게 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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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광물 세금이 아까워서 말이지.”

베서니와 디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말을 알아듣는 건 윈스터밖에 없었다.

궁금증 가득한 얼굴들을 외면한 채 에드윈은 윈스터가 소중히 안고 있는 것을 가리켰다. 아까부터 안고 있던 서류 봉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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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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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아가씨께 온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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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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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냐면, 황궁의 여름 연회 초대장과.”

술술 말하던 윈스터의 입이 갑자기 아교를 바른 것처럼 딱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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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대공의 물음이 떨어졌지만 윈스터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공작가의 편지들이야 별문제 되지 않았지만, ‘리브 그린’ 님한테 온 편지는 달랐다.

아가씨가 ‘리브 그린’이라는 비밀이 이 자리에서 밝혀져서는 안 되었다. 이건 대공 전하와 소벨, 하워드 그리고 저까지만 아는 특별한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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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말 아가씨께서 ‘리브 그린’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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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해, 윈스터. 대공 전하께서 비밀이라 하셨는데. 어느 틈에 들은 거야.”

 
멋대로 비밀을 알아 버린 자신 때문에 곤란해하며 머리를 짚던 하워드의 모습은 냉큼 잊어버린 채로 말이다.

윈스터는 당당하게 고개를 들어 올리며 베서니한테 서류 봉투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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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서니. 아가씨께 전달 부탁합니다.”

그 서류 봉투를 받아 들며, 베서니는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대공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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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모르겠지만 아가씨께서도 연회에 가신다고 하시면 어떻게 하죠?”

아직 베서니는 그 험한 제도로 아가씨를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 황궁으로 간 제 공주님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대공 전하는 대답 없이 피식 웃었다. 그제야 베서니는 제가 괜한 걱정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드윈 로웰 비칸데르.

제 앞에 있는 대공 전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그 일을 반복되게끔 내버려 둘 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강하게 황실을 압박한다면 모를까.

* * *

환한 아침, 올리비아는 드레스 자락을 말아 쥔 채 복도를 걸었다. 늘 사뿐사뿐 걷던 걸음이 점점 빨라져 숫제 뛰는 것처럼 보였다. 뒤따라오던 베서니가 놀라 “아가씨!” 하고 외쳤다.

아직 술기운에 머리가 아찔할 정도로 아프고 백여 개가 넘는 예검을 받아 들었던 손목이 뻐근하게 아팠지만 올리비아는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조금 전 일어나자마자 보았던 편지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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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델레이네 공작저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어제 윈스터가 가져왔어요.”

 
마델레이네 공작저에서 왔다는 서류 봉투. 그 안에는 에셀라와 샐리의 편지, 그리고 고급스러운 초대장과 더불어 또 하나의 서류 봉투가 들어 있었다.

저게 뭐지.

궁금증이 밀려왔지만 올리비아는 에셀라와 샐리의 편지부터 읽었다. 익숙한 필체를 보는 순간 몰려드는 묘한 반가움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샐리의 편지 끝에 적힌 문구를 본 올리비아의 눈이 커다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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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씨께서 정말로 기다리시던 편지를 보내 드릴 수 있어 기뻐요.

 
올리비아는 작은 서류 봉투를 열어 그 안에 있던 편지의 발신인을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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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기사’의 편지. 그것도 여덟 통이나.

벅찬 기분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올리비아는 한 통의 편지를 읽은 후 무작정 바깥으로 나선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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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으시다면, 돌아오는 수요일 오후에 러헤이른 거리에서 뵈었으면 합니다.

 
이 이름 모를 기사가 황실 기사단의 기사인지, 아니면 비칸데르의 기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편지가 온 것만으로도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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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쁨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머리에 번뜩 떠오르는 사람은 에드윈뿐이었다.

하지만 에드윈을 찾았을 때, 올리비아는 쏟아지는 에드윈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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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로 가야 할 일이 생겼어요. 여름 연회, 거기에 헤페르티의 사절단도 오기로 했거든요.”

여름 연회.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올리비아는 제가 읽지 않은 황궁의 초대장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늘 준비하던 여름 연회가 이맘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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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한테도 초대장이 왔어요. 물론, 참석은 올리비아의 선택이에요. 어떻게 하고 싶어요?”

선택.

올리비아는 가만히 그 말을 곱씹었다. 일 년간의 유예를 부여받은 뒤로, 올리비아는 그 일 년 동안 제도에 갈 생각이 단 한 자락도 없었다.

제도에 있는 그 누구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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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생각을 먼저 해야 할 텐데. 실리를 따져야 할 텐데.

이름 모를 기사의 편지와 더불어 에드윈 혼자 제도로 간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을 때. 올리비아는 저도 모르게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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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갈래요. 제도로.”

결연한 말에 에드윈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 * *

화사하던 장미들이 다 지고 새로운 여름 꽃들이 만개한 황녀 궁의 정원.

그늘을 드리운 차양 아래에서 ‘황녀의 여름 연회 준비’라는 명목하에 매해 열리던 티 파티가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티 파티라기에 무색할 정도로 테이블 앞에 앉은 모두가 조용히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 불편한 적막을 깬 건 황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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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 지금 뭐라고 한 거죠?”

억지로 입매를 끌어당긴 황녀는 제 오른편에 앉은 에셀라 마델레이네를 바라보았다.

에셀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순진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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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무슨 말을 했죠?”

그러면 그렇지. 아무리 눈치 없어도 작은 공녀가 제게 그런 말을 할 리가…….

희미한 고양감에 입꼬리를 올리던 황녀의 얼굴은 다음에 이어지는 에셀라의 말에 살짝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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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설마 이번 연회 콘셉트가 어디에선가 본 것 같다는 제 말이 신경 쓰이시는 건 아니시죠?”

순간 황녀의 눈이 사납게 번뜩였다. 에셀라는 여유롭게 웃었다.

그 덕에 잔잔하게 가라앉은 자수정 빛 눈동자 아래 얼마나 깊은 독기가 서려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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