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70. 맹세와 충성, 그리고 이상한 이야기 (70/151)


#070. 맹세와 충성, 그리고 이상한 이야기
202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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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칸데르 성의 드넓은 연회장.

가신들과 짐승 토벌에서 복귀한 기사들까지 꽉꽉 들어차 앉아 있는 연회장에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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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니브 거리 구획 정리의 시작.”

대공이 들어 올린 투명한 와인 잔, 그 안에 든 금빛 과실주가 찰랑였다.

건배사를 하던 대공은 잠시 말을 끊었다. 동시에 가신들과 기사들은 모두 웃음을 참았다.

이 성대한 연회가 귀한 아가씨가 처음으로 비칸데르에서 추진한 사업인 예니브 거리 구획 정리 시작을 축하하기 위한 연회라는 것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잔을 든 채 대공을 쳐다보는 아가씨의 눈빛이 빤했다.

보석 핀으로 우아하게 틀어 올린 은발에 신비로운 초록 눈. 보기만 해도 고귀한 여자의 모습에 기사들은 저도 모르게 아가씨의 편을 들었다.

어서 다음 말을 이어 달라는 소리 없는 강요들이 쌓여 갔다. 대공이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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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무사히 복귀한 기사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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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하여!”

연회장이 떠나갈 듯 우렁찬 후창과 동시에 잔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늘 강하고 냉혹한 대공 전하가 남의 뜻에 순순히 따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번화가인 소네어 거리에 들어설 때부터 대공 전하께서 좋은 반려를 만나셨다는 소문이 자자하더니.

크하하- 이내 곳곳에서 참을 수 없다는 듯 호탕한 웃음소리가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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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내가 죽기 전에 대공 전하께서 짐승 토벌을 다녀온 걸 치하하기 위한 연회를 열어 주시는 걸 받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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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말이야. 늘 있는 짐승 토벌이 뭐 별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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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아가씨 덕분이라며? 베서니 님이 이렇게 과실주도 넉넉히 꺼내 주시고 말이야. 아직도 경계에서 꿈을 꾸는 것 같다니까?”

이제 막 복귀한 기사들이 신기하다는 듯 눈을 비볐다. 아무리 눈을 비벼 봐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감탄을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하워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짐승 토벌을 치하하는 연회를 여는 것도, 베서니의 과실주를 넉넉하게 마실 수 있는 것도 다 아가씨 덕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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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때는 늘 베서니가 폭죽을 터트려 준다면서요? 정말 대단하세요!”

 
엄연히 따져 보면 베서니가 거리의 축제에 가게 된 원인은 아가씨였다. 반짝이는 눈으로 축제 때마다 폭죽을 터트리는 노고를 칭찬해서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소네어 거리에 폭죽을 터뜨리러 가게 만들었으니까.

물론 그 뒤에서 속살거린 자가 디안이라는 것을, 디안의 뒤에 대공이 있었다는 사실은 베서니만 모르는 비밀이었다.

하워드는 드물게 씩 웃으며 저 멀리 아가씨와 대공 전하가 앉아 계실 단 위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디안과 눈이 마주쳤을 때, 둘은 서로를 향해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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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왜 이리 다들 술을 안 마십니까?”

오늘 막 복귀한 기사 중 한 명이 의아한 듯 말했다.

평소라면 순식간에 오크 통을 서너 개 비우고도 거뜬할 동료들은 물론, 술에 취하지 않는다 소문난 하워드 인터필드 경조차 잔으로 입술만 적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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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정말 중요한 날이거든.”

하워드가 짧게 말했다. 하워드를 보던 기사가 눈을 커다랗게 뜨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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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무리 그렇다 해도 다들 예복에 예검까지. 마치 전하께 기사의 서약을 바쳤던 날 같습니다.”

그 말에 매서운 기사들의 얼굴 위로 어렴풋한 추억이 일렁였다.

냉혹하고 척박한 북부 비칸데르에 빛나는 영광을 되찾아 온 대공 전하께 기사의 서약을 바치던 날은 여기 있는 그 어떤 기사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었다.

어쩌면 오늘은 그만큼 중요한 날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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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가씨한테 맹세를?”

 
조금 놀란 얼굴이던 대공 전하한테도 단단히 허락을 받았다. 하워드를 비롯한 기사들은 비장한 얼굴로 올리비아가 앉아 있는 단을 바라보았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이제 곧 아가씨께 기사의 맹세를 바칠 시간이었다.

* * *

첫 잔을 마실 때, 올리비아는 내심 당황했다.

이번 연회는 지난번 연회와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기사들이 더 많아졌는데도, 한껏 달아올랐던 지난번과 달리 오늘 연회는 상당히 차분했다.

혹시 짐승 토벌을 마치고 돌아온 기사들의 영향일까. 비칸데르에 온 이후 오늘 처음 만난 그들은 저를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긴장한 얼굴을 보았는지 옆에서 에드윈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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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리 긴장해요, 올리비아. 오늘 앤서니가 칠면조를 신경 썼다고 하는데. 한 입 먹어 봐요. 응?”

하필 칠면조라니. 긴장 위로 ‘이름 모를 기사’에 대한 생각까지 겹쳐졌다.

생각해 보면 이 비칸데르의 기사로만 속단할 수는 없었다. 그 진영에는 제이드가 포함된 황궁 기사단도 있었으니까.

떨림을 달래기 위해 올리비아는 습관처럼 양손을 꼭 맞잡았다. 잘게 떨리는 그녀의 손을 바라보던 에드윈은 애매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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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아니면 제대로 먹지도 못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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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올리비아가 되물었다. 별다른 대답 없이 에드윈이 빙그레 웃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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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걸걸한 목소리가 다가왔다. 처음 보는 다갈색 머리의 기사가 예를 갖춘 채 올리비아와 에드윈을 바라보았다. 멋들어지게 기른 콧수염의 존재가 낯설었다. 에드윈은 기사를 향해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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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야, 드로윈 경. 여전히 콧수염이 달려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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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멋진 콧수염이야말로 제 상징 아니겠습니까.”

시원스레 웃던 기사가 잠시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시선에 담긴 호의에 올리비아가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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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아가씨께 잠시 인사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당연하게도 에드윈에게 허락을 받는 모습이 새삼 낯설었다. 그러고 보니 제도의 대공저와 이 비칸데르령에서 저에 대한 허락을 에드윈에게 받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올리비아가 잠시 기사를 바라보는 사이, 에드윈의 잘생긴 미간이 설핏 구겨졌다. 순식간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어깨를 찍어 누르는 듯한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연회장을 휘감았다.

찬물을 끼얹은 듯 연회장이 조용해졌다. 기사들과 가신들은 모두 침 삼키는 소리까지 조심하며 대공을 바라보았다. 붉은 시선만으로도 연회장 구석구석을 압도한 대공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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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올리비아가 원하는 대로.”

그 말에 하워드는 사나운 눈으로 브록을 노려보았다.

아가씨는 이제야 겨우 스스로 원하는 것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그에 따라 이 비칸데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가씨 본인의 의사였다.

대공 전하께서 먼저 못 박은 명이라고 강조했는데 저 충성심만 높은 멍청이가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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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반가워요. 드로윈 경.”

뭔가 이상한 기운에 올리비아가 말했다. 잠시간 얼어 있던 기사가 몸을 낮추며 예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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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뵙겠습니다, 아가씨. 브록 드로윈, 대공 전하께 충성을 바친 비칸데르의 기사입니다. 이번에 대공령의 경계로 짐승 토벌을 나갔던 4 기사단의 부단장입니다.”

상당히 우호적인 첫인사였다.

반가움에 환하게 웃던 올리비아가 잠시 멈칫했다.

4 기사단이라니. 비칸데르 기사단이 여럿으로 나뉘는 줄 몰랐다.

올리비아가 의아해하는 부분을 알아챘는지, 에드윈이 부연 설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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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상 비칸데르 기사단의 편제는 네 개로 나뉘어요. 1 기사단 부단장이 인터필드 경, 2 기사단 부단장이 칼터 경, 3 기사단 부단장이 스젤린 경, 그리고 4 기사단 부단장이 여기 드로윈 경이에요.”

브록을 바라보던 에드윈의 눈이 슬며시 장난기를 머금었다. 그러더니 올리비아한테 몸을 바투 가져다 대었다. 깜짝 놀란 올리비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연회장 한구석에서 늑대의 하울링 같은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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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대공 전하. 그렇게 바뀌시는 건 너무합니다!”

올리비아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것만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드윈은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듯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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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칸데르 안에서는 기사들에게 따로 직급을 붙이지는 않지만 드로윈 경은 워낙 직책 붙이는 걸 좋아하거든요.”

아. 그제야 올리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브록은 자부심 넘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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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기사단의 단장은 대공 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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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내가 그런 사람이에요.”

에드윈이 올리비아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자부심 넘친다는 얼굴과 어깨를 으쓱이는 태도에 올리비아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눈매를 곱게 휜 채 맑게 웃는 올리비아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대공도 그런 그녀를 마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보는 사람마저도 기분 좋은 모습에 이제 막 복귀한 기사들은 흐뭇하게 웃었다. 하지만 본성에서 계속 아가씨를 봐 오던 기사들은 이때가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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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가씨. 괜찮으시다면 저도 아가씨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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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인사드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아가씨!”

수많은 전쟁을 겪어 온 노련한 기사들은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예를 갖춰 단 쪽으로 뛰어들었다.

수많은 기사들의 인사에 올리비아의 얼굴이 더 환하게 빛났다.

.
.
.

모두가 즐거운 연회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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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내 아가씨는 인기가 너무 많아.”

정정하겠다.

투덜거리는 에드윈을 제외하고 모두가 즐거운 연회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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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가씨랑 둘이 놀려고 일부러 베서니까지 떼어 놓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베서니 한 명만 있는 게 나았어.”

대공 전하의 한탄이 이어졌다. 그 말대로였다. 단 앞에 올리비아에게 인사를 하려는 기사들이 줄을 이뤘다.

에드윈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하워드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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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시던 일 아니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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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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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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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

대공이 억울하다는 듯 눈썹을 까딱였다. 조금 전, 단번에 연회장을 휘어잡았다 하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답고 선량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하워드는 넘어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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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못 하십니까. 제도의 대공저에서 아가씨의 목적지가 되고 싶다고 하시면서 약 시중을 핑계로 윈스터를 보내셨었던 분이 바로 전하셨습니다.”

고저 없이 사실을 읊는 목소리에 에드윈은 야트막한 한숨을 쉬었다.

맞다. 그때 그랬지.

승전 연회의 마지막 날이 지난 뒤, 아가씨가 앓아누웠을 때, 윈스터를 올리비아에게 보내긴 했다.

대공저에 더 정을 붙이고 제 옆을 절대 떠나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올리비아와 단둘이 있을 시간이 줄어들 줄이야.

……그냥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편안히 지내라고 할까.

에드윈은 짙게 가라앉은 눈으로 올리비아를 바라보다가 허탈하게 웃었다.

절대로 이루지 못할 욕망이었다. 저렇게 환하게 웃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올리비아한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건.

올리비아를 넘어오게 하려다 도리어 제가 속절없이 넘어갔다.

저 웃는 얼굴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바보처럼 헤실거리게 되다니.

달콤하게 풀어진 대공의 얼굴을 보던 하워드는 정신을 다잡았다. 그리고 줄어드는 기사들의 줄을 바라보았다. 이제 곧, 맹세의 시간이 다가왔다.

다섯 명, 네 명, 세 명, 두 명, 그리고 한 명. 마지막 기사까지 예를 갖춘 채 돌아서고, 디안이 커다랗게 목소리를 내려던 찰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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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펑- 펑- 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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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디안의 목소리보다 더 큰 소리와 함께 높은 천장 위로 화려한 폭죽이 터졌다. 올리비아는 물론 연회장의 모두가 눈이 커다래져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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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서니?”

연회장의 무거운 문이 열리는 걸 본 올리비아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열린 문가에는 역시나 베서니가, 그리고 생각도 하지 못한 인물이 한 명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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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를, 아가씨를 뵙습니다. 오랜만에 뵈었으니 연회에 늦게 온 불충함을 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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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터 경!”

올리비아가 반갑게 외쳤다. 장난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들어온 자는 윈스터 칼터였다.

화려하게 등장한 윈스터는 예복에 예검까지 착용한 차림이었다. 뚜벅뚜벅, 잔뜩 긴장한 얼굴로 윈스터가 단 앞까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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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드릴 것이 잔뜩이지만…….”

원칙상은 보고가 먼저였다. 하지만 에드윈이 눈썹을 까닥이며 피식 웃었다. 한 번 봐준다는 웃음에 윈스터는 예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조용한 사위, 예검과 화려한 복장까지.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지는 풍경에 올리비아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단의 앞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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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먼저,”

허망하게 순서를 빼앗긴 디안과 하워드가 도끼눈을 치켜떴다. 대공 전하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맹세를 바치는 기사는 자신들이 될 줄 알았는데 갑작스레 나타난 윈스터한테 순번을 빼앗기다니.

그들의 눈초리에도 아랑곳 않은 윈스터는 올리비아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고 검의 손잡이를 바치듯 들었다. 올리비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높은 천장의 연회장에 윈스터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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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윈스터 칼터. 비칸데르에 충성을 맹세한 기사로서 아가씨의 검이 될 수 있는 영광을 허락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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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윈스터의 얼굴 위로 에드윈의 맹세를 받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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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충성을 물어본 거예요. 정성스러운 보필이 아니라.”

 
소벨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비칸데르령의 사람들이 제게 충성을 바칠 것 같냐고 물었을 때 대답하지 못했던 소벨.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비칸데르 모두를 사랑하겠지만, 그들의 마음을 사려면 한참 더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모든 것이 환상처럼 사라질 것만 같아서. 덜컥 겁이 난 올리비아는 반사적으로 에드윈을 바라보았다.

초록색 눈 위로 두려움과 기쁨, 믿을 수 없다는 의심과 긴장이 뒤섞였다. 에드윈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응원을 건넸다.

그 끄덕임 한 번에 올리비아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에드윈은 들끓는 소유욕을 꾹꾹 삼켰다.

지독하게도 불덩이처럼 뜨거운 질투가 타올랐지만, 에드윈은 저 웃음 한 번이면 모든 게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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