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 다시 제도로 오게 만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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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8. 다시 제도로 오게 만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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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8. 다시 제도로 오게 만드는 방법
2022.10.23.
“나를 이곳에 유폐시킨들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서늘하니 단단한 목소리는 불현듯 황제를 십여 년 전의 그날로 데려갔다.
대공의 옆에서는 늘 환한 웃음이 가득하던 공주가 제 앞에서는 초상화처럼 무표정하게 저를 바라보던 그때로.
“글쎄. 난 공주와 생각이 다른데.”
“비칸데르 대공비, 입니다.”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이던 황제의 말을 끊은 공주의 눈이 아직도 선연했다.
황제는 잠시간 눈을 깜빡였다. 비록 그림이지만 보는 사람을 압도할 정도로 서늘한 기품은 황제가 탐하던 공주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 봤자 이제는 죽은 사람이고, 그 대단한 기세도 황제의 권력 앞에서는 전부 쓸모없었지만 말이다.
이곳은 황궁이었고, 저는 이 제국의 영원한 군주였으니까.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떠올리던 황제는 너그러이 웃었다. 그래서 그때 황제는 아량을 베풀듯 은근하게 운을 떼었더랬다.
“본적을 그렇게 부인하고 싶다면, 내 다른 신분을 줄 수도 있어. 공주.”
황제는 그때 공주가 그러겠다고 말만 한다면 모든 것을 줄 수 있었다. 그의 심장은 기대감으로 두근대었다. 비스듬히 휘어진 공주의 입술 새로 좋다는 말만 나온다면…….
“……그토록 로웰의 옛 영광을 상기시키고 싶으시다면, 나 역시 하나만 이야기하죠.”
서늘하던 목소리가 고운 노랫가락처럼 맑게 울렸다.
“로웰에는 재미난 전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신비로운 건, 고귀한 목소리로 진심을 담아 소리를 내던 사람의 이야기죠. 궁금하지 않나요? 진심을 담아 노래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똑똑-.
침실 너머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기억에서 깨어난 황제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무리 저를 거절하는 모습이었다 한들, 제가 그토록 원했던 여인에 대한 추억이었다.
누군들 가만히 두지 않겠노라 노여워하던 황제가 이내 한숨을 뱉었다.
생각해 보면 이 밤에 황제의 침실을 두드릴 사람은 몇 없었다.
황제는 초상화 위로 거칠게 휘장을 드리웠다. 공주가 모습을 숨긴 자리를 아쉽다는 듯 바라보다 문가로 성큼 다가섰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황후. 이 밤에 어쩐 일이야.”
황제의 나직한 목소리에 성가심이 묻어났다. 하지만 황후는 애달픈 얼굴로 침실 안쪽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폐하, 긴 밤을 기다리지 못하고 며칠 간이나 딸을 보지 못한 어미로서 황망히 달려왔습니다. 황녀가 도착했다고 들었는데.”
“한발 늦었군, 황후. 레이나는 이미 제 궁으로 돌아간 지 오래야.”
황제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이쯤 하면 황후가 돌아갈 만도 했다. 하지만 황후는 소녀처럼 웃으며 황제의 침실로 들어섰다.
무엄하게도 허락 없이 제 공간을 침범하는 모습에 황제는 눈썹을 날카롭게 추켜세웠다.
“밤길이 어두워서요. 설마 저를 이리 돌려보내지는 않으시겠죠?”
매혹적인 목소리에 황제의 미간이 풀어졌다. 한결 수그러든 기세에 황후는 입가를 가리며 살포시 웃었다.
.
.
.
“보존 마법을 걸 수 있는 마법사가 폐하의 침실에 들어갔다 합니다.”
깊은 밤, 시종의 말을 떠올리던 황후는 느리게 눈을 떴다. 옆에서 곤한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리는 것을 확인한 후에 황후는 상체를 일으켰다.
저기겠지. 기민한 눈으로 침실 한쪽을 살핀 황후가 시린 웃음을 입매에 물었다.
침실 가장 깊은 곳, 저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 황후는 명확히 알고 있었다.
“다시는……. 다시는 이곳에 들어오지 마시오.”
아직도 화가 가득한 황제의 노성이 떠올랐다. 갓 황후가 되었을 때 멋모르고 들어갔었던 저곳에는 황제의 집착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휘장이 드리워져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금발의 여인.
후에 비칸데르 대공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온 제국을 뒤덮었었다. 그때 그의 아내인 대공비가 책임을 지기 위해 궁으로 왔을 때에서야 황후는 그림 속 여인이 대공비라는 것을 깨달았다.
흥.
황후는 싸늘한 눈으로 황제를 내려다보았다. 태자와 황녀가 제 피를 이어받아 다행이었다. 적어도 이렇듯 어리석게 지나간 과거에 매달리는 짓은 하지 않을 테니까.
황후는 제 두 자녀를 떠올렸다.
올리비아 그 모자란 것을 쓸모 있게 부리며 사교계의 꽃으로 등극한 황녀와 제국의 번영을 위해 천것조차 옆에 두는 의젓한 태자.
그녀는 다시 만족스레 웃으며 침대에 누웠다.
내일은 황녀를 만나야 했다. 자랑스러운 제 핏줄은 분명 재미난 이야기를 가지고 와 저를 즐겁게 해 줄 게 틀림없으니까.
컴컴한 밤, 어둠을 헤치고 시린 달빛이 황후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리고 이내 구름이 달을 감쌌다.
단 한 점의 빛조차 황후에게 닿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 * *
“오셨습니까. 전하.”
황녀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시립해 있던 시녀장과 휘하의 시녀들이 고개를 숙였다. 황녀는 날카로운 눈으로 제 궁을 살폈다.
오랜만에 돌아온 황녀 궁은 우아한 제 취향 그대로였다. 궁으로 들어서자 훅 끼치는 장미 향에 황녀의 눈매가 풀어졌다.
그 시골 촌뜨기 같은 카탕타 자작저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도 잠시였다.
“에텔가에 소식은 전달했나요?”
“예. 조금 전 기사를 보냈습니다.”
나직한 황녀의 물음에 루하스 남작 부인이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그러면 에텔 영애가 올 때까지 연회에 대한 보고부터 받죠.”
하지만 정작 응접실에서 보고가 시작되었을 때, 황녀는 그 어떤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
연회의 콘셉트는 물론, 연회장을 어디로 할 것인지에 대한 기초적인 계획도 없었다. 심지어 초대 명단조차 이렇게 빈틈이 많다니!
참석 가능 회신 목록에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던 올리비아 마델레이네의 이름이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묻자 시녀장은 황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에텔 영애의 말로는 아직 답이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 황녀가 어이없다는 듯 헛숨을 터트렸다. 황녀의 얼굴이 화로 붉어졌다.
이렇게 엉망인 보고는 처음이었다.
안 그래도 마리아 에텔이 연회를 준비한다는 것부터 걱정이었는데, 그 걱정이 기우로 끝나지 않다니!
그때였다. 에텔 영애의 입궁 소식을 알리러 온 게 분명한 시녀가 응접실 안으로 들어왔다. 시녀장은 이제야 살겠다는 듯 다급하게 시녀한테 물었다.
“에텔 영애는 어디 있고 혼자 들어오죠?”
“저, 그게…….”
어쩔 줄 몰라 하는 시녀의 모습에 황녀가 벌컥 화를 냈다.
“영애가 어딨냐는 말에 왜 대답을 못 해!”
“지금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입궁하겠다고…….”
놀란 시녀가 줄줄 말했다. 그 대답에 당황한 건 시녀장과 루하스 남작 부인뿐만이 아니었다.
황녀가 기가 다는 듯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정적이 이어지는 응접실은 마치 태풍의 눈처럼 위태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때, 황녀가 중얼거렸다.
“……오라버니께도 말씀을 드려야겠지. 새로 들인 약혼녀가 얼마나 형편없는지는 아셔야 할 테니.”
황녀의 손에 들려 있던 초대 명단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그 서류를 바라보던 황녀의 눈이 형형하게 번뜩였다.
.
.
.
한편 황제 궁.
야밤의 조용함을 틈타, 한 시종이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황급히 주머니에서 종잇조각을 꺼내 무어라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이 종잇조각이 제도의 비칸데르 대공저까지 전해지는 데에 고작 몇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 * *
새벽 같은 아침이었다. 윈스터가 신이 난 얼굴로 응접실에 들어섰다.
“내기는 내가 이겼어. 황제가 백수정 광산의 소유자를 모른다는 내기, 잊지 않았지?”
윈스터가 유쾌하다는 듯 웃으며 종잇조각을 흔들어 보였다.
그 안에는 황제와 황녀의 만남이 평소처럼 별일 없이 끝났다고 적혀 있었다.
소벨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웃기고 있네. 그런 내기 한 적 없잖아.”
“지금 말하잖아. 돈 내놔, 소벨.”
“당장 비칸데르령으로 꺼져.”
윈스터는 너무하다며 투덜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벨은 황궁의 배달부가 가져온 초대장을 바라보았다.
이른 새벽, 은밀히 건네받은 쪽지 말고도 매일같이 대공저에 도착하고 있는 이 초대장에는 여름 연회에 대한 소식이 적혀 있었다.
지난번, 지지난번, 이전에 온 초대장들과 비교해 봐도 토씨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감읍해하며 받을 초대장을, 소벨은 확인을 마치자마자 미련 없이 찢어 버렸다.
“야, 그래도 황가의 인장이 찍혔는데.”
“전하께서 여름 연회에 대해서는 전달할 필요 없다고 하셨잖아. 어차피 전달도 안 될 거, 오히려 황가의 보안을 지켜 주는 셈이지.”
벌써 몇 통째인지 몰랐다. 지긋지긋하게 오는 초대장을 바라보다가 소벨은 문득 저 멀리 저택의 대문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제법 질기네.”
“아, 정말. 날 따라왔나 봐. 제이드 마델레이네.”
윈스터가 번거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멀리서도 시린 은발이 눈에 띄는 제이드 마델레이네는 벌써 며칠째 이 비칸데르 대공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이미 여러 번 대공저 대문 안으로 들어오려 시도했던 그는 이제 견고하고 단단한 문 앞에서 시위하듯 저렇게 서 있었다.
하지만 대공저의 모두는 동정 한 줌 없이 그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그들은 아가씨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모습을 기억했으니까.
“있을 때 잘했어야지.”
소벨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시종이 들어왔다.
“황궁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쟁반 위에 얹어진 편지를 보던 소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넌더리가 난다는 얼굴에 윈스터는 히죽 웃었다.
“질긴 건 황궁도 똑같나 보네.”
습관처럼 초대장을 확인하고 찢어 버리려고 했는데. 이번 초대장을 본 소벨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왜 그래?”
심상찮은 기색을 읽었는지 윈스터가 소벨의 어깨를 툭 쳤다. 소벨은 음, 침음을 흘리다가 이내 기계적으로 초대장의 한 구절을 읽었다.
“헤페르티 사절단 역시 연회에 참석할 예정.”
윈스터의 얼굴도 굳어졌다. 일전에 대공은 공식적으로 귀족 회의에 참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것도 헤페르티와의 협상을 시작으로.
“……누군지 몰라도 제법 머리를 썼네. 어쩌지?”
“어쩌긴 뭘. 쉴 새 없이 빨리 달려가서 직접 보고드려라. 윈스터 칼터.”
다시 무심하게 초대장을 닫은 소벨은 윈스터의 품에 턱 하고 초대장을 던졌다. 윈스터가 얼굴을 찡그렸다.
“나 이제까지 쉬지 않고 비칸데르령과 제도만 왔다 갔다 했는데?”
“참, 이것도.”
소벨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응접실 한편에 있던 서류 봉투를 건네며 엄숙하게 덧붙였다.
“마델레이네 공작저에서 온 편지야. 아가씨께 완벽히 전달드려.”
“으엑.”
마델레이네 공작저라는 말에 고개를 저으며 싫은 표정을 하던 윈스터의 표정이 바뀐 건 다음에 이어진 말 때문이었다.
“아, 그리고 거기 ‘리브 그린 님’께 드리는 편지도 있다.”
낚아채듯 서류 봉투를 든 윈스터의 얼굴에는 이미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소벨은 마델레이네 공작저에서 왔던 하녀가 한 말을 떠올렸다.
“이거를 꼭 저희 아가씨께 전달해 주세요. 아가씨께서 정말 기다리시던 편지예요. 리브 그린 님께 온 편지라고 말씀드리시면, 아가씨께서도 정말 반가워하실 거예요.”
편지가 전달되지 않을까 신신당부를 하던 말 속에서 발견한 ‘리브 그린’.
소벨은 희미하게 웃었다.
아가씨와 대공 전하. 두 사람이 아무리 인연이라고 해도 이 정도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다.
* * *
“대공저에서 기사가 나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전하. 나간 기사는 윈스터 칼터 경으로 대공의 측근입니다.”
태자 궁의 응접실.
나른하게 소파에 기대앉은 레오포드는 기사의 보고에 입꼬리를 슬쩍 올려 보았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있던 황녀, 레이나를 바라보았다.
아침부터 찾아와 대차게 쏘아붙이던 레이나는 입술을 비죽거렸다.
“들었지? 그러니 염려는 덜고 이제 가서 티 파티를 준비해. 그건 네가 직접 가서 살펴야 하지 않겠어?”
차분히 고개를 끄덕이는 누이를 보며 레오포드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안 그래도 바쁜 일이 산더미 같았다. 그 와중에 여름 연회에까지 제가 신경을 써야 하다니.
마리아는 잘한다는 말 이후로 제대로 처리한 게 없었다. 레오포드는 마리아를 떠올리며 한숨을 삼켰다.
그리고 레이나가 오자마자 내렸던 제 결정을 떠올렸다.
“대공이 오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면 되지 않겠나. 예를 들어…… 그래, 헤페르티와의 협상을 카드로 제시하면 되겠군.”
물론 피치 못하게 귀찮은 일도 생겼지만 말이다.
“정말 헤페르티의 사절단을 여름 연회에 초대하실 예정이십니까?”
급히 알현을 신청했다는 저 딱딱한 얼굴만 없었어도 좋았을 텐데.
콘라드 마델레이네.
외무부에 속한 그는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득달같이 달려왔다.
“뭐 문제 될 게 있겠나. 내 약, 아니. 내 누이가 주최하는 연회인데. 심지어 상대는 패전국 헤페르티의 사절단이고 말이야.”
“하지만 패전국이라 할지라도 헤페르티는 타국입니다. 아직 연회의 개략적인 일정조차 나오지 않은 판에 타국의 사절을 초대하신다 하면……!”
심드렁한 태자의 말에 콘라드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타국 사람들이 참석하는 것은 일반 연회와 다르게 취급되어야 했다. 하지만 콘라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지스 백작이 끼어들었다.
“대공저에서 공녀와 대공의 참석 여부에 대한 답이 오기까지 닷새 정도 걸릴 예정입니다. 그동안 마델레이네 소공작께서도 절차를 갖춰 헤페르티에 연락을 취하십시오. 외무대신께는 이미 연락드렸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공녀니 참석에 대한 예의는 성의껏 갖출 수 있게 준비하게.”
“예. 전하.”
용건이 끝났다는 듯 레오포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며 따라 일어서던 콘라드는 이를 악물었다.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이 불편함이 과연 헤페르티 때문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듣는 올리비아의 존재 때문인지 콘라드도 알 수 없었다.
콘라드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태자가 먼저 응접실을 나섰다. 그 뒤를 따르던 하지스 백작이 흘끗 콘라드를 보았다.
“……마델레이네 경이 소식을 전하러 떠난 이의 뒤를 따라갔다고 합니다.”
볼일이 끝났다는 듯 나가는 하지스 백작을 보면서 콘라드의 마음 한편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며칠이나 소식이 없었던 제이드가 언제 제도에 돌아왔던 걸까. 다시 비칸데르로 떠났다면 그간 정말 올리비아를 보지 못했던 걸까.
“오라버니.”
문득 환청처럼 귓가에서 번지는 목소리에 콘라드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당연함이 지독하게 생경했다. 헛헛함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콘라드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심장이 불안하게 박동했다.